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중고서점 알라딘에 들릴 때가 있다. 새책을 비싸게 사는 것보다 할인된 값에 사면
한권 값으로도 두권 세권을 살 수 있기 때문이고 그렇다고 시류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두해 전인가 알라딘에서 필요한 책이 있는가 둘러보다가 진열대 위에 놓인
책의 타이틀에 눈길이 갔다. 에코서재에서 낸 '생각의 탄생'이었다. 누가 먼저 읽고 중고로
판매한 책이 아니고 신품이었다. 다빈치에서부터 파인만까지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
가지 생각도구에 관한 내용이었다.
집에 있으면 하루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떠 오른다. 예전에는 다이어리나 메모장에 순간 순간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를 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메모를 잘 하지 않고
꼭 메모를 해야할 필요가 있으면 스마트폰에 문자로 기록해 두지만 그냥 기억했다가 나중에
정리하지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의 세포들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메모리 용량도 줄어드는 모양이다. 며칠전에도 산보하다가 카페에 올릴
타이틀을 생각했는데 산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보니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각을
잡아놓지 않으면 무심코 왔다가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훌쩍 떠나버리고 만다.
오늘 아침에는 식사를 하다가 식탁 좌우로 고개를 돌려 보니 술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드러는 술이 들어 있는 것도 있고 대부분은 빈병들이다. 혹자는 빈병들을 왜 내다버리지 않고
비좁은 실내에 모아 두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술병만 봐도 마음이 즐겁다.
안에 술이 들어 있다면 더 좋다. 그렇다고 빈 술병 수집가는 아니다. 어느정도 모이면 쓰레기장으로
주기적으로 갖다 버리기도 한다.
술꾼은 본래 청탁불문이요 두주불사다. 오늘 대학동기회 모임이 있는 날이다. 예전에는 제법 마시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으나 요즘에는 두세명을 빼고는 한 두잔이면 족한 친구들이 많고 개중에는 건강상
술을 일체 입에도 대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술맛을 모르고서 어찌 즐거움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마시고 던져 둔 빈병에 '까르페 디엠(Carpe Diem)'이란 와인병이 있다. 몇년전에 이름이 괜찮아
맛이 어떻는지 호기심이 생겨 전포동 와인솦에 가서 두 종류를 샀었다. 지금 한창 전쟁중인 우크라이나
바로 아래에 있는 몰도바산으로 한병에 6만원 정도 주고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맛은 내입에 썩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마실만하다고 생각되었다.'까르페 디엠'이란 라틴어인데 우리말로는
'현재를 즐겨라(Enjoy present'다.
성경 집회서 30장 20절에는 다음과 같은 귀절이 있다. '앞에 놓인 음식을 보고도 한숨이나 짓는 자는
처녀를 안고 한숨 짓는 병신과 같다' 여기서 병신의 사전적 의미는 '생각이 모자라고 행동이 어리석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얕잡거나 핀잔하여 이르는 말, 또는 신체의 어느 부분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보통과는
다른 형체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제 앞에 놓인 술을 보고도 못마시는 자는 병신과 같다는 말이 된다.
술은 적게 마시면 보약이요 과음하면 독약이 된다. 술병을 옆에 쌓아두다 보니 나도 술병에 걸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