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주유천하
36세 때 소공(昭公) 25년 노나라에 '삼환(三桓, 맹손(孟孫)·숙손(叔孫)·계손(季孫) 등 당시 노나라의 권세가)의 난'이 일어나
노왕 소공이 신하인 계씨에게 쫓겨나 제나라로 도망치는 일이 벌어졌다.
공자도 그의 뒤를 따라 피난, 기원전 517년에 제(齊)나라에 갔다.
공자는 제나라의 왕 경공(景公)과 신하들에게 여러 모로 진리를 가르쳤다.
그는 그 곳에서 음악을 논하고 경공에게 정명주의(正名主義)에 입각한 정치 이상을 말하였다.
공자의 박학다식함과 고매한 인품에 매료돼 그를 흠모하게 된 경공은 그를 자신의 정치적 고문으로 기용하려 했으나,
공자의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와지는 것을 꺼린
제나라 재상 안영(晏嬰)의 적극적인 반대로 좌절되었다.
이로 인해 2년 만에 귀국한 공자는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46세 무렵 노나라 왕의 측근 배신(陪臣)인 양호(楊虎)가 세력을 잃고 물러나게 되면서 중도재(中道宰)가 되었다.
52세 무렵에는 대사구(大司寇)로 지위가 올랐다.
그 이듬해 노나라의 정공을 따라가 참석한 제나라와의 강화 회의에서 예전에 제나라에 빼앗긴 노나라의 땅을 돌려 주도록 요구하여 이를 관철시켰으며, 난신대부 소정묘(少正卯)를 축출하는 데 참여하였다고도 한다(기원전 496년.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일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 제나라에서는 밀자(密者)를 파견하여 노나라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였으나 공자가 이를 꿰뚫어 보고 회의 장소에 들어가려는 의심쩍은 사내를 붙잡아 화를 미리 막고 노나라에 유리하게 강화를 맺었다.
삼환씨의 세력을 꺾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대부(大夫)인 계환자가 제나라의 흉계에 속아 쾌락에 빠진 것을 만류하다가 대립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크게 낙담한 공자는 그의 큰 뜻을 이루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벼슬을 버린 후, 55세의 나이로
14년 동안 제자들과 온갖 고초를 무릅쓰고 위·송·조·정·진·태 등 여러 나라를 주유하였다.
처음에는 융슝한 대접을 받기도 했으나 날이 갈수록 고난의 길이었다. 상가집 개라는 별명을 얻기 까지 하고
온갖 고생을 감수하던 부인에게서 이혼을 당하기 도 했다.
2500년 동안 동아시아 인들에게 영향을 미친 공자 철학의 바탕에는
14년간 주유천하의 수난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이
배어 있다.
여기, 공자가 간다
저 : 진현종 ㅣ 출판사 : 갑인공방 ㅣ 발행일 : 2005년 09월09일
336쪽 ㅣ ISBN : 8990603323
공자는 14년 주유천하의 수난을 겪고서야 유가 철학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주유천하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진현종은 각종 사료를 통해 공자와 그 제자들의 14년 주유천하를 본격 탐구해
재구성하고, 또 현지답사를 통해 몸으로 직접 느껴보고자 했다.
공자와 공자 철학의 본모습을 찾고자 노력한 논픽션, <여기, 공자가 간다>가 다시금
공자 담론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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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예를 위해 14년간 천하를 주요한 철인
노나라 대부 계환자가 제나라의 계략에 속아 쾌락에 빠진 것을 만류하다가 대립하게 되었다. 이에 그는 벼슬직을 그만두고 제자들과 함께 14년간 제자들과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여러 나라를 주유하게 된다. 공자의 경륜과 인망은 널리 알려졌으나 어느 나라에서도 그를 기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군주(왕)들은 올바르고 인간다운 세상보다는 겉으로 눈에 띄는 화려한 형식적인 부국강병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나라에 환국한 후 공자는 교육, 저술에만 전심하게 된다.
당현종(李隆基)가 노나라 땅을 지나다가 공자의 묘에 제를 올리며 시를 짓는다
夫子何爲者부자하위자 孔夫子는 무엇하는 사람이기에
棲棲一代中서서일대중 평생을 그리 바쁘게 해맸던가
地猶鄒氏邑지유추씨읍 땅은 옛날 그대로 추읍이라 하는데
宅卽魯王宮택즉노왕궁 그 집은 노나라 왕궁의 궁궐이 되었네
嘆鳳嗟身否탄봉차신부 봉을 탄식하며 나의 불우함에 한숨짓고
傷麟怨道宮상린원도궁 道의 끝남을 설워했다
今看兩楹奠금간양영전 지금 두 기둥 사이에서 제를 올리나니
當與夢時同당여몽시동 당연히 그때에 꾸던 그 꿈과 같은 것을
*嘆鳳, 麒麟, 兩楹奠...
공자가 63세때 초나라에 머물면서 衛나라로 갈까 생각하던 중, 미치광이 행세를 하며 떠돌아다니던 奇人 접여(接與)가 공자의 곁을 지나면서 노래하였다고 논어는 기록하고 있다.
장자의 인간세 편에는 조금 더 자세히 전한다.
봉황새여 봉황새여 어째서 그대 덕이 쇠하였나?
미래는기대할 수 없는 것이고, 과거의 영화는 지나간 꿈이로다.
도가 있는 세상은 성인이 다스리는 곳,
도가 없는 세상은 성인이 숨어버리는 곳,
지금같은 시국에는 근근히 화를 피하기도 바쁜 법,
행복은 깃털보다 가운데, 행복을 잠는 사람 왜 그리 적은 것인가?
화는 땅덩이 보다 더 무거운데 화를 피하는 이는 왜 이리 그리 적은가?
아서라 아서라, 내가 가진 덕을 내세워 사란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위태롭고도 위태롭구나
접여(接輿)의 노래(접여가) : 봉혜가(鳳兮歌)
孔子適楚(공자적초)한대 : 공자가 초(楚)나라에 갔을 때,
楚狂接輿 遊其門 曰(초광접여 유기문 왈), : 초나라 미치광이 접여(接輿)가 문 앞을 오락가락하며 노래하기를
鳳兮(봉혜)여 鳳兮(봉혜)여 : 봉황이여 봉황이여
何如德之衰也(하여덕지쇠야)오? : 시들어가는 덕(德)을 어찌 하겠느냐?
來世(내세)는 不可待(불가대)요 : 앞날은 기대할 수 없고
往世(왕세)는 不可追也(불가추야)라: 지난날은 돌이킬 수 없도다.
天下有道(천하유도)엔 : 천하에 도(道)가 있으면
聖人成焉(성인성언)이요 : 성인(聖人)이 그것을 이루고
天下無道(천하무도)엔 : 천하에 도가 없으면
聖人生焉(성인생언)인데 : 성인은 자기 목숨 살아갈 따름이니
方今之時(방금지시)는 : 시방은
僅免刑焉(근면형언)이로다 : 겨우 형벌이나 면하는 게 고작인 세상
福輕乎羽(복경호우)나 : 복(福)은 깃털보다 가벼워도
莫之知載(막지지재)요 : 잡을 줄 모르고
禍重乎地(화중호지)나 : 화(禍)는 땅보다 무거워도
莫之知避(막지지피)라 : 피할 줄을 모르네.
已乎(이호)라 已乎(이호)라 : 아서라 아서라
臨人以德(임인이덕)이여 : 덕(德)으로써 사람을 다스리는 짓거리.
殆乎(태호)라 殆乎(태호)라 :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畵地而趨(획지이추)1)여 : 땅에 금 긋고 그 안에 허둥대는 짓거리.
迷陽迷陽(미양미양)2)이여 : 가시나무여, 가시나무여.
無傷吾行(무상오행)이니 : 내 가는 길 네가 못 막으리
吾行卻曲(오행각곡)3)이면 : 이리 굽고 저리 굽어 돌아가면
無傷吾足(무상오족)이니라 : 내 발을 네가 헐지 못하리.
山木(산목)은 自寇(자구)4)하고 : 산에 나무는 제 몸 제가 베어넘기고
膏火(고화)는 自煎也(자전야)5)라 : 등잔불은 제 몸 제가 사르니
桂可食(계가식)으로 :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서
故伐之(고벌지)요 : 잘리우고
漆可用(칠가용)으로 : 옻나무는 쓸 데가 있어서
故割之(고할지)라 : 베어지네
人皆知有用之用(인개지유용지용)이나 : 사람이 저마다 쓸모 있음의 쓸모는 알면서
而莫知無用之用也(이막지무용지용야)로다 : 쓸모없음의 쓸모는 모르는구나
(장자, 인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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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畵(그림화 / 그을 획), 趨(달릴 추)
2) 迷(미혹할 미), 陽(볕 양) 迷陽(미양)은 가시풀.
3) 卻(물리칠 각)
4) 寇(도둑 구)
5) 煎(달일 전 / 전 전)
출처 http://cafe.daum.net/suhjunghum/H6pD/465?doc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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