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쓴 '게으른 농부의 하루'를 보고 <작은책>에서 원고 청탁을 했다.
글을 좀 더 써서 2월호에 싣자고.
줄이는 건 쉬워도 늘이는 건 힘든데... 처음 글 쓸 때 감흥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지.
다시 그 때 그 느낌으로 돌아가서 한 번 써서 보내고, 좀 더 써달라고 해서 또 한 번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고.
그렇게 해서 나온 글이 아래 '원본' 한글 파일이고, <작은책>에서 편집하여 실은 글이 그 아래 본문이다.
원본에 사진 6장이 있는데 그 가운데 3장이 실렸다.(원본 파일에 표시해뒀음)
또 원본에 빨간 글씨는 <작은책>에서 편집하여 빠진 글이다.
원본 :
귀농 첫 해, 어설픈 겨우살이_20110104.hwp
귀농 첫해, 어설픈 겨우살이
우성조/ 울진에 사는 자유인
지난 12월 중순에 자활센터 일을 그만뒀다. 어찌 보면 귀농 뒤 첫 겨울을 농한기답게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그만둔 셈인데, 출퇴근할 곳만 없어졌다 뿐이지 겨울이라고 마냥 노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밀린 일과 닥친 일 하느라 더 바쁘게 지낼 때도 많다.
가을에 끝냈어야 할 갈무리를 이제야 하고 있다. 조, 율무, 수수, 들깨 같은 곡식을 거둬들이기만 했지 갈무리를 못한 채 창고 어딘가에 넣어만 뒀다. 곡식을 갈무리하려면 털고, 흔들고, 지워야 한다. 터는 것은 탈곡이고, 흔드는 것은 체로 치는 것이요, 지우는 것은 키질로 까부르거나 바람에 검불 날리는 것이다.
조부터 손을 보기로 했다. 잘 말린 이삭을 유리병으로 톡톡 두드려서 털어 낸다. 동네 어른들은 맥주병으로 하면 좋다는데, 나는 처음이라 소주병도 써 봤다. 앞선 사람들이 겪어 본 대로 맥주병이 더 낫다. 겨우 털고 흔들기는 했는데 언제 지울 것이며, 다른 곡식은 또 언제 끝내려나. 거두는 기쁨만 맛봤지 먹는 기쁨은 꿈도 못 꾸고 있다.
늦가을에 널어 둔 무청이 바싹 말라 시래기가 다 됐다. 거둬들일 때가 지났건만 메마른 공기와 세찬 바람에 그저 마음만 졸이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서걱거리며 줄기가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만 봐도 가슴 아픈데 지나가는 동네 어른들이 보고 “이 집은 와 아직도 시래기를 안 걷었노?” 하고 한마디씩 할 때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비나 눈이 와서 공기가 눅눅해져야 부스러지지 않게 걷을 수 있다고 하니 우리 집 시래기 운명은 하늘에 달렸다. 농사든 시래기 말리기든 때를 놓치면 이웃 눈치 보랴 하늘 눈치 보랴 이래저래 마음만 쫓긴다는 걸 몸으로 깨우치고 있다.(다행히 새해 첫날 함박눈이 내려서 얼른 거둬들였다.)
겨울에 가장 중요한 일, 나무하기. 두세 시간 뒷동산을 뒤지면 손수레로 한 차는 해 온다. 요즘 거의 날마다 나무 끌어내리랴 손수레로 나르랴 톱으로 자르고 도끼로 쪼개랴 추운 겨울을 후끈하게 지내고 있다.
간벌 해 놓은 나무는 많은데 주워 가는 사람이 없으니 여기저기 나무가 널려 있다. 이럴 땐 ‘마을에 젊은 사람이 몇 안 되는 게 오히려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거기다 아궁이에 쓸 거니까 크게 힘들일 것 없이 가녀린 내 팔뚝이나 아내 종아리 굵기만 한 나무만 해 와도 너끈하다.
한편, 도끼로 장작을 패다 보면 처음에는 ‘펑’, ‘퍽’ 하는 요란한 소리만 내다가 어느 때는 ‘쫙’ 하는 소리를 내며 나무가 쪼개지는데, 바로 그 소리와 느낌에 빠져서 일부러 허벅지 굵기만 한 것도 주워 온다. 운전 처음 해 본 사람이 재미가 나서 야간 운전, 장거리 운전 가리지 않고 하려는 것과 비슷하달까? 하여간 미련하게 일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온몸 운동도 되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나르고 쪼개고 있다.
구들방에 딸린 가마솥 아궁이 말고 마당에 솥 걸어 둔 아궁이 두 곳이 더 있다. 개죽 끓이는 거무튀튀한 솥과, 사람 죽 끓이는 반질반질 새하얀 솥. 사람 죽 끓이는 솥으로는 보쌈고기 삶기, 나물 삶기, 수세미 삶기, 도토리묵 쑤기, 곰국 끓이기, 콩물 끓여 두부 만들기 따위를 하고 있다. 돌과 진흙을 주워 와서 제대로 된 아궁이를 만들고 싶지만, 마음만 저 불길처럼 타오를 뿐 아직은 어설플 따름이다.
보일러에 쓰는 등유는 지난해 초 1리터에 1,000원 하던 것이 어느새 1,200원 안팎까지 올랐고 LPG는 지난해 슬금슬금 오르다가 신년 인사로 껑충 올랐다. 연료비가 오르기만 하니 어떻게든 돈 안 드는 나무를 많이 쓰려고 하는데, 나무 탈 때 나오는 그을음과 연기도 심각한 오염 물질이라고 하는 글을 읽고 나선 나무 때는 것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그래도 돈 아끼며 살아야겠으니 땅 속 깊은 곳에서 캐낸, 그것도 수입해다 쓰는 석유나 LPG보다는 뒷산 땅 위에 있는 나무를 때는 것이 오염이 덜하지 않겠는가 하고, 아무도 따지지 않는데 괜히 핑계도 대 본다. 그리고 사람 적은 요즈음 시골에서 나무 때는 건 문제될 것 없고 오히려 사람들이 모두 나무를 때면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므로 인구 많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엉뚱한 데로 화살을 돌려 보기도 한다.
오늘은 후포 장날. 찬거리로 무엇을 사나. 겨울에 철없이 자라는 풀은 없을 테고, 수용소에 갇혀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고 불쌍하게 자란 집짐승은 안 먹을수록 좋으니, 우리 먹을 것은 바다에서 나는 ‘자연산’밖에 없다. 그리하여 반찬으로 먹을 명태, 고등어, 대구 같은 생선과 안주로 먹을 회를 사 왔다. 은빛 나는 건 술집에서 나름 고급 안주로 팔리는 학꽁치(사요리)요, 그 옆 점박이는 서쪽 바다에만 사는 줄 알았던 전어, 오른쪽은 이 동네에 흔한 물가자미. 오징어가 빠져 서운하지만 2만 원이면 요렇게 푸짐하게 한 접시 먹을 수 있다.
쌀과 김장 김치, 장작이 넉넉해서 등 따시고 배부른 가운데, 가끔씩 먹는 회 한 접시는 어린이들 영양 간식이요 엄마 아빠 별미 안주로다. 철 지난 고추나 오이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집에 있는 싹 난 양파랑 초고추장만으로 무쳐서 소주 한잔 곁들이면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황홀경이구나. 마을에 술친구가 없다 하나 이렇게 먹을 것 앞에서 흥이 날 땐 가끔은 홀로 취하도록 마시고 ‘깨끗한 아침’을 맞이하지 않아도 좋다.
‘바닷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먹는 것만 따져 보면 울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귀농 귀촌할 곳 찾을 때 풍수지리 제쳐 두고 먹을거리 궁합이 잘 맞는 고장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 아래 사진은 원고료로 받은 신간 서적과 내 글이 실린 작은책 2월호 두 권.
(어찌보면 새로나온 책 받는 재미로 <작은책>에 글을 쓰는 걸 수도 있다. ㅋㅋ)
규정(?>대로라면 신간 1권이나 1만원쯤 되는 변산공동체 농산물을 받아야하는데,
글 청탁한 사람한테 받고 싶은 책을 알려주고 졸랐더니 고맙게도 세 권이나 보내줬다.
한편으론 다음에 청탁할 때 거절말라는 미끼같기도 하지만...

첫댓글 <작은책> 2월호에 제 글이 실렸습니다.1월 귀농지 투어하면서 만날 날을 기다렸는데, 못 하게 됐다니 아쉽네요.
그러게요... 꼭 찾아뵙고 싶었는데... 농장식구들도 모두 바쁜 듯...ㅠ.ㅠ
역시 건강하게 잘사는 성조네! 올 해도 가족 모두 무강하시길!
새로운 곳에 가셨으니 형님도 소식 좀 전해주소. ^^
앗앗 브룬겔선장의 모험 재미날거 같은데요.,ㅋㅋ 저두 보고 싶네요
안그대로 어제 그 책을 펴 들었는데 재미있네요. 동네도서관에서 빌려보세요. 없으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서라도. 군포에 살 땐 그렇게 해서 보고 싶은 책을 거의 빌려봤지요. ^^
여전히 재미있게 사는구먼.^^ 언제 그 회에 같이 술한잔 하고 잡다.
짝지 데리고 둘만 놀러오게. ^^
한편으로 그 젊음이 부럽네요.ㅎㅎ 여전히 귀농은 저에게 여유와 낭만인데 몸과 마음이 점점 늙어가는 저와 남편을 보면 슬그머니 겁이 나요... 역시 자유인다운 철학과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우리 부부도 저질 체력. 여유와 낭만은 자기 몸에 맞춰 찾으면 될 듯.. ^^
글 속에 형님의 모습이 선선하네요. 진짜 농사꾼이 되셨어요 ㅎ 부럽사옵니다 . 찬바람 그치기 전에 겨울 바다 한번 놀러가지요~
아이디 도용? 공용? 동원이가 나더러 형님이라카는 줄 알고 한참 어리둥절...
ㅋㅋ 우쨰 이런일이 ㅋ 난 난줄 알거고 저.. 들꽃입니다 .. 어째 이런일이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