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붕 자원방래'는 논어 첫 구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다음에 나오는
구로서 공자는 군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망으로 여겼다. 뒤따르는 구를
마저 열거하면 '인부지이 불온 불역군자호'이다 쉽게 풀이하자면 때때로
익히는 것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불만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어제 저녁때 부산역 인근에 있는 어우동이란 식당에서 동기회 모임을 가졌다.
대학동기들로서 열세명이 모였는데 다 일흔 중반을 넘긴 노인들이다. 그 중에
두 사람은 서울에서 친구들이 보고 싶다면서 특별히 시간을 내어 내려왔다.
우리 대학동기들은 대학4년간 (1년은 개별실습) 공동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동고동락하였으므로 고등학교나 타대학의 동기들과는 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한 친구는 십여년전까지만 하여도 국내외 여행도 많이 하고
산행도 자주하던 친구였다. 산에 가면 산비탈을 산다람쥐처럼 날아다니고 호미
를 갖고 다니면서 더덕을 캐던 친구였다. 여행을 다니면서 때때로 메모를 하여
에세이집을 두권이나 냈던 글재주도 있는 친구다. 그런데 십여년전부터 파킨슨이
찾아와 인생의 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고 말았다. 평소에 과음을 한 것도 아니요
흡연을 오래 한 것도 아닌데 어느날 갑자기 파킨슨병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도 꾸준히 걷기운동을 계속해 고만고만한 상태라고 한다. 어제도 지팡이를
짚고 걷긴 하는데 보폭이 정상적인 보폭보다 조금 짧았다. 집에서도 멀리는 가지
못하고 중간 중간에 앉아서 쉴만한 곳을 택하여 하루에 두세 시간을 걷는다고 한다.
손이 떨려서 글자를 제대로 쓸 수가 없으니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려 글을 쓴다고 한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친구들이 하두 보고 싶어 지난날 서울동기회 총무를 했던
한 친구를 대동하여 내려왔었다.
저녁때가 되어 식사자리에 다 모인 친구들 앞에서 잠시 일어서서 인삿말을 하는데
말이 평소보다 조금 어눌했으나 그런대로 다 알아들을 수가 있었는데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불원천리 달려왔다고 했다.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끝내고 다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면서 궁금하던 친구들의 근황을 물어보고 지난 시절의 이야기에 꽃을
피웠다. 내려올 때 열시 반 열차표를 끊어 왔으나 서울도착이 너무 늦을 것 같아 조금
일찍 올라가라고 8시쯤 카페를 나섰다. 부산역까지 바래다 주면서 절뚝거리며 떠나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마음 한 구석이 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