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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족함이 없는 성도의 삶
시 23 : 1-6
다시 시작된 한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먼저 이것이 해결 되어야 합니다.
죄 문제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 받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있어도 불행합니다.
죄 문제는 인간의 행위로 해결되지 않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결 받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 받은 성도만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윗은 뛰어난 왕이었지만 어린 시절은 양을 키우는 목동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목자와 양의 관계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자기는 양이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였다는 사실을 성령의 감동을 통해 기쁨으로 고백하며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셨고 우리는 양이 되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따르면 환경과 관계없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안에 있는 우리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관계가 좋으려면 나의 목자 되신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잘 알수록 관계가 친밀해짐으로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렘 10:12-13) 여호와께서 그의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의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의 명철로 하늘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내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삼상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온갖 좋은 것들을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약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이 분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함으로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래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위해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사는 방법이 각각 다릅니다. 사자나 호랑이나 늑대같이 포악한 동물들은 연약한 동물들을 잡아먹고 삽니다. 소나 말이나 나귀는 열심히 일하며 고달프게 살아갑니다. 어떤 짐승은 굴을 파서 집을 짓고 먹을 것을 저장하여 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짐승들은 저마다 재주가 있어 살아갈 능력이 있지만 양은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유일한 방법은 목자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짐승들처럼 먹고 살기 위해 힘써야할 일이 없고 오직 목자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됩니다. 목자가 가는 대로 가고, 머무는 곳에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그래서 양에게 있어 목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기 때문에 모든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만 잘 따르면 부족함이 없는 삶이 됩니다.
시34:10절에서도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는데 왜 부족함이 없을까요?
1. 좋은 곳으로 인도하심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2절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목자는 양들이 좋아하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어디 있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앞장서서 양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여 배부르게 먹으며 쉬게 합니다.
지금도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목자들이 맨 앞에 서서 양들을 이끌고 나갑니다.
목자는 앞에서 무슨 말을 중얼거리며 가면 양들은 그 소리를 듣고 그 뒤를 따라갑니다.
양들은 주인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낯선 목소리는 따라가지 않습니다.
(요 10:3-5)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양은 시력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의 소리를 듣고 따라갑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제갈 길로 가기 때문에 길을 잃어버립니다.
길을 잃어버리면 양은 왔던 길을 찾지 못하고 골짜기에서 헤매다 죽습니다.
그래서 양은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면 모든 것을 보장받기 때문에 스스로 먹이를 준비하거나 창고를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목자가 다 알아서 준비하여 필요에 따라 주거나 인도하여 배부르게 먹고 쉬게 합니다.
양들은 배가 고프면 놀지 못하고 눕거나 쉬지 못합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면 평안하게 놀고 쉬기 때문에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푸른 초장은 맛있는 풀들이 넉넉하게 있고, 편안하게 쉬며 누울 수 있는 곳이고
쉴만한 물가는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안전하게 물을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이 양들에게는 안식처요 천국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도 우리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살 길은 오직 목자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고 부족함이 없습니다.
양이 자기 멋대로, 자기 생각대로 길을 가면 반드시 죽고 망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때로는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자는 양을 안전하게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 앞에 서서 인도하심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2.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줌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소생하다는 말은 되돌아오게 하다, 살게 하다, 회복시킨다, 새 힘을 준다’는 뜻으로 죄로 죽었던 우리 영혼을 성령을 통해 살리셨고 지칠 때마다 새 힘을 주어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보면 어려운 일로 인해 지쳐 마음의 평강을 잃어버리고 활력이 없습니다.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함으로 영혼이 힘을 잃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떤 양은 병들어 넘어지고, 어떤 양은 목자를 떠나 도망치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가시에 찔리고 어떤 양은 웅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고통당하다가 죽습니다.
이런 모습이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에 든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혼이 병들고 곤고하면 무엇으로 회복 될 수 있습니까?
세상 것으로는 병든 영혼의 곤고함을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회복되어 새 힘을 얻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시고 소생시킬 수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영혼을 소생시킵니다. 말씀은 영혼을 소생시키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병든 영혼이 소생 되려면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이 지친 자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말씀은 낙심한 자에게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게 됨으로 관계가 회복되고 영혼이 살아나게 됩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어 부족함이 없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3. 주께서 함께하심으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따라 가다 보면 반드시 좋은 곳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르는 과정에는 음침한 골짜기도 통과해야 합니다.
4절을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목자가 양과 함께하는 한 최고로 안전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위험한 환경과 큰 고통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은 이러한 위험에서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이 성도와 함께할지라도 성도의 삶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라옵니다.
성도가 몸이 아플때도 있고, 자녀에게 어려움이 오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사단은 이러한 틈을 타서 굶주린 사자처럼 위협하여 두려움을 주고 근심하게 합니다.
양은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방과 싸울 무기가 없습니다.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들소와 같이 뿔도 없고 말처럼 빨리 뛰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양들은 싸울 능력이 없고 겁이 많기 때문에 위험하면 도망치면 다른 양들도 놀라 이리저리 흩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웅덩이에도 빠지게 되고 사나운 짐승에게 죽기 때문에 목자가 양을 지키기 위해 막대기와 지팡이를 가지고 양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틴의 목자들은 4가지를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동물 가죽으로 만든 염낭은 자기가 먹을 음식을 넣습니다. 그리고 투석기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사용하여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그리고 막대기입니다.
이 막대기는 나무로 만든 곤봉으로 들짐승이나 도적들과 싸울 때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는 무사히 우리에 도착하면 지팡이를 가로질러 양의 문에 걸쳐 놓습니다.
그러면 양들이 그 밑으로 지나갈 때 다친 양들을 찾아내서 치료해 주었습니다. 겔20:37
어려움을 당할 때 성도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를 위로하시고 도와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고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 푸른초장과 안전한 우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결론 : 다윗은 경험을 통해 자기는 양이고 여호와는 자신의 목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목자이신 여호와만 의지하고 따름으로 부족함이 없었다고 노래했습니다.
양의 생존 방법은 오직 좋으신 목자를 의지하고 따르는 길 밖에 없습니다.
좋은 목자가 있는 곳에 푸른 초장이 있고, 쉴 만한 물가가 있고, 안전이 있고, 평안이 있고, 쉼이 있기 때문에 목자이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도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주달영
(2) 하나님의 환대
성경본문: 시편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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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힘든 한 주간을 보내고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우리들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9월14일... 2021년의 하반기 날이기도 한데요... 서로에게 격려의 인사를 해보기로 하지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무실에 있으면 가끔씩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무엇인가를 얻으러 오시는 분들인데요... 그런 분들에게는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도움을 드립니다.
이제는 찾아오시는 분들이 아주 고정되다시피하였고... 알게 모르게 정도 들어서 그런지... 오랜 시간을 찾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한 십년도 넘은 분도 있는데요, 이제는 함께 늙어 가는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어떤 분은 매주 찾아왔었는데요, 다른 교회에 가서 그 분을 보고나서는 이젠 격주로 들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더니... 벌써 몇 년 째... 아주 정확하게 격주로 토요일이면 제 방의 문을 두드리시는 분도 있습니다.
자주 대하다보니 사정도 조금씩 듣게 됩니다.
영등포 역 앞의 쪽방에서 초등학교 육학년 된 아들과 함께 지낸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를 들렸다가 점심을 제공하는 교회에 들려서 점심식사를 하고는 다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다른 분은 가족들은 의정부 근처에 살고 있는데, 혼자만 노숙자처럼 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생하지 말고 들어가시라고 했더니 그런다고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이렇게 도움을 청하러 오는 여러분들 중에서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좀 들고 허리가 거의 90도로 굽으신 분이 방문을 두드리시길래... 당연히 도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반응이 저를 참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고개를 깊숙이 숙여서 땅에 닿을 정도로 몸을 숙이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순간적으로 제가 당황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인사를 받아도 되나... 이 분은 내가 자기에게 준 것보다 더 많은 감사를 내게 표현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사람을 대하여 보았지만...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런 분들이 제게 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다른 교회보다는 더 많이 도와줄 거야...’ 그런 섣부른 교만함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등이 굽은 노인의 인사는 그런 제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요즘도 가끔씩 조심스럽게 제 방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다른 한 분을 데리고 함께 찾아옵니다. 이 두 분은 다 나이가 많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니 두 분다 한 쪽 팔을 잃은 분들입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제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합니다. 난 이렇게 정중하고 깊은 감사를 받을만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 분은 내가 자기에게 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베풀고 있구나... 하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이렇게 제게 찾아왔던 그 노인이 제게 보여준 행동은 제게는 참 소중한 삶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분은 내가 그분에게 베푼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베풀고 있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단순히 계산으로 따져본다면... 당연히 제가 그분에게 베푼 것이지요.
그분은 단지 그것이 고맙다고 제게 인사를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도... “난 이렇게 깊은 감사를 받을 만큼 한 일도 없는데... 난 그분에게서 너무나 많은 감사를 받고 있구나... 그분을 통해서 깊은 환대를 받은 느낌...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요...
주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우리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태25:40)
그 분을 생각하다가 문득 이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맞아... ‘그 분이 주님일지도 몰라... 주님이 나를 찾아 오셔서 내가 그분에게 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지나친 환대를 베풀어 주신 거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 마음 속에는 환대라는 말... 특별히 ‘하나님의 환대’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깊은 환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며 사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한 것은 아주 작고 변변치 못한데도...하나님은 언제나 나에게 넘치도록 베풀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구나... 저는 제게 도움을 청하러 찾아 왔던 한 노인이 제게 했던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는 아주 특별한 대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는 ‘환대를 받았다... 아주 대접 잘 받았다... 내가 한 일에 비해서... 내가 기대하고 생각하던 것보다 넘치도록 대접을 받고 사랑을 받았다...’ 살면서 이런 순간이 있었는지요?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였습니까?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뭐 그리 남다르게 누리며 사는 것이 없다고 하여도... 항상 마음 가운데 그런 느낌과 확신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난 하나님으로부터 지나친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하게 되고... 부요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것을 깨닫는 순간일 것입니다. ‘난 하나님께 환대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넘치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는 환대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한 주간동안 한 번 잘 생각해 보시고 발견하는 기쁨과 감동이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기도하시다가 그런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는지요?
‘도대체 나는 뭐지? 이렇게 하나님께 당당하게 청구서를 아침마다 디밀어 놓고도 미안한 기색 없이 돌아가는 나는 뭐지...’
나는 늘 하나님께 달라고만 하고... 하나님은 또 그것을 주시려고 분주히 뛰어 다니실 거고... 그런 관계말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갑이고 하나님이 을이신 것 같습니다.
그 청구서라는 것은 또 얼마나 엉뚱하고 어이없는 것들인가요?
정말 다른 사람이 볼까 부끄러운 것들로 채워져 있지는 않으신가요?
우리는 그런 것들을 아주 당연한 듯이 하나님께 달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가보다... 이렇게 체념을 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엔 그냥 순순히 포기하게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때는 하나님을 향하여 좋지 않은 마음을 가지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우리의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 보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무슨 권리로 하나님께 이렇게 할 수가 있는 것인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는 지나친 환대의 목록에 반드시 집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할 때마다 그런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환대이다. 내게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 나의 기도를 일일이 다 들어 주시는 하나님 참 감사 합니다... 이런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누리며 살고 있는 생명 자체가 하나님의 환대라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는지요?
헨리 나웬은 그런 글을 읽고 생명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나에게 맡기실 정도로 나를 소중히 여기신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나의 인생을 살 수도 있었겠구나...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난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리는 생명... 우리는 그것을 아주 당연히 여기기도 하고... 때로는 아주 버겁게 느끼기도 하지만... 내가 오늘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환대가 아닐까요?
‘너희가 일구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세우지 아니한 성읍을 내가 너희에게 주어서, 너희가 그 안에 살고 있다. 너희는 너희가 심지도 아니한 포도밭과 올리브 밭에서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이다.’(여호수아기24:13)
이 말은 이제 막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수아가 남긴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땅의 주인이 된 이스라엘만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많은 것들... 우리가 누리고 살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미리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며... 내가 입고 있는 옷이며,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손길을 통하여 나를 위하여 미리 준비하여 놓으신 것입니다.
내가 일일이 자동차의 부속품을 깎아 만들어서 차를 조립해야하고... 그것들이 다닐 길들을 닦아야 한다면... 아마도... 우리들은 생전에 자동차를 타기는 정말 힘들 것입니다.
우리가 늘 당연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 다시 생각해보면 여기에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환대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오늘 내가 세상을 잘 살 수 있도록 많은 것을 준비하신 다음에 가장 좋은 시간을 골라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배려와 환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늘 대하는 자연은 또 어떻습니까?
예전에 이스라엘의 한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늘과 해와 달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손길을 의식합니다.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 저 큰 하늘과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시8:3) ‘주님께서 손수 만드신’이라든지 ‘주님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이런 모든 것 가운데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거기서 그는 자기를 향한... 또는 더불어서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환대를 읽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 까지 돌보아 주십니까?(시8:4)
결국 그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을 운행하는 해와 달과 별들을 바라보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환대라는 것이지요.
“도대체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은 이토록 나를 소중히 여기시고 환대를 하시는 것인지... 그는 해와 달과 별들을 바라보면서... 거기서도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배려와 사랑을 읽고서 행복해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통해서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환대는 얼마나 풍성하고 신비한 것인지요..
우리는 벌써 뜨겁게 내리쬐는 햇빛과 무더위를 힘들어 하지만, 그 사이에 교회 마당에 심긴 감나무엔 벌써 작은 열매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들어 하는 뜨거움을 통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열매를 맺고... 성숙해가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들은 얼마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해 줄 것인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힘들게 느껴지는 뜨거운 햇살이나 불볕더위 속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환대를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 그런 것들을 생각하시면서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공연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힘들어 하지 마시고... 앞으로 한 주간 동안 그런 시간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살아오는 동안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환대는 어떤 것이었나?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또는 어떤 일을 통해서 나에게 특별한 사랑을 보여 주셨나?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환대를 찾아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환대받은 일들이 많이 생각나면 생각날수록 우린 더욱 풍성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다윗이 자기가 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환대를 아주 간략하게 함축해 놓은 말씀입니다.
아마 오늘 말씀이 생소하게 다가오는 분들은 이 자리에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자기를 환대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두 가지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목자이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가 가는 일이면 어디든지 앞장 서 가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그네를 맞이하여 주시는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집 주인의 모습을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오랜 객지 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정성껏 상을 차려 놓으시고 따스하게 맞아 주시는 부모님처럼 말이지요.
먼저 그는 하나님을 목자라고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목자라는 표현은 우리들이 느끼기엔 생소한 것입니다.
특히 나이가 많이 드신 어르신들은 어떠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 같은 동물을 끌고 다니면서 풀도 먹이기도 하시고, 개울가에 서서 물을 먹이시던 기억이 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목자라는 말은 아마 대부분의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실감나는 표현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목자라는 말보다는 젊은 사람들에겐 혹시 목자라는 말보다 ‘네비게이션같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는 나의 네비게이션이시니...’ 이렇게 번역하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머지않아 그런 설명을 달은 성경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사용할 때... 가장 신비한 것은...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알 수가 있나? 하는 것입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러면서 깨달아 지는 것이 바로 우리를 살피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기계도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내가 가야할 방향을 안내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곳을 향하여 가는 동안에 주유소는 어디에 있고... 식당은 어디에 있고... 어느 길로 가야만 막히지 않고 잘 갈 수 있는지... 네비게이션이 이렇게 모든 차들을 제각각 안내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야 말로 이런 일들을 못하실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좀 모순되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모르지만...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면서... 저에겐 이 시편의 말씀이 더욱 실감나고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아직 네비게이션이 갖추고 있지 못하는 기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른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v.3)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니 지치고 고단하여 힘을 잃어버리는 고비가 찾아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삶의 방향이나 목적을 잃어버렸을 때... 밥을 먹고 살기는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은 그 때에 우리를 찾아 오셔서 새로운 힘을 주시며, 가야할 곳으로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 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v.4)
내가 위험에 직면할 때... 내가 평소보다 어렵고 힘든 길을 갈 때... 그것을 아시고서 더 가깝게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목자가 양들을 보호하고, 양들을 위협하는 사나운 짐승들을 쫓아내듯이... 다윗은 그 광경을 아주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하나님께서 내 곁에 다가오셔서... 잔뜩 움츠러든 우리들을 감싸주시며, 사나운 짐승들을 친히 내쫓아 버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렇게 다윗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환대...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기의 길을 인도하시며, 힘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며... 위험에 닥칠 때마다 내 곁에서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생각해보면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닐까요?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 없이 우리의 길에서 동무가 되어주시고 목자가 되어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환대가 오늘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환대는 말씀의 후반부에 더욱 선명히 나타납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내 머리에 기름 부으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내 잔이 넘칩니다...’(v.5)
다윗은 이렇게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의 고백 그대로 나를 환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그를 이렇게 환대하여 주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삶을 지탱해 올 수가 있었습니다.
*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그는 여기에서 지금 자기가 직면한 상황이 얼마나 살벌하고 치열한 곳인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시골에서 양을 치고 피리 불며 지내던 때가 마음은 더 편하고 좋았겠지요. 너무나 살벌합니다. 사방에 자기를 향하여 달려드는 적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살벌하고 치열한 싸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을지... 그런데 그의 곁에는 그를 환대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 내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고... 하나님은 자기가 다윗을 사랑하고 있고... 그를 환대하신다는 것을 숨기려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다윗의 적대자들이 보는 앞에서 오로지 다윗을 위하여서만 잔칫상처럼 풍성하게 한상 가득 차려 주십니다.
다윗이 받은 잔칫상엔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어제 신문을 보니까 우리나라의 한정식이라는 것이 먹어도... 먹어도...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차리는 것이 기본적인 정서라고 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러셨을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 그것을 식탁을 통해서 표현하셨으니... 그 식탁은 얼마나 풍성한 것일까요? 하지만, 하나님의 환대는 이렇게 단순히 먹는 것에서만 그치지를 않습니다.
*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시어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주시니... 주님께서 친히 기름을 발라주신다는 것... 여기엔 두 가지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 이를테면 왕들이나 제사장들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께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것... 하나님은 우리들을 아주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기름에는 치유하는 힘도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름을 발라주신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우리를 치유하여 주시고 회복시켜 주신다는 뜻이 담겨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환대하여 주십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사느라고 지치고 허기진 우리들이 다시 배부를 수 있도록 한정식 집에서 나오는 식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풍성한 식탁을 사람들 앞에서 우리들을 위해서만 차려 주십니다. 그 식탁에서 우리는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주시며, ‘너는 나에게 아주 특별하다...’ 이렇게 사랑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시며, 우리의 모든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게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 여기야 말로 이런 하나님의 환대가 있는... 신비하고도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라에 나오시는지요?
저는 매 주일 새벽이면... 늘 이 말씀을 마음에 두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 자리가 하나님의 환대가 넘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영접하여 주시고... 모두가 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을 내려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이곳에서 상처를 치유 받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인 것을 알게 해달라고... 저는 그렇게 예배를 위하여 기도하고... 늘 그런 기대감과 희망으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야말로 하나님의 환대를 가장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환대’를 경험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는 중에... 여러분의 허기진 마음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생명의 양식을 통해서 다시금 배부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주심을 경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아주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야...’ 자기의 가치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금 찾으며, 세상을 사는 동안에 얻었던 모든 아픔과 상처들이 온전히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윗이 고백하는 것처럼 ‘내 잔이 넘칩니다...’(v.5) 이렇게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속에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2021년의 하반기 되는 날을 보내면서...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마음은 서로가 다를 것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시겠지요.
우리들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환대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똑 같이 분에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받으며 삽니다.’ 항상 이렇게 고백할 수밖엔 없습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