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이씨 항렬제차 제정 시기
항렬자 제정 시기를 문의하는 종친님이 계셔서 답변을 드려야겠기에 중앙화수회에 문의하였더니 한달이 지나도록 답변이 없는지라 문헌에서도 찾기 어려운 것 같고(혹은 기록이 없을 수도 있어) 종친 어른들께서도 알고 계시는 분이 없는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자료가 있을 만한 서울 중앙화수회에 가서 찾아보려고 해도 부산에서 가기가 쉽지 않아 마음뿐으로 찾을 수 없었는데 ‘경주이씨 대종보 총편 익재공파편’의 '항제자(行第字)' 기록과 인터넷 검색으로 아래와 같이 2건의 경주이씨 항렬자에 대한 자료를 찾았습니다.
이 2건으로 대강 항렬자 제정 시기를 알 수 있었습니다.
‘경주이씨 항렬제차’는 대동 항렬로 중조 35세부터 70세까지 제정되어 있습니다.
35세부터 70세까지 36세에 걸친 항렬자를 한 번에 제정한 것이 아니고 2건의 자료를 살펴보면 적어도 4차례에 걸쳐 항렬자를 정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묶어서 지금의 대동 항렬인 36세의 ‘경주이씨 항렬제차’를 정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좀 더 깊은 조사와 연구로 확실히 해야할 것입니다.
▣ 무진년 중추(고종 5년. 1868년 가을) 귤산공(휘 유원. 고종 때 영의정)이 지은 금석록 권24 추록 27에 아래와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익재공파(益齋公派)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오촌공파(梧村公派)가 세거(世居)하고 있는 충북 진천군 초평면 연촌(現龍亭里陽村部落- 현 용정리 양촌부락)에 모여서 화수회를 창립 발족하고 10여 간의 초가를 세우고 경주이씨 화수실(慶州李氏花樹室)이라 편액을 걸고 화수회가 모이는 곳으로 삼았다.
여기서 진천 문중(鎭川門中)에서 정하여 준용하고 있는 항렬자를 따라서 작명키로 의정(議定-의논하여 결정함)하였으며 [- 당시 미정(未定)인 우(雨)자 이하의 5대 항렬자를 새로 정하였다.-]
▣ 이후 1987년에 간행된 경주이씨 대종보(정묘보) 총편 익재공파편 P298~299에 아래와 같이 항렬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三十五代로 된 失傳世系의 序文一節 - (中略) - 正三品通政大夫時慶山郡守啓弼記
- (35대로 된 실전세계의 서문 1절 – (중략) - 정3품 통정대부 시경산군수 계필 기)
[行第字亦爲預先講定錄于譜序下以示敦睦之誼(행제자역위예선강정록우보서하이시돈목지의)]
35세→36세→37세→38세→39세→40세→41세→42세→43세→44세→45세→46세→47세
○영...규○....종○...○우....상○....○희....재○...○호....제○...○동....심○....○세...진○
중략 - 大韓光武八年甲辰仲春上澣(대한 광무8년 갑진 중춘 상한)】
위 2건의 글을 정리하여 아래와 같이 세수에 따른 항렬자 사용을 표로 나타내어 보았습니다.
1904년 광무8년 갑진(甲辰)에 경산(慶山)에서 경산군수 계필(啓弼) 할아버지께서 중간(重刊)한 갑진보(甲辰譜)에 올라 있는 세수에 따른 항렬자는 아래와 같이 중조 35세~47세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갑진보에 기록된 중조 35세 ~ 47세까지의 항제자(行第字) 표에 위의 자료의 내용을 해당 연도에 맞추어 넣어 보았습니다,
* 중조 48세 이하 세수와 항렬자는 ‘경주이씨 항렬제차’에 따른 항렬자이며 48세 이하 세수와 항렬자는 생략하였습니다.
-----34세 이전 → 35세 - - → 36세 -- → 37세→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익재공파.상서공파..○榮..........圭○..........鍾○....○雨......相○.....○熙......在○.....○鎬....
국당공파(2집안)......○영..........규○..........종○....○우......상○.....○희......재○.....○호...
- 4집안 항렬 사용 -┃?(진천문중)-3개 항렬┃----┃1868년-5개 항렬(금석록 기록)..┃---
43세 → 44세 → 45세 → 46세 → 47세 → 48세 이하 – 이하 생략
濟○......○東.....心○......○世.....鎭○......○求....
제○......○동.....심○......○세.....진○......○구....
┃1904년-5개 항렬(갑진보 기록)..┃-----┃? - 48세 ~ 70세 항렬 제정
1) 귤산공(휘 유원)의 금석록에서 1868년에 [당시 미정(未定)인 우(雨)자 이하의 5대 항렬자를 새로 정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중조 38세 ○雨항렬부터 중조 42세 ○鎬항렬까지 5대(=5세)항렬자를 정한 것입니다.
2) 1)의 내용으로 중조 38세 ○雨항렬 이전의 35세→36세→37세의 ○榮...圭○....鍾○의 3개 항렬은 1868년 이전에 진천 문중에서 정하여 사용된 항렬자입니다.
3) 그리고 중조 35세 이전 항렬자 사용은 중조 34세까지 익재공파 1집안. 국당공파 2집안. 상서공파 1집안 등 4 집안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중조 35세 이전의 항렬자 사용은 익재공파. 국당공파. 상서공파의 4집안에서 각기 다른 항렬자를 정하여 사용하였고 중조 35세 ○榮항렬부터 37세 鍾○항렬의 3개 항렬은 1868년 이전 익재공파 ‘진천 문중’에서 사용된 항렬자를 따라 대동항렬자로 하였고 중조 38세 ○雨 항렬부터 42세 ○鎬 항렬까지 5개 항렬은 1868년에 제정된 항렬자입니다.
4) 이후 1987년 간행 경주이씨 대종보(정묘보) 총편 익재공파편 P298의 ‘三十五代로 된 失傳世系의 序文一節’의 다음 페이지 P299의 ‘行第字’에 항렬자가 중조 35세~47세까지 올라 있습니다.
이 갑진보(甲辰譜) 발간 연도가 광무8년이니 1904년이고 이때에 다시 중조 43세 濟○항렬부터 47세 鎭○항렬까지 5개 항렬자가 정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중조 48세부터 70세까지의 항렬자는 언제 제정되었는지 확인하지 못하였습니다.
참고자료로 올립니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