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글밭] 04월 10일(월) '새로 읽는 도덕경, 그 하나'
어제는 욕심으로 찌든 제 자신을 건지고 싶었나 봅니다.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을 빌어 욕심에서 생명을, 모순을 발견해 내고 깨달음에 머물렀으니까요.
어쩌다 몇 번인가 뜻하지 않게 두어 줄을 끄집어 내어 뜻을 찾기도 했읍니다.
찾은 뜻이 한자로 된 도덕경을 우리글로 단순히 옮기는 작업으로도 보이겠구나 싶었지요.
그때 그때의 느낌을 옮기는 것과 우리글로 풀이하는 작업은 분명히 다를진대 말입니다.
그래서 전체를 풀이하기 보다는 앞 부분 몇 장만이라도 제대로 읽을 필요를 느낍니다.
그래서 오늘, 너무도 잘 알려진 도덕경 제1장을 차분하게 새로 읽어 볼 참입니다.
그래서 제1장을 조심스럽게 다시 끄집어 냅니다.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명가명 비상명)
無名 天地之時(무명 천지지시), 有名 萬物之母(유명 만물지모)
故 常無慾 以觀其妙(고 상무욕 이관기묘), 常有慾 以觀其徼(상유욕 이관기요)
此兩者 同出而異名(차양자 동출이이명), 同謂之玄(동위지현),
玄之又玄 衆妙之門(현지우현 중묘지문)
먼저 첫째 줄을 새겨 봅니다.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명가명 비상명)
보통 이렇게 풀어 냅니다.
도를 이게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본래의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지어 부르면 그것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다라고요.
그러니까 말로서 그 본래의 것을 제대로 끄집어 낼 수 없다는 것을 일러 주는 것일 테지요.
서로 다른 짝을 이루고 있는 이 글귀를 좀 더 쉽게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도를 도라고 불러도 좋지만 꼭 도라고 불러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道(도)는 길, 깨달음, 우주의 섭리로도 갈음할 수 있을 테지요.
따라서 우리가 부르는 이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름을 그 이름으로 불러도 좋지만 꼭 그 이름으로 불러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를 도라고 불러도 좋지만 그것이 딱 맞는 말은 아니다.
이름을 그 이름으로 부르긴 하지만 그것이 딱 맞는 이름은 아니다.
여기서 常道(상도), 常名(상명)은 본래 지니고 있는 뜻으로 으뜸되는 말일 테지요.
그러니까 가장 적합한 말, 최고의 적절한 표현으로 보면 좋을 듯 싶습니다.
이제 그 다음의 글귀로 넘어 갑니다.
無名 天地之時(무명 천지지시), 有名 萬物之母(유명 만물지모)
이름이 없는 것은 천지의 처음이요,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다로 풀어 냅니다.
하지만 여기의 이 글귀에서는 이와 같이 단순한 직역으로는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 부족함을 채우는 작업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하겠네요.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