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만나는 베케트의 삶
아일랜드 태생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사뮈엘 베케트. 그는 반백 년 동안 이주자로서 살았던 파리에서, 티에르탕이라는 양로원에서 생애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이 책은 베케트의 마지막 장소인 티에르탕을 배경으로 그의 삶을, 특히 마지막 시간을 정교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2020년 공쿠르 첫 소설 상을 수상한 저자 멜리스 베스리는 문학사에서 난해한 작가로 정평이 난 사뮈엘 베케트의 말년을 마치 노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간 듯 일인칭으로 풀어나간다. “내 계획은 실화와 상상의 소산에서 출발해 베케트를 그의 작중인물들처럼 자신의 최후를 마주한 인물로 그려내는 것이었다”고 말한 저자는 노작가의 독백을 생생하게 재현할 뿐만 아니라 베케트의 말년을 돌봤을 양로원 스텝들의 시선을 통해 베케트를 보는 제삼자의 시각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최후의 침묵으로 향하는 위대한 아일랜드 작가의 삶을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절정을 기다리는 대작가의 마지막 6개월.
문학과 노화, 기억과 상실.
소설의 한 장면이 모습을 드러낸다. 파리 14구의 레미-뒤몽셀 로에 ‘르 티에르 탕’이라고 불리는 흰 건물의 수수한 양로원이 있다. 인조잔디가 깔린 안뜰 한가운데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그 곁에 안색은 어둡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꿰뚫을 듯 날카로운 노인이 보인다. 그는 다른 입주민들과는 멀찍이 떨어져 고향 아일랜드의 언어와 그의 문학적 망명지인 프랑스의 언어가 뒤섞인 기억들을 더듬으며 시간을 보낸다. 이 노인의 이름은 사뮈엘 베케트이다.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겪으며 위대한 작품들을 써내려간 사뮈엘 베케트. 고향 아일랜드로 돌아가기보다 치열한 전쟁터였던 프랑스에서 나치에 맞서 싸우기를 택했던 전쟁영웅이자 아일랜드와 프랑스 어느 한쪽의 언어도 펜을 놓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코스모폴리탄 작가. 노년은 모든 이에게 찾아오지만 날카로운 통찰과 명석한 눈으로 세상을 읽어온 천재이자 1군 크리켓 선수였던 베케트에게 노화는 더 뼈저리게 느껴졌을 것이다.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듯 베케트는 필연적으로 올 죽음을 마주하기 위해 티에르탕 양로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간다. 인생이라는 마지막 작품을 집필하는 작가. 그의 창작이 세 시기로 나뉘어 평가받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가 몸을 의탁할 마지막 장소로 티에르탕(제3의 시간)을 택했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세계처럼 필연적 결말로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 멜리스 베스리는 아일랜드와 사뮈엘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에 관해 조사하던 중 베케트가 티에르 탕이라는 양로원에서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끝이 오기를, 절정이 오기를 기다린 베케트의 최후가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에 매료된 베스리는 그가 파리 14구의 양로원 티에르탕에 들어간 직후부터 생탄 병원에서 숨지기까지의 기간을 소설로 재구성한다.
소설은 1989년 7월 25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양로원에 함께 입소해 지내던 아내 쉬잔이 죽은 후이다. 첫 문장이 그 사실을 알려준다. “아내가 죽었다.” 30여 년의 결혼생활을 함께한, 늘 곁에 딱 달라붙어 있던 아내가 더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만으로 베케트는 추위를 느낀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던가, 날짜 가는 줄도 모른 채 베케트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침대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이라고는 잎이 다 떨어진 플라타너스 한 그루뿐이다. 그는 추위를 잊고자 마음속에 노래 한 곡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노래의 가사를 읊조리다보면 떠오르는 사람을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아일랜드 출신인 작가 제임스 조이스이다.
《티에르탕의 베케트》의 시간적 배경은 베케트의 마지막 해로, 베스리는 1989년 7월 25일부터 그가 사망한 같은 해 12월까지를 다시 세 시기로 나눈다. 새로운 작품을 창작할 원동력은 잃었으나 여전히 작가인 베케트의 목소리와 그를 관찰하고 간혹 그에게 개입하는 양로원 직원들의 ‘비-문학적’인 기록들이 조합된 첫 번째 시간, 오롯이 베케트가 접촉하는 외부 세계와 그의 내면으로만 이루어진 두 번째 시간, 코마 상태에 빠진 베케트의 산발적인 생각들과 주변인들의 언급으로만 드러나는 베케트의 육신으로 구성된 세 번째 시간이다. 유머러스하면서 무례하고, 한없이 형이상학적이다가 한없이 생리적인 주제로 넘나드는 베케트의 정신세계와 그의 식단, 운동, 행태를 기록하는 스텝들의 간결한 묘사가 베케트의 내면과 외면을 동시에 보여주듯 이어진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반평생 이상을 프랑스에 살았던 베케트는 주로 제2언어인 프랑스어로 작품을 집필했다. 실험적 극작가이자 모더니스트였던 베케트는 특정한 문학적 양식을 띠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모국어인 영어나 게일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을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역시 프랑스어로 쓰이고 베케트의 손을 거쳐 영어로 번역되었다. 베스리의 작품 속 베케트는 새 작품을 쓸 에너지는 고갈된 지 오래이나 여전히 자신의 눈에 보이는 세계, 양로원 사람들과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머릿속으로 묘사한다. 프랑스어와 영어를 혼란스럽게 오가며 글을 쓰는 (혹은 생각하는) 언어적 분열증 환자이지만, 무력한 육신에 갇힌 명석한 정신은 쉬잔, 조이스, 루치아, 예이츠, 더블린, 헤이든, 위시 등 과거의 사람과 장소 들을 끊임없이 되짚는다.
“작별을 고합니다, 안녕히, 안녕히,
순진했던 나날에 작별을 고합니다.”
티에르탕의 베케트는 언뜻 고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자발적 고립자이다. 간혹 친구와 친척이 면회를 오기도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내고 침묵 속에서 독백하는 걸 선호한다. 양로원 스텝들과 점잖게 대화하더라도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머릿속은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와 춤을 추는 루치아, 예이츠의 시구와 그야말로 생이 다할 때까지 그를 돌봐주고 떠난 쉬잔의 목소리로, 프랑스어와 영어가 뒤섞인 혼란하고 아름다운 소음으로 차 있다. 그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게일어, 아일랜드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세계는 막을 내린다.
이 소설은 곳곳에서 베케트에 대한 오마주가 강하게 느껴진다. 베케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 프랑스어와 영어를 오가는 언어적 분열, 연극의 한 장면 같은 구성, 그리고 자코메티의 조각품 같은 노구의 이미지. 그 요소들로 베케트의 삶과 문학을 가식 없이 펼쳐낸 저자의 노력 덕분에 괴팍하고 왠지 복잡하게 느껴지는 베케트라는 작가의 문학이 좀 더 상상가능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