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 자동차를 타는 운전자 대부분은 연료품질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휘발유라면 옥탄가(Octane Number)라는 수치로 연료의 품질을 나눈다. 그런데 디젤차를 타는 오너들은 평소 디젤 차량에 아무 경유나 주유해, 생각보다 연료품질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
왜 운전자가 연료 품질에 신경써야 할까? 그것은 엔진이 최초 설계시부터 연료의 옥탄가를 고려하여 원하는 시점에서 점화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디젤엔진도 마찬가지이다. 경유는 세탄가라는 수치를 고려해 엔진을 설계했다. 물론 제조사들은 차량이 어떤 환경에서 쓰일지 모르므로 레이스카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은 범용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그 수치를 일반적으로 구하는 연료에 맞춘다.
디젤엔진의 작동구조
가솔린 엔진이 점화플러그 불꽃을 발생시켰을 때 폭발하도록 만들었다면, 디젤엔진은 흡입한 공기를 압축해서 온도가 상승한 공기에 연료가 스스로 불이 붙도록 설계했다. 디젤은 가솔린보다 더 빠르게 엔진 내부 연소실에 직분사 방식을 사용해왔으며 부피가 줄어들어 온도가 올라간 압축공기에 연료 뿌리는 시점을 조절하여, 가솔린 엔진의 점화타이밍 조절과 동등한 기술을 적용했다. 가솔린 엔진은 11:1 부근의 압축비지만, 디젤엔진은 20:1 부근으로 무척 높다. 그렇게 압축되는 공기는 500-700도까지 올라간다. 피스톤이 상사점에 도달하기 조금 전부터 내부에 연료를 뿌리기 시작한다.
불이 잘 붙는 성질, 세탄가
경유는 가솔린보다 에너지밀도가 높다. 그래서 폭발력이 높고, 많은 소음과 진동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보다 불이 잘 붙질 않는다. 휘발류는 조금만 뜨거워도 불이 쉽게 붙고, 등유는 그보다 덜 붙긴 해도 불이 붙는 반면, 경유는 불을 직접 가져다 대도 쉽게 불이 붙지 않는다. 발화점이 훨씬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유는 옥탄가 대신, 불이 잘 붙는 성질을 세탄가(Cetane Number)로 표기한다.
경유의 세탄가가 높다고 해서 폭발력이 더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탄가가 높으면 원하는 타이밍에 정확하게 폭발을 시킬 수 있어 출력 상승효과가 있다. 연료효율 증가로 일산화탄소와 탄화수소 배출까지 줄이기도 한다. 반대로 세탄가가 낮으면 피스톤이 상사점을 지나 내려가는 중에 뒤늦게 폭발하여 원치 않는 진동과 소음을 발생시킨다. 국내 차량용 세탄가 기준은 52 이상이다. 환경부가 고시한 수도권 지역 자동차연료 환경품질 보고서에 따르면, 정유업체에 따라 세탄가가 54-57까지 있다.
겨울철 경유는 다르다
경유를 정제하면서 함께 추출되는 황은 일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많이 발생시킨다. 그러나 황은 연료가 액체처럼 부드럽게 움직일 수 있는 유동성(流動性)에 영향을 미치기에 적게 함유하되(저황처리), 첨가제로 윤할성을 증가시킨다. 경유는 파라핀 성분이 많이 포함될수록 점화성이 좋아진다.
산업통상자원부의 ‘혹한기 경유 차량의 저온성능 영향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겨울철에는 파라핀이 쉽게 굳어지면서 연료공급 시스템에 문제를 만든다. 실제로 경유가 완전히 어는 온도는 영하 60도 정도지만, 파라핀이 굳어 연료필터를 막는 온도는 대략 영하 18도 정도다. 정유사들은 시기에 따라 동절기와 혹한기용 연료를 따고 공급해 파라핀 양을 줄이고 파라핀이 굳지 않도록 한다. 11월부터 공급되는 동절기용 경유는 산업통상자원부 기준 영하 17.5도 이하, 12월-2월 혹한기 경유는 파라핀이 영하 23도 이하까지 굳지 않아야 한다.
한국석유관리원에서는 엑체가 되어 흐르는 유동점(流動點)과 파라핀이 굳어 경유차의 필터가 막히는 온도를 필터막힘점(CCFP,Cold Filter Plugging Point)이라 부르며 측정해 관리하고 있다. 최근 자동차 제조사들은 연료필터에 열선을 장착, 동절기 연료고착을 줄이고 있다. 특별히, 더 추운 강원도와 경기 북부지역은 정유사에서 영하 32도 부근까지 얼지 않는 혹한기 연료를 공급한다.
노킹이란?
한편, 국내 휘발류의 옥탄가 측정은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RON 방식을 사용한다. RON은 Research Octane Number의 약자로, 노킹을 일으키지 않는 수치를 통제된 환경에서 실험용 엔진으로 측정한다.
노킹(Knocking)은 엔진 내부에서 원치 않는 시기에 폭발하는 현상을 이야기하며, 마치 망치 같은 것으로 노크하듯 ‘따다다’하는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고 하여 노킹이라고 한다. 가솔린의 경우 점화플러그가 점화하기 전에 스스로 불이 붙는 경우 난다. 국내 기준 보통휘발유 옥탄가는 91 RON 이상, 고급휘발유가 94 RON 이상이다. 노킹은 엔진 내구성을 떨어뜨린다. 높은 품질의 연료는 가솔린 차 뿐만이 아니라 디젤차도 필요하다.
싸면서 품질 좋은 제품이 있을까
위쪽 표를 보면, 세탄가는 각 정유사별로 일정한 기준이 있다. 하지만 국내 주유소중 대부분은 직영이라고 해도, 중간 유통하는 곳에서는 그때그때 저렴한 수입산과, 국내 정유 제품, 반제품을 섞는다. 법에서 정하는 품질보정행위를 통해, 저렴해진 제품을 싸게 공급하는 것이다. 가격이 저렴한 대부분 주유소는, 전부가 그렇다곤 할 수 없겠지만 그날 그날 저렴한 제품을 매입한다. 물론 정해놓고 자사 기름만 가져다 쓰는 곳도 있다. 그런 곳은 근처 주유소보다 가격이 무척 비싸다. 품질이 우선일지, 가격이 우선일지는 운전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제품의 가격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심지어 바가지 요금조차). 세상에는 싸면서도 품질 좋은 제품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