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돌아보아(히브리서 10:19~25)25.03.16.주일낮설교
커크 패트릭(W. J. Kirkpatrick) 교수가 펜실베이니어 로린스빌 캠프에서 집회를 인도할 때였습니다. 매일 밤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독창을 하는 청년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청년은 예수를 믿지 않는 직업 가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르는 찬송은 많은 성도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커크 패트릭은 청년에게 열심히 전도해 보았지만 청년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안타깝게 생각한 패트릭은 집회기간 동안 청년의 영혼을 위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온 밤을 새워 기도하던 중 문득 찬송시가 떠올랐습니다.
그 는 즉시 그 시를 기록하고 곡을 붙였습니다.
그 날 밤 곡을 청년 가수에게 넘겨주고 독창을 부탁했습니다.
청년은 그 날 밤 아름답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패트릭이 만든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찬송이 바로 273장입니다.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찬송을 부르던 청년은 5절까지 다 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떠난 이 죄인, 받아 주십시오.
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셔야 됩니다.
잘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살지 못한 연약함과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나를 받아 주옵소서."
청년은 가사 대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가 부른 찬송이 신앙고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2 그 귀한 세월 보내고 이제 옵니다
나 뉘우치는 눈물로 주여 옵니다
3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 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4 이 병든 맘을 고치려 이제 옵니다
큰 힘과 소망 바라고 주여 옵니다
5 나 바랄 것이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날 위해 죽임 당하심 믿고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초대교회 당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성도들은 큰 결심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박해를 이기지 못해서 믿음을 버리는 사람들 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기록된 편지가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여러 곳에서 구약시대 제사드릴 때 흘리는 피와 예수님의 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사랑과 속죄와 생명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씻어줍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기본이요 본질입니다.
그런데 죄 사함은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은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과 19절은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은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53절에서 57절까지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에 피가 없으면, 또 그 피의 흐름이 막히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영적인 생활에서도 예수님의 피가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두터운 휘장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는데(마27:51),
이 일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19절과 20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그의 육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데 가로막고 있는 것을 열기 위해 자기의 육체를 찢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대제사장만이 휘장 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 예수의 피로 우리 모두가 지성소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저, 모두가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두고 베드로 사도는 "너희는 거룩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백성이니"라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담력을 얻었다는 것은 담대하게 나가게 되었다는 뜻이 있고 또 자격을 얻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찬송 216장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를 좋아하는 사람은
깊은 신앙을 가진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성자의 귀한 몸 날 위하여 버리신 그 사랑 고마워라
내 머리 숙여서 주님께 비는 말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까
2 지금도 날 위해 간구하심 이 옅은 믿음이 아옵나니
주님의 참 사랑 고맙고 놀라워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네
3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신실한 믿음과 마음으로
형제의 사랑과 친절한 위로를 뉘게나 베풀게 하옵소서
4 만 가지 은혜를 받았으니 내 평생 슬프나 즐거우나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늘 살겠네 아멘
제가 이렇게 말씀 드렸다고 '좋아하는 찬송이 무엇입니까?'
물으면 모두 '216장입니다' 하지는 마십시오.
그렇지만 모두 찬송과 기도에 힘쓰면서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사랑과 위로를 사람들에게 베푸는 생활, 이 몸을 온전히 주님께 바쳐서 주님만 위하여 사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것을 생각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힘써야합니다.
1998년 하버드 의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두 그룹으로 나누겠네.”
교수는 학생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한 그룹은 대가가 주어지는 일을 하게하고
다른 그룹에게는 아무런 대가 없는 봉사활동을 하게 했습니다.
며칠 후 교수는 학생들의 면역 항체 수치를 조사했습니다.
교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면역 항체 수치를 조사한 결과 무료로 봉사한 학생들에게서
나쁜 병균을 물리치는 항체가 월등히 높아진 것이 발견된 것입니다.
몇 달 후 교수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측정했습니다. 이번에도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이 영화를 본 학생들은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현저히 낮아지고 엔도르핀이 정상치의 2배 이상 증가하여 몸과 마음에 활력이 넘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결국 남을 돕는 것은 자기 자신을 돕는 것입니다.
남을 도울 때 기쁨, 행복, 건강, 만족감이 넘치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봉사하라, 헌신하라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헌신하고, 봉사하며 사는 인생이 더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 전에 남긴 말입니다.
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최정점에 도달 했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을 떠나서는 기쁨 이라고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富라는 것은 내게는 그저 익숙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 병석에 누워 나의 지난 삶을 회상 해보면
내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겼던 주위의 갈채와 막대한 부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그 빛을 잃고 그 의미도 다 상실 했다
어두운 방안 에서 생명 보조장치에서 나오는 큰 빛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낮게 웅웅 거리는 그 기계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죽음의 사자 손길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이제야 깨닫는 것은 평생 굶지 않을 정도의 부만 축적 되면 더 이상 돈 버는 일과 상관없는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 이다
그건 인간관계가 될 수도 있고, 예술 일수도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꿈일 수도 있다.
평생에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이웃을 향한 사랑을 귀히 여겨라 이웃을 사랑 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보혈의 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
사랑과 선행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 헌신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