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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를 지키실 것을 약속하심(29-34)
사람들에게 의해 고난을 당한 사람들은 비록 상처는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회복의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입니다. 교만은 자신의 열심히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려고 할 때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29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29-34)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부르짖음에 사랑과 긍휼로 반응하시고, 악인들의 교만에 대해서는 심판으로 응징하실 것입니다. 이 확신을 품고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구하시면,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⑴ 곡식을 풍성하게 허락하심(29-31)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은 유다의 초목들의 회복을 징조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앗수르에 의해 파괴된 유다의 초목과 과실들이 3년에 걸쳐서 회복될 것을 말씀하시는데, 올해와 내년은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그냥 자란 곡물들을 먹을 것이고, 3년째가 돼서야 비로소 농사지은 것을 먹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30절에서는 농사 이미지를 통해 유다의 남은 자들도 회복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남은 자들은 앗수르의 침략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로 이 들은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시온으로 도망간 사람들도 다시 유다로 돌아올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보증으로 하나님께선 자신의 이름을 거신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직접 이 모든 일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의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⑵ 앗수르가 못 쳐들어오도록 약속(32-34)
세 번째 약속은 앗수르 왕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32절에서 이 성에 오지 못하고, 화살도 쏘지 못하고, 방패도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고, 토성을 쌓지도 못한다고 하는데, 여기 언급된 것은 고대 사회에서 성을 점령하기 위해 하는 모든 전쟁 방식을 열거한 것입니다. 33절은 한걸음 더 나아가 공격은 고사하고 성에 오지도 못하고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확인시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을 보호하시는 이유는 여호와 자신과 여호와의 총 다윗 때문이다, 하나님과 다윗이 세운 언약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대표되는 유다를 보호하시고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이 세우신 언약에 충실하신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의 기반이 우리 마음이나 우리 자신의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 예언의 성취(35-37)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인생이 추락하는 것은 하루아침에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심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이 모든 일을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일해 가신다고 소개합니다.
35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35-37)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치기 위해 나왔고, 여호와의 전쟁으로 십팔만 오천 명이 하룻밤 사이에 죽었습니다. 화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데, 이것이 구약성경이 여호와의 전쟁을 서술하는 방식입나이다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자신이 자랑하던 군대를 일은 산헤립은 앗수르로 돌아갔고, 그곳에서 아들들에게 살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이 성취되면서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위협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앗수르의 무서운 군대를 물리치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지켰습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이루십니다. 나를 위한 일이기 이전에 하나님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일입니다. 구원이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일인 줄 착각할 때, 교만은 나를 패망의 길로 이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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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이사야는 유다 백성이 그 땅의 소산을 먹고 다시 번성할 텐데, 이것이 구원의 징조라고 전합니다. 하나님은 앗수르가 성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며, 그분이 성을 구원하리라고 하십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를 치고 니느웨로 돌아간 산헤립은 살해되고 그 아들이 왕이 됩니다.
한 표적을 약속하심 (왕하 19:29-37)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받을 땅의 축복과 유다 백성의 풍성한 번영을 예언합니다.
네게 보일 징조(29-34) 앗수르의 침략과 수탈로 인해 유다는 농사를 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앗수르를 멸망시키심으로 첫 해에 스스로 자란 식물을 먹게 될 것입니다. 이 년이 지난 후에는 심지 않고 저절로 자라난 곡식을 먹게 될 것입니다. 삼 년째 되는 해에는 씨를 뿌려서 추수하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삼 년이 되는 해까지 말씀하신 이유는 유다의 완전한 회복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더 이상 전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풍요로운 삶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민족에게 황폐하였던 곳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모든 것이 망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남은 자’를 있게 하셨습니다. ‘피하는 자’를 존재하게 하십니다. 앗수르의 침략으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과 시온 성 안으로 피신했다가 앗수르가 물러가자 다시 나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앗수르에 의해 이방 나라들이 멸망당하고 그들의 신상들이 불에 타 없어졌지만 유다를 지키는 하나님은 영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유는 ‘여호와의 열심’ 때문입니다.
송장이 되었더라(35-37)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하고 견고한 왕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13-16). 한 사람과의 약속이 한 민족과의 약속으로 확대되었음을 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 한 사람의 중요성을 봅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2년 동안 유다를 괴롭히던 앗수르 군대는 마침내 예루살렘을 총공격할 채비를 갖추고 집결했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성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송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요세푸스는 흑사병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앗수르 왕이 그토록 자랑하던 군사들은 아무런 결과도 내지 못한 채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세상의 권력은 이처럼 추풍낙엽과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앗수르 왕은 혼비백산하여 니느웨로 돌아가 거주합니다. 거주했다는 말은 두 번 다시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복구불가능의 상태를 말합니다. 산헤립은 그의 신 니스룩을 의지하여 다시 재기를 꿈 꾸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의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 비참하게 인생의 종말을 맞이합니다.
적용: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하루아침에 앗수르의 군대를 송장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적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것이 있으면 나누어 보십시오.
우리가 당한 위기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가 됩니다. 비록 그 일이 우리의 실수나 죄로 인한 결과로 왔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계획된 일이거나, 우리의 연단이나 훈련을 위한 일이거나, 열매를 많이 맺게 하려 가지치기하시는 일이거나, 타인의 구원을 위해 계획된 일이거나, 또는 그 외 다른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언제나 우리의 위기는 또 다른 기회가 됩니다. 작게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며, 크게는 다른 영혼들을 구원하는 계기가, 더 크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많은 사람을 빛으로 인도하는 기회가 됩니다. 대개, 우리가 철저하게 순종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문제는 이 세 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놀라운 간증으로 남습니다.(천성성결교회 이윤형원로목사 설교)
“또한 여호와께서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보여 줄 징조는 이러하니
금년과 내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제 3년에는 농사지어 수확한 포도 열매와 곡식을 먹으리라.
유다 족속 중에서 환난을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땅 아래로 깊이(싱싱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것이라.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환난을 피한 사람들이 시온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이 도성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며, 이리로 화살 하나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도 못하며, 성을 공격할 토성(흙 언덕)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안으로 결코 들어오지 못하리라’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 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 군사들의 진영으로 나아가서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을 쳐 죽였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모두 죽은 시체들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곳을 떠나
앗수르의 도성인 니느웨로 돌아가서 거기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앗수르 왕 산헤립이 자기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그의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라셀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산헤립의 아들 에살핫돈이 그의 뒤를 이어 앗수르의 왕이 되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 이사야를 통해 예루살렘과 유다의 구원을 약속하셨음에도 믿지 못하고 걱정할 것을 아신 하나님은 징조를 보여주시는데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에서 이태 동안은 스스로 자란 것을 먹고 제 삼년에는 심고 거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날 밤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이 몰살당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막말을 퍼붓던 앗수르 왕 산헤립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철수했다가 자기 아들들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히스기야와 유다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를 만났으나 하나님 은혜로 구원받고 다윗가문의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의심하게 되지만 기도해서 받는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지키시고 도와주실 때가 있지만 기도의 자리에서 우리는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시는 그 분의 변함없는 사랑을 만날 수 있다.
랍사게의 말과 산헤립이 보낸 편지에 의해 히스기야와 백성들은 간담이 녹아 막강한 앗수르 군대에 대항해 볼 생각도 못하던 때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 앗수르 군대를 몰살시켜 버림으로써 단번에 전세가 역전되고 만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부정적 생각, 영의 일에 무관심한 육적 자아, 하나님과 관계없이 바쁜 게으름,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없는 종교생활, 닥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의 군사들을 앗수르 군대처럼 하나님이 제거하여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최후승리는 오직 주님께 있으며 기도와 예배의 지경을 넓힐 때 우리도 거기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께 피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역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