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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깨어있는 조직된 힘
제 915회 사드배치반대 김천촛불
<김종희 사회자 여는 발언>
비록 이 자리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인원수이기는 하지만 평화를 갈구하는 그 목소리에 숫자가 중요하겠습니까? 자기의 옆에 분들하고 반갑게 인사 한번 하시죠.
다음 주부터는 출석을 좀 부를까 합니다. 오늘도 추위가 생각보다 춥지는 않습니다.
따뜻한 마음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모아서 사드 배치 반대 시민 촛불집회 제 915회를 힘차게 시작하겠습니다.
<국민의례 및 임을위한행진곡 제창>
<성주 지키미 소야훈 발언>
어차피 제가 이번에 끝나면 앞으로는 집회 때마다 이제 두 분씩 이렇게 발언 하시고 내년에 되면 또 농번기 방학하고 내 순서는 내후년 이맘때쯤 돼야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하고 오늘 또 준비하시는 거 편안히 먹으면서 자리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원래 이렇게 앞에서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 안 해요.
왜냐니까 잘해야 본전이더라고요.
처음 발언할 때 사람들 많은 곳에서 발언할 때가 2016년 8월 하순 강변공원이었습니다.
이해 안 되시죠? 당시 성주지역 사람으로서 발언했습니다.
천명 머리 깎고 막 그런 어떤 분위기에서 제3부지 이전 사태가 나왔어요.
머리 깎은 사람 전부 다 빵 모자 다 쓰고 난 뒤에 그때부터 말은 사드 처리했지만 3부지 어떻게 했어요? 모든 시민사회단체에서 이쪽 성주 소성리로 미는 분위기였어요.
제가 일찍 감지를 했습니다. 제가 그때 내가 가야 될 곳은 이 김천에 있는 분들하고 계속 가야 될 것 같다. 그래서 제가 강변공원 그리고 그다음에 시민운동장 김천시청 율곡공원 여기 김천역 평화광장까지 해서 여기까지 계속 쭉 왔습니다.
강변공원 발언시 제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이었어요. 쫓아나갔어요. 성주서 왔다고 하니까 난색을 표하더라고요. 사드를 떠넘겼잖아요. 저는 말 주변도 없어요. 제가 성주에 평화를 사랑하는 뜻 있는 여러명이 여기 김천투쟁에 합류를 해서 함께 싸우겠다 하니까 박수를 받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 상수가 그때 같이 항상 다녔었어요. 아들 상수가 하는 말이 아빠 이제 앞 연단에 나가지 마. 정말 나는 이렇게 사람 앞에서 말하는 재주가 없구나 이건 내가 가야 될 길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서 그때부터 연극하고 춤추고 율동하고 이렇게 몸 개그 쪽으로 좀 이렇게 나왔었던 것 같아요.
이제 지난번 제가 얘기하던 거 정리 좀 하겠습니다.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 다 아실 거예요. 다 아시는데 미군의 개입으로 이승만 정권이 최대 120만 명이 좌익 척결로 해서 학살했던 우리 사건이었잖아요. 120만 명 그 당시 우리 남한 인구가 2천만 명이었는데 120만 명이면 20명 중에 1명 정도꼴로 학살을 당한 거예요.
120만 명이라니까 언론 이렇게 이런게 추론이 안 되는데 제가 처음에 왔을 때 이 역광장 저 끝까지 사람이 꽉 찼을 때 뉴스에 보면은 천 명이 집회에 참석했다라고 했거든요. 그러면 이 옆 광장 1,200개 모아놓고 거기에 사람들이 꽉 차야 돼요.
그렇게 참 비참하게 이렇게 생을 마감하셨는데 그때 당시에 우리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면 물론 실제로는 사회주의자도 있었을 것이고 저희들 같이 평화통일 운동하던 분들도 계셨어요.
그 당시 공무원이 먹고 살기는 우리 이제 국민들한테 쌀 배급을 주겠다 고무신을 주겠다 요 사상 교육 받으면 전쟁터 안 가도 된다 하면서 공무원들의 실적 쌓기 위한 할당제가 있었어요. 그래서 뭐가 뭔지 모르고 그냥 이렇게 가입했는 그런 것도 되게 많았어요. 그분들이 그렇게 막 이유 없이 학살당하는데 ‘킬링 필드’가 저 캄보디아만 있는 게 아니야 우리나라도 왜 킬링 필드였어요? 그게 산천초목이 아니고 산천 학살터고 금수강산이 아니고 금수 매장터였습니다. 70년이 지난 2020년도에 보도연맹 그분들이 무죄가 선고됐고요.
그 유가족들은 그동안 연좌재를 겪으면서 빨갱이 사람도 참 힘들게 살았다 하더라고요.
우리가 이제 답사 갔을 때가 이제 경산 코발터 은총님하고 우리 종희 선생님하고 저하고 이리 갔어요. 평통사 김찬수 대표님 계시지만 그래도 살짝 우리가 배신하고 그 당시에 노동 대구 역사 이태광 대표님을 따라갔습니다. 당시 전태일 상가도 갔고, 대구의 노동 현장 우리가 다 방문을 하고 이렇게 이제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마이크만 있으면 앞에서 말을 하려고 그러더라고요. 자기소개도 하고 그리고 소감도 또 이 얘기도 하고 말 못하면 진짜 이런 우리 평화 운동 활동도 잘 못 하겠습니다.
좀 정치를 좀 하라고 가지 왜 이런 말을 시켜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나가서 성주 주민입니다. 사드 처리하는데 김경진이 아주 짧게 제가 얘기했는데 그다음에 은총님이 오셔가지고 평통사의 투쟁과 역사, 사드 투쟁 이것들을 아주 길게 딱 부러지게 말씀을 잘 하셨어요. 제가 다음 판에는 우리 은총님을 제가 추천할게요.
제가 사회 까지 내가 다 해드리네. 그리고 우리 조 이사님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거기에 왔던 여러 곳의 단체에서 오신 분들이 사드 투쟁 열심히 하셔서 정말 오늘 굉장히 감동입니다 하면서 사드 투쟁에 꼭 한 번 오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아직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언젠가 한번 오시겠죠
경산 코발트 광산 이야기입니다.
생각보다 광산이 산속 깊이 있는 줄 알았는데, 큰 도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어요.
심지어 그 광산에는 지금 골프장이 형성되어 있고 그 시내 거의 중앙에 있다고 봐지더라고요.
그래서 앞에 딱 들어서니까 일단 동굴에서 들어오는 스산한 바람에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졌어요. 경산시에서 붙은 안내판이 이렇게 있었는데 거기 보니까 그리고 학살했던 상황, 발굴하는 현재 진행 상황,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가가 저지른 이런 우리 만행은 앞으로는 없어야 되겠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중간에 어떤 문구가 있었냐 하니까 이곳은 지역의 역사체험 관광지로서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이게 왜 관광지라고 했느냐 이게 굉장히 불쾌하다. 그런데 이미 앞에 왔는 분들도 그게 좀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나무판이었는데 돌로 막 다 긁어놨더라고요.
우리도 같이 막 긁었어요. 아무리 긁어도 체험 관광지라는 그 말이 그대로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들어가서 그 물을 보니까 약간 흰 침전물 같은 게 있었는데 그것이 유골이 부패해서 오랜 역사의 침전물이 꼭 우리 동굴에 종유석 같은 거 였어요. 동굴 옆에는 마대의 토대가 있었는데 발굴한 유골이 흙하고 무골과 함께 그래서 이제 아직 분류를 하지 않았으니까 쫙 쌓아놓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그 들어갈 때 우리 정부 정말 숨소리도 크게 못 내겠습니다. 침울한 우리 표정에서 누가 하는 말도 제대로 못하게 했어요. 들어가니 웅덩이가 있었어요. 수직경 80m라고요. 80m 수직아래로 3500명의 우리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을 당했겠죠. 그분들이 이미 끌려왔을 때 무고하게 끌려와서 이미 그 원망과 어떤 그런 분노의 국가에 대한 그런 과정은 다 지났다고 이제 마지막에 거기서 떨어졌습니다.
지난번 말씀드렸듯이 총알 아낀다고 6명씩 이렇게 다 있는데 양쪽 두 사람은 총을 쏘고 중간에 있는 사람은 묶여 있는 끈에 의해서 그 힘으로 그냥 떨어지는 거예요. 80m로 떨어지고 부딪히고 막 그렇게 떨어졌잖아요. 바로 아마 숨이 멎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 고통 속에 다시 그다음에 사람들이 눌릴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거 아십니까? 한국전쟁 때 우리 국군 총 6만 발 사용해서 상대 하나 쓰러뜨렸습니다.
그때 그 정권이 이승만 정권 지금 광화문에 동상 세우겠다고 난리대요.
정말 세상 진짜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날 우리 그 참혹한 현장에서 막 하루 내내 슬퍼서 몸과 마음이 힘든 그런 시간을 보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번 다 같이 경산 코발트 한번 방문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아픔을 함께 함께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라희 아빠 말씀으로 사드는 뽑으려면 20년 3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자리 김천역 평화광장에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가 환경, 노동, 불공정 등 우리가 저항해야하는 국가 문제와 정책, 그리고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 대한 우리의 저항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좋겠다는 부분에서 제가 굉장히 큰 공감을 받았습니다.
우리 힘냅시다. 언젠가는 좋은 세상 올 거예요.
통일된 조국 평화로운 세상 그때까지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김종희 사회자 중간 발언>
이번 경산 코발트 광산 갔을 때는 같이 안에 못 들어갔습니다. 차마 그 죽음의 그 아픔들이 여전한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어서 저는 밖에 그냥 서성이다가 왔는데요. 아무튼 발언자 말씀 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사드가 7년째 우리를 이렇게 일상을 괴롭히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크게는 첫째는 저 개인적으로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 것, 그래서 내가 그동안 몰랐기 때문에 못 봤던 것, 그리고 안다 하더라도 올바르지 못한 방향에서 알고 있었던 것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준 것 적어도 저 소성리 달마산에 있는 저 사드가 결코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서 있는 무기는 아니고 지켜주기 위해서 있는 무기가 아니라 이 땅에 다시금 전쟁을 불러올 수 있는 그런 무기라는 것 그리고 저 무기는 미국을 지켜주기 위한 유사시 미국을 지켜주기 위한 무기이며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무기이며, 그리고 이 땅에 수많은 그런 죽음을 낳는 원흉이었던 일제 식민지의 그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다시 한 번 이 땅에 침략자로 불러들일 수 있는 한미일 3국 동맹으로 가기 위한 그런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무기이기 때문에 나는 반드시 여러분과 함께 저 사드를 뽑는 그날까지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그런 무기 그런 사드 투쟁 그래서 하나도 힘들지 않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 끝까지 투쟁해서 나가자
오늘의 강연 - 백창욱 목사
지난주 목요일날 아침 평화행동 때 제가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같이 나누려고 했는데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바로 경찰들이 이렇게 우리를 들어내더라고요. 그냥 말문이 막혔어요. 저는 경찰들이 와서 이렇게 강압하게 되면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당시 하려던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오늘 그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19세기 말 미국 인디언 멸망의 역사를 다룬, 미국의 작가 디 브라운(Dee Brown)의 책
굉장히 유명한 책입니다. 전 세계 500만 부가 판매됐다고 하는데, 책은 유명했지만 나오는 내용은 사실 매우 비극이죠. 끝부분 이야기를 좀 할게요. 어쨌든 이 미국인들이 미 대륙에 있는 인디오들을 거의 다 궤멸시켰어요. ‘게토’에 다 가둬버리죠.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말을 하는데, 여러분 기득권이 사용하는 그 단어를 우리가 분별해야 됩니다. 보호가 아니에요. 그냥 ‘게토’에 잡아놓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곧이 곧대로 말할 수 없으니까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을 하는 거죠.
단어 구분을 잘해야 합니다. 아무튼 ‘게토’에 다 몰아넣었는데 그래도 미국인들이 마음이 불편한 구석이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캐나다와 멕시코로 피난 간 그 인디언 부족이 있거든요. 이 사람들이 눈에 가시였어요. 그중에 <앉은 소> 이야기를 할게요.
<앉은 소>는 그 부족들을 데리고 캐나다로 넘어갔습니다. 국내 인디오들은 다 그 진압을 했지만 그 넘어간 그 <앉은 소>가 살아있는 전설이 됐어요. 인디오들에게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 하는 그런 희망을 불어넣어줬는데 당시 미국인들은 교활하고 아주 음모가 많잖아요. 캐나다 정부를 계속 압박을 가했습니다. 원래 이렇게 난민이기 때문에 정부가 기본 의식주를 제공해줘서 연명할 수 있게 해 줘야 되는데, 미국의 압력에 캐나다가 넘어가서 일절 지원을 안 해줍니다. 그러면 난민들은 살기가 어렵잖아요. 결국은 끝판에 가서 <앉은 소>가 부족들도 거기서 더 이상 살기가 힘드니까 미 대륙으로 다시 다 투항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앉은 소>도 투항을 합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다시 넘어오는데 이미 그 사이에 <앉은 소>는 정말 전설이 됐어요. 오자마자 요새에 갇혀서 신체의 자유를 잃기는 했지만 그 소문이 계속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거죠. 다 끝난 상황입니다. 사실은 다 끝난 상황인데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나요.
저는 여기서 정말 마음의 큰 울림을 받았는데 ‘망령의 춤교’라는 게 등장합니다.
<나는 곰>과 <선남>, <짧은 소> 등 인디언들 이름이 좀 희한한 거 아시죠?
<나는 곰>이 <앉은 소>를 찾아와요. 그래서 자기가 그동안 메시아를 만나기 위해서 오랜 세월 영적 순례를 하고 온 그 이야기를 합니다.
메시아를 만나 거기서 메시아를 통해서 이 망령의 춤을 배웁니다.
이 망령이 망령 때나 망령이 아니고 죽은 사람의 영을 따라하는 춤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을 부르는 춤이에요. 망령의 춤이 그러니까 영어로 고스트 댄스거든요.
이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수받아 배웠다. 그리스도가 나에게 이런 계시를 해줬다 이런 얘기를 쭉 합니다.
제가 예전에 아주 근본주의 기독교인이었을 때는 그 근본주의 교리가 기독교의 전부인 줄 알았을 때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얼렁퉁탕 다 아는 걸로 알고 다 무시해버렸을 텐데, 일단 저도 계속 그 뒤에 의식이 진화하면서 <나는 곰>이 뭐라고 얘기했냐면 그 그리스도가 꼭 우리 인디오 같았습니다. 어디서든 그 토착민과 자기가 본 그리스도가 토착민 같았다고 얘기하는 고백들이 많이 있거든요. 사실 그게 제대로 된 거죠. 지금도 예수의 얼굴을 복원했다는 보고와 그 사진을 보면은 중동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농부들 모습으로 이렇게 재현한 그런 사진들을 보거든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 서양 긴머리 은발 흩날리는 그 우뚝 선 잘생긴 얼굴에 미남형을 우리가 예수로 알고 있는데 그거는 다 허위입니다.
<나는 곰>이 그 그리스도라는 사람을 만나가지고 망령의 춤교를 전수 받아 이를 <앉은 소>에게 설명한 거예요. 사실은 <앉은 소>가 이렇게 다 쓰러져간 이 인디오들을 다시 되살리기 위한 길을 찾는 중에 <나는 곰>을 불러서 그 이야기를 하게 한 거죠.
그래서 이 망령의 춤교가 인디오 사회에 아주 급속하게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그리스도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봄이 돼서 새로운 땅이 덮히게 되면 그 새로운 땅에서 우리 인디오들만이 죽은 자의 영이 살아나고 우리 인디오들만의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우리가 이 춤을 통해서 이런 것들을 우리가 확신시키고 퍼뜨려야 된다 이런 지시를 받았다는 거예요. 종국에는 우리 인디오들만 살게 되는 세상이 올 것이다.
이것은 정말 그 미군에게 궤멸당한 그 인디오들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원하던 그 세상입니다. 처음 미군 유럽의 이주민들이 미 대륙에 오기 전에 그들이 원래부터 살았던 곳 자기들이 가고 싶으면 가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그다음에 자유롭게 사냥하던 그런 자유를 완전히 뺏겨버렸잖아요.
예를 들면 원주민이 살고 있는 곳에 정착 이주민들이 와서 자꾸 시비를 걸고 그 이후 원주민 영역을 침범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할 수 없이 인디언들은 자기 지역을 옮깁니다. 옮겨갈 때 이제 조약을 맺는 거든요. 너희들이 옮겨간 지역에는 절대 백인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행정명령을 언급하겠다. 그다음에 거기에서 나오는 그 모든 자원들을 당신의 것들을 우리가 보장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지원금을 주겠다. 하여튼 그런 여러 가지 평화조약을 맺습니다. 인디오들은 그런 조약을 맺으면 그게 자기 생명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인디오들은 정말로 생명처럼 알고 그 조약을 지키려고 하는데, 미국인들에게 조약은 손바닥 뒤집 듯 손쉽게 바꾸는 그런 것이었어요. 자기네들 필요가 생기면 그 조약을 그냥 너무나 쉽게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혀버리는 거예요.
놀랍게도 인디오들은 그렇게 조약이 어이없게 그걸 미국사람들이 깨는 것을 겪으면서도 워낙 이 사람들 인성 자체가 순수하기 때문에 또 조약을 맺었어요. 그리고 또 속고 또 조약을 맺고 또 속고 그렇게 하고 맨 마지막에 ‘게토’에 몰리고 완전히 쓰러진 다음에서야 정말 이놈들은 사람이 아니구나, 믿을 종자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을 하게 됩니다. 그런 과정이 온디드니 책에 나옵니다.
하여튼 이게 망령의 춤교가 급속도로 인디오들에게 퍼져요.
그럴 수밖에 없죠. 다 잃어버렸어요. 희망도 생존의 기반도 존재에 대한 의지도 다 잃어버린 이 사람들이 다시 그 인디언을 부활시킬 수 있는 길은 그 메시아의 그 계시대로 망령의 춤을 통해서 다시 조상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이 땅의 인디오들만 다시 존재하게 살게 될 거라는 그 말이 얼마나 간절하겠어요.
그래서 정말 미친 듯이 춤에 몰두합니다. 특히나 과부들이 아주 엄청나게 몰려왔어요.
왜 과부가 생겼어요? 미군들에게서 자기 남편들 모두 살해를 당했거든요. 그래서 그 과부들이 그 망령의 춤교에 그냥 전적으로 매달려서 평화적인 춤을 춥니다. 그게 모든 인디오 사회에 퍼졌고, 일상 활동이 정지가 돼버렸어요. 일상생활하는 게 다 정지가 돼버리고 이 망령의 춤교가 거대한 물결을 이룹니다. 미국 전체가 위협을 느꼈어요. 그래서 이제는 군대를 동원해서 차단을 시킵니다. 차단을 시킬때 지도자를 일단 체포하고 격리시키는 것이 제일 우선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앉은 소>를 체포하는데 누가 체포하러 온 줄 아세요? 글쎄 인디오 출신 경찰입니다. 그렇게 미군들에게 자기 동족이 궤멸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또 인디오 자체 질서를 유지한다고 인디오 경찰을 모집하니까 거기에 또 인디오들이 들어간 거예요.
여러분 우리 저기 만주의 간도특설대에 백선엽이니 몇몇 유명한 장군들 이름만 기억하지만, 거기에 수많은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이 그냥 그걸 지원하려고 몰려들었어요.
사실은 우리 독립군을 잡는 그 부대에 우리 조선의 청년 민중들이 아주 치열한 경쟁률로 거기 모여들었다는 역사를 우리는 알아두시면 좋겠어요.
하여튼 인디오 경찰이 와서 자기들의 유명한 살아있는 전설을 체포하려고 하니까 다른 인디오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그래서 소용돌이 충돌이 일어났는데 거기서 그만 인디오 경찰이 쏜 총에 <앉은 소>가 머리를 맞아서 죽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전설이 목숨을 잃고 그다음에는 이 망령의 춤교가 제지를 당하는 가운데서 이 사람들이 또 마지막 피신을 하는데 그 장소가 바로 운디드니에요.
거기에 <큰발>이라는 추장이 최후의 남은 이 인디오들을 인솔해가지고 운디드니에 거주하려고 하는데, 미군은 그것조차도 용납을 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미군이 인디오를 접수할 때 제일 먼저 무기를 회수합니다. 무기를 반납해야 너희가 우리한테 투항하는 걸로 알겠다 해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무기를 회수합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인디오 청년이 자기가 최근에 새로 산 그 총을 하나를 몰래 숨겨놨는데, 그것이 들통이 났어요. 그래서 이걸 압수하려고 하니까 왜 내 총을 니들이 뺏어가느냐 하면서 거기서 티격태격하다가 그 사소한 그 충돌이 전체 간의 대규모 살육전으로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무기 화력에서 비교가 되잖아요. 인디오들은 기껏해야 소총 몇 자루가 다인데, 당시 미국인들은 연발 기관 단총에 있었잖아요. 마치 우리 동학혁명 때 우리 농민들의 화력이 일제의 화력에 견줄 수가 없어 우리가 궤멸을 당했잖아요. <큰발> 추장도 이제 총을 맞고 지독한 겨울이었는데, 얼어붙은 채로 세상을 떠나요.
여러분 이렇게 점점 구석으로 몰리는 인디오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 모든 과정에서 인디오 경찰이든 그렇게 미국과 타협을 해가지고 일신의 안녕을 구하는 인디오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인디언들은 끝까지 자기 존재감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미국인들은 인디오들을 계속 ‘게토’로 몰아넣으려고 하는데 그 ‘게토’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면 우리 러시아 동쪽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을 스탈린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시켰잖아요. 그렇게 두 달간 이주서 중앙아시아에 떨어졌는데, 거기에 사회 기반시설이 다 돼 있고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잖아요. 그냥 맨 땅에 우리 고려인들을 거기다 강제로 떨어뜨린 거잖아요.
미군들이 그렇게 인디오들을 새로운 지역으로 옮겼는데, 거기는 원래 인디오들과 무관한 땅이고 전염병도 많고, 그냥 사냥으로 먹고 사는데 사냥할 동물들이 거의 없고, 그런 허허벌판 공간에 그냥 떨어뜨려 놓은 거예요. 그런 장소에 결코 인디오들이 굴복해서 살 수 없없기에 계속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탈출을 합니다. ‘게토’에서 벗어나서 자기 고향으로 가다가 거기서 미군과 충돌을 해서 많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괴멸당한 인디오들이 끝까지 자기 존재의 절개를 꺾지 않고 망령의 춤교를 만들어내서 그것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자기들의 이 저항 의지, 자기네들의 존재감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하는 그 끈질긴 저항 정신을 발휘합니다. 그것이 너무나 저에게 감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원래부터 고유한 존재로서 주권과 주체를 가지고 태어났고. 또 그렇게 우리가 다음 세대에서도 지속 가능하게 우리 주체를 유지시켜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에 KBS에서 새로운 역사 드라마를 시작했잖아요. ‘고려거란전쟁’ 그 대사가 하나하나가 너무나 저한테는 감정이입이 팍팍 되더라고요.
요약하자면 우리는 주권을 가지고, 우리의 주권을 유지하고 지키고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걸고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그 명백한 운명을 우리가 깨뜨려서 우리 고유의 세상을 우리가 기어이 만들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에 투쟁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정신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기어이 미국에 굴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 세상을 꼭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 길을 우리가 끝까지 유지하고 열어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 거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런 토대가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만이 우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게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가 다시 한번 다짐하고 계속해서 함께 이 길을 힘차게 걸어갑시다.
<성주노래지키미 정진석>
오늘은 '현철이', '그'를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