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시골에서 자란 사람들은 호박이 얼마나 유용한 식물인지 안다.
터밭이나 유휴지에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한 다음 봄에 호박씨를 심고
까마귀나 까치 혹은 닭들이 흙을 파헤치고 씨앗을 쪼아 먹지 못하도록
나뭇가지로 덮어두면 한 사흘 후엔 새싻이 껍질을 투구처럼 둘러 써고 쏘옥
땅 위로 올라온다.
떡잎에서 나온 줄기는 어느새 따스한 햇볕을 받아 덩굴손을 앞세우며 길게
뻗어나간다. 한참 뻗어나간 줄기는 호박꽃을 피우며 꿀벌을 유혹한다.
보드라운 호박잎을 따서 밥 위에 쪄 내면 맛있는 반찬이 된다. 야들야들한
애동호박은 따서 남룰로 무쳐 먹기도 하고 초가을 갈치가 살 오를 때 갈치조림에
넣고 찌지면 짭쪼롬하면서 덜큰한 그맛은 밥도둑이 따로 없게 만든다.
가을에 무서리가 내리면 호박잎들은 허옇게 말라버린다. 무성한 잎들 새에
숨어 있던 호박들이 여기저기서 "나 여기 있오!"하면서 나타난다.
누렁덩이 호박은 보릿고개를 넘기는 구황식물이기도 하지만 호박 우거리를 타서
말렸다가 시락국에 넣어 먹기도 하고 호박전을 부쳐 먹기도 한다. 호박죽, 호박시루떡도
만들고 울릉도에선 호박엿을 만들기도 하였다.
호박이 흔하다 보니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비근한 예가 '호박꽃도 꽃인가?'하는 말이다. 주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요즘은 자연산이 드물다 할 정도로 인조미인이 판을 치고 있으니
의미도 퇴색되고 말았다. 그리고 '뒤에서 호박씨 깐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는
겉으로는 얌전한 척 하나 속으로나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나쁜 속내를 나타내거나
교활한 짓을 하는 인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속담에서도 호박씨가 몸에 좋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호박씨를 까먹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나 서양에서는 해바라기씨나 호박씨를 까먹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서리를 맞아 누렇게 잘 익은 호박을 가르면 속에는 토실토실한 호박씨가 들어있다.
호박씨 100g에는 단백질 30g, 지방 48g,탄수화물 12g,섬유질6g,칼슘61mg,철 8g까지 3대
영양소와 미네랄이 듬뿍 들어간 영양학5각형을 만족시키는 식재료다.
호박씨를 먹으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호박씨에는 멜라토닌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트립토판이라는 아미노산이 포함되어 있는데 멜라토닌은 신체의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핵심
호르몬으로 호박씨를 먹으면 잠을 깊이 자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한 기분전환도 될 수 있다고
한다. 호박씨에 들어 있는 트립토판은 멜라토닌뿐 아니라 세로토닌을 만드는데도 사용된다. 낮은
세로토닌 수치는 우울증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트립토판을 섭취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