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일러 고장
어제 저녁부터 보일러가 이상하더니
결국 간밤에 고장이 나서 난방이 안 됐다
저녁공양 후라 혜안 스님도
다녀간 뒤고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1호실에 무문관 방 전체를
관리하는 센서가 있고 문도 열려 있어
1호실 스님이 미리 알고 조치를 취했으면 되는데
1호실에서 정진하는
주지스님이 몰랐는지 하여간 이 지경이 됐다.
여름이지만
밤에는 불을 안 넣으면 되고,
요즘은 특히 장마철이라
낮에도 가끔 난방을 해야 하는데
어젯밤에 작동이 안 됐으니 오늘도 추위에 떨어야 할 것 같다.
[초발심자경문] 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배슬 (拜膝)이 여빙(如氷)이라도 무연화심(無戀火心)하며
아장(餓腸)이 여절(如切)이라도 무구식념(無求食念)이라"
수행자는 모름지기
----절하는 무릎이 얼음같이 차더라도
----불 그리워하는 마음을 내지 말며
----굶주린 창자가 끓어질 듯 배가 고파도
---밥구하러는 생각을 내지 말라고 하였거늘
편한 방에 앉아
하루 저녁 난방이 안된다고
이렇게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런 시스템은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들 견딜 만한지 조용하다.
나는
내내 잠을 설치다가
결국 찬밥 신세로 있던
겨울 이불까지 꺼내 덮었는데
그래도
결국 새벽 한시에 일어나 좌복에 앉고 말았다
가뜩이나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방까지 난방이 안 되니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앉아 있어도 춥기는 마찬가지다.
덕분에 일찍 일어나
정진은 한다만은 이런 비상사태시
연락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겨울에 만약
이런 일이 생겨 며칠 난방이라도 안된다면
문을 열고 대피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기름보일러는
고치기만 하면 바로 난방을 할 수 있지만,
심야 보일러는 축열식이라 하루 고장이 나면
이삼 일은 떨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1호실은 특별히 밖에서 문을 잠그지 않고
정진을 하고 있으나
각 방에서 1호실로 연락할 방법이 없으니
1호실 스님이 스스로 알기 전에는 소용이 없다
각 방에서 1호실로 비상 시
연락할 수 있는 벨이나 인터폰을 설치하든지 해야지
응급 사태 발생 시 속수무책이다.
밤새 웅크리고 잠을 설쳤더니 온몸이 뻐근하다.
오늘이 음력 5월 보름이라 삭발일인데 머리 상처 때문에
거의 보름 동안 머리도 못 감고 있으니 가렵기도 하고 답답하다
삭발은 치료 상황 봐가면서 며칠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결제하고 꼭 한 달이 됐다.
보름 정도 제대로 정진하는라 애를 쓴 것외에는
여기저기 아프다는 핑계로 정진도 불성실하게 됐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시간은 흘러 벌써 한 달이 지나간다.
몸이 심하게 아플 땐
차라리 시간이 빨리 갔으면 했는데
막상 한 달이 되고 보니
좀더 치열하게 순간을 살지 못한 자신을 경책한다.
만회하는 길은
남은 두달을 더 열심히 정진하는 길뿐이다.
오후 되면서 날이 개었다.
갯벌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고깃배들이 나와 고기잡이에 열중이다
이 근처 배들은 다 왔는지
대략 봐도 거의 백여 척은 될 것 같다.
다들 참 열심히들 살고 있다
식욕도 없는 공양을 대강 먹고
하루 몇 번씩 치르는 전쟁을 했다.
온 몸 여기저기 난
부작용 반점들을 치료하는 시간이다.
좀 뜸해지는가 했는데,
어제부터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이제 반점들이 생기면서
찌르는 듯한 통증까지 수반하고
하나가 생기면 면적도 꽤 넓게 차지한다.
그래, 싸워보자. 내가 다 감당해줄 테니
번뇌 즉 보리라.
번뇌도 또한 깨달음의 씨앗이고,
병고 또한 깨달음의 밑거름이 되니 마다할 게 뭐 있겠는가.
이번 철에 싸울 거리 많아서 좋다.
화두하고 씨름해야지.
이런저런 아픈 것까지 전쟁을 치르야지.
전투가 많으면 군대는 그만큼 강해지는 법.
이 몸 더 크게 아프고, 상처 받고,
고통 받아 더 크게 키우고 강해져서
보람된 일 하라는 불보살님의 단련 기간이리라.
6.25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