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 출장
행정기관에는 일제시대부터 ‘온돌출장(溫突出張)’이라는 말이 있다.
출장명령을 받은 기간보다 하루나 이틀 용무를 일찍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근무처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남은 날짜를 마저 채우는 것을 이른 말이다. 이런 경우에는 출장명령을 단축하고 그에 따르는
여비를 반납해야 하는 것이지만, 모처럼 받은 여비가 탐나서 상사의 눈을 속여 가며 꿩 먹고 알 먹는
속셈에서 나온 행위인 것이다.
이와 같은 온돌출장이 소극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리어 적극적으로 공공연하게
이루어진 때가 있었다. 그것은 정부에서 주는 여비가 여행 실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액을
메우기 위해서 실지로 필요한 출장일수에 며칠간의 에누리를 더 붙이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예
집에 숨어 있을 필요도 없이 출장 중이면서도 버젓이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한다.
이러한 온돌출장이 엉뚱한 데로 비약을 해서, 박봉에 시달리는 말단 직원들의 생계비로 또는 상급
기관에서 출장 온 직원의 접대비로, 더 나쁘게는 퇴근길 동료 간의 대포 값으로까지 둔갑을 하기에
이른다.
변태경리의 일종인 온돌출장도, 청렴결백하고 강직하기로 이름난 김순권 씨에게는 절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김순권 씨가 서무과장으로 있을 때의 일이다. 서무과 문서계에 근무하는 이 모 서기가 있었다.
그 당시의 봉급은 식생활도 해결할 수 없는 박봉이므로 이 서기의 사생활 역시 매우 곤궁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때에 부인이 해산을 하였다.
그러나 이 서기로서는 미역국조차 끓여 먹일 수가 없었다.
이런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문서계장은 이 서기를 출장명령부에 기재하여 큰 용기를 가지고 김 과장에게
올렸다. 문서계장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김 과장은 “눈을 뜨고서야 결재를 할 수 있나?” 하면서
목도장에 인주를 듬뿍 묻히더니 눈을 딱 감고 도장을 찍는 것이었다.
결재를 할 수 없는 문서라면 눈을 감고서도 결재를 하지 말아야 한다. 눈을 감고 결재를 하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옹이고 그 이상의 위선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은 여기에 김순권이란
인간의 참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김순권 씨는 유달리 눈물이 많은 분이다. 부하 직원의 참상을 듣고 모른 체 할 김순권 씨가 아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으면 주고 싶을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박봉 신세는 매 한가지이다. 부정을 미워하는
그분이 직원의 불행을 모른체하느냐 아니면 부정과 타협을 하느냐 매우 괴로웠으리라.
눈을 감고 ‘도장을 찍은 것’은 자기의 양심을 속이기 위해서라기보다도 괴로운 심정의 표현이요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나에게 강요 말라는 무언의 항변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도 격하기 쉬운 김순권 씨인지라 흐르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춘천행우)
감사 합니다.
카페지기
첫댓글 우리들이 사회에 나왔던 70년대 까지도 공무원의 급료는 정말 박봉이었지요.
언제부터인지 공무원의 급료가 올라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가 되었는데
공직에 있었던 분들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70년대초 공직생활을 시작한 나도 박봉으로 시달린 기억이 생생한데. 그 이전의 공무원들은 오죽했겠습니까.
나도 대공수사 업무를 잠깐할때 부산출장을 가야 하는데 출장비는 택도없이 적게 나오고 출장은 가야하겟고
할수없이 서울역서 출구를 나갈때 신증 까고 나가 열차타고 표검사 않하는 식당칸에 앉아 부산까지갔던 일도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공무원들 그렇게 출장가라고 하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