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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를 떠나보내며
아우여, 아우여!
처자식 피로 맺힌 정 어이 하라고
형한테 못 다한 정 어이하려고
무에 이리 황황히 간단 말이냐
이제 오순도순 한 세상 살아 보려나 했더니
이 무슨 청천벽력이란 말인가
아우여!
너와 나, 우리들 아픔은 우리만이 아는 것
기억 하는가 지난 세월,
대구로 피난 와 밤새워
삯바느질 하시던 어머님의 애처로운 <실루엣>을,
"서커스"단 가설극장, 구멍가게 눈깔사탕이 행복의 전부였던 시절,
서문시장, "양키"시장 지게꾼, 막노동꾼들 아귀다툼,
고아원 아이들 악다구니, 구걸깡통. . .중학 때까지,
우린 그렇게 거칠었고 서러운 소년시절을 보냈지!
그리곤 아버님 늘 감옥에만 계셔 어머님 통한의 세월,
천애고아처럼 떠돌아야 했던 막막한 대학시절,
동가식서가숙에 이골이 나고
마가린 비빈 밥 한 그릇, 간장 한 종지,
연탄 한 장이 우리에겐 천금이었지.
버스표 한 장 없어 온 장안 헤매 걸었던 그 시절,
그래도 청운의 꿈 잃지 않아
두 주먹 불끈 쥐고 우리는 비굴하지 않았지!
아우여!
너와 나, 우리들 슬픔은 우리만이 아는 것
기억 하는가 우리만의 고뇌를,
망향의 슬픔 달래던 노래,
가난한 사랑노래를
含春園 연못가에 나란히 앉아
거기 슬픔 퍼다 버리던 해당화노래를,
아직도 너와 나의 슬픔은 우두커니 남아있는데
이젠 너의 슬픔도 나만의 슬픔으로 간직해야 할
영원한 형제의 肖像이여!
동트는 새벽 샛별처럼 떠나가는 아우여!
이제 아우 앞세우고 나,
어이 살거나 무슨 재미로 살거나
애달픈 사연 누구와 풀어볼거나
누구와 집안 대소사 세상사 논하란 말인가
바둑은 누구와 두고 산은 누구와 타란 말인가!봄가을 오고 감이
生者必滅이 인간의 뜻은 아니라 하나
어이 이리도 황망히 가시는가!
낙엽 지는 쓸쓸한 계절에
나의 눈물 자욱 따라 스러져가는 아우여
오, 天地不仁이여!
** 2009년11월4일, 樹木葬地에서, 형 범초 짓고 읊다.
함춘원은 서울의대 본관 뒤쪽 교정에 있었던 자그마한 정원.
* * *
애통하게도!
그동안 폐암을 앓아오던 동생 김안중(철학전공, 서울사대 교육학과 교수, 서울대 전 학생처장,
서울대교수협의회회장, 서울대교수산악회회장, 서울대 바둑부 산악부 지도교수)교수가
미처 정년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지난 11월 1일 별세,
장남의 귀국을 기다려 11월4일 발인, 워낙 산타기를 좋아하던 동생을
화장하여 서울근교 산에서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장무 총장도 전 문교부장관들을 지낸 김신일, 문용린 교수와 함께
문상 오셔서(서울의대 장례식장) 범초와 양주 한 병을 통음하며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장시간 위로해 주셨습니다.
****
아래는
수목장지에서 낭송한 범초의 <조시>를 수많은 제자들이 "메일"로 꼭 보내달라기에 . . .
제자 고영준(철학박사, 서울대 BK21기획단 연구원)군이 보내온 답신"메일"!
김길중 선생님께,
보내 주신 메일을 잘 받아보았으며,
이를 저희 <교육철학 내부 코뮤니티 사이트>에 올려 놓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어찌 보내 주신 조시의 구구절절함과 선생님 가문의 파란만장한 삶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만, 보내 주신 조시와 약력에서 김안중 선생님께서 평소에
보여 주셨던 <순수하고 올곧은 자유민>의 모습을 함께 발견하게 됩니다.
저를 포함한 제자 일동도 그와 같은 선생님의 모습, 그 꾸밈이 없었던 미소를 항상
되새기고 당신의 자상했던 가르침을 이어받아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평온하시고 옥체를 보존하시기를 바라오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고영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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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제자 김명숙 님의
<조사>
선생님 . . . 선생님. . .
여기 계시지요? 여기 계실거야
다 들리는 걸요, 선생님 목소리
다 보이는 걸요, 선생님 모습
한 여름 태양도 초겨울 칼바람도
진선미의 연인,
소박한 그 연인을 어쩌지는 못하리라. . . .
회색의 중절모,
달랑 워킹스톡 하나,
휘파람 불으시면서
아,
지금쯤 우리 선생님은 아름다운 들꽃과 즐거운 진리,
못생긴 나무에 반가이 인사 나누면서
이 산 저 산 날아다니실지 몰라.
아,
우리 선생님은 삐걱이는 목조 계단
학림의 낡은 창가에서
결론도 없이 끝나는 이야기를 하시느라
새벽이 온 줄도 모르고 앉아계실지 몰라.
아니, 아니야,
지금쯤 우리 선생님은
‘11월이면 내가 학교에 나갈 수도 있을 거 같아’
엊그제 그러셨으니
말보로 골드 커피향 지독한 11동 연구실에서
못다 한 플라톤 얘기 속삭이실지 몰라. . . .
이젠 숨지 말아요,
다 들리는 걸요
위풍당당하던 그 목소리,
다 보이는 걸요.
밀밭에 피인 한 떨기 야생화 아름답던 그 모습.
이젠 오셔야 해요.
수요일 저녁의 오우크쇼트 세미나
들꽃 융단 펼쳐진 곰배령에서
어스름 달빛 눈부시던 양평에서
여름 겨울이면 열리는 야외세미나
맛있는 저녁식사는 저희가 준비할 테니
찌그러진 커피주전자는 가지고 오셔야 해요.
백년이 흐르고 천년이 흘러도 꼭 오셔야 해요.
사랑하는 선생님,
언젠가 읽어주시던 몽테뉴의 글 가슴에 새기면서
선생님 남기신 발자욱 따라
저희도 이제 그 길을 묵묵히 가려합니다.
“우리는 활동하기 위해서 태어난다.
나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활동하면서
인생의 사업들을 확장하고 계속하기를 바란다.
그러다 홀연 내가 양배추를 심는 동안
죽음이 찾아오되,
죽음에 거리낄 것 없기를 바라며,
정원이 완성되지 않은 것에는
더더욱 무심하기를 바란다”
(Montaigne: Essais, Ⅰ.ⅩⅩ. 'Que philosopher c'est apprendre mourir.')
2009년 11월 4일
사랑하는 선생님께 제자들을 대표하여
김명숙 올림
********* 아래는 서울사대 학장님의 조사 (입수가 늦어 이제사 <추신>으로 올립니다. 11월10일. 범초)
김안중교수님 추도식
조사
삼가 애석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김안중 선생님의 서거를 애도하며 영전에 말씀 올리고자 합니다.
선생님과 20여년의 연을 맺으면서 제 자신은 학문의 향내를 맡고,
때로는 삶의 깊이를 맛보았습니다. 사범대학에 재직하시는 동안, 삶의 귀감이시자,
때로는 시대와 교육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주셨던,
사범대학과 교사교육에 더 할 수 없는 애정의 선배 분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범대학의 일로 늘 상의 드리는 상담역이시자 후견인이셨습니다.
저로서는, 의당 있어야 할 기댈 언덕이 갑자기 화폭에서 사라지는 듯하여
감정의 배회와 충격을 숨기기 어렵습니다.
선생님으로 인하여 바둑을 배우고 책을 넘겨받아 탐독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얼마 전 통화에서도 수업을 걱정하시고 학교를 걱정하시던 목소리가 제 귀에 아직도 생생한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저희의 곁을 떠나셔서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직도 제게는 며칠 있다 술자리에서 “영달아! 니는 말이다!”
하실 것만 같아 한편으론 가슴이 미어지는 심정입니다.
선생님께서는 결코 풍족하지 않은 사범대학의 삶 속에서도
풍요롭지 않음을 편안하게 생각하셨으며,
여건의 어려움 속에서도 교육에 대한 올곧은
소신과 진리와 정의에 대한 진정한 항심으로 학자의 역할을 다하셨습니다.
결코 화려한 자랑이나 포장 없이,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 없이,
묵묵히 성심과 노력으로 임하신 선생님의 자세는 저희 후배들의 진정한 귀감이셨습니다.
한편으로, 밝은 지혜로 이치를 궁구하셨으며, 깨끗하심으로 마음을 기르셨으며,
용기로 해야 할 일을 과감히 행하셨고, 태생적 선함으로 모두를 대하셨으며,
예로서 자신을 절제하시고 즐거움과 용서로 세상과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적 이익에 앞서 의로움을 생각하셨으며,
교육과 사범대학의 위기에서는 자신을 불사르려 하셨습니다.
더불어 평소의 언행에서는 옛 약속을 잊지 않는 분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68년 3월 1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시어,
72년 8월 30일 학사학위를, 75년 2월 26일에는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 후, 미국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교육철학으로 박사학위를 하셨으며,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1983년 3월 1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부임하시어,
떠나시는 날까지 26년 8개월을 재직하셨습니다.
그 동안 선생님께서는 저희 대학의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거치셨으며,
사범대학 교무부학장, 서울대학교 학생처장, 교수산악회장, 교수협의회장을 역임하시면서
후학의 양성과 교육철학 연구 및 대학의 발전에도 현저한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Platon, Kant, Oakeshott의 연구를 비롯하여,
한국교육을 재조명하는 주옥같은 연구물들을 남기셨을 뿐만 아니라, 재직교수들 간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셨으며, 대학 학사제도의 발전 및 교수 윤리규범의 정립을 주도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교육, 연구, 봉사에 이르는 선생님의 공적과 흔적이 너무도 크기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역사와 함께 저희의 가슴에 영원히 남으실 것입니다.
그 동안 참으로 애 많이 쓰셨습니다. 선생님의 노고에, 그동안의 여정에,
마음으로 우러나는 깊은 존경과 참담한 이별의 애통함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제 선생님은 육신으로는 먼 길을 떠나시고 저희는 이 세상에 남겨졌습니다.
아니 오히려, 선생님께서 해오시던 일과 하시고자 했던 이상을 저희에게 재촉하시면서
선생님께서는 영원히 저희의 가슴에 살아계실 것입니다.
중첩적 이행적 과도기의 한국 사회에서 보다 나은 우리의 교육과 다음 세대를 위하여,
인류의 보편의 새로운 논리와 사고의 창조를 위하여,
더욱 투철한 사범의 양성과 학문적 성장을 위하여,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새로운 역할과 좌표를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못다 이룬 많은 일들을 후손들과 후학들에게 맡기시고 부디 편히 쉬십시오.
선생님의 삶에 풍요로움과 안식을 주셨던 사모님과 유가족 여러분께
깊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
신의 가호가 같이 하길 염원하오며, 삼가 두 손 모아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09년11월4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장
조영달 올림.
** 너무나 심신이 피로하여 한동안 <범초칼럼>의 필을 놓아야겠습니다.
이종원 대장 이하, <모놀>인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범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범초님 힘내세요*^^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절절이 범초님의 애닲음이 묻어납니다 ~ 힘내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범초님 마음 추스리시고 힘내세요!!
범초님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올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저도 아우를 먼저 보낸사람으로서 더 가슴이 아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심이 크시겠어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힘내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떤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영원한 안식 누리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십시요.
감사 고인의 명복을 빌며 님의 마음이 평안을 찾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