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생화 촬영 100가지>>> 오늘 아침 하늘이 참 맑습니다. 공해에 찌든 도시에서 보는 하늘인지라 코발트 블루에까지는 못 미치지만 푸른 하늘에 하얀 구름, 그림이 바람이 없어서인지 햇살이 참 따스하게 느껴지는 오전입니다. 이런 날 산이나 들에서 하루를 보낸 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도시의 삶이든 농촌의 삶이든 원하는 때에 자연을 한가로이 즐길 수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주말이면 우리는 힘겨운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납니다. 산으로 계곡으로 혹은 바다로 떠나 가지요.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휴식을 즐깁니다. 최근에는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자연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야생화뿐만 아니라 나비, 새, 곤충 등 다양한 분야의 애호가들이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자신들의 관심사를 찾아 떠납니다. 우리가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 땅의 생명들에 관심을 가지고 즐기려 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것 같은데, 많은 이들이 단순히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것에만 치중을 하다 보니 그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배경을 정리하거나 옮겨 심거나 꺽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손에 카메라를 들고 야생화를 담아본 모든 사람은 이러한 비난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는 부분인데, 배경을 가리는 풀들을 덜 정리하고, 귀한 식물이 자라는 곳에서는 발걸음을 더 조심스럽게 디디려 더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필자의 야생화 사진 찍는 목표는 좋은 사진인데, 원래 사진 취미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된 야생화 사랑인지라, 근본적으로는 아름다운 들꽃 사진을 담겠다는 욕심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들꽃 사진을 주로 담아 내다 보니 점차적으로 좋은 생태 사진을 담아내는 것도 참 매력적인 작업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길게는 좋은 생태 사진을 담아내는 것은 목표로 하는데, 이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됩니다. 예술 사진은 좋은 피사체를 찾아 어울리는 빛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는데, 좋은 생태 사진은 식물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좋은 생태 사진이란 정의부터가 여러 가지일 것 같은데, 저가 생각하는 좋은 생태사진을 다음과 같이 풀어 쓴다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생태사진] 식물의 생태를 잘 설명하는 사진.
물론 저는 이렇게 예술 사진과 생태사진을 구분하고 또 좋은 생태사진을 정의하였지만, 생태사진이 예술사진보다 보편적으로 더 어렵거나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들꽃사진가가 즐길 수 있는 사진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술사진은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을 때, 남들의 동의를 끌어내기 쉬워 쉽게 마음이 끌리지만, 식물의 생태사진 역시 그에 못지않게 즐길만한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완전한 설명이 어려우니 오늘은 생태 사진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면서 생태사진을 담는 즐거움에 대해서 설명해 볼까 합니다. 위 사진은 돌나물과의 정선바위솔(Orostachys chongsunensis Y.N.Lee)입니다. 정선바위솔은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자생하는데, 주로 암벽이나 너덜 바위 지대에서 자생하고 있습니다. a사진은 바로 이러한 척박한 자생 지역을 묘사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부차적인 목표로는 아름다운 우리 나라 자연과 어우러진 우리 들꽃의 소중함을 알려주고자 하였습니다. 개울가 암벽 위에서 정선바위솔과 함께 바라본 강원도의 자연은 저에게 큰 감흥으로 다가 왔고, 저는 그 것을 온전히 표현하고자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리니 이 사진을 보는 누군가가 그런 기분을 조금이라도 나눠가진다면 사진을 담은 저로서는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위 사진은 벚꽃이 필 때 함께 피어나는 솜나물(Leibnitzia anandria (L.) NAKAI)입니다. 사진을 통하여 솜나물이 꽃피우는 시기와 자생지 조건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솜나물은 국화과에 속하는데, 분홍빛이 감도는 흰색 꽃으로 키가 작고 개성이 없어 그렇게 눈에 띄는 들꽃은 아닙니다. 하지만, 벚꽃이 늘어선 도로가 잡풀 사이에 피어난 솜나물은 그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에겐 아주 큰 감흥을 가져다 줍니다. 연분홍의 꽃 바다를 배경으로 한 그저 그런 봄 꽃 솜나물이지만, 화려한 벚꽃과 대비되는 작고 소박한 봄의 기쁨을 저에게 전해 줍니다. 이 솜나물은 여름에도 꽃을 피워내기는 하지만, 그 때는 주로 폐쇄화를 피우기 때문에 봄에 피는 꽃이 솜나물 꽃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위 사진은 마타리과의 마타리(Patrinia scabiosaefolia)입니다. 이 사진은 풍경사진과, 생태사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습니다. 예술사진에서는 ‘매직 아워’라고 불리우는 일출 후와 일몰 전의 특정 시간대이지만, 생태사진가에 이 시간대는 식물의 디테일을 표현하기가 어려워지는 아주 힘든 시간대가 됩니다. 생태사진가들이 즐겨하는 시간대는 아니지요. 하지만 이 사진 역시 저는 생태사진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사진을 담는 당시에 지인 몇 분과 함께 하였는데, 그 분들은 풍경 사진을 담는 사진가들이기에 일몰을 염두에 두고 프레임을 구성하였을 터인데, 저는 출발 전부터 아름다운 우리 들꽃이 어우러져는 우리 산에서의 일몰을 묘사하기로 구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굳이 제목을 붙이지면 ‘마타리가 있어 더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일몰’이 될까요?
위 사진은 전형적인 접사사진입니다. 들꽃 사진가 들은 흔히 매크로 렌즈라고 불리우는 접사 렌즈를 많이 이용합니다. 매크로 렌즈라 하면 실물과 같은 크기로 필름면에 이미지를 맺히게 하는 렌즈를 의미합니다. 필름면의 크기가 대략 500원 동전 만하니 사진으로 찍어 원본으로 보면 눈으로 식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식별이 됩니다. 이런 매크로렌즈는 작은 들꽃 사진을 담을 때, 많이 이용됩니다. 이 사진은 쇠별꽃을 담은 사진인데, 쇠별꽃은 보통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의 꽃을 피워냅니다. 유사한 식물로는 별꽃이 있는데,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쇠별꽃과 별꽃의 구분 포인트는 암술의 모양인데, 쇠별꽃은 5개, 별꽃은 3개의로 갈라집니다. 저는 교정 시력 1.0인데, 꽃이 매우 작아서 실물을 보고서는 수술의 개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접사렌즈를 이용하면 작은 꽃이라도 아주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식물의 생태사진은 앞에서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피사체가 되는 식물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생태사진에서는 그 식물의 생태를 잘 표현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 식물이 자라는 주변 환경이나 그 식물의 특징 등을 잘 묘사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는 미적인 추구 보다는 설명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식물의 잎, 줄기, 꽃을 모두 포함하는 전초 사진을 많이 담아야 하며, 때로는 그 식물만의 특징을 묘사하기 이해서는 극단적인 디테일 사진을 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빛은 예술사진에서 주로 사용하는 역광이나 사광 보다는 디테일 묘사가 좋은 산란광(옅은 구름이 있는)이 가장 좋으며, 그 다음으로는 약한 순광이 좋습니다.
식물 사진을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저에게는 참으로 즐거운 시간입니다. 그래서 필드에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끼리 만나면 초면 일지라도 쉽게 말문을 털 수 있는가 봅니다. 이제 꽃을 보기 어려운 계절로 접어드는데, 사진이란 매개체를 통해 식물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 방법과 또 제가 생각하는 생태사진이야기를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나눠볼까 합니다. 아마 산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식물의 이름을 조금씩 배우고 싶은 분이나 식물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나가시는 분들에게는 스스로 사진을 담아와서 동정하는 시간이 필수적일 것인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Samples
해국의 천성을 한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기위하여 거친 바닷가의 파도를 함게 표현하고 싶었다. 더 거친 사진도 있는데 왜 이걸 골랐징? 흰진범은 보다시피 잎이 크고 넓어 키큰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서 작은 빛으로도 잘 자란다. 둥근잎꿩의비름이 지고나면 대체로 가을꽃들이 마무리가 된다. 바닷가 솔숲에서 자라는 갯청닭의난초는 참으로 특이하다. 거의 유사한 청닭의난초가 석회질이 많은 지역에서 자라는데 유별나게 솔밭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원래 소나무는 아주 배타적이라서 솔잎이 깔린 자리에는 마치 잎이 목본 식물의 것처럼 단단한 상록성 풀인 노루발들이나 자라지 다른 식물들이 거의 자라지 않는다. 태생을 보니 가히 그 품성을 짐작할 수 있다 |
자료협조: 안단테의 들꽃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