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불에서 붉은 불꽃이 일렁거린다.
'치지직' 불판을 뒤집을 때마다 자욱한 연기와 함께 불꽃은,이글이글 모든 것을 익혀버릴 태세다.
그 열기에 불판 위의 곱창이 익고, 에둘러 앉은 사람들의 얼굴이 익고,
시끌벅쩍 소란 속 은근한 사랑과 우정이 익어간다.
10월의 끝물.
으슬으슬 은근히 추운 늦가을 저녁.
몇몇 남정네들은 문현동 돼지곱창골목으로 향한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나,가슴이 시리고 시린 날이면,
따뜻한 온기를 찾아 이 골목으로 하나 둘 스며드는 것이다.
그리곤 연탄불 앞에 앉아 눅눅하고 차가운 가슴들을 데우고,
소주 한 잔과 돼지곱창으로 굴곡진 삶과 애환을 따스하게 녹여내는 것이다.
치익,치지직 곱창이 익으며 양념이 매캐하게 탈 때쯤이면 어느샌가 서민들의 절망도 타고 타서 훌훌 날아간다.
이 시간만큼은 홀가분하고 즐거울 뿐이다.
"한 잔 묵자. 한 잔 묵고 차라리 잊어뿌자!"
곳곳에서 허풍 섞인 푸념의 건배사가 도도히 터져 나오고,모두들 손에 든 소주잔을 눈물인양 입에 털어 넣는다.
"할매요,할매는 알지요? 할매는 내 마음 알지요?"
뜻도 모를 한탄에 주인 할머니는
"그래 안다. 내 모리몬 누가 알끼고? 소주 한 잔 더 무라."며 다독여 주는 곳.
주인과 객이 다를 바 없이 어울리는 전통의 서민 공간. 주막과 목로의 풍경이 존재 하는 곳….
문현동 돼지곱창골목.
이곳은 우리 서민 삶터의 원형질이자 인생살이의 신산(辛酸)함과 절망을 토해내는 배출구였다.
70~80년대의 가장들이 하루의 고된 일과를 내려놓던 곳이었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값싸게 섭취할 수 있었던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일제 시절 때는 이 골목 근처에 도축장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이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팔던 것이 이 골목의 시초였다.
재개발되기 전 문현교차로 부근에는 많은 가구의 서민들이 마을을 이루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
한달에 한 번 월급날만이라도 푸짐하게 돼지곱창과 소주 한 잔을 그리던 그 시절의 가장들….
그들은 이제 이 곳에 없다.
먹거리가 다양해지고,패스트푸드가 각광을 받으면서 서서히 잊혀가던 이 골목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몇 년 전 크게 성공한 영화 '친구'의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급속도로 호평받고 있는 것이다.
4년전부터는 이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문현곱창거리축제'도 개최함으로써 바야흐로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현재 15곳 정도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문현할매곱창집'과 '칠성집'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문현할매곱창집'에 앉는다.
소창,대창,애기보,간,암뽕 등….
다양한 돼지 부산물을 불판에 가득 올려준다.
곱창은 불을 받을수록 맛있어지므로 손님들에게 내기 전에 일차로 애벌구이를 하고 먹는 사람들이
이차로 구어서,다시 양념을 발라 삼차로 구워야 쫀득쫀득한 맛이 살아난다.
특히 이곳은 대창의 맛이 월등해 돼지곱창의 원래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
여성 고객들도 많아 거의 절반이 깻잎에 곱창을 싸서 맛있게들 먹는 풍경이 아름답다.
때문에 이곳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즐겁다.
필자도 즐겁다.
근래 곱창 가격이 1인분에 6천원으로 오르면서 서민들이 만만하게 먹기는 어려워졌지만,
가끔씩 들러 옛 추억과 그 날의 아련한 향수를 더듬으며 먹을 수 있는 별미로는 그저 그만이겠다.
그만큼 이 곳은 오래 전부터 인간살이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부산의 우악스런 겨울바람이 가슴을 툭 치는 날,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곱창골목으로 가 보자.
부산 사람이 즐겨 찾는 '의리'로 "친구야,곱창 무로 가자~"
고래고래 외치면서….
최원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