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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지금(只今)까지 귀신(鬼神)의 존재여부(存在與否)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사(關心事)였고, 귀신을 보았다는 목격담(目擊談)은 종교체험(宗敎體驗)처럼 드물었지만 종종(種種) 있어 이를 듣는 이들마저 등골을 싸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괴담(怪談) 수준(水準)을 넘어 누구나 신기(神奇)하게 생각(生覺)하였고 무속(巫俗)은 물론(勿論) 고등종교(高等宗敎)인 불교(佛敎)와 기독교(基督敎)까지 중요(重要)한 문제(問題)이므로 몇 자(字) 적어 봅니다.
물고기(魚) 귀신이 있고 새(鳥) 귀신이 있는가?
고양이(猫) 귀신이 있고 개(犬) 귀신이 있고
소(牛) 귀신이 있고 닭(鷄) 귀신이 있는가?
바위(巖石)에 귀신이 있고 나무(樹木)에 귀신이 있고
물속(水中)에 귀신이 있고 허공(虛空)에 귀신이 있는가?
결론(結論)지어 말하면 오직 사람(人)만이 귀신(鬼神)을 느끼는 것이지 귀신이 살아 활동(活動)하는게 아니고 존재(存在)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 현상(現象)이라는 거고 실체(實體)가 없다는 뜻이며 인간(人間)에게만 독특(獨特)한 정신현상(精神現象)입니다. 실체(實體)가 없다는 말은 물질적(物質的)인 근거(根據)가 없다는 겁니다.
사람은 비록 육체(肉體)를 가져 태어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運命)이지만,고등(高等)한 영물(靈物)이라 마음(心)으로 짓는 것이지, 귀신(鬼神)이 있고 사람이 죽어 영혼(靈魂)으로 존재(存在)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同意)하지 않겠지만 죽으면 끝이겠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사후세계(死後世界)를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저승풍경(這生風景)이 너무나 이승(爾生)을 닮았습니다. 회심곡(回心曲)을 보아도 그렇고 무속(巫俗)에서 읊조리는 경문(經文)을 보아도 사후세계(死後世界)가 낯이 익은 현세(現世)의 모습입니다.
어느 지방(地方)에 전해지는 가사(歌辭)에도 너무나 인간적(人間的)인 모습으로 저승(這生)을 표현(表現)하고 있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世界)는 이승(爾生)과 달라도 너무 달라야 하는데 산 사람들이 소원(所願)을 갖다가 붙였을 뿐입니다.
기독교(基督敎) 성경(聖經) 말씀에 <산자의 하나님>이란 구절(句節)을 깊이 새길 필요(必要)가 있습니다. 왜 <죽은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 속담(俗談)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爾生)이 낫다>는 표현(表現)이 있는데, 하나님은 살아있는 인간에게 수많은 복(福)을 주셨으며, 그 중(中) 영적(靈的)인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통(通)해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크나큰 은총(恩寵)을 주셨습니다.
이는 불교(佛敎)도 마찬가집니다. 법회(法會)에 참석(參席)해서 예불(禮佛)하고 설법(說法)을 들음으로써 부처님을 마음에 모십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과 천수경(千手經), 금강경(金剛經)을 암송(暗誦)하여 마음의 평안(平安)을 구(求)하기도 합니다. 혹은 사경(寫經)을 하기도 합니다.
자극적(刺戟的)인 표현(表現)을 하면 이미 죽어진 사람은 인간(人間)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내쳐진 것이고 멀리 해야하며 추모(追慕)하고 제사(祭祀)를 반복(反復)함으로써 산자와 구별(區別)되어야 하는 존재(存在)입니다. 죽은자에게는 하나님과 교제(交際)할 수 있는 영(靈)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왜 멀리 해야 합니까? 직접(直接) 보면 자연(自然)스레 알겠지요.
어느 종교(宗敎)를 막론(莫論)하고 옛부터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事實)을 분명(分明)히 알고 있었을 터이나, 가끔 귀신 들린자들이 있어 이걸 설명(說明)하려니 사탄(satan)이니 악마(惡魔)니 악귀(惡鬼)니 더나아가 천당(天堂)이니 극락(極樂)이니, 천국(天國)이니 지옥(地獄)이 필요하였습니다.
불경(佛經)인 법화경(法華經) 첫부분을 보면 온갖 인도(印度) 잡신(雜神)들이 등장(登場)합니다.
다신교(多神敎)인 힌두교의 영향(影響)이고 인도(印度)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잡신(雜神)을 받드는데, 용(龍)을 믿는 종교(宗敎)에서는 용(龍)이 나타날 것이고, 도깨비를 믿는 문화(文化)에서는 도깨비가 나타날 것이며, UFO와 외계인(外界人)을 믿는 사회(社會)에서는 UFO와 외계인이 나타날 것이며, 귀신을 모시는 사람에게는 귀신이 나타날 것입니다.
위에서 귀신(鬼神)의 존재는 물론 사후(死後) 인간의 영혼(靈魂)을 부정(否定)하였는데 문제(問題)는 있습니다. 애지중지(愛之重之)하던 자식(子息)을 잃은 부모(父母)에게 한동안 자식은 잊혀지지 않고 마음 속에 머뭅니다.
짠하게 남고 꿈을 통해서 자식이 나타나 말을 걸기도 합니다. 이러니 산 사람에게 위로(慰勞)와 정신적인 안정(安定)이 필요(必要)할 수 밖에요. 그리고, 인간사(人間事) 억울(抑鬱)한 죽음이 너무 많으니 종교인(宗敎人)이 아니라도 <좋은데 갔다>고 얘기합니다.
당신(當身)이 뭔데 귀신이 없다, 인간은 영혼(靈魂)이 없다는 말을 함부로 하느냐 하실 분이 많을텐데 신(神)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체적(具體的)으로 말할수 있습니다.
아직 일반인(一般人)들은 잘 모르지만 인공지능(人工知能, AI)이 현재(現在) 어느 수준(水準)에 와 있는지 알게 되면 경악(驚愕)을 금(禁)치 못합니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아니라 인공생명체(人工生
命體, artificial life)를 과학자(科學者)들은 이미 만들어 냈습니다.
몇 년전에 작고(作故)한 영국(英國)의 천체물리학자(天體物理學者) 스티븐 호킹 박사(博士)는 인공지능의 위험성(危險性)을 경고(警告)했습니다. 그리고 인류문명(人類文明)은 인간들이 만든 인공지능(AI)에 의해 종말(終末)을 맞을거라는 섬뜻한 예언(豫言)를 했습니다.
또 영국의 진화생물학자(進化生物學者)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이라는 책(冊)에서 신이 없다고 주장(主張)합니다. 영국정부(英國政府)는 이들 학자(學者)에게 뭔가 보여준 겁니다.
진화론(進化論)을 주장한 찰스 다윈(Charles Dawin)이 탄생(誕生)한 생물학(生物學)의 본고장 영국(英國). 영국정부(英國政府)는 일급(一級) 과학자(科學者)들에게 극비리(極秘裡)에 추진(推進)한 결과물(結果物)을 보여주었는데 그 뭔가가 인공지능(人工知能, AI)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현재 도달한 인공지능(AI) 수준은 일반 사람들이 제대로 알면 경악(驚愕)을 금(禁)치 못합니다. 극비(極秘, top secret)이며 각국 정부는 제대로 발표(發表)하지 않습니다. 상상(想像)을 초월(超越)합니다. 만일 신이 있다면 인류(人類)를 수수방관(袖手傍觀)하지 않고 용납(容納)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위에서 썼지만 인류(人類)는 현재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생명체(人工生命體)를 이미 만들어 냈습니다.
생명(生命)의 신비(神秘)를 거의 밝혀냈다는 뜻입니다. 피조물(被造物)인 인간이 생명체(living things)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신이 없다는 뜻입니다. 무기물(無機物)을 조작(造作)해 생명(生命)을 만들고 생명현상(生命現象)의 진실(眞實)이 밝혀졌는데 신(神)이 있고 귀신(鬼神)이 있다?
그러면 신이나 귀신현상은 물리현상(物理現像)인가? 인간에게 나타나는 생명현상(生命現像)으로 봐야 정확(正確)할 겁니다. 정신활동(精神活動). 보다 세밀(細密)하게 들여다 보면 생명현상의 기저(基底)에는 물리화학(物理化學)의 법칙(法則)이 작용(作用)하겠지요.
잘못된 생활(生活), 특히 불량(不良)한 식사(食事), 불결(不潔)한 위생상태(衛生常態), 질환(疾患)이 오래되면 부적절(不適切)한 일이 일어납니다. 생활(生活)이 먼저 흐트러지고 주변(周邊)이 어지러워지며 인간관계(人間關係)가 틀어집니다. 이런 경험(經驗)은 사람이 살다보면 한두 번은 있습니다.
특히 잠을 자는 주거환경(住居環境)이 중요(重要)합니다. 의식주(衣食住)에서 식(食) 다음 주(住)가 사람에게 많은 영향(影響)을 줍니다. 수면중(睡眠中)일때 인간은 가장 약(弱)합니다. 흔히 귀신이 나올 집이라고 하는데 전통사회(傳統社會)를 미화(美化)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주거환경(住居環境)이 참으로 열악(劣惡)했습니다.
부적절한 장소(場所)에 가면 귀기(鬼氣)를 느낄 수 있지만 귀신이라는 실체가 있는것이 아니라 인간이 느끼는 느낌일 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두려움, 공포심(恐怖心)인데 그곳에 가지마라, 오래 있지 말라는 신호(信號)입니다.
높은데 올라가면 누구나 두려움과 공포심(恐怖心)을 갖는데 이 역시(亦是) 인간의 자기보호본능(自己保護本能)이며 더 넓게보면 생명현상입니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39장을 보면 지득일이령(地得一以寧)란 구절(句節)이 있는데 ,<땅은 편안(便安)함으로 도(道)를 얻었다>는 뜻이며, 높은데 올라갔다 내려오면 잘 이해(理解)가 될 겁니다.
현대인(現代人)은 대부분(大部分) 병원(病院)에서 질병(疾病)으로 고통(苦痛)받다 끝내 삶을 마감하는데 실제 귀신이 있다면 병원은 묘지(墓地)만큼 귀신이 우굴댈 겁니다. 하지만 병원에 귀신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의사(醫師)들은 수많은 죽음을 목도(目睹)하는데 외과의사(外科醫師)에게 귀신이 있냐고 물어보면 이상(異常)한 눈으로 쳐다보며 좀 쉬라고 할 것이고, 정신과(精神科) 상담(相談)을 받아보라고 권유(勸誘)할 겁니다. 정신나간 소리한다고 벌꺽 화낼 분도 있을 겁니다. 인간을 정확(正確)히 보는 사람은 의사(醫師)이지 몇 천년 전에 만들어진 고문서(古文書)를 다루는 종교인(宗敎人)이 아닙니다.
거듭 강조(强調)하지만 살아있는 인간의 정신활동일뿐 귀신이라는 실체(實體)는 없습니다. 다른 측면(側面)에서 보면 귀신현상은 인간의 생활(生活)과 건강(建康)이 잘못되었다는 표시(表示)입니다. 몸이 아프고 탈( 頉 )이 나면 지체(遲滯)하지 않고 병원에 가고 마음에 병이 났을때도 정신과 상담을 받을 일입니다.
최근에 뇌과학(腦科學, brain science)이 엄청나게 발전(發展)했습니다. 뇌과학이 귀신현상도 설명(說明)해 줄 겁니다. 우리 뇌는 여러가지 일을 하는데 정신(精神)은 분명히 두뇌(頭腦)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인간은 약물(藥物)을 잘못 먹으면 환청(幻聽)이나 더나아가 환각(幻覺)이 일어납니다. 마약(痲藥)과 대마(大麻)처럼 부탄가스(butane gas)나 본드(bond)는 환각물질(幻覺物質)입니다. 도파민(dopamine)은 신경전달물질(神經傳達物質)로 과(過)하면 환청(幻聽)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뇌기능(腦機能)에 이상(異常)이 생기면 어떤 물질(物質)이 과(過)하게 분비(分泌)되어 균형(均衡)이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예로 요새 부쩍 늘어나 주목(注目)받는 조현병(調絃病) 환자는 다른 여러 원인(原因)도 있지만 뇌 신경전달물질(神經傳達物質)에 이상(異常)이 생겨 발생(發生)한다고 합니다. 망상(妄想)과 환각(幻覺), 환청(幻聽)은 정신질환자(精神疾患者)에게 흔한데 분명히 외부세계가 아닌 몸안 뇌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약(懦弱)한 인간, 건강(建康)하지 않은 인간들이 귀신을 믿고 모십니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나이들고 경험(經驗)을 많이 하면 자연(自然)스럽게 알게되는데 머리로만 생각(生覺)하지 말고 눈을 부릅뜨고 사물(事物)과 세상(世上)을 바라볼 일입니다.
간접경험(間接經驗)이 태반(殆半)이고 직접경험(直接經驗)이 부족(不足)한 도시인(都市人)에게 수많은 일들이 어둠의 커튼(curtain)에 가려져 있습니다.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해치고 심신미약자(心身微弱者)를 보호(保護)한다고 도축현장(屠畜現場)이나 , 수술장면(手術場面), 친척(親戚)의 죽음 등은 직접 볼 기회(機會)가 적어졌습니다. 많은 학자(學者)들은 이런 일을 오히려 우려(憂慮)하고 있습니다. 유약(柔弱)한 현대인(現代人)은 어른아이(rejuveniles, kidults)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입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식품(食品)들이 어떻게 수확(收穫)후 보존(保存), 가공(加工), 조리(調理)되는지 모르고 오늘도 소비욕망(消費欲望)을 자극(刺戟)하는 현란(絢爛)한 광고(廣告)는 소시민(小市民)들의 지갑(紙匣)을 열게 합니다.
끔찍한 범죄(犯罪)와 사건사고(事件事故)는 하루가 멀다하고 뉴스판을 달굽니다. 굳이 알 필요도 없는 뉴스를 많이 접하면 경각심(警覺心)을 가져야하나 오히려 저항(抵抗)과 면역(免疫)이 생기며, 그렇다고 끔찍한 범죄와 사건사고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독서(讀書)는 학창시절(學窓時節)에 교과서(敎科書)만 대충 본게 전부(全部)이면서 달랑 사극(史劇)만 보고 역사(歷史)를 논(論)하고 흥분(興奮)합니다. 시대(時代)에 맞니 안맞니 복식(服飾)이 제대로 고증(考證) 되었니 아니니 하는 논쟁(論爭)은 오래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비(是非)를 피하고 오해(誤解)를 벗어나려고 퓨젼(fusion)이니 코믹(comic)이니 현대극(現代劇)이라고 드라마 감독(監督)들은 둘러댑니다. 사회경험(社會經驗)이 일천(日淺)하고 실제생활(實際生活)과는 거리(距離)가 먼 여성작가(女性作家)들은 뜬금없이 눈물과 감성(感性)에 호소(呼訴)합니다. 패기(覇氣)와 기백(氣魄)은 눈을 씻고 찾아 보려도 없습니다.
매스미디어(mass media)와 인터넷(internet)에 범람(氾濫)하는 정보(情報)는 많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아니 스마트폰이라는 여의주(如意珠)는 수많은 사람들이 능력(能力)을 과신(過信)하도록 하였고, 가뜩이나 성급(性急)한 한국인(韓國人)들을 더 조급(躁急)하고 까칠하며 신경질적(神經質的)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인은 겸손(謙遜)과 인내심(忍耐心)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중요(重要)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명심(銘心)해야 할 게 하나 있는데 인터넷 정보(情報)에 나도 모르게 세뇌(洗腦)당하면서 전체(全體)보다는 부분(部分), 본질(本質)보다는 말단(末端), 맥락(脈絡)보다는 결과(結果), 숲보다는 나무와 풀만 보는 근시안(近視眼)의 헛똑똑이들을 도처(到處)에 만들어 냈습니다.
무언가 자세(仔細)히 들여다 본다는 것은 주변(周邊) 사정(事情)을 놓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똑똑하다고 착각(錯覺)합니다. 과연(果然) 작디작은 부분(部分)을 디테일(detail)하게 본다고 사물(事物)을 정확(正確)하게 아는 걸까요?
어떤 사건(事件)을 제대로 보려면 첫째 소스(source)가 정확한가를 살피고, 전체적(全體的)인 사정(事情)과 주변(周邊)과의 관계(關係)를 알아야 하며, 부디 부분(部分)에 천착(穿鑿)하지 말고 전체(全體)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行動)이 램덤(random)하다는 걸 알아야 하며 논리(論理)에 꿰맞추지 말아야 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internet community)를 보면 겉만 보고 급발진(急發進)하는 조급증(躁急症) 환자(患者)가 넘쳐납니다. 사소(些少)한 일로 흥분(興奮)하고 시비(是非)붙는 사람들을 보면 어린아이(kid)와 다를바 없습니다.자세(仔細)히 보지말고 대강(大綱) 보고 부디 멀리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별의미(別意味)도 없는 말장난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경험(經驗)이 부족(不足)하고 바깥 생활에 어둡고 날것에서 멀어지니 이상(異常)한 말에 현혹(眩惑)돼서 엉뚱한 짓을 많이 합니다. 방구석 도사(道士)와 현자(賢者), 몽상가(夢想家)가 넘쳐 납니다.
인생(人生)은 스토리(story)가 아닙니다. 드라마(drama)도 아닙니다. 사건(事件)은 복잡(複雜)합니다. 생각(生覺)은 생각(生覺)일뿐 실제(實際)는 아닌 경우(境遇)가 허다(許多)합니다. 섣부른 판단(判斷)은 남을 오도(誤導)하고 자신(自身)을 기만(欺瞞)합니다.
한번 위험(危險)한 일을 몸으로 부대끼며 하다 보면 자연(自然)스럽게 알게 됩니다. 아니 매일매일 일에 몰두(沒頭)해서 실제생활(實際生活)에 전념(專念)하면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많은 것들이 거짓이구나!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아는 사람은 혹하지 않고(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용기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 논어(論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