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미의 차(茶)와 사람을 잇다 17. 월광백(月光白)
박종미의 차(茶)와 사람을 잇다 17. 월광백(月光白)
하늘에는 늘 기적이 펼쳐지는데 인생의 기적은 언제 일까요. 구름 사이로 유난히 푸른 하늘이, 달이 뜨고 달이 지고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노을이 붉었다가 별들이 반짝이는 저 하늘이 너무 신비로워서 멍하니 바라보는 날이 많아집니다. 어렸을 때 읽은 헤르만 헤세의 시에서 ‘이상하다,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두가 혼자다.’ 라는 시가 인상 깊었는데, 밤하늘을 바라보며 고요히 앉았노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다, 밤의 숲속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우주의 소리가 동그랗게 파문을 그리며 점점 커져서 나는 먼지만해지고 우주의 소리만 남은 그 자리에 눈을 뜨면 커다란 보름달이 하늘에 낙관을 찍듯이 딱! 하고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9월에 소개해 드릴 차는 ‘월광백’입니다. 하얀 달빛 아래서 찻잎을 따고 말려서 만든 차라고하여 월광백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지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달빛차’라고 하면 어울릴까요. 수색은 달빛처럼 은백색이며, 향은 우아한 꽃향과 이슬 머금은 풀향과 아스라한 약향이 차례로 흩어지고, 맛은 백차의 청량감에 홍차의 감미로움을 더한 듯 풍부하며, 여운 또한 달빛처럼 은은함 속에 보이차의 깊음을 감추고 있는 차입니다.
차는 찻잎을 우린 수색에 따라 녹차, 백차, 황차, 청차, 홍차, 흑차의 6종류로 나눕니다. 이를 6대다류라고 하는데, 월광백은 6대다류 중 어디에 속하는 차일까요. 월광백은 보이차 산지인 윈난 경곡(景谷)의 대엽종 찻잎으로 만들기에 보이차의 별종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월광백은 백차의 한 종류로 분류해야 합니다. 경곡의 대엽종 찻잎은 표면에 백호(하얀솜털)가 발달하고 찻잎이 통통하여 백차를 만드는데 적합할 뿐 아니라 월광백 역시 백차를 만드는 방법 즉 찻잎을 따서(채엽) 시들려서(위조) 말리는 과정만 있을 뿐 불에 덖거나(살청) 비비는(유념) 과정이 없이 제다하여 백차의 속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차와 월광백을 만드는 가장 큰 차이는 찻잎을 말리는 방법입니다. 보이차는 후발효차이기 때문에 찻잎을 햇볕에 말려야만 발효균이 살아서 발효가 진행됩니다. 햇볕에 말리는 것을 쇄청이라고 하는데, 보이차가 만일 쇄청을 거치지 않고 대형공장에서 열풍 건조기로 말렸다면 그것은 보이차가 아닙니다. 반면 월광백은 햇볕을 쐬지 않고 달빛과 바람으로만 말립니다. 월광백이 만일 당나라 때에도 있던 차라면 달을 사랑한 시인 이태백이 아마 수많은 차시(茶詩)를 남겼을 거예요.
월광백은 1990년대 타이완의 저우런즈라는 사람에 의해 개발된 신종차입니다. 사실 월광백이 정말 달빛과 바람으로만 말렸는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이름만으로도 유명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싱잉볼이라는 티벳의 명상그릇도 보름달이 뜬 밤에 제작한 것은 풀문 싱잉볼이라고 해서 가격이 훨씬 비싸더군요. 달빛의 상상력이 사람의 마음 깊은 속을 건드리기 때문인가 봅니다. 현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차 가운데 개성 있고 좋은 차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월광백으로 백차계열의 차이며, 다른 하나는 동방미인으로 홍차계열의 차인데 맛과 풍미도 좋지만 특히 이름 때문에 유명해진 차입니다.
월광백은 찻잎도 아름답습니다. 싹에서 잎이 한 잎 펼쳐진 1아1엽으로 만드는데 백호가 발달한 찻잎(싹, 아엽)의 겉면은 하얀 빛이 돌고, 백호가 없는 찻잎의 속면은 검은 빛이 돕니다. 희끄무레 하거나 거무스름한 것이 아니라 흑백이 분명한 반전의 찻잎입니다. 마치 달이 앞면은 희게 빛나고 뒷면은 검어서 흑백이 분명한 위성인 것과 닮았습니다.
최상품 월광백은 얼핏 보면 백호은침과도 닮았습니다. 복정의 백호은침은 싹이 짧고 도톰하며, 정화의 백호은침은 싹이 가늘고 길며, 운남 경곡의 대백호는 싹이 크고 두툼하며 대엽종입니다. 그래서 월광백도 보이차처럼 묵혀서 마시면 좋아요. 오래될수록 깊고 향기로운 월진월향(越陳越香)의 마법이 월광백차에도 적용됩니다.
보름달이 밝은 밤에 가족이 모여 차를 마시는 광경을 상상해봅니다. 어느 가족이나 흑백이 있겠지요. 빛남도 있고 그늘도 있겠지요. 월광백을 마시며 빛남과 그늘이 조화를 이루는 묘미를 느껴보면 어떨까요.
월광백을 우립니다. 1) 개완(뚜껑이 있는 찻그릇)이나 자사호를 준비합니다. 대부분의 차는 큰 찻주전자에 우리면 맛이 없습니다. 작은 개완이나 자사호에 여러 번 우려 마시는 것이 향을 잘 품어줍니다. 2) 찻그릇에 3-4g의 찻잎을 넣고 윤차(潤茶)합니다. 세차(洗茶)라고도 하는 이 과정은 찻잎에 물을 부었다가 바로 따라내어 버리는 과정인데, 마른 찻잎을 정갈하게 적셔서 깨우는 과정입니다. 3) 윤차한 찻잎에 90-95도씨의 물 120-150ml 을 넣습니다. 이때 뜨거운 물을 찻잎에 바로 부으면 찻잎이 다칠 우려가 있으니 찻그릇 주위를 빙그르르 돌려서 물을 살며시 따라 넣습니다. 4) 30초 후에 1포(한 번 우린 차)를 마십니다. 차츰 시간을 늘려가며 8포정도 우려 마십니다.
차의 맛은 차를 우리는 사람을 닮아갑니다. 차가 맛있다면 차를 우리는 사람이 사랑을 듬뿍 담았을 거예요. 월광백의 효능은 머리를 맑게 하고 피부미용, 피로회복, 청량해열, 신진대사 촉진 등인데, 차를 우리는 사람의 사랑과 선한 마음만큼 더 큰 효능이 있을까요? 차가 전해주는 선한 영향력, 그것이 바로 인생의 작은 기적이 아닐까요.
월강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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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박종미의 차(茶)와 사람을 잇다 17. 월광백(月光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