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설득하려 하지 말라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결정하는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사자팔자로 운명이 정해질까?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일까?
내가 살아야할 삶이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것인가?
운명을 바꿀 열쇠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19-20)
생명과 사망이 네 앞을 두었으니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하신다.
하늘이 우리앞에
하늘이 우리손에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쇠를 주셨다.
그것이 선택이다.
오늘의 나의 선택, 하늘을 선택할 수도 땅을 선택할 수도 있다.
고함쳐 노래부를 수도 있고,
힘차게 대지를 뛰어 다닐 수도 있고,
혼자 방안에서 인생을 원망하며
울부짖을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하늘은 늘 우리의 행복을 위해 수고한다.
햇빛과 비를
바람을 흐르는 시냇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보내어 주신다.
아무리 마셔도
다함없는 공기처럼
당신의 은혜는 다함이 없는 사랑이시다.
누리며 감사하며
정해진 영역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도 좋으련만
사람들은 공기도 메마른 높은 산에 올라가서
숨도 쉴수 없는 깊은 바다속에 들어가서
떨어지면 한순간에 없어질 높은 난간에 올라
이래도 죽나봐라 하다가
어려움을 당한다.
사람은 만족을 모르고
끊임없이 영역을 넓혀가는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이 너무 커 금지된 땅일수록 더 넘어가고 싶고,
금지된 계명도 더 범해보고 싶어진다.
심지어 하나님도 설득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보려한다.
모압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해달라고 발람에게 사신을 보내고 많은 재물을 약속했을 때, 발람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민 22:12)
이것은 하나님의 분명하고 최종적인 뜻이었습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으며, 발락의 신하들과 함께 가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발락이 보낸 더 높은 고관들과 더 큰 예물을 보고 금전적인 욕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확한 첫 번째 거절에 만족하지 않고, 발락의 사신들에게 다시 하룻밤을 묵으며 하나님께 한 번 더 묻겠다고 합니다. (민 22:19)
이러한 발람의 고집과 욕심을 보시고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 (민 22:20)
성경학자들은 이를 허용적인 하나님의 의지(Permissive Will) 라고 해석합니다.
안타깝지만, 제발 그길을 가지 않으면 좋겠지만 인간의 선택을 인정하여 한번 해 보라고 한걸음 물러나 주십니다.
그러나 결국 발람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 나귀가 들려주는 음성도 거절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셔서 기쁘게 하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적 의지(directive will)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이요 율례입니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요 12:50)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행하고자 하는 소원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우리 속에서, 세미한 양심을 통해서 하늘의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하십니다.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1-22)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 30:21)
마치 때를 쓰는 아이처럼 우리도 자주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늘을 설득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딱 한번만 하구요.
이 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죄는 아무리 많이 지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오히려 죄에 대한 갈증만 늘어날 뿐입니다.
허용적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다른 예가 민수기 13장 12정탐군 파송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민 13:1-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이 같은 내용은 모세는 신명기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신 1:21-22)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주저함이 두려워함이 정탐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집을 허락해 주시고, 12정탐군에게 정탐을 허락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결과로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하고, 40일 탐지의 실패로 40년을 방황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불신의 길, 원망의 길로 가게 하는 일에 주동자가 되었던 10명의 정탐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36] 모세의 보냄을 받고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을 악평하여 온 회중이 모세를 원망하게 한 사람 [37] 곧 그 땅에 대하여 악평한 자들은 여호와 앞에서 재앙으로 죽었고”(민 14:36-37)
“그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민 14:38)
첫 출애굽세대 중에서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만 가나안에 들어갔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민 14:29)
이십세 이상이란 단어에 주목해야합니다. 20세 이상으로 원망했던 자 전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20세이하, 아직 어린 아이들은 주신의 의견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심판의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의 조화, 자상한 배려를 보게 됩니다.
그 진노의 대상에서 레위인도 제외됩니다.
“계수된 자 ”라는 단어에도 주목해야 하는데요.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군대 병력으로 계수된 스무 살 이상의 성인 남성을 의미합니다.
레위 지파는 민수기 1장에서도 전쟁을 위한 군대 계수에서 제외되었으며, 대신 성막 봉사를 위해 따로 계수되었습니다(민 1:47-49).
따라서, 레위인들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처럼 군대 계수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수함을 받은 자"에 대한 심판의 직접적인 선언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성막 봉사를 위해 하나님께 특별히 구별된 지파였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중앙에 진을 치고 성소의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불신앙의 죄와는 별도로 그들의 직무가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는 형벌을 받은 백성과는 달리, 그들의 봉사 직무를 통해 다음 세대까지 성막을 지키고 예배를 인도하는 역할을 계속했습니다.
하늘을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주님과 가까이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주님의 뜻을 더 묻고,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https://youtu.be/ezDy684MVdo
https://youtu.be/CdqSzBlwCi8?list=RDCdqSzBlwCi8
https://youtu.be/ZXc_U_Sd2ow
https://youtu.be/tla8ILAExoQ?list=PL-xlRAs8H4lzt60AFKPgdb4PlHPdgXVbG
하늘은 우리에게 말한다.
네가 기준이 아니라 하늘이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