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선언
윤기정
“그러면 그 할머니에게 그런 손녀가 있어야 좋겠냐?”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런 게 진정한 배려 아니겠어요? 이런 마음이 살만한 세상 만드는 것 아니겠어요?” TV에 가끔 출연하는 종교 지도자의 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출연자들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클로즈업된다. 시선은 책에 둔 채 TV에 귀 기울이게 했던 이야기의 앞부분은 이랬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식당에 갔다가 문 앞에서 꽃 파는 노파를 만났다. 아픈 손녀가 병원에도 못 가고 있다는 하소연에 20달러짜리 꽃다발을 팔아주었다. 꽃다발을 들고 식당에 들어섰다. 먼저 와 있던 친구 하나가 ‘너 속았구나. 다 거짓말이야. 손녀 이야기도 꾸민 거고, 20달러라니’라며 비웃듯이 말했다. 다른 친구가 ‘그러면 할머니에게 그런 손녀가 있어야 좋겠냐?’라는 말로 이어진 모양이다.
‘손녀가 없는 것이 노파에게 다행일까? 아픈 손녀라도 있어야 노파가 행복하지 않을까? 거짓말이라도 꽃을 팔아준 게 잘한 일 아닌가? 판단이 쉽지 않았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초라한 행색의 청년이 양손에 액자 하나씩 들고 쭈뼛거리며 사무실에 들어섰다. ‘고향에 내려갈 차비가 떨어져서 부득이 액자를 처분할 수밖에 없노라’며 책상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돌았다. 잠시 후 청년은 빈손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그림 조오타!”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창가에 자리한 선배 장학사가 액자를 높이 들고 명작이라도 감상하듯이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선배가 비밀이라도 털어놓듯 목소리를 낮춰가며 ‘요즘 저런 사람들 많대요.’라고 말했다. ‘당신 속았네.’라는 말로 들렸다. 액자를 산 선배가 “아무려나. 알면서 넘어갈 때도 있는 법이여~” 하며 ‘여’ 자의 꼬리를 길게 뽑았다. 동네 이발소에나 걸릴 법한 풍경화는 선배가 전직轉職할 때까지 사무실 창틀을 지켰다.
버스나 전철에서 껌이나 신문을 승객 무릎 위에 돌리고는 사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던 때가 있었다. 구구한 사연을 손바닥 만 한 종이에 적어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육교나 길가에 바구니 하나 놓고 엎드린 사람들도 있었다, 장화까지 달린 시커먼 방수 바지를 입고 낮은 리어카를 밀며 배밀이로 젖은 시장 바닥을 누비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바구니를 채워주거나 껌, 신문을 팔아준 기억이 없다. 구구한 사연도 거짓이고 장화 안에는 멀쩡한 두 다리가 있을 것이고 바구니에 던진 돈이 끼니를 해결하는 데 쓰이지 않음을 안다고 생각했다. 저녁이면 방수 바지를 벗어 던지고 두 발로 걸어서 퇴근하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들 뒤에는 조직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던가?
눈속임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다짐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장면도 있었다. 뛰어난 연출인지는 몰라도 시선을 붙잡고 마음을 허물어뜨리는 모습도 있었다. 염소수염의 체구 작은 노인이 땟국에 전 옷을 입고 엎드려 있으면 잰걸음으로 피해 가곤 했다. 얼굴이며 옷이 새까매서 나이도 가늠하기 어려운 여인이 아기를 둘러업고 쪼그려 앉아 있으면 멀리서부터 외면하고 지나치기도 했다. 물건을 팔아주거나 적선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닌데. 거지 근성 심어주는 건데’라면서 동정심 무른 바보라며 고개까지 주억거렸더랬다.
바보!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말이었다. 몇 년 전 2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善終) 10주년을 맞아 언론들은 스스로 ‘바보’라던 추기경을 추모하는 기사들을 실었다. 어느 신부의 기억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면 보통 도와줄까 말까를 고민하게 되지요. 그런 고민 없이, 저절로 호주머니에 손이 가는 나눔을 실천하는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자신의 삶을 바꾼 추기경의 말씀이라고 회고한다. 또 다른 신부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어. 그러고 보면 나이 드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라며 예의 함박웃음을 지었다고 기억하면서 ‘그분의 바보 웃음이 그립다.’라고 했다. ‘바보’라는 말은 ‘순박함’과 ‘어리숙함‘이라는 조금은 상반된 느낌을 같이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 할머니에게 그런 손녀가 있어야 좋겠냐?’ 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바보’ 하면 으레 떠올리던 ‘어리숙하다’라는 느낌은 떼어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똑똑해야 이긴다, 똑똑해야 손해 보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달려왔다. 똑똑한 체하며 살았다. 바보처럼 살면 큰일 나는 줄 알며 살았다. 달리는 눈에는 놓치는 것들이 많았다. 천천히 걸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버스와 전철, 육교와 장마당에서 만났던 이들의 처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려움을 과장하여 드러냈을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절박했으리라. 따지고 밝히려고만 했다. 바보스러움이 밝히는 것보다 따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앞세운 상인이 전철에 올랐다. 앞치마를 꺼내 들고 고급 제품임을 소개하고는 만원 한 장에 두 장을 준다고 했다. 늦은 귀갓길에 지친 승객들은 눈을 감고 있었고 그의 말이 끝날 즈음에는 그를 바라보던 몇 안 되는 시선들도 모두 걷혔다. 그의 쉰 목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머리 벗겨진 가장만 바라볼 식구들이 눈에 아른거렸다. 지갑을 만지작거렸다. ‘동정만 바라는 사람도 아닌데, 팔아 줘야지, 사야지. 뭐해? 이 바보야.’ 공연히 얼굴이 화끈거리며 익숙하지 않은 감정에 마음만 바빴다. 관광지에서 나무젓가락 사서 들어갔다가 들었던 아내의 구시렁대던 목소리도 들렸다. ‘사뒀다가 단골 식당 아주머니라도 주면 좋아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손에 들었던 앞치마를 여행 가방에 던지듯 집어넣고 그가 차를 내린 뒤였다. 지갑은 주머니를 벗어나지 못하고, 나는 바보 되기에 실패했다. 고민 없이 저절로 호주머니에 손이 가는 바보 되기는 쉽지 않았다. ‘목표를 낮추자. 고민하고 손이 가는 바보라도 되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며칠 후 전철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이날은 토시를 팔았다. 밭일에 맞춤으로 보였다. 망설이지 않고 아내 것까지 두 벌을 샀다. 드디어 바보가 되었다.
<계간 현대수필>, 2023 가을
<한국산문> 등단 2017
한국산문작가협회 회원
경기 수필사랑 양평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