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 넘어 마지기 솔숲길
신춘에 날리는 눈 마치 체로 치는 듯하고 新春飛雪墮如簁
한밤의 매서운 추위를 병든 나그네는 아나니 半夜寒威病客知
바람과 다투는 성근 메아리 꿈결에 들리고 疏響鬪風和夢聽
달빛 같은 하얀 꽃인가 창 너머로 의심한다오 素華欺月隔窓疑
―― 문곡 김수항(文谷 金壽恒, 1629∼1689), 「춘설(春雪)」에서
▶ 산행일시 : 2017년 3월 25일(토), 오전에는 눈, 오후에는 비
▶ 산행인원 : 19명(버들, 자연, 모닥불, 스틸영, 악수, 대간거사, 한계령, 온내, 수담, 상고대,
맑은, 두루, 향상, 대우, 구당, 해마, 해피, 오모육모, 모두)
▶ 산행거리 : GPS 거리 22.7km
▶ 산행시간 : 9시간 30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3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58 ~ 08 : 00 - 홍천군 화천면 야시대리(也是垈里) 안골, 산행시작
08 : 34 - 423m봉, 첫 휴식
09 : 01 - 임도
09 : 33 - △718.5m봉
10 : 19 - 임도
10 : 35 - 542.2m봉
10 : 54 - △551.7m봉
11 : 38 ~ 12 : 50 - 약수쉼터, 점심
13 : 31 - 507m봉
13 : 57 - 523.8m봉
14 : 43 - 만내고개
14 : 48 - 472m봉, 산불감시초소
15 : 25 - 임도, 안부
15 : 50 - 425.1m봉
16 : 11 - 망령산(望嶺山, △395.5m)
17 : 00 - 쉼터, 석화산 갈림길
17 : 14 - 봉화산(峰火山, △338.0m)
17 : 30 -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希望里) 마지기고개(말굽고개), 산행종료
18 : 07 ~ 20 : 10 - 홍천, 목욕, 저녁
21 : 26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봉화산 정상에서, 뒷줄 왼쪽부터 모두, 수담, 온내, 대간거사, 한계령, 상고대, 모닥불,
맑은, 앞줄 왼쪽부터 향상, 대우, 오모육모, 두루 님
2. 안개 속 산등성이 풍경
3. 등로 주변의 참나무 숲
▶ △718.5m봉
산행인원 19명. 지지난주 45인승 대형버스로 무박산행을 간 인원수다. 24인승 버스가 모처
럼 묵직하다. 산행지가 홍천이니 가깝다는 이유가 없지는 않겠지만(산행시간은 오히려 더
길기 마련이다. 서울 도착시간은 무박산행과 비슷하다) 그보다는 산을 좋아해서라는 게 타
당하다. 일기예보는 수일 전부터 전국에 걸쳐 봄비 내리고 추울 거라고 했음에도 이니.
오늘 산행 들머리인 야시대리 안골 마을. 한적하다. 우리 차가 더 들어갈 수 없어 내린다. 연
만한 아주머니 한 분이 마당 안에서 우리를 멀뚱히 바라본다. 마치 이 산골에 자기가 모르는
명산이 있어 수많은 등산객들이 이리 몰려드는가 싶은 듯이. 수로 옆 농로 따라 산기슭을 향
한다. 더덕밭을 지난다. 어쩌면 이 더덕 씨앗이 바람에 날려 인근 산에서 자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눈에 부쩍 힘을 준다.
엷지만 가파른 능선을 잡아 일로 직등하다. 낙엽에 덮인 허방을 피하느라 생사면의 잡목 숲
을 헤치기도 한다. 이따금 고개 들어 바라보는 공제선은 자꾸 뒤로 무르고 등줄기에는 땀이
흥건히 밴다. 무덤 지나고 가파름이 한결 수그러든다. 대간거사 님은 무덤 속 망자에게 오늘
은 신가이버 님의 근태상황을 고하는 대신 더덕의 점지를 소원한다.
하늘 가린 잣나무 숲길을 지난다. 하나같이 늘씬하게 쭉쭉 뻗어 오른 잣나무다. 능선마루에
도 임도가 뚫렸다. 잣나무 낙엽이 걷기 알맞게 깔렸다. 423m봉 정상 약간 못 미친 잣나무 숲
속에서 일행 점호할 겸 첫 휴식한다. 입산주는 예의 해피 님이 공수해온 덕산의 명주인 탁주
다. 메아리 대장님과 신가이버 총무님이 결근하여 안주가 부실하다만 목이 칼칼하던 참이라
연거푸 잔을 비운다.
잣나무 숲이 끝나고 낙엽송(‘일본잎갈나무’가 정명이다) 숲이 이어진다. 얼굴에 찬 기운이
스치는 것이 진눈깨비인가 했더니 눈이다. 가루눈이다. 천지가 갑자기 뿌예진다. 이러니 산
에 왔으되 산을 보기는 글렀다. 그저 눈앞의 숲만 보는 산행이 되고 만다. 산허리 도는 임도
와 만난다. 절개지가 오버행에 가까운 흙 절벽이다. 직등한다. 선등이 후등을 손잡아 끌어올
린다.
열 걸음에 대여섯 걸음마다 능선마루 등로에 보이는 흰색 천의 표지기와 그 옆의 우묵한 흔
적은 6.25 전사자 유해지 발굴이다. 미루어 생각해보면 격전지였다. 갑자기 발걸음이 조심스
러워진다. 차가운 눈발까지 날린다. 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키 작은 잣나무 숲을 지나
며 쌓인 눈을 뒤집어쓰니 진작부터 온 눈을 소급하여 맞는 셈이다.
긴 오르막이다. 선두가 쉴 때까지 간다. 저 봉우리에 오르면 쉬겠지 하고 바라기 여러 번이
다. 오르고 또 오른다. △718.5m봉. 풀숲 우거진 정상에 시설물 터가 있다. 잣나무 숲 아래로
눈발 피하며 휴식한다.
4. 들머리인 안골, 멀리는 가리산 기상관측소
5. 들머리 안골 마을의 더덕 텃밭
6. 잣나무 숲길
7. 잣나무와 낙엽송 숲
8. 423m봉 약간 못 미쳐서 첫 휴식
9. 춘설은 내리고
10. 싸리나무 가지에는 눈이 녹은 물방울이 꿰였다
▶ 약수쉼터, 425.1m봉
△718.5m봉에서 북진하면 가리산 넘어 늘묵고개를 지나오는 영춘기맥과 만난다. 우리는 남
진한다. 춘설을 맞으면 가는 산행이라니 좀처럼 즐기기 어려운 봄날의 정취다. 봄의 전령사
인 생강나무는 슬며시 화창 열고 봄이 어디쯤 왔나하고 내다보다 느닷없이 눈보라를 맞았다.
556.5m봉 넘고 임도와 만난다. 능선은 당분간 임도와 함께 간다. 눈발이 약해지자 안개가 드
리운다.
앞뒤 일행이 금방 보이지 않게 되고 혼자 가는 산행이다. 안개가 자욱하니 더욱 적막하다. 잔
뜩 움츠러든 생강나무와 동무하며 간다. △551.7m봉. 2등 삼각점이다. 내평 27, 1988 재설.
줄달음하여 후미를 기다리는 선두 일행과 만난다. 상고대 님 독도이니 어련하랴, 의심 없이
줄줄이 그 뒤를 따른다. 아무튼 안개 속에서는 장사가 없다. 방향착오. 떼로 길을 잘못 들
었다.
가파른 생사면을 질러간다. 지능선을 세 개나 갈아탄다. 그러고 나서 지도에 눈 박고 간다.
울창한 낙엽송 숲 내려 56번 국도가 지나는 약수쉼터이다. 약수쉼터는 너른 마당이 있는 가
게인데 손님이 뜸한지 영업하는 것 같지 않다. 쉼터 사장님에게 비 가리며 점심을 먹을 수 있
게 처마 사용을 부탁하자 쾌히 승낙한다. 그 사장님에게 대복이 있을진저! 마을에는 눈이 아
닌 찬비가 내린다.
아쉽다. 해피 님이 일습 준비해온 봄맞이 대 해물잔치를 추워서 달달 떨며 벌일 수밖에 없었
다. 주꾸미, 새조개, 피조개, 가리비, 생굴, 가리비. 버너 3대에 각각 둘러앉아 샤브샤브를 요
리하는데 젓가락질이 서툴도록 손이 곱으니 어설프기 짝이 없다. 특히 새조개와 주꾸미에게
퍽 미안하다. 그 상큼한 맛을 천천히 음미하며 술을 곁들이기는커녕 익었는지 설었는지조차
모르고 막 먹어버렸다.
2부 산행. 약수쉼터 앞 와가교 건너 지능선을 잡는다. 매사에 그러하듯이 첫걸음이 어렵다.
인적 없는 야산의 가시덤불을 뚫는다. 임도가 나와도 모른 체하고 직등한다. 고도 높여 야산
에서 벗어나고 등로는 뚜렷하다. 지능선이 합류함에 따라 비례하여 등로는 점점 탄탄해진다.
2부 산행은 기껏해야 높이 500m 내외의 산이다. 사면 누빈들 아무런 소득이 없을 것이니 경
주하는 산행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땀난다.
523.8m봉. 북서진하면 자지봉(紫芝峰, 498.7m) 넘어 영춘기맥과 만난다. 우리는 남진한다.
길 좋다. 촉촉하게 젖은 낙엽길이라 먼지가 나지 않고 걷기에 아주 좋다. 오후에는 산에도 비
가 내린다. 야트막한 안부는 만내고개다. 춘천-동홍천고속도로 북방3터널 위를 지난다. 터
널을 통과하여 전력 질주하는 차량들의 쾌음이 쉴 새 없이 들린다.
산이 낮다고 마음가짐이 그만 해이해진 탓일까?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매우 심하고 봉봉
마다 대단한 첨봉이다. 472m봉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인 망루가 있다. 하늘 가린 나무숲이
망루 위로까지 빙 둘렀으니 산불감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396.9m봉 내린 안부는 임도가 지
난다. 안개 위로 솟은 425.1m봉은 멀리서도 준봉이었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다. 긴다.
11. 등로
12. 임도 주변
13. 생강나무꽃
14. 낙엽송 숲길
15. 만내고개 가기 전 첨봉인 469m봉
이 사진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봉우리가 워낙 가팔라 직등하지 않고 왼쪽으로 산허리를
돌아 오르는 중이다. 대간거사 님(뒤)이 바로 앞의 해마 님에게 오른쪽 모서리에 더덕이 있
을 것 같다며 그리로 돌아 오르자고 한다. 해마 님은 푹푹 빠지는 낙엽을 러셀하기가 너무 힘
들어 그냥 가면서, 맨 뒤로 후미를 살피며 오고 있는 오모육모 님에게 미리 방향 틀어 그리로
오를 것을 부탁하였다. 대간거사 님과 오모육모 님이 오른쪽 모서리로 오르는 발품을 들였으
나 더덕은 없었다.
16. 벌목한 사면에 남겨놓은 모수(母樹)
17. 벌목한 사면에 남겨놓은 모수(母樹)
▶ 망령산(望嶺山, △395.5m), 봉화산(峰火山, △338.0m)
공원처럼 잘 가꾼 산이다. 명원(名園)이다. 사면의 잡목은 모조리 베어냈고 간벌한 통나무는
미관을 고려하여 군데군데 가지런히 쌓아놓았다. 선산 지키느라(?) 등이 굽은 소나무들이지
만 인고의 연륜이 배인 고결한 품격으로 보인다. 비록 첩첩산은 가렸으나 등로 주변의 울창
한 소나무 숲과 잣나무 숲이 보기에도 좋아 공원을 산책하는 기분이 난다. 망령산은 명원 원
로의 약간 도드라진 마운드다.
망령산. 망(望)할 령(嶺)이 대체 어디일까 궁금하다. 령(嶺)은 고개라는 뜻 외에 산봉우리라
는 뜻도 있다. 구절산은 아득히 잠깐 보이다가 안개에 가렸다. 비가 제법 모양내어 내린다.
으슬으슬한 찬비다. 망령산에서 춥도록 후미를 기다려준다. 그러는 동안 한속을 덥히려고 탁
주 마신다. 맨 후미(스틸영, 해피, 구당 님)는 해마 님이 기다렸다가 하산을 강재구 소령 추
모공원 쪽으로(?) 안내하도록 하고, 봉화산을 향한다. 봉화산은 가외 산행이다.
오른쪽 사면은 드넓은 자작나무 숲이다. 안개와 어울린 모습이 가경이다. 시인 최창균의 시
「자작나무 여자」에서처럼 때로 ‘슬픔이 아주 긴 종아리’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백석
의 시 「백화」가 있는 그 산골이 그립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甘露 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山넘어는 平安道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403.7m봉을 넘고부터 등로는 군인의 길을 겸하였다. 오른쪽 사면 500m 아래는 군사격장이
라며 그리로 내려가지 말 것을 약도 그려 경계하였다. 등로 주변에 신병훈련시설로 보이는
여러 과목의 교육장을 지난다. 군인들은 마사토 등로를 빗질까지 하였다. 석화산(2.1km) 갈
림길. 벤치 놓인 파고라 쉼터다. 배낭 털어 먹고 마신다.
산책길을 한달음에 내달아 봉화산이다. 삼각점은 ‘홍천 414, 2005 재설’이다. 국토지리정보
원의 지형도에는 峰火山이다. 烽火山이 아니다. ‘烽火’의 오기가 아닐까 한다. 한 피치 가파르
게 내려 솔향이 그윽한 마지기 솔밭길이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솔밭길이다. 절개지 아닌
6m 높이 무지개다리 돌아내리면 마지기고개(말굽고개)다.
망령산을 포함한 마지기 솔밭길 안내도에서 소개하는 마지기고개의 유래다. “…구불구불 산
을 휘감아 오르는 고갯길이 말굽처럼 생겼다 하여 말굽고개, 마제(馬蹄)로 불리어 오던 고개
이름이 언제부터인지 ‘마지기고개’로 바뀌어 불리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설에는
고개 및 홍천읍 쪽에 계단식 논들이 계곡에 자리 잡고 있어 그곳을 마지기라고 불렀으므로
고개 이름도 마지기고개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산행종료. 두메 님은 후미를 태우고 구불구불 말굽 모양의 고갯길을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전원 풀코스 완주를 자축하는 하이 파이브를 손바닥 얼얼하게 (산행인원이 19명이다)
나눈다.
18. 낙엽송 숲 아래 휴식
19. 잘 가꾼 소나무 숲
20. 망령산 정상에서
21-1. 망령산 정상에서, 오모육모 님과 두루 님(오른쪽)
21. 왼쪽부터 대우, 향상, 맑은, 온내, 모두, 두루, 온내 님만 빼고 두루사단이다
22. 자작나무 숲
23. 마지기 솔숲길
24. 마지기고개(말굽고개)
첫댓글 추워서 벌벌 떨긴했지만, 해피 덕분에 잘 먹고 잘 뛴 산행이었습니다.
두루 사단도 오랫만에 출전하여, 저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굿이에요.
오지가 많이 변했어요
당일로 20km를 넘기질안나
이아구 다리야흑흑
산행기가 왜 안올라오나 많이 궁금했습니다
메대장님과 상대장님의
산행참여 회원의 상황을 배려하는
코스 선정에 고마울 뿐 입니다.
겨울을 보내고 봄에 나온
구당 대우 모두가 다소 버거워할까 배려하심이 느껴집니다.
낮은 능선이지만 오지의 맛을 보면서
몸맘이 오지에 적응하기 좋은 딱 맞춤 코스 선정 !!
또한 이를 반겨주는 오지 어르신들의 그 마음을
흡족한 눈비로 만나는 산행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악수형님의 산행기를 통해 새록새록 해집니다 !!!
추위에 떨고, 조망은 없고,거리는 길고,,그러나 해피님 덕분에 맛나게 드셨던 산행이었군요..봄을 시샘하는 눈때문에..수고들 많으셨습니다^^
하염없이 걸어서 좋았습니다. 조망은 없어도 나무 숲 폭신한 땅 그리고 눈 비 운치있었고요. 악수형님 사진의 백양목 소나무 잣나무 숲을 지나며 오지 참 좋다~ 느끼고요.
시야가 트였다면 사진을 죄다 담으셨을텐데..아쉽지만 그래도 역시 사진은 악수님 이시네요.
멋져요
겨울 끝자락에서 봄맛을 느낀 산행이였습니다.
계절의 별미 새조개와 쭈꾸미 덕분에
해피님 감사
산행기 때문에 그 산이 더욱 좋았습니다.
악수형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