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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권에는 혼천의(渾天儀)와 북두칠성(北斗七星)을 비롯한 여러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북두칠성을 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 부른다.
혼천의는 우리민족의 과학기술의 자랑으로서 각종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천문관측 기구이다. 혼천의 뒷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자. 혼천의와 북두칠성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바탕에 깔고 위치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당시 조선에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별자리가 그려졌다. 그래서 ‘전천천문도全天天文圖’라고 분류한다.
돌에 새긴 석각본, 나무에 새긴 목판본, 종이에 찍은 필사본으로 제작되어 조선의 백성들에게 다양하게 보급되었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 공간을 방위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3차원 우주 공간에 퍼져 있는 별들을 사람이 이해하기 쉽도록 지상의 방위에 맞게 2차원 평면에 펼쳐 놓은 천문도이다. 북극성을 기준으로 관측할 수 있는 별자리들을 12구역으로 나누었다.
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에서 전해 내려온 천문도(天文圖)를 바탕으로 1395년 조선 태조 때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천상(天上)열차(列次)분야(分野)지도(之圖)란 하늘의 모습을 차(次)에 따라 벌여 놓은 그림이란 뜻이다. 차(次)는 하늘의 황도부근을 세로로 12구역으로 나눈 것을 말하며, 분야(分野)는 이에 대응하는 지상의 지역을 말한다. 그러므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인간세상과 똑같이 천상(天上)세계도 삼신상제님을 중심으로 일체의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면 28수의 별자리가 칠성으로 일곱 개씩 넷으로 봄(동), 여름(남), 가을(서), 겨울(북)에 배치되어 있다.
풍수란 하늘의 명당과 닮은 땅의 명당을 찾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하늘은 어디가 명당일까?
북극성과 북두칠성에는 온 우주를 다스리는 하늘의 제왕(천제天帝 혹은 옥황상제玉皇上帝)이 머문다고 믿었다. 그래서 북극성과 북두칠성이 있는 별자리 영역을 명당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가장 안쪽 원 내규內規인 ‘자미원紫微垣’ 혹은 ‘자미궁紫微宮’이 최고의 명당이다.
하늘의 28개의 별자리를 땅에 적용한 내용
자미원에 기거하는 하늘의 제왕이 있으면 신하도 있고, 백성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 하늘의 제왕 아래에서 우주 정치를 수행하는 정부기관이 있는 곳을 ‘태미원’이라 하며, 하늘 백성들이 사는 곳을 ‘천시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은 삼원三垣이라 하며, 뒤에서 이야기할 28수와 더불어 동아시아 천문 사상의 특징이다. 즉 동아시아 천문도의 특징은 3원 28수이다.
‘서울은 하늘의 별자리 기운이 지상으로 내려온 천문(天文)의 도시다.
경복궁과 한양도성은 하늘의 으뜸 별자리인 자미원(紫微垣)이고, 광진구는 천시원(天市垣), 은평구는 태미원(太微垣) 별자리에 해당한다. 한양도성 남쪽에서 서해로 흐르는 한강은 은하수다.’
조선 세조 때 풍수로 공을 세워 원종공신(原從功臣)의 지위까지 오른 지관 문맹검(文孟儉)은 1452년 조선의 국도(國都) 한양의 지세를 살펴본 후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지금 우리 국도는 위로는 천성(天星·하늘의 별자리)에 응하여 삼원(三垣·동양의 중요 별자리인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의 형상이 환하게 갖추어졌습니다. 가운데로는 백악(경복궁 뒷산)이 있어 만갈래 물과(萬水)와 천가지 산(千山)이 모두 일신(一神)에게 조회(朝會)하니… 참으로 천상天上 북극(北極)의 자미원이라 이를 만합니다.
동쪽으로는 낙천정(樂天亭·광진구 자양동 일대)이 있어 백가지 근원(百源)이 와서 모이게 되니, 이 또한 천상(天上)의 천시원입니다. 서쪽으로는 영서역(迎曙驛·은평구 역촌동 일대)이 있어 성(城·산)을 가로질러 흐르는 물길이 멀리 있으니 이 또한 천상天上의 태미원입니다.”(조선왕조실록 문종2년 3월3일 기사)
하늘의 명당을 땅에 내린 경복궁
한마디로 서울은 하늘에서 가장 중심 되는 별자리인 삼원의 기운이 내려온 신성한 땅이라는 얘기다. 서양에서는 ‘밀키 웨이(milk way)’로 불리는 은하수는 동양에서는 ‘용이 살고 있는 시내’라는 뜻의 미리내, 하늘의 강이라는 뜻의 천하(天河) 천한(天漢) 은한(銀漢) 등 여러 이름을 갖고 있다.
일부 중국인들은 서울이 중국 한나라를 본 딴 이름인 한성(漢城)이고, 강 이름도 한강(漢江)이라며 한국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오해는 한성과 한강의 ‘한’이 은하수 이름인 ‘천한天漢’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모르는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의 건국자들은 하늘의 삼원을 지상에 배치시켰는데 자미원은 경복궁, 태미원은 육조거리로 지금의 광화문 광장에 해당한다. 육조 거리엔 중앙관청인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이외에 조선 시대 국가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의정부를 비롯하여 서울시청에 해당하는 한성부, 감사원격인 사헌부 외에 정부 중앙 관청인 6조가 있었다. 천시원은 현대적인 의미로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있어서 종로의 시전이 바로 천시원에 해당한다 하겠다.
일월오봉병(도)日月五峯屛(圖)
자미원에 있는 ‘옥황상제’가 북두칠성이라는 수레를 타고 1년 동안 온 우주를 돌며 다스리는 것을 칠정七政이라고 한다.
옥황상제는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이다.
북두칠성은 상제의 명령을 받아 4계절마다 각 7수(28수 중 7별자리)를 지휘한다.
각 7수는 북두칠성의 지휘 아래 맡은 바 영역에서 정해진 시기(계절)에 맞게 활동을 한다. 7수의 활동은 다시 온 우주에 영향을 미쳐서 우리가 속한 태양계의 일월과 오행성(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까지 이르게 된다. 일월과 오행성은 7수의 지휘 아래 각기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이 땅의 만물에 낳고 기르고 결실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처럼 자미원에 있는 상제(혹은 천제)가 온 우주를 다스리듯 천제의 대행자인 임금은 하늘로부터 인간 세상의 통치권을 부여받았기에 하늘을 본받아 이 땅의 백성들을 다스린다. 이것이 천상의 칠정七政을 본받아 임금이 인간 세상에 펼치는 정치政治이다.
그래서 역대 제왕들은 하늘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관청을 설치하고 1년 365일 일월 오행성의 움직임과 별자리들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했다.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 자미원에 계신 상제의 뜻을 알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하늘(천제)은 말도 몸짓도 없기에 임금께서는 하늘의 기색(상象)을 살펴서라도 천심을 알고자 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관상감觀象監이라는 관청을 두어 천문을 관측하고 기록하여 임금님에게 주요 사항을 보고하게 했다. 이렇게 천문을 관측하고 그 기록과 역량이 축적되면서 달력을 만들어 냈고 이는 어로, 수렵, 목축, 채취, 농사 등 백성들의 생활 전반에 도움을 주게 되었다.
『서경書經』은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자, 즉 4천여 년 전 이후의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등의 성인 제왕들이 어떻게 통치했는지, 그 통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그 책의 서두에는 “제왕으로 등극을 하면 먼저 태산泰山에 올라 천상에 계신 상제님께 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태산泰山 꼭대기에는 지금도 ‘옥황전玉皇殿’이 있다.
제왕이 되면 누구든 그 곳에 올라가 천상에 계신 하나님, 상제님께 천제를 지내고 나라 살림을 시작했던 것이다. “상제님! 제가 즉위를 했습니다. 신고를 올리겠습니다.” 하고 그래서 ‘제왕은 천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해서 ‘천자(天子)’라 불려 왔다.
중국 산동성 태산 입구에 ‘紫氣東來’라는 네 글자가 걸려있다. “자기동래”의 ‘자줏빛 자紫’는 자미원의 紫자로 천자를 상징한다. 즉 자기동래紫氣東來는 ‘천자문화의 기운이 동방에서 왔다’는 뜻으로 중국 천자문화의 출원이 동방 한민족임을 그들 스스로 밝힌 것이다. 이 네 글자는 한민족의 역사를 되찾아 주는 천하의 명구이다.
자기동래紫氣東來 현판은 심양의 고궁인 봉황루, 서태후 때 재건된 이화원 등에도 있다.
중국 후한시대 채옹(蔡邕)은 『독단獨斷』에서 천자제도의 근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자는 동이족 임금의 호칭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섬기는 까닭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다.(天子 東夷之所稱 父天母地故 稱天子) 천자제도가 동방족 문화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밝힌 것이다.
천자문화가 중국으로 넘어간 계기는 고조선(단군조선) 초기, 당시 중국은 요순시대 때 9년 홍수로 양자강이 범람하는 위기에 빠졌을 때 고조선의 단군왕검께서 맏아들 부루태자(2세 단군)를 보내 순 왕조의 관리였던 우禹에게 산을 다스리고 물을 다스리는 비결인 오행치수법이 담긴 금간옥첩을 전수해주면서 나라를 경영하는 천자天子의 道도 같이 전수된 것이다. 그 후 고조선의 천자문화가 본격적으로 중국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중국의 요,순,우,탕,문왕,무왕은 다 왕이었다. 진시황에 이르러 천자국을 자처하며 스스로 시황이라 칭하였다. 고대 중국을 천자국으로 묘사한 것은 모두 한대漢代 이후 중국 사가들에 의한 조작이며 윤색이다.
분야설分野說
목성은 공전 주기가 약 12년(정확히는 11.86년)으로 매년 천구상의 황도 둘레를 약 30도씩 운행한다. 이 목성의 12년 1주천 주기를 12등분 한 것을 ‘십이차 분야설’이라 한다.
이 12차는 천상의 공간을 구획하는 분야론으로 전개되었으며 지구로 확장되어 12주, 12국에 배속되었다. 『환단고기』의 ‘12환국’과 동학의 ‘12제국’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만주 집안현에 1500년 동안 굳건히 서 있는 광개토태왕비문에도 '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皇天之子'라는 기록이 분명히 남아 있다.
[옛날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창건하시었다. 북부여에서 나왔는데, 천제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녀이다.(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고조선 이후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천자 칭호가 계승되어 오다가 고려 말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왕으로 내려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임금 고종은 1897년 천자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국호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로 즉위하였다. 제천단인 원구단에서 천상의 상제님께 한민족의 전통인 천자 등극을 고하는 천제를 올렸다. 고종 황제는 우리나라가 천자국의 종주국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것이다.
근대 역사의 출발점인 19세기 후반에 나온 동학의 주제는 동방 한민족이 섬겨왔던 제천문화의 원 주인공인 우주의 통치자 상제님이 동방 땅에 강세하시고, 그분의 무극대도 진리가 나와서 앞으로 인류 문화는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의 조화문명(造化文明) 시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1860(경신)년 음력 4월 5일에 동학(東學)의 창시자 최수운 대신사가 하나님과 직접 문답을 했다. 그것이 천상문답(天上問答) 도통사건이다. 이때 최수운대신사가 상제님에게서 도통을 받으며 ‘앞으로 오는 새 시대를 선언하라.’하는 천명을 받았다.
“무극대도(無極大道)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이것이 동학의 핵심 선언이다.
앞서 소개한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천상열차분야지도라는 천문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하늘의 이치대로 사람들이 살아야 했기 때문에 천문도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다. 이것이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만들었던 이유인 것이다.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천문학
고려 시대의 천문 관측 기록은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다. 정밀한 관측 기계가 아니면 관찰이 어려운 천문 현상까지 남기고 있다. 고려는 다양한 국가 천문 기관에서 30명에 가까운 천문 학자와 관리들이 활동했다. 고려 왕조 475년 동안 천문 관측 기록은 〈고려사〉, 〈천문지〉, 〈역지〉, 〈오행지〉 등에 집약되어 있다.
무려 6,500건에 달하는 자연 현상에 대한 기록 중 일식 138회, 혜성 87회 같은 비교적 쉬운 관측에서부터 태양 흑점을 관측한 기록도 38회나 있다고 한다. 한 예로 1151년 3월 2일에 ‘일중유흑자日中有黑子’ 즉, ‘태양 속에 검은 것이 있다.’고 기록하면서 ‘그 크기가 계란만 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수천 년의 천문 관측 기술과 역량이 드러난 걸작으로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이자, 세계의 자랑거리인 것이다.
혼천의에 대한 역사기록을 보면 5대 단군 구을(丘乙)께서 16년간 제위 기간동안 그 당시 감성관(監星官)으로 있던 황보덕에게 혼천기(渾天機)를 만들게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기원전 2087년 전이고, 이전의 환웅천황 때 이미 역법(曆法)을 사용하고 있었으니 당시의 우리 문화수준은 세계 최고였음이 틀림없다. 출처: 상생방송
첫댓글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네, 반갑습니다.
좋은글 감사 합니다
네,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