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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후예(1953) - 황순원 - |
[줄거리] |
박훈은 평양에서 공부하는 동안 조부와 아버지의 사망으로 지주가 되었고, 도섭 영감은 이십여 년 동안 훈이네 토지를 관리해 온 마름인데 박훈은 마름의 딸 오작녀를 좋아해 왔다. 훈이 고향으로 돌아와 배우지 못한 소작인의 자식들을 위해 야학(夜學)을 운영하게 되자 오작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훈의 집에 기거하며 그의 수발을 들어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해방이 되어 북한 세력이 들어서면서 훈은 야학을 압수당하고, 도섭 양반은 마름을 한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지주와의 관계를 끊으라는 군당부의 압력을 받아 토지 개혁 운동에 앞장을 선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대회가 열리고 지주인 박용제와 윤주사가 반동분자로 몰려 숙청(肅淸)을 당하지만 훈은 오작녀의 도움으로 숙청을 면한다. 그러나 딸의 소행으로 인해 훈의 토지를 갖지 못하게 된 도섭 영감은 훈의 할아버지 송덕비(頌德碑)를 도끼로 때려 부순다. 훈은 사촌 동생 혁을 통해 오작녀와 월남 계획을 세운다. 그는 순안으로 돌아오다가 도섭 영감이 주도했던 지난 농민대회 때 숙청당한 삼촌 박용제를 본다. 사동 탄광에 끌려 갔다가 탈출한 용제 영감은 트럭에서 몸을 날려 자살한 것이다. 오작녀와 순안을 떠나려고 했던 훈은 도섭 영감을 죽이기로 작정한다. 이즈음 아들 삼득이가 박용제 영감의 묘자리를 파 주었다는 이유로 도섭 영감은 농민 위원장 자리에서 숙청된다. 산으로 올라가 훈과 맞선 영감은 훈의 칼에 옆구리를 찔린다. 영감은 이에 낫을 휘두르나 항상 훈의 신변을 걱정해 미행해 오던 오작녀의 동생 삼득이 이를 저지하다가 상처를 입는다. 영감은 삼득과 실랑이를 하다가 살의를 버린다. 삼득이가 훈에게 오작녀를 데리고 빨리 떠나라고 말하자, 정신을 차린 훈은 오작녀와 함께 양짓골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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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성격] |
박 훈 → 지주의 아들로 지주가 된 전형적인 지식인이다. 결벽한 양심주의자이고 관조적인 사랑의 소유자이나 삼촌의 죽음을 계기로 행동형의 인간인 카인으로 변모하여 도섭영감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그에게 칼을 들고 덤벼드는 동적 인물이다. 도섭 영감 → 원래 부유한 집 아들이었으나 가산을 탕진하고 떠돌아다니다가 훈의 집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마름이 된다. 해방 후 토지개혁에 앞장서서 지주인 훈을 배신하고 자신의 이득을 추구해나간 동적인물이다. 냉혈한 기회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오작녀 → 어린시절부터 훈과 좋아하는 관계였으나 신분적인 차이로 최가에게 결혼했다가 남편의 구박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여인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훈이 돌아온 뒤에 그의 수발을 헌신적으로 들어준다. 나중에 훈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와 함께 양짓골을 떠나는 정적 인물이다. 사랑하는 박훈에게는 온순하고 헌신적이면서, 박훈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든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는 당찬 여인이다. 그 외 → 오작녀의 남편은 건달이면서도 나름대로 멋과 의리를 지닌 사내다. 박훈의 삼촌 용제 어른은 토지를 몰수당하고 끌려가 광산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탈출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주도해 건설하다가 끝을 맺지 못한 상태로 있는 저수지를 못 잊어서였다. 어떤 사업을 일으키면 거기 속속들이 빠져들고야 마는 뛰어난 장인(匠人) 같은 인물이다. 용제 어른의 아들이며, 박훈의 사촌 동생인 혁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적극적 성격의 인물이다. 그 밖에 고전적 도리(道理)의 인물 당손이 할아버지, 이중 성격의 기회주의자 흥수, 말 없고 단순하고 힘센 곰 같은 청년 삼득이, 전형적인 공산당 조직의 하수인인 공작원 등, 수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뚜렷하게 색색으로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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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
◈ 이 작품은 북한에서의 토지개혁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치하에서의 애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박훈은 평양에서 공부하는 동안 조부와 아버지의 사망으로 지주가 된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배우지 못한 소작인의 자식들을 위해 야학을 연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북한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는 야학을 빼앗긴다. 또한 토지개혁의 물결이 밀려온다. 그가 숙청을 당할 절대절명의 순간, 소작인의 딸이며 착하고 순진무구한 오작녀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다. 아버지 도섭 영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훈과 함께 양짓골을 떠나며 훈을 죽이려던 도섭영감은 살의를 버린다. 이 작품은 폭력과 증오가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남녀간의 사랑을 대단히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 “카인의 후예”는 소설의 주제를 강하게 암시하는 제목이다. 카인은 하느님이 창조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 중 맏이이다. 그리고 아우인 아벨을 죽임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다. “카인의 후예”란 최초의 살인자이며 형제를 질투하고 증오한 카인의 피를 받은 후손이라는 뜻이다. 박훈의 고향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념의 도입으로 인해 질투하고 증오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것은 형제와 다름없는 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범죄이다. 그러나 이러한 범죄는 박훈의 고향 마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팔선 이북 지역 전체에서 일어난 일이며, 나아가 삼팔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질투, 증오, 살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 안에서 빚어진 이런 비극과 범죄는 카인과 아벨, 아담과 이브에게로 소급되어 인류의 원죄와 연결된다. 소설 “카인의 후예”는 그렇듯 해방 직후 평안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류의 원죄까지 연결시키고, 또 거꾸로 인류의 원죄라는 거대한 주제를 평안도 시골 마을의 조그만 사건으로 상징화시키는 작업을 해냈다. “카인의 후예”는 역사적 사건을 보편적 의미로 확대시켜 형상화한 훌륭한 작품인 것이다.(독서평설 96.11)
◈ “카인의 후예”는 시대를 증언하는 역할에 상당한 무게를 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인의 후예”를 읽으면 해방 직후 삼팔선 이북에서 있었던 독특한 소용돌이가 선연하게 드러나 보인다. 시대를 증언하는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거울처럼 비쳐 보여 주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그림을 그려 보여 주는 방법이다. 거울처럼 비쳐 보여 주는 방법은 시대상을 보여 주되 작가의 주관을 배제하고, 있는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정확하고 냉정한 태도를 취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보여 주는 방법은 작가의 주관적 평가를 개입시켜 그 시대의 현상을 증언하는 태도이다. “카인의 후예”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거울에 비치듯 보여 주면서도 아주 객관화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주관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다. 즉 “카인의 후예”에서는 박훈을 비롯한 지주 계급 쪽에 조금 더 비중을 두고 작품을 전개했다. 또한 작품 내용의 입장에서 볼 때 작가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삼팔선 이북에 자리 잡은 공산당 지도부는 혁명처럼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켰다. 과거의 상층 계급을 갑작스럽게 하층 계급으로 끌어내리고 과거의 하층 계급을 갑자기 부상시켜 놓았다. 오랫동안 지녀 온 풍속과 관행도 갑작스럽게 깨 부숴 놓았다. 사회는 가둬 놓았던 물을 별안간 쏟아 낸 듯한 그리고 물길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혼란이 일어났다. 급하더라도 순리에 따라 해야 하는데 그러한 변혁은 순리와는 상관없는 무리와 억지여서 부작용이 낙석처럼 떨어져 굴러다녔다. 또한 친밀하던 인간 관계가 갑작스럽게 깨어져 적대 관계로 바뀌고 폭력과 살육이 자행되었다. 따라서 양식과 지성을 갖춘 작가로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이 소설의 인물들의 성격을 보면, 해방 직후 평안도 순안 부근의 어느 시골에 몰아 닥친 공산주의의 거센 물결 속에서 상처 입거나 죽지 않으려고 허둥거리는 모습으로 부각된 인물들이다. 격변기를 만났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해 가는가. 물론 성격에 따라 자기 나름의 대응을 하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거꾸로 대응하는 과정을 통해서 각자의 독특한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에서 격변기에 적응하고, 적응하려고 허둥거리고, 적응하지 못해 낙엽처럼 떨어져 짓밟히는 사람들은 앞선 시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 |
[핵심사항 정리] |
▶ 갈래 : 장편소설 ▶ 배경 : 공간적 → 평양, 양짓골 시간적 → 해방 후 사상적 → 휴머니즘과 반봉건주의 사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복합구성 ▶ 주제 ⇒ 해방 후의 토지개혁과 젊은 남녀의 건강한 사랑 분단 상황의 민족적 비극 ▶ 출전 : <문예>(1953. 9. ~ 1954. 3)에 연재 발표됨. |
[더 알아 봅시다] |
■ 작품 비평 (평론가 천이두) “카인의 후예”는 황순원의 문학적 궤적에서 볼 때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하나는, 앞서서 잠깐 언급한 바 있지만, 그의 여러 작품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당대 현실의 정치적 이슈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고, 따라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서는 드물게도 고발 문학적 경향을 띠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그의 단편 작가로서 추구하여 오던 문학적 과제가 한 정점의 성취를 이룩하면서 장편 작가에로의 지표를 열어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별과 같이 살다”에 이은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러나 “별과 같이 살다”는 애당초, 개개의 부분들을 독립시켜 발표한 사실로서도 알 수 있듯이, 장편소설로서의 뚜렷한 서사적 골격을 갖추었다고 하기 어렵다. ‘곰녀’라는, 그의 단편 문학에 곧잘 등장하는 토속적 여인상의 인생의 여러 단면들이 그 자체로서는 아름다운 서정시적 정경을 펼쳐 보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일종의 연작소설 같은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곰녀'라는 인간상 자체가 장편소설적 전개를 보이기에는 너무도 마뜩지 않은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 ‘곰녀’의 생애의 과정과 병행하여 식민지 시대에서 8・15 해방이라는 역사적 전환기가 펼쳐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역사적 전환기를 자신의 생애의 과정 속에 탄력 있게 수렴하면서 대응해 나가기에는 그녀는 너무도 완강한 성격적 일관성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커다란 변혁을 치르면서도 한결같이 소박하고 어리석고 착하고 따뜻한 자기 속성만을 간직한 채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여기 비하면 “카인의 후예”에 있어서는 8・15 직후의 북한에 있어서 살벌한 격동기를 한 지식인 ‘박훈’의 시선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곰녀’의 경우에는 볼 수 없는 중요한 계기가 열리게 되는데, 그것은 작중 인물 ‘박훈’과 당대 현실 사이의 갈등 관계가 심화되고 또 내면화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의 장편 문학에의 지평은 이런 계기에서 열리게 된다. ‘박훈’의 모습에서 우리는 살벌한 사회적 격동기 속에 부대끼며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지식인의 갈등의 생태를 볼 수 있다. 가혹한 격동기에 대응하는 ‘박훈’의 자세는 정면 대결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극적이며 방관자적인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김병익’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행동주의자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 순응주의자, 체념주의자가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는 끝내 격동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는 방관자의 위치를 고수함으로써 ‘침묵자로서의 부정의 행동’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극적인 듯하면서도 완강히 자기 내면의 순결성을 지켜 가는 박 훈의 모습은 그의 그 뒤의 장편소설의 긍정적 인물들, 예컨대 “인간접목”의 ‘종호’,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동호’, “일월”의 ‘인철’ 등에도 투영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면은 앞서의 ‘원응서’의 증언에서 볼 수 있는 바 작가 황순원 자신의 인간적 변모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이 작품은 고발 문학적 성격이 짙다고 했지만, 그러나 물론 이 작품은 그런 차원을 훨씬 넘어서 있다. 박 훈의 생태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가혹한 시대를 이겨내는 한 지식인의 갈등과 모색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 작품에 있어서 더 큰 흥미의 초점이 되는 것은 ‘오작녀'의 모습이다. ’오작녀'는 ‘곰녀'를 비롯한 많은 그의 단편소설의 토속적 여인상들과 진한 혈연을 맺고 있다. 그녀 역시 ’곰녀‘가 그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시대적 소용돌이와는 아무 상관없는 자리에 위치해 있는 인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작녀‘는 ’박훈‘에게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강렬한 원시적 생명력이 발산하고 있다. 이 작품의 작중 현실이 대체로 박 훈의 시선에 의하여 관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오작녀‘의 강렬한 생명력이 발산하는 빛에 의하여 ’박훈‘의 모습은 희미하다. 독자 앞에 정면으로 나타나는 ’박훈‘보다도 그의 자의식의 시선을 거쳐서야 독자에게 전달되는, 따라서 그의 자의식의 피사체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는 ’오작녀‘의 모습이 더 신선하게 독자에게 인상지워진다는 것은 분명 이 작품이 갖는 독특한 아이러니다. 그 아이러니의 비밀은 어디 있을까. 역시 실체 그 자체보다도 그것의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이 작가의 예술적 특질 탓이 아닐까. ‘오작녀’는 분명 오늘의 여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녀의 배후에는 무수한 세월의 부피가 깔려 있다. 그녀의 배후에는 큰 아기 바윗골의 전설, 뻐꾸기 울음, 망부석의 이미지 등등 무수한 한국적 여인상들이 무수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에 이룩하여 놓은 농도 짙은 환상의 여울이 깔려 있다. 그녀의 모습은 당대 현실의 산문적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시적 이미지로서의 그것이다. 예술가로서의 황순원의 매력은 ‘오작녀’에 이르러 한 분수령을 이룩하게 된다. 동시에 그것은 단편 작가로서의 이 작가의 문학적 과제의 한 장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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