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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arrett Neff
열일곱. 그 여름에 나는 미국으로 떠났다.
장녀가 자신처럼 명문대를 나오길 원했던 아버지
아버지와 동문이었지만 시댁의 반대로 교수의 아내로만 살아야 했던 어머니
두 사람의 넘치는 바람으로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만 했었다.
출국 직전 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나는 끊임 없이 눈물만 흘렸다.
부모님은 가족과 헤어진다는 것에 내가 상심한 것으로 여겼지만
눈물이 터진 이유는 그것과 달랐다.
나는 가족보다 친구들이 소중했고
그 애들을 버리고 낯선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에 불안하고 슬펐으며
무엇보다도 분노가 치밀었다.
목적 없는 분노는
미국에 도착해서도 녹지 않고 늘 가슴에 남아있었다.
그러다 그 애를 만났다.
[ HEY! ]
웃으면서 나에게 인사한 그 애에게 뚱한 얼굴로 나를 아느냐고 되물으니
그는 내가 어떻게 너를 모를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학교에 몇 없는 동양인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늘 화난 표정이어서 지켜봤다는 말과 함께.
[ 안녕. 네가 바닷가에 온건 처음 봐 그리고 다음에도 봤으면 좋겠어.]
몇 마디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집으로 되돌아가려 할 때 그 애가 한 말은 뇌리에 박혀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또 다음날도
매일을 빠짐없이 바닷가를 찾았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리고 웃었다.
졸업이 다가왔던 해에
그와 나는 프롬 파트너가 되었고
시기의 눈길, 질책 어린 눈길
수많은 눈길이 쏟아졌지만 상관없었다.
그 애가 기뻐했으니까.
더 자라고 나면 별 의미가 없는 프롬이나
자신은 매일을 빠짐없이 기다렸다고.
특별히 멋지지도, 감동적이지도 않던 말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그에게 기대어도 되겠다고.
분위기 탓이었는지 누군가 부모님 몰래 빼돌렸던 술 탓인지
그와 나는 하룻밤을 나누었고
앞으로 함께할 것들 때문에 무척이나 들떠있었다.
그러나 그 기분은 얼마 가지 않아 전화 한 통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 ○○이니? ]
급작스러운 부모님의 전화
평소와 다름없는 공부에 대한 걱정.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
쉴 새 없이 쏟아진 잔소리, 동생들과 나를 비교하는 말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화가 났고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
그의 품에 안겨 울었다.
내 인생은 한 번도 마음대로 한 적이 없었다며
그동안 받아왔던 정신적인 학대와 괴로움을 두서없이 토로했고
오열하는 나를
그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달래다 말했다.
[ 내가 네 부모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어 줄게.
그들이 아무 말도 못 할 만큼 완벽한 사람이 돼서 너를 데리고 나갈 거야. ]
아무런 보장도 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었고
그 애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렸했었다.
각자 다른 대학교로 가야 했고
연락은 몇 달에 한두 번, 얼굴은 방학 때 몇 번 보는 게 다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이십 대 중반이 될 무렵 그는 변호사
나는 연구원이 되어 있었다.
처음 만났던 바닷가에서 청혼을 받았고
잘났던 사촌들과 비교해서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던 그의 조건 때문에
나의 부모님은 결혼을 쉽게 승낙했다.
결혼식장에서 나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의 손을 잡을 때
불행은 끝난 거라고, 앞으로는 목을 누르던 손이 사라지고
숨통이 트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녹지 않고 남아 있던 분노는 암 덩어리처럼 변해
내 정신을 좀먹고 있었다.
조울증...
그는 내 목을 조르던 손을 치워줬고 살아갈 의미를 주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사는 삶은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갔다.
명문대를 나왔고, 다른 이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직업을 가졌다.
함께 하는 남편 또한 아이비리그 출신의 변호사.
내가 사랑하지만, 부모님이 바랐던 모습의 남자.
밤에는 그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 같다가도
아침이면 그에게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괜찮을 거라고 괜찮아질 거라고
그는 나를 끊임없이 위로했다.
나도 변하고 싶었다.
한국 사람이면 대부분 꺼릴 만한 정신과 전문의를 찾았고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았고 약물을 처방받았다.
그러다 그걸 발견했다.
[ LEXAPRO ]
항우울제.
약병에 적혀 있는 남편의 이름
나 때문이었다.
아니 부모님 때문인가?
어디로든 화낼 곳이 있다면 악쓰면서 소리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의 이유조차 알 수 없었으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내 부모는 나에게 많은 기대를 했고
그에 부응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체벌을 내렸다.
동생들에게는 그런 적 없으면서.
나는 늘 회초리에 맞아 퍼렇게 멍이 든 다리를 가리고 다녔고
내 동생들은 그런 나를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무시하다가
경멸했다.
그런 그들은 멀쩡히 잘만 살고 있는데 왜 나만
나만 이렇게 무너져야 하나.
분노와 슬픔은 나를 잠식했고
서재에 있던 내 전공 서적, 논문 자료, 지금까지 공부해 왔던 책들을
모두 집어 던지고 찢어버렸다.
늦은 퇴근으로 지쳤던 그는 엉망이 된 서재에 울고 있던 나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에게 이혼을 통보했다.
[ 이혼하자. ]
그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에 널브러져 있던 책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 이혼해! 이혼하자고!!!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잘못된 거니까 여기서 끝내자고! ]
[ ... ]
[ 대답 좀 해봐 제발. ]
울면서 제발 이혼해 달라 애원하던 나는
분노에 이성을 잃고 손에 들고 있던 약병을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 너도 우울증 있잖아, 나 때문에!!! 계속 옆에 있을 거야? 같이 있다. 나랑 죽으려고? ]
[ ... 차라리 같이 죽자. ]
2.
Thomas Beaudoin
내 인생을 누군가에 비교하자면
캔디의 일라 이자나 할리퀸 로맨스 소설의 악녀일 것이다.
부와 명성, 외모 가진 것은 많으나
결국은 주인공에 밀려나 남자를 빼앗기는 그런 역할.
그리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욕심을 버리지 못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다시 제 것을 되찾으려 발악하다
가진 것을 다 잃는 존재.
누군가는 본래 제 것이 아닌 것을 탐내 자멸한 것이라 했지만
청순하고 가련한 여자 주인공 또한 처음부터 남자 주인공을 가지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약혼자가 다른 여자를 눈에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서였다.
나는 악에 받쳐 있었고 주변에서 쏟아질 비웃음보다 날 두렵게 하는 건
나만을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바라본 것이었다.
불안함과 초조함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던 나를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척이나 걱정했었다.
부모님은 잠시 휴식을 위해 잠시 외국으로 나가 있을 것을 권유했고
나는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유럽이나 북미행 비행기 중
제일 빨리 떠나는 표를 예약하고 몸을 실었다.
그렇게 도착한 도시에서 그를 보았다.
특별할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는 그저 그런 도시.
비행기 표를 예약했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중개업자가 권유한 평범한 아파트를 예약한 첫날.
철제 현관문만큼 검은 머리에 큰 키를 가진 남자와 부딪혔고
우리 둘은 몇 칸 되지 않는 입구 계단에서 굴러야 했다.
[ 오! 미안해요. 당신, 괜찮나요? ]
불량해 보이는 첫 모습과 달리 그는 예의 발랐고 정중했다.
눈앞에 그의 큰 손이 내밀어 졌고 그 위에 포개진 내 손은
제법 여리게 보였다.
[ 괜찮아요. 나도 잘못했으니까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
적당히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만 친절한 말만 건넨 뒤
나는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맸다.
불안감은 나를 몽유병 환자처럼 도시 안을 떠돌게 했다.
그러다 그를 다시 보게 되었다.
특별할 것 없는 그곳에 그가 앉아 있었다.
[ 들. 어·와. 요 ]
그의 입 모양은 카페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무시하고 가고 싶었지만 추운 날씨 때문인지
나를 바라보던 그 눈 때문인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 그에게 다가갔다.
카페 안은 생각보다 더 낡고 작았지만 따뜻했다.
그와 나는 마주 앉았지만, 막상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고 둘 사이를 중계시켜 줄 만한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따뜻했던 커피가 미지근해 질 때쯤 겨우 말문이 트였고
나는 간신히 내 이름이 뭔지 어디에 지내는지 말하게 되었다.
[ 당신이 어디 사는지 알아요. 3층 1호 맞죠? 바로 아랫집이 내 집이에요. ]
웃음으로 눈가에 주름이 진 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 내 이름은 Thomas Beaudoin 이예요.]
[ 토마스.. 부르? ]
[ Beaudoin. 부르기 힘들면 그냥 토마스라고 불러 줘요. ]
토마스라고 불러 달라는 그 남자는 생각보다 다정했고 유쾌했다.
짧은 기간 동안 머문다고 말했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웃이라며 나에게 도시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고
서로가 무엇을 배우고 자랐는지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값진 소득은 그의 원래 직업이 뭔지 알 수가 있던 것이었다.
미술상
전 세계 예술가들의 작품을 사고팔았다고 말하는 그의 직업을 듣고
이용하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내가
순간 너무 더럽게 느껴져 웃고 말았다.
[ 왜 웃어요? ]
[ 그냥….]
[ 그냥? ]
[ 그냥 당신이랑 직업이 어울리지 않아서요. 그 덩치에, 그 키에
그림 거래 하다 수틀리면 멱살 잡고 협박 했던 거 아닌가요? ]
별거 아닌 내 말에 그 또한 웃고 말았다.
그러다 이내 내 눈을 바라보며 조용조용하고 나른하게 말했다.
[ 이렇게 보여도…. 나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게 좋아요.]
[ ... ]
[ 당신 얼굴처럼. ]
알고 있었다.
그가 나를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지만,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더욱 예민했다.
나는 그를 뿌리치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리고 온몸을 덮치는 두려움에 이틀을 꼬박 앓아야 했다.
내가 누워 있는 사이 벨은 몇 번이고 울렸고
문 바깥에서 그가 나를 애타게 불렀지만
몸이 너무 아파 문을 열어 줄 수가 없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움직일 수 있던 날에
나는 내가 가지고 왔던 모든 짐을 싸고
그의 우편함에 편지 한 장 던져 넣은 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 Dear, Thomas ...
문을 열어 주지 못해 미안해요. 일부로 그런 것은 아닌데 몸이 너무 아팠어요.
시간이 더 있다면 당신에게 직접 사과 하고 싶었지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해요.
이것도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혹시 몰라 한국행 비행기 표를 봉투에 같이 넣었어요.
팔아도 좋고 누군가에게 양도해도 좋아요.
당신 마음이 전과 같다면 와 줄 수 있나요? 얼굴을 보고 싶어요. ]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그가 나를 보러 왔을 때는 겨울로 넘어가던 때였다.
길거리에 심어져 있던 가로수 잎은 떨어져 나가 앙상한 가지를 드러냈고
그의 얼굴도 그만큼 초췌해 보였다.
말없이 나를 안아 주는 그의 품 안에서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흘려보내야 했다.
[ ... 미안해요. 아빠가 쓰러지셨는데, 더는 다른 곳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
그러면서 나는 주절주절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내 약혼자와 다른 여자가 서로를 마음에 품었고
하나밖에 없던 딸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던 부모님은 그 둘을 떼어놓으려 했다고.
그런데 되려 약혼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여자를 지키려 들었으며
아버지는 이복 남동생과 딸의 약혼자가 놓은 덫에 걸려
숨통이 조여졌다고.
[ 걱정 마요. 그 남자가 그랬듯이 나 또한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걸 테니까. ]
그는 나와 결혼했고, 다시 미술상이 되었다.
비자금 조성과 더러운 뒷거래에 경멸이 들어 직업을 바꿨다는 그가
나를 위해 더러운 물에 손을 담갔다.
그가 매입하고 판매한 작품들은 비자금이 되어 돌아왔고
그 검은돈은 나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주식을 사들이는 숙부를 저지할 수 있었으며,
나의 전 약혼자가 시도하려는 계열사 합병을 막을 수 있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시 웃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다 잘 풀릴 줄 알았다.
[ J그룹 예술품 거래로 인한 비자금 조성! ]
국내에서 발행하는 한 일간지는 우리 집안이 어떻게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그것을 주도한 이가 누구인지 추측성 기사가 적혀 있었고 비난의 화살은 그를 향하기 시작했다.
[ 이게 뭐야. ]
[ 이혼 서류. ]
나는 그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 신문에 실린 건 아직까지다 추측성 기사고 누가 주도했는지 증거도 없어요. ]
[ ...그래서. ]
[ 내가 다 안고 갈게요. 돈만 잡아 주면 언론을 조작하는 것도, 증거를 조작하는 것도
숨 쉬는 것보다 쉬운 게 한국이야. ]
[ ... ]
[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전공했으니까 눈속임도 쉬울 거예요.
당신은 그저….
본인 몰래 뒷거래를 한 부정한 아내 때문에 화가 났고 의견차이로 다투다 이혼한 사람이 되면 되는 거예요. ]
[ 지금 나보고 널 버리라고! 내가 한 일이잖아!! ]
그는 소리를 지르다 서류를 찢어 버렸다.
[ 이혼은 없어. ]
3.
Clement Chabernaud
나는 프랑스라는 나라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왜 프랑스로 왔느냐고 하면
성적에 맞추다 보니 프랑스어 학과에 들어갔고
학과에 맞춰 취직하다 보니 화장품 회사의 프랑스 지부였다는 게 이유였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프랑스에 대한 낭만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던 나는
울퉁불퉁해 힐을 신고 걷기 힘든 거리도,
이해하기 힘든 프랑스 사람들의 감성도,
거리에 들끓는 관광객과 호객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모든 것이 신경을 긁어대던 어느 비 오던 날
갑작스레 회사 임원의 임종소식이 알려졌고
나는 그의 장례식에 참여했다.
거기서 그를 보았다.
친구들과 함께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매력적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말끔하게 빼입은 검은 양복.
단정한 얼굴에 잘 손질된 머리는
그가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줬지만,
나란히 놓여 있는 체스 말 중 다다 하나만 방향을 달리한 채 있는 것처럼
한구석이 뒤틀어진 것 같이 보였다.
성당 안에 들어가는 그의 모습에
나는 내가 프랑스를 싫어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났다며
속으로 불만을 공시랑 걸렸다.
엄숙한 장송곡과 함께 지루하기 그지없는 신부님의 미사
가족과 지인들의 눈물 어린 작별사를 듣고서야 장례식이 끝났고
어느새 해는 저물어 사람들이 입은 옷만큼 검은 어둠에 내려앉고 있었다.
나와 회사의 몇몇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 자리에 그도 있었다.
그 매끈한 얼굴에는 웃음이 걸쳐져 있었지만
나는 장례식에서 느꼈던 그 불편한 느낌 때문에
그와 좀 떨어진 자리에 앉아 칵테일만 홀짝일 뿐이었다.
어느새 취기는 내 혈관에 퍼졌고 밤이 늦어진 탓에 나는 칵테일 바가 있던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어느 순간인가? 내 뒤에 있던 그는 나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의 미동도 없는 그 표정이 차갑다고 느낀 순간
나의 필름은 끊기고 말았다.
술 취한 사람이 다음 날에 일어나면 그렇듯
목은 타는 듯이 말랐고 두통으로 머리는 쪼개지는 것 같았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던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난간 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내 몸 상태가 어떤지, 밤새 무슨 일이었었는지,
그가 지금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적어도 나는 성인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시트로 온몸을 가린 채
침대에서 기어 나와 여기저기 널려 있는 옷을 꿰입기 시작했다.
신을 때도 올이 나갈까 애지중지했던 65유로가 넘던 스타킹과
레이스 팬티는 찢어져 버렸고 검은 원피스는 봉재선이 뜯어져 나갔지만
겉에 코트를 입으면 티도 안 날 테니 상관없었다.
하룻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 마신 것 치곤
대가는 값싸게 먹힌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게 다시는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 생각과 다르게
그는 며칠 뒤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해서는 안 되는 실수를 저질렀지.
그렇지만 마음이 없었다는 게 아니야. 성당에 당신이 들어오는 그 순간부터 계속해서 말 걸고 싶었어. ]
내가 했던 생각을 그가 그대로 했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렸고
사귀다가 프랑스의 여느 짝들 처람 동거를 시작해
마침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내가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이유였다.
그러다 결국에 나는 내 불안감이 쓸데없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행복해 보이던 신혼생활 때,
내가 키우던 강아지의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소리가 나는 서재의 문을 열자 나는
강아지의 목을 발로 밟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었다.
[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난 그를 밀치고 강아지를 품에 안고 미친 듯이 달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정원을 가로질러 나를 쫓아왔다.
우악스럽게 잡아 당겨진 손이 무척이나 아팠지만
두려움과 경멸감에 그조차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남편은 나를 침실에 두고 가만히 있으란 말과 함께
강아지 사체를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나를 옥죄여 오기 시작했고
나는 두려움에 훌쩍이고 있었다.
한참 만에 돌아온 그는
자신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하나하나 말해 주기 시작했다.
그는 선천적인 사이코패스며
어린 시절부터 사회 적응 훈련과 공격성을 줄이는 훈련을 해 왔지만
중간에 담당 박사가 여러 번 바뀌는 바람에
'완벽히 훈련된 상태가 아니라고'
나를 다정스레 안아 주는 그의 품 안에서 나는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에게 약속했다.
내가 원한다면 다시 훈련을 시작할 것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공격에 대한 욕구를 참을 것이며
내가 원하는 그 순간 놔 주겠다고.
것으로 보기에 그 후는 여느 사람들과 같이 흘러들어 갔다.
내가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출근 준비를 끝마치고 신문을 보고 있었고
각자 직장에서 일하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장을 보고 들어가거나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안감으로 생긴 나의 불면증은 나날이 깊어져
하루에 잠을 자는 시간이 2시간을 넘지 못했다.
그마저도 깊은 수면이 아니라 내 몸은 갈수록 이상 신호를 보냈다.
더는 떨어질 곳이 없던 식욕은 거식증이 되어 버려 내 몸은 말라 비틀어 지기 시작했다.
[ 한 입만 더 먹자. ]
그는 끊임없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권했지만
나는 묽은수프조차 삼킬 수가 없었다.
불안감은 내 배 속에 있던 생명까지 앗아갔고
이제 신경은 있는 데로 가늘어져
마침내 입 바깥으로 내뱉지 않겠노라 생각했던 말을 내뱉었다.
[ 우리 이혼하자. ]
내 말에 그는 아주 잠시긴 했지만 보통 사람처럼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 약속했잖아. 내가 보내 달라고 하면 보내 주기로. ]
[ 알아, 하지만 지금은 안되.]
[ 왜! 왜 안 되는 건데!!! 결혼 전에 네가 먼저 제안한 거고 이미 변호사까지 불러서 서류까지 작성했잖아. ]
[ ... 제발, 그냥 보내줘. ]
[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게 해 줄게, 내 옆에 없어도 돼. 프랑스를 떠나 다른 곳에 살아도 좋아 ]
[ ... ]
[ 그래도 이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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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수정했어(소근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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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수정했어
닥11111111
11??
222....ㅠㅠㅠ....
1111ㅠㅠㅠㅠㅠㅠㅠ
222존잼또써줘!!!!♥
1....3..?
셋다 고르면 잡혀가나요ㅠㅠㅠㅠ???
111
다좋다ㅜㅜㅠㅜㅜ
또써줭
와씨발개좋아...
쩐다ㅠㅠ111!!
와글잘쓴다ㅠㅠㅠㅠㅠ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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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좋다ㅠ ㅠㅜㅠㅠㅠ고를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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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너무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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