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후반, 베네치아의 저명한 화가 집안에서 태어난 벨리니(Giovanni Bellini, 1430경-1516)는 아버지 야코보 벨리니의 작업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그는 북부 르네상스의 치밀하고 상세한 유화 기법과 15세기 초 이탈리아 회화의 기념비적인 전통을 통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은 벨리니의 초기 작품으로 아직 베네치아 회화만의 색채와 톤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유연한 윤곽선과 충만한 빛의 효과 그리고 자연풍경으로 자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깊은 종교적 감성과 인간적인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흰옷을 입은 반신상의 그리스도는 한없이 남루한 모습이다. 벨리니의 축복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동방교회의만물을 지배하는 군주라는 의미의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이콘을 연상시킨다. 판토크라토르 도상에서 볼 수있는 당당하고 위엄있는 우주의 지배자로서의 그리스도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약해 보이기 그지없다. 그러나 초라한 모습을 지닌 그리스도는 힘을 내어 오른손을 들어 하늘과 땅의 결합을 상징하는 축복의 자세를 취하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하는 듯하다. 왼손으로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묘사된 성경을 있는 힘을 다해 쥐고 있는 모습이 말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형상의 후광을 뒤로 한 채,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이마에는 선혈이 배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손바닥과 손등에는 십자가에 못 박혔던 흔적이 선명하게 보이고, 가슴에는 창에 찔렸던 상처도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수난의 흔적은 그분의 모습을 더욱 초라하게 보이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시선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먼 곳을 향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의의 태양이 동쪽에서 솟아올라 서쪽으로 지는 것을 상징한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루카 24, 39)
축복을 주는 손의 모양은 검지와 중지를 위로 올리고 있다. 동방교회의 판토크라토르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손은 엄지, 약지, 새끼손가락을 모아서로 맞대고 살짝 굽힌 검지와 중지를 위로 올리고 있다. 세 손가락은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구부린 검지는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육화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음을 각각 상징한다. 그러나 벨리니가 그린 그리스도의 손가락은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가 펴져 있다. 이 손가락은 숫자 8을 시사한다. 숫자 8은 부활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7일째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올 무렵 부활하신다. 벨리니는 서 있기조차 힘들어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도 화가 특유의 빛의 효과를 통해 생동감과 힘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뒤에 펼쳐진 풍경을 통해 밝은 빛과 색채의 조화 속에 풍부한 에너지가 부활과 연결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림은 부활의 기쁨보다는 수난과 고통의 상처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몸에 새겨진 상처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친히 겪으신 그분의 사랑의 징표로 남은 것이다.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1베드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