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佛眼)의 송에서
“운문(雲門)……안다[領]”는
말끝을 따라 끌려 다닌다는 뜻이요,
“나귀 안장……”이라 함은
잘못 아는 이가 많다는 뜻이며,
“……을 막아버리니[寒却]……”는
호떡이오더라도 모름지기 걷어차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호떡을 가지고 와서[把將餬餠來]”라 함은
호떡 그 자체로써 왔다고 한 것이요,
“빨리 말하라. 빨리 말하라[速道速道]”는
상대로 하여금 설자리[立地]“를 다지게 한 것이다.
장령(長靈)의 송에서
“왼쪽 눈이 반근[左眼半斤]……”이라 함은
호떡과 불조(佛祖)요,
“친하든 멀든 따지지 않고[不問親踈]……”라 함은
친하면 모두 친하고 멀면 모두 멀다는 뜻이다.
목암(牧庵)의 송은
운문의 뜻을 알기가 어렵다는 내용이요,
“거기에다……하지 말게 하라[莫敎更去]”는
별다른 도리를 짓지 말라는 뜻이다.
개선(開先)의 상당에서
“찬 것을 싫어하고 따뜻한 것을 좋아하여[嬚冷愛熱]……”라고 함은
순조로운 곳을 쫓는 뜻이요,
“의발 속에 숨겨 두었다[藏在衣下]……”라고 함은
귀신뿐 아니라 3세(世)의 불조도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원상 하나를 그렸다[畵一圓相]”함은 한 조각의 호떡이요,
“솜씨 좋은 놈은 가져가라 하고
다시 이르기를 거두노라[好手底拈取復云收]”라고 함은
놓아버리자니 너무 위태롭고
거두어들이자니 너무 빠르다고 한 경지이다.
이 상당법어는 다른 이들의 발양(發揚)과는 다른 점이 있다.
향산(香山)의 거화에서
“불의 힘이 약간 세다[火力校大]”라 함은
날것을 변하여 익게 한다는 뜻이니
운문의 경지에 이르면 이와 같다는 뜻이다.
천동(天童)의 상당에서
“신구도득운운(信口道得云云)……하설[下楔]” 끝에
“오늘 말뚝을 박은 것인가?[今日是下楔]”는
이렇게 말한 것이 곧 말뚝(쐐기)을 박았다는 뜻이요,
또 어디선가 찾으려 하면 이는 말뚝을 박지 못한 것이다.
백운(白雲)의 상당에서
“나귀의 똥은 말똥과 같다[로屎似馬糞]”함은
불조(佛祖)와 초월한 곳이 어떻게 다른가 함이니,
마치 똥에는 두 가지 구린내가 없다 한 것과 같다.
“짚신이 해졌다[破草鞋]” 함은
천하기로는 짚신보다 천한 것이 없는데
또 그것이 해졌다고 하니 철저히 쓸모가 없다는 뜻이다.
“신령스런 거북이 꼬리를 끈다[靈龜曳尾]”함은
비록 부처와 조사를 초월한다고 하나
추월한 티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니,
마치 “몸은 숨었으나 그림자가 드러났다”고 한 것과 같다.
“같은가, 다른가?[是同是別]”함은
운문의 경지와 같은가 다른가 함이니,
말은 비록 다르나 뜻은 같다는 말이다.
육왕(育王)의 염에서
“단단하여 쪼개도 깨지지 않는다[渾崙擘下破]”함은
구멍 없는 무쇠망치[無孔鐵槌]요,
“국수를 뽑는다[打麵]……”라고 함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리지 않고
활용할 줄 아는데는 운문이라야 비로소 옳다는 뜻이요,
“못을 끊고 무쇠를 자른다[斷釘截鐵]”함은
뼈에 사무치고 골수에 사무친다는 뜻이니,
운문의 경지는 활용[用]쪽을 기준해서 한 말이요,
육왕의 경지는 본체[體]쪽을 기준해서 한 말이다.
운문(雲門)의 시중은
흔적이 있는 듯하다는 뜻이니 백운의 상당법문과 내용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