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민, 가족 24-23,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올해 초, 주민등록증 발급통지서가 날아왔다. 만 17세가 되는 달의 다음달 1일부터 12개월간이 주민등록증 발급통지기간. 어엿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관문일 것이다. 고등학생이라면 혼자 가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급하는 것이니 부모님과 함께하면 어떨까?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해민이는 해민이대로 바쁜 일상을 보내니 자연스레 여름방학을 기약했었다. 하지만 연말 학교 공사 일정으로 인해 뜻밖에 방학이 일주일로 매우 짧았다. 어머니와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우선 해민이와 먼저 행정복지센터에 가보기로 했다.
남상면행정복지센터에 왔다. 앞선 민원인을 기다리는 동안 해민이와 테이블에 앉아 면정이 돌아가는 풍경을 눈에 담았다. 차례가 되어 해민이가 직원에게 문의하는 것을 도왔는데,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게도 면에서는 처리가 어려워 읍으로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읍에서도 발급은 어려웠는데, (주민등록증 발급이라는 상황에서) 의사소통 약자의 발급이라 상위기관에 문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수일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기다림에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방학은 지나갔고 발급은 차일피일 미뤄지게 되었다.
이 기다림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은 답변에 따르면 직원이 대신 발급을 도울 때 필요한 위임 관련 서류가 꽤나 많았다. 결국 어머니가 동행하기로 하셨다.
마침내 오늘, 어머니와 만나기로 한 시간에 읍행정복지센터로 갔다. 해민이가 내 곁을 떠나 어머니에게로 간다.
“번호표만 뽑아주세요.”
“네, 어머니. 해민아, 잘 하고 와.”
순서가 되어 멀찍이 떨어져 기다린다. 얼핏 들리는 말로,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하는 직원의 물음이 들린다. 내가 대답할 때는 항상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머니는 당연하게도 ‘엄마’라고 말씀하신다. 이후 과정은 비교적 순조로워 보였다.
지문을 스캔하는 과정이 난관이었다. 줄곧 어머니와 해민이 곁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이때는 애타는 심정으로 함께했다. 손에 힘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나보다. 기기는 최첨단으로 보였지만 다양한 손가락 모양이나 그 움직임을 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손가락에 붙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옆자리에서 도우러 온 다른 직원분이 말을 보탰다. 야속하게도 기기는 그냥 평면이었다. 스캔하는 사람이 손가락을 이리저리 굴려야 하는데 그 평면이 요지부동의 자세로 버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지문 찍는 시간이 길어지자 하필 뜸하던 민원인 방문도 늘어나는 것만 같고 설상가상으로 중간 저장도 어려워 중단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조바심과 진땀이 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에게서 해민이 옷을 받아들었다. 어머니는 ‘힘내, 조금만 더 해보자’하며 격려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지쳐가는 해민이를 응원했다.
사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처음이었다. 매끄럽지 못한 과정을 탓하거나 짜증이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른 분들이 기다리시잖아, 해보자’하며 주변을 살피시기도 했고 ‘해민이 잘한다’며 해민이도 살피셨다.
여건은 당장 바꿀 수 없었지만 주어진 시스템에서 직원분들도 최선을 다해 도우셨다. “아휴, 다 했다”하는 순간에는 이런 분투가 ‘분투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기다림과 도움이 있다면 결국에는 해낸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주차를 할 곳이 없어 멀리까지 가야 함에도 어머니가 배웅해 주신다. 해민이가 준비한 과자 선물을 건네며 어머니와 인사했다.
“해민이 민증 나온대요.” 월평빌라에 돌아오니 동료 선생님이 식당에서 작은 소문을 놓으신다.
해민아, 주민등록증 발급 축하해. 어머니도 아마 같은 마음이지 않으실까?
2024년 10월 25일 금요일, 서무결
‘보모’라 그냥 해결되는 것들이 많죠. 특히 관공서 행정업무 은행업무는요. 애쓰셨습니다. 신아름
오랜만에 아들 일로 어머니께서 용쓸 일이 생겼네요. 이런 상황이, 한 발 떨어져 지켜보는 저로서는 반갑습니다. 양해민 군, 축하해요!
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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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민, 가족 24-3, 이렇게라도 축하
양해민, 가족 24-4, 미리 생일 축하
양해민, 가족 24-5, 어머니가 사주신 케이크
양해민, 가족 24-6, 할머니는 못 뵀지만 시장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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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민, 가족 24-8, 즐거운 금요일이니까
양해민, 가족 24-9, 장시간 통화 감사합니다
양해민, 가족 24-10, 문득 찾아온 감기라도
양해민, 가족 24-11, 놀러올게요. 놀러갈게요!
양해민, 가족 24-12, 마음은 고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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