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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한의대생 당시 노트를 펼쳐보며
오래된 한의대생 당시 노트를 펼쳐보며
한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고등학생이나, 현재 대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흔히 대학 시절 공부를 어떻게 했냐고,
어느 강의가 제일 재미있냐고 많이들 물어보십니다. 왠지 한의사는 남다른 강의를 듣는다거나,
독특한 학습 비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제 기억에 가장 남았던 추억을 꺼내면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딱 보기에도 빡빡해 보이는 책장이죠? 지금 한의원의 책장을 찍어봤습니다.
집에는 한 20배정도의 크기의 책장이 있답니다. 저는 지금도 제 책장을 대학시절부터 함께 해왔던 책들로 채우고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물론 지금도 필요한 자료이기 때문이지요^^; 배움에는 끝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 이유는 그 때의 열정을 잃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란 조금만 방심해도 교만해지는 동물이니까요..
요즘이야 PPT 같이 컴퓨터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학생들끼리 손쉽게 공유하고들 한다지만,
제가 공부할 때만 해도 필기는 고역이었습니다^^;
한 번은 교수님의 말하는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필기를 하다가 아예 손을 놓은 적이 있었지요.
따뜻한 봄날에 이게 웬 생고생인가 싶어 분이 났더랬습니다.
나름의 반항(?)이라고 생각하고 아예 그 시간에 딴 생각하며 창밖만 바라봤지요.
그 강의실에서 마치 저만 자유로운 것처럼 통쾌함까지 느껴졌습니다…만 그것도 잠시^^;
그 날 저녁에 차라리 울고 싶을 정도로 빠진 필기를 채우느라 밤을 샜던 기억이 있습니다.
1)부맥 : 손가락을 살짝 얹었을 때는 느껴지고, 누르면 느껴지지 않는 맥
(※아래에는 부맥이 나오는 한의학적인 이론을 써놨습니다)
2)침맥 : 손가락을 살짝 얹었을때는 느껴지지 않고, 누르면 느껴지는 맥
(※아래에는 부맥이 나오는 한의학적인 이론을 써놨습니다)
3)지맥 : 1호흡 시간동안 맥이 3회 이하 촉지되는 것(장부기능저하를 시사)
4)삭맥 : 1호흡 시간동안 맥이 6회 이상 촉지되는 것(급성염증반응을 시사)
한의대생의 필기 노트를 보신 적이 있나요? 이게 팔요맥을 배울 당시의 노트입니다.
배울 때에는 너무나 생소한 내용이라 못 알아듣더라도 필기는 열심히 하자!는 욕심으로 썼었지요.
혹시 팔요맥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사극에서 '맥을 짚어본다'라면서 지그시 눈을 감고
환자의 여기저기를 눌러보는 의원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렇게 맥진을 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아주 중요한 8가지의 맥의 파형(음파나 전파 같은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이 있습니다.
부맥, 침맥, 지맥, 삭맥, 활맥, 삽맥, 대완맥, 현긴맥 이렇게 8개죠.
한의대에서 맨 처음 배우는 건 모든 대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상대성을 가진 그대로 설명하는 방법인데요(여기에 얽힌 에피소드는 나중에 따로 써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부맥과 침맥은 음양론에 입각해서 서로 상대가 됩니다.
나머지 6개의 맥상도 음양론에 입각해서 서로 대를 이루고 있지요.
지금은 눈감고도 술술 말하지만 그때는 이걸 외우는 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글을 쓰려고 어떤 사진을 찍을까 책을 뒤적이는데 참 감회가 새롭네요.
그 때는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었나 싶고, 지금은 얼마나 더 열심히 살고 있나 괜스레 숙연해지네요.
대학 입시 때도 이렇게까지 공부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한의대에 입학한 이후로 정말 타의든 자의든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아요.
미리 밝히지만 전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거나 원래 부지런한 성격은 아닙니다^^;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는데, 입학한 뒤 첫 강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나름 의욕을 불태우며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교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 못하겠는 거예요.
하얀 것은 글씨요, 푸른 것은 칠판이니…가뜩이나 한자에 쥐약이었던 저는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괜히 초조해져서 주위를 둘러 보니 저 빼고는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 상상이 가시나요?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준비해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켜도 안하던 예습․복습이 생활화처럼 자동으로 척척척.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됐는데 웃음만 나오죠.
저희 집은 가정교육이 제법 철저한 편이었기에, 저는 언제나 윗사람에 대한 약간의 부담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물며 교수님이라니, 스승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고 피해간다는 마음의 정말 하늘같은 존재였죠.
때문에 가능한 모범적인 학생이고 싶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저에게는 모범생=조용하다의 공식이 있었거든요.
헌데 공부에 대한 긴장된 열정은 모든 것을 뛰어넘더라구요^^;
그렇게 얌전하던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표시하고 강의가 끝나면
부리나케 달려 나가서 질문하는 것은 기본. 어떨 때는 교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길목에 잠복(?)하다가
툭 튀어나와서 이것저것 질문하느라 2시간도 넘게 걸렸던 적이 있습니다^^;
당황하셨을 텐데도 결국은 기특하다고 질문 끝에 저녁까지 사주셨던 교수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합니다.
체용과 기미(하도)
《하도(河圖)》는 복희(伏羲)가 황하(黃河)에서 얻은 그림으로, 이것에 의해 복희는 《역(易)》의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하며, 《낙서(洛書)》는 하우(夏禹)가 낙수(洛水)에서 얻은 글로, 이것에 의해 우(禹)는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으로서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위서(緯書)>에 있는 《하도낙서》는 칠경(七經)의 <위서>와 함께 전한(前漢) 말에서 후한(後漢)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하도괄지상(河圖括地象)》 《하도제람희(河圖帝覽嬉)》 《용어하도(龍魚河圖)》 《낙서영준청(洛書靈準聽)》 《낙서견요도(洛書甄曜度)》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칠경의 <위서>와 함께 참위설(讖緯說)의 주요자료로 많은 일문(逸文)을 남기고 있다.
읽으셨다가 깜짝 놀라 정도로 장황한 설명이지요? 내용은 간단합니다.
고대 중국의 한 철학자가 산책을 하다가 강을 보고 문득 깨달음을 얻은 거지요.
그래서 오행을 배치시킨 상징적인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 바로 하도(河圖洛書)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오행론이 시작되었죠.
이게 왜 중요하냐면 오행론은 음양론(위에서도 한 번 언급이 됐었죠^^)과 더불어
동양철학과 한의학을 발전시키는 이론적인 뼈대이기 때문입니다.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세상 만물은 5가지의 속성을 지닌다는 것이 오행론의 골자입니다.
보통 목․화․토․금․수토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목․화․토․금․수 속성의 조합만으로도 만물의 본질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오행론이지요^^
이것이 한의학에서는 인체에 적용됩니다.
목-간, 화-심장, 토-비장, 금-폐장, 수-신장으로 연결이 되지요.
간장은 목의 기운을 가진 장기입니다.
나무처럼 뻗어나가기 때문에 매우 활기찬 장기지요.
때문에 간장이 안 좋아지면 생기를 잃기 때문에, 제일 먼저 피로가 심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심장은 화의 기운을 가진 장기입니다.
불이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맞습니다. 타오르는 것이지요.
때문에 심장은 생명을 유지하는 보일러 같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심장의 기운이 너무 과하게 되면, 화를 잘 내고 얼굴이 붉어지게 되지요.
'불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연상이 쉽게 되시나요? ^^
비장은 토의 기운을 가진 장기입니다.
흙으로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는 무엇이 있을까요?
무엇이든 눅여주고, 갈무리하고, 흡수하는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비장의 기능이 떨어지면 몸이 무겁고 마디가 붓게 됩니다.
폐장은 금의 기운을 가진 장기입니다.
금은 어떤 이미지일까요? 금, 금속 모두다 서늘하니 차가워서 아래로 내려주는 느낌이지요.
마찬가지로 폐장의 기운이 좋아야, 소변/대변이 아래로 잘 내려가게 됩니다.
신장은 수의 기운을 가진 장기입니다.
심장이 불을 땔 수 있도록 연료를 보충해주는 기름 창고 의 역할이지요.
때문에 신장의 기능이 떨어지면 전체적으로 살색깔이 검게 변하고, 연료가 없어서 몸이 냉하게 되지요.
이렇게 보니 한의학도 제법 재미있는 학문이지요?
배울 당시에는 도대체 이런 걸 왜 배울까 울상이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걸어왔던 모든 길과 넘겼던 모든 책장이 꿈만 같고 마냥 즐겁습니다^^
이 글을 통해 조금이나마 한의대생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느끼셨다면 뿌듯하겠습니다.
멈추지않는도전 1. 한의사로서의 첫발과 시련
블로그, 많은 분들이 블로그란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역시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던 영역이었죠.
하지만, 병원을 운영하면서 블로그를 만들어 나간다는 건 제게 있어 감히 손댈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저희 병원에 오시던 환자 한 분께서 제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면
자기 같은 사람에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될 것이란 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자신을 알리는 데 목표를 두지말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 한 대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별볼일 없는 아저씨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분명히 전 볼품없는 아저씨지만, 제가 가진 한의사로서의 지식과 경험만은 분명히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란 자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 공간을 열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읽기 시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 이야기를 통해 한의학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전 너무나 행복할 것 같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시작해 볼까 합니다.
............................…………….
첫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해야할까 고민하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생각이 나더군요.
공부 못하던 학생이 각자의 사연을 안은채 공부를 시작한다.. 저역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보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써야겠다 마음 먹은 이후, 저도 그렇게 공부 못하는 학생이었다면
학생시절부터 해서 훨씬 스릴넘치는 이야기가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져보았습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그야말로 학교가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정말 큰 시련없이 한의사가 된 케이스입니다.
물론, 고등학교 때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고, 대학에 들어왔으며 대학에 와서도 잠을 쪼개가며 공부했던 기억은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 시간이 하나의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이었고, 어려움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전해야 할 지, 아직은 통 모르겠습니다. ^^;;
저의 첫 이야기는 한의사가 된 이후로 좁혀야 할 듯 합니다.
두둥.. ^^;;
[한의사로서의 첫 발, 내 인생 최고의 시련]
많은 분들이 한의대생이라고 하면 꼭 하는 질문이 있죠. 저도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이기도 하구요. 그건 바로
“나 몸이 이렇게 저렇게 안좋아. 뭐가 문제야? “
물론 묻는 분들도 큰 기대는 없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특히, “난 아직 학생이라 몰라”라고 넘기면끝날 일이었죠. ^^;;
하지만, 한의사가 된 이후에도 저런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선생님. 저 여기여기가 너무 아파요. 어떻게 하면 나을까요?”
“진짜 죄송한데요, 제가 아직 한의사된 지 얼마 안돼서..”
^^;;;;
하지만, 지금 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의사가 된 이후,
“왜 이런가요?”라는 물음에 진단을 내리는 건 자신있었지만,
“안아프게 해주세요”라는 간절한 요청에는 꼬리를 내리고 도망갈 수 밖에 없었던 저를요..
처음으로 제가 근무했던 곳은 인천에 있는 동국대학교 부속 동인천한방병원이었습니다.
전 학생시절의 뜻과 포부, 그리고 한의사로서의 성공이란 현실적인 꿈도 안고 의욕적인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리고 실습을 나가면서 배웠던 것들을 적극 활용하여 정말 열심히, (오바한다고 선배들에게 욕먹을 만큼)
열심히 환자분들을 만나고 치료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좌절의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나 빨리 찾아왔습니다.
분명히 배운대로 했는데, 분명히 들었던 대로 했는데, 어째서인지 증상의 호전이 오질 않는 사례가 자꾸 늘어가는 것이었죠.
물론, 모든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한의원을 찾는 분들의 증상은 각양각색이지만, 적어도 8~90 % 이상은 한의학 교과서에 나와 있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또 다뤄보고 싶네요) 이런 증상은 치료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만,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 나머지 증상에선 제 한계가 여실히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 그리고 치료현장에서 만난 많은 선배들의 조언,
이런 것들을 통한 저의 판단에 의한 치료를 하고나면, 제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 점점 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이런 일이 터졌지요.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였는데, 허리가 아파 밤에 자다 깨는 일이 자꾸 생긴다고 했습니다.
전 최선을 다해 침과 부항,한약치료 등을 통해 진료했습니다.
그러던 지 3주 정도 지난 어느날, 아이가 제게 묻더군요.
의사선생님, 저 왜 허리가 낫질 않아요?
아…
선생님, 너무 아파요. 선생님..
아, 저기 아가야. 선생님이 열심히 해결책을 찾고 있단다. 조금만 더 같이 해보자..
선생님, 저 좀 살려주세요..
엉엉 우는 아이를 보며
당황한 아이 엄마가 몇 번이나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돌아갔지만, 전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할 지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제가 찾은 방법은 대학원이었죠. 제 공부가 부족하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학부생들 못지않게 밤새워 리포트를 쓰고 교수님께 모르는점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물었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대학원생들중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이어린 학생들이었죠.
하지만 이왕 하는김에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에 낮에는 진료, 밤에는 대학원공부 이런날들이 하루 이틀씩 지나갔습니다.
다른 한의원 원장님들과도 밤새워 이야기도 나눠보고, 유명한 강의가 있다면 지방이라도 찾아갔습니다.
평소에 독하다는 말을 듣는 저였지만, 그 당시에는 부모님조차도 몸 좀 생각해서 일하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당시 제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
이런 노력 덕분에 다행스럽게도 처음에 저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했던 암흑속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환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에 더 자신을 갖게 되었고, 어느 정도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또 한번, 저를 좌절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는데요.
바로 아토피 환자였던 철진이 였습니다.
처음 저희 한의원에 엄마손을 잡고 온 철진이는 작고 수줍음이 많은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결코 엄마손을 놓지 않더군요. 얼굴에는 별 이상이 없었지만, 몸 전체가 아토피로 번져있었습니다.
철진이의 어머니가 아토피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친구도 잘 사귀지 못하고 모든 생활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서 철진이가 그동안 받았을 고통과 스트레스가 상상이 되더군요.
이 아이를 꼭 고쳐주리라고 다짐햇고 그동안 공부했던 것들이 결코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철진이의 상태는 약간의 호전된 모습을 보였을 뿐, 결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반년 가량 지났던 어느날.. 더 이상 병원비가 부담되어 올 수 없다고 말하며 울던 철진이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돌아가던 철진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은 "그래도 고마워요" 였습니다.
사람이 한번 벽에 부딪혔을땐 금방 일어나지만, 두번째, 세번째 벽에 부딪히고 쓰러지니까 정말 못견디겠더군요.
더이상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휴가를 내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때 참 많은 생각이 나더군요.
대학시절 도서관에 무거운 가방을 끌고 들어가던 기억, 실습 때 잠도 못자가면서 고생하던 기억..
방학 때 의료봉사 가서 만났던 분들, 학회에서 치열하게 토론했던 시간들..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일, 좋은 강의 들으러 지방까지 찾아다녔던 기억까지..
한의사가 되기위해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기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다시한번 떠올렸습니다.
여행덕분에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저는 다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제 마음속에 드는 자괴감과 죄책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멈추지않는도전 3. 환자들에게 배운 것
매일매일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전 포기할 순 없었죠.
사실 대한민국 대부분의 한의사가 그렇듯이 한의사가 되고나면 다른 직업을 가질 생각을 잘 못합니다. ^^;
죽이되든 밥이되든 한의사로서 끝장을 보자라는 결심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환자를 대하고
환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환자에게 친절하고자 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고 느낀 시점에서 내가 뭐 때문에 한의사가 되고 싶었는지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마음을 비우니 편해지더군요.
많은 좌절들을 겪고 고비에 부딪혔을때 처음 한의사가 되기로 다짐했었던 그때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잊고 있던 것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 스스로 너무 '명의'가 되기위해 집착했던 게 아니었나.. 어떤 병이든 고쳐내는 명의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죠.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하는 것이 더 큰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고 저 자신을 낮추고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조금씩 눈에띄는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엄청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환자를 통해 환자를 고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나의 지식으로 고쳐내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환자의 고통과 통증을 줄이겠다는 마음, 환자의 입장에서 예전에 생각치 못했던 각도에서 환자를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전엔 모두 각각의 증상이라 생각했던 환자들 한 명 한명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고통과 증세별로 공통점이 찾아지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 기존엔 생각치 못했던 해결책이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죠.
아주 미묘한 차이지만, 한 명의 환자만을 봐선 알 수 없는 무엇을 다른 환자의 모습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되는...
방금전에 보았던 환자의 경험을 통해 지금 치료하는 환자에게 새로운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어가는 것이었죠.
저의 방황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한의사로 살아오며 가장 보람있는 시간이 언제였나요?
어떤 직장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자기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한 모습들을 그리고 그 진정성과 진심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 누군가가 환자 고객분입니다.
제가 앞으로 꾸며갈 블로그가 환자들과 저의 소통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한의사라는 직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현실과 거리가 먼 쪽으로 많이 비춰지곤 하잖아요.
뭔가 다가가기 어렵고, 고지식할 것 같으면서도 돈은 잘 벌 것 같은 이미지.. 그런 것은 저희도 잘 알고 있답니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제 이야기를 하고, 한의사, 그리고 저의 전공분야인 탈모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고비에 부딪힐때마다 환자에 대해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점점 마음을 열어가는 환자의 모습을 볼때마다 느꼈던 마음가짐 그대로,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멈추지않는도전 3. 환자들에게 배운 것|작성자 스칼렛
첫댓글 배움은 끝이 없네요! 글 감사합니다.^^ 근데 사진이 안보여요; 제 컴이 이상한거겠죠?ㅎ
아니요 ㅋㅋ 제가 다시 올려야겠네요
사실 한의학에 반감있는 사람들도 많고 해서 한의사가 꿈인 사람들만 보는게 맞는 성격의 게시글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직업인으로 우뚝 서는 과정을 상상하면서 읽어보시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까 싶어서 올려봤습니다~ 저는 제 앞으로의 과정이 마음속에 그려지더군요~
와화이팅!^^♥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한의학 등 의학쪽은 제2의 외국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네요;;ㅋㅋㅋㅋㅋ
동준님도 한의사 되신다고 하셨죠? 화이팅~
좋은 글 고맙습니다. 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