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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24년 10월 6일(일) / 날씨 : 흐리다 비
2. 등반지 : 천등산
3. 등반루트 : 묻지마 3P(최고난이도 : 5.10c) - 묻지마 그냥에서 그냥은 없는 묻지마
4. 등반형태 : 멀티 피치 클라이밍
5. 참석자 :
박종구, 권봉희, 김동진, 장소문(등반 순)
6. 내용 :
환영등반에서 등반팀 배정은 마치 로또 추첨제 같은 기분이 듭니다.
토요일 저녁 신입생 환영등반 배정이 이루어지면 저도 덩달아 긴장이 되고 손에 땀이 나기도 하고요.
이 날은 저한테 거의 로또 1등급인 저의 최애 쫑희고문님 부부와 등반을 할 수 있게 되어 진작부터 마음이 들떠있었던 것 같습니다! 희희..
천등산은 겨울에도 오전에 등반하면 따뜻하고 여름에는 하단에 모기가 많고 오후에 등반을 해야 시원하다는데
흐린 날씨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풍없이도 완연한 가을이 시작되었는지 모기도 없고 쾌적하게 등반할 수 있었습니다.
전날 고문님께 대충 루트에 대한 브리핑과 오전 10시 느즈막이 출발하자는 전달을 받았는데
오전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보니 다들 떠나고 없고 고문님도 일찍 일어나셔서
자영선배님이 끓여주시는 라면으로 든든하게 속을 채우고 일찍 출발했습니다.
천등산 하늘벽 중간쯤에 있는 묻지마는 3P까지 5.10a, b, c 순으로 난이도가 순차적으로 어려워지는데
3P 이후 좌측으로 가면 총 7P(최고 난이도 5.13a), 우측으로 가면 인공으로 2P를 이어 총 5P를 가게 되는 묻지마 그냥 길로 빠지게 됩니다.
묻지말고 그냥 가야 하는 길이라고 해서 이름이 묻지마 그냥이라고 합니다. ㅎㅎ
종구고문님 : “우리는 오늘 묻지마 그냥으로 갈거야. 묻지마가 아니고 묻지마 그냥.
난이도는 1피치부터 5.10a, b, c 순인데 그렇게 어렵진 않고 풍경이 아주 좋아. 이후에는 인공이니까, 뭐. 소문, 잘 할 수 있지?”
종구고문님의 친절한 개념도 설명과 그 뒤를 잇는 응원에 용기를 내 보지만
봉희선배님의 등반을 보니 괜한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는데 한편으론 풍경이 좋다니 또 얼마나 좋을까- 설레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TMI 여담이지만 -
종구고문님이 올라가면서 순서는 뭐 알아서 해. 소문이가 먼저 가든, 말자를 하든. 하셔서
원래는 제가 써드, 신랑이 말자를 하기로 하고 제가 중간자, 신랑이 끝자를 맸습니다.
봉희선배님이 올라가는 걸 보니까 긴장이 돼서 생수+요헤미티(링티같은 이온 캡슐같은 것) 섞은 물을 몇 모금 마셨는데
갑자기 신호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화장실도 잘 갔다 나왔는데요. ㅠㅠ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 처럼 갑자기 소름이 끼치는 것 같았고
이대로 올라 갔다가는 인류애를 저버릴 것 같다는 좌절감마저 들어 부득이 급하게 신랑에게 중간자를 넘기고
암벽화와 하네스를 벗어던지고 다급하게 비탈길을 뛰어 내려갔는데
이날 진정 암벽등반 성지의 공포를 제대로 맛보았습니다.
우리가 올라 갈 하늘벽에 최소 6팀, 건너편 북면에도 위아래 많은 등반팀이 있었고
내려가도 내려가도 계속해서 새로운 등반팀이 올라오고 있어서 이 한몸 추스릴 공간이 마땅찮았고
하필 다급하게 내려오느라 벗지 못한 새빨간 헬멧이 가장 원망스러웠는데
이러다가는 코오롱등산학교 환영등반 역사에 길이길이 남길 흑역사를 제조할 것 같아 몹시 다급해졌습니다.
거의 개울가까지 내려갈뻔 했는데 한참 내려가다 위를 올려다 보니 신랑이 올라가는 게 보여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결국 원점회귀하여 급하게 장비를 착용하고 줄을 묶었는데
출발!을 외치고 벽에 붙으니 차츰 상황이 안정화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고 진땀이 빠지는데 그래도 제 온도니가 눈치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환영등반 했을 때, 등반 전날 술을 조금만 먹어야지 하는 교훈을 얻었는데
이 날, 술 뿐만 아니라 음식도 많이 먹으면 안되겠다는 강력한 교훈을 새겼습니다. 하하하. =_=
아직 5.9부터는 어려움을 느껴서 그런지 10a 라고 해도 어떨지 긴장이 되었는데 (정말이지 자신있게 갈 수 있는 곳이 없군요ㅠㅠ)
1P 에서 60m 로프를 반자 가득 사용하는 걸 보고 쉽지 않겠다 생각했고
제법 미끄러워 보여 걱정됐지만 위에서 힌트를 많이 받아서 무난하게 갈 수 있었습니다.
하드월(묻지마, 고마워 2팀)이랑 같은 루트를 오르는 걸 알고 있었는데 1P 확보하고 한참동안 아무도 안 붙길래 루트를 다른데로 바꿨나 했더니
2P 출발하는데 밑에서 하드월 선등자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올라와서 놀랐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다녀야 저렇게 빨리 갈 수 있는걸까 싶기도 하고요-
속도등반은 저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딱히 부러운 건 아니지만 요즘엔 등반을 하며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처음엔 그냥 따라다니기 바쁘기만 했다가 요즘엔 선등자들의 마음가짐 같은 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그냥 멋지다. 대단하다를 넘어서 따라 올라가며 대체 여길 어떻게 줄 없이 가신 걸까 존경심도 생깁니다.
(줄을 당겨줘도 안 당겨줘도 서운한 쫄보는 그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며 오른답니다 여러분..)
2P만 올라왔을 뿐인데 앞서 종구고문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풍경이 근사합니다.
어떻게 저런델 가는 걸까. 보기만해도 트래버스가 아찔하게 느껴지는 그런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우리도 저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려나 싶기도 하고요.
2P 시작점에서도 결국은 쓸모도 없는 퀵드로를 앵커에 넣었다 뺐다 별짓을 다 하다가 올라갔는데
선배님들은 퀵드로를 잡지말라, 앵커를 밟지 말라고만 하시는데 제가 실제로 앵커랑 씨름을 좀 해보니까
공포심에 퀵드로를 앵커에 넣어봤자 무의미하다는 교훈을 몇번 얻고 나니
그냥 이것도 이런저런 시도가 쌓여서 나름의 요행도 성장하려나 보다 싶긴 했습니다. 하하하.. (아직은 조금 더 잡고 싶어요… ㅠ)
문제의 3P(5.10c)
종구고문님은 전날 제가 술을 많이 먹어서 등력이 줄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는데(일단 등력이 좋았던 적도 없었는 걸료..시무룩..)
전 76기 환영등반 이후로 등반 전날 과음하지 않으리 다짐을 했기 때문에 사실 내장은 나름 멀쩡했슴다.. 하하하.. ^_^;
(대장은 조금 힘들어 했던 것 같지만요)
다만, 신랑이 수차례 트래버스치며 길게(?) 추락하는 걸 밑에서 지켜보며 공포심이 엄청나게 자라났던 것 같아요.
도대체 얼마나 어려운 길이기에 하고 잔뜩 겁을 먹었고, 스타트 발자리가 공간이 꽤 넓었지만 약간 기울어 져 있어서 안정감이 없다 보니
처음 약간 좌측으로 이동 후 올라야 하는 데 공포심에 옆으로 가질 못해서 밑으로 내려갔다가 좌측으로 이동 후 올라갔더니(밑에 실크랙이 오히려 발자리 안정감이 있어서) 넌 왜 난이도를 더 어렵게 개척해서 오냐고 하셨지만.. ^_^
오르다 보니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고 잡을 것도 많아서 오버턱까지는 잘 갔는데.. 하.. 이 망할노무 오버턱은 정말이지 만날 때 마다 눈 앞이 깜깜해집니다.
뭐, 여차저차 인공으로 요리조리 잘 해서 3P 완료.
원래는 여기에서 우측으로 빠져 묻지마 그냥을 가려고 계획했지만 이 날은 모두가 12시 하강을 약속하며 출발했기 때문에 이만 하강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덜 망설였다면, 조금만 더 용기냈다면 완등할 수 있었을까-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언젠가 또 올 수 있을, 더 잘 오르게 될 그 날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어, 비온다!”
하강로프를 설치하고 내려오는데 럭키하게도 빗방울이 떨어져서 아쉽지만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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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등반의 매력이 그 것미다. 시작할 때는 목표가 없어요 근데 하다 보면 목표가 생겨요. ~~. 인생이죠. 젊을 땐 아무생각 없다가 나드를면 뭐가 해야 겠다고 ~~. ㅎㅎㅎㅎ
대자연방사는못했다는거죠? ㅋㅋ 수고하셨습니다. 😂 😆
응카를 했다면 날라다녔을텐데. 아쉽네영
진정한 소설가는 장소문♡♡♡
등반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찾아 가시는 것 같아서 동행하는 많은 분들이 행복합니다
ㅋㅋ 소문님 모습이 션하거그려지네요
잼난곳가셨네요
수고들하셨어요
고문님 난이도 설명하는 글에서 더빙인듯이 바로 들리는듯해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