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양육 (눅 2:40, 52)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오늘 어린이주일을 맞이하여 “위대한 양육”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의 유명한 교육가에게 아이를 데리고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언제부터 교육할까요?" "아이가 몇 살 입니까?" "두 살입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2년 늦었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기 딴으로는 조기교육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갔는데 2년이나 늦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태어난 후 교육은 아무리 빨라도 늦은 것입니다. 누가는 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고(눅1:15), 한나도 아이를 갖기 전부터 기도로 준비했더니 사무엘 같은 위대한 선지자를 낳았습니다. 이걸 태교라고 하는데 아이는 태중에 있을 때 어머니의 감정 생각 믿음 음식까지도 크게 영향 받기 때문에 태교로 얻어진 것은 누가 바꾸지도 못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위대한 양육을 봅니다. 아기 예수님의 양육입니다. 어떻게 위대하게 양육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처럼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처럼 건강하게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40절에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52절에는 키도 자랐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의문 난 점이 예수님께서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어떻게 건강하게 자라실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은 무슨 특별한 음식을 드셨기에 그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셨을까? 아이를 양육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 배경연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가난해도 모유는 드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형편에 특별한 영양식을 드셨다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서민이 그랬던 것처럼 평범한 이유식 기간을 마치고 어른이 먹는 음식을 먹으며 자라셨을 것입니다. 특별한 방법이 나오지 않으니까 실망되십니까?
그러나 알고보면 아이의 건강과 성장에 특별식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흥부네 가정에 자녀의 복이 넘치잖아요? 행복도 넘치고요. 반면 예로부터 부잣집에는 아이 갖지 못하는 불임이 많았고 아이들의 신체에 문제가 있거나 두뇌도 뛰어나지 못했습니다. 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난해서 화려하게 살지 못해도 보통으로만 살면 건강하게 태어나서 건강하게 자라도록 다 장치해주셨습니다. 저는 그걸 말씀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잘못된 지식으로 이러쿵저러쿵 사고 쳐서 병이 들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 왜 그리 잔병치레가 많은지, 누구 책임일까요? 기르는 어른 책임입니다. 아이들이 면역이 약하다 약하다고 하는데 잘못 길러서 그렇지 좋으신 하나님이 아이들을 약하게 세상에 보내신 줄 아세요? 원래는 아이들이 면역력이 더 강합니다.
구약에 아이들에게 할례를 베풀었는데 의학적으로도 아이 때 상처가 잘 낫는 등 면역이 강하다고 합니다. 얼마나 혈액순환도 잘되는지 내의만 입고서도 추운 줄 모르고 잡니다. 어릴 때는 다쳐도 속히 낫고 흉터도 없어지고 얼도 들지 않습니다. 작물도 어릴 때는 생명력이 얼마나 강합니까? 노균병 희가루병 탄저병 같은 온갖 병이 만연해도 어린 작물은 병들지 않습니다. 병들지 않게 약을 품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이 약해졌습니까? 음식이 잘못되었습니다. 태중의 아이는 어머니의 양수와 같은 염도를 먹고 자랍니다. 그 뿐 아니라 태아는 양수 속에 떠있고 태아의 코와 귀 안에까지 양수가 차있어 효과적으로 고막에 소리를 전달 받고 자랍니다. 양수는 0.9%의 소금물입니다.
그런데 태어나면서 모유 먹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분유를 먹는데 분유가 얼마나 싱거운지, 그리고 이유식이 얼마나 싱거운지 거의 맹물에 가깝습니다. 거기다 나트튬 뿐인 정제염입니다. 인체는 유기미네랄 뿐 아니라 무기미네랄이 꼭 필요한데 염성이 부족하니 잔병치레만 하면서 자라지요. 그런 아이에게 소금을 조금 쳐서 주면 더 달라고 정신없이 먹습니다. 염분이 부족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구 발표에 의하면 아이들을 어른과 같은 염도로 먹이면 신체와 뇌가 발달해서 잔병도 없고 골격이 튼튼한 장군체질과 공부도 잘하는 천재가 된다고 합니다. 백혈병도 오지 않고 백혈병으로 피를 토하다가도 소금물 먹이면 낫습니다. 요즘 기형이거나 치명적인 병으로 중환자실에서 어린 생을 보내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 어른들 잘못입니다.
산모나 아이들은 전자매트 발열필름 등을 쓰지 마시시기 바랍니다. 어른들도 쓰고나면 뒷머리가 띵하는데 종일 거기 누워 지내는 아이들은 얼마나 뇌에 피해가 오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거 심하게 쓰다가 아이들에게 지적장애가 오거나 손발이 비틀어지고 꼬이고 그런데 깨닫지 못하고 지금도 쓰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하나님이 기르십니다. 예수님처럼 보통으로 키우세요. 자연으로 기르세요. 목수 일을 돕던 예수님처럼 일도 시키면서 기르세요. 아이들이 하나님입니까? 어른들이 잘못만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우리 기대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바르게 자랍니다.
2. 예수님처럼 지혜와 지식으로 충만하게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40절에 “지혜가 충만하며”, 52절에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어떻게 자라셨기에 이렇게 지혜로우셨을까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었겠지만 우리는 당시 유대인들의 교육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경을 여러 이야기 중심으로 꾸며놓은 탈무드를 읽으며 자랐습니다. 탈무드는 유대 5000년 역사의 지혜서입니다. 유대인들이 태어날 때는 우리와 같지만 탈무드를 배우기 때문에 지혜나 지식에 있어서 그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탈무드는 성경을 기초로 하되 그 교훈이 대부분 우화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탈무드의 교훈이 어린이에게도 쉽게 다가와 두뇌에 연상작용을 일으켜 잊으려야 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뇌는 의미와 연상작용을 통해서 기억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미건조한 지식은 뇌가 기억하지 못합니다. 전화번호 가르쳐 주면 그냥 잊어버립니다.
어린이는 낱말이나 문구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무미건조한 설명으로는 그 뇌에는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 파일이 깔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미 있는 이야기라든지 충격적인 사건들은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화번호도 연상화시켜 외우고, 원어나 외국어도 연상법으로 외우면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시대의 탈무드가 주는 교육입니다.
지혜만 자랐을까요? 예수님은 지식도 충만했습니다. 눅2:46-47에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니,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주입식 교육으로는 부족합니다.
자꾸 왜 라는 질문을 하도록 습관화시켜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 교육법을 ‘하브루타’라고 합니다. 하브루타란? 히브리어로 '친구'라는 뜻에서 나온 말로 둘씩 짝을 이루어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며 논쟁하는 토론식 공부법을 가리킵니다. 친구의 말을 받아 의문난 점을 질문하고 그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이런 심화학습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유대인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 오면 먼저 하는 질문이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니? 어떤 질문을 했니?' 하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질문하면 건방지다고 낙인을 찍지만 유대에서는 그것이 자유로운 학습방식입니다. 매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삽니다. 유대인은 하브루타의 토론문화를 평생 실천한다는 점에 우리와 다릅니다.
그래서 남다른 시각과 사고를 가진 자가 되어 세계에서 독특한 기지를 발휘해 사업을 하고 부를 쌓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의 부요를 유대인들이 다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도록 일해도 그 이윤을 유대인들이 가져갑니다.
삼성전자 주식만 해도 90%가 유대인들 자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돈 버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행이나 현찰을 좋아하고 주식을 해도 샀다 팔았다 반복하다가 잃고 말지만, 그들은 희망이 있는 기업을 발견하면 투자하고 몇 십 년이고 그대로 둡니다. 그 사이 삼성의 주식이 몇 백배로 뛰었는데 그 이익의 대부분이 유대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1억이 100억이 되고 1000억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이의 성년식에 좋은 기업을 골라 아이들에게 통장을 맡기면 아이들이 그 늘어나는 통장을 보면서 금융을 배우고 결혼할 즈음이 되면 벌써 부자가 되고 은퇴할 즈음이면 갑부가 되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살다가 마지막에는 사회에 기부하고 떠난다고 합니다.
다 성경이 예언한 말씀입니다. 사60:5에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영적 이스라엘인 여러분들도 그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앙도 배우고 경제도 배우고 건강도 배우고, 그것을 아이들에게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도 질문하셨습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기드온도 다윗도 질문했습니다. 질문 잘하는 사람은 모두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질문의 삶을 살아라”고 하였습니다. 질문이 많아야 성숙해지고 머리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자신의 뜻을 주장하려면 질문하면 됩니다. 남을 설득하고 싶어도 질문이 효과적입니다. 청중을 존중하고 싶어도 질문이 방법입니다. 질문할수록 그리고 좋은 질문일수록 더 위대한 결과를 만듭니다. 질문을 많이 하면 처음에는 바보 취급 받지만 마지막에는 성공합니다.
3. 예수님처럼 은혜롭고 사랑스럽게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40절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52절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했습니다. 예수님 얼마나 은혜로 충만하셨습니까? 요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3:34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예배하는 아이들로 기르시기 바랍니다. 주일예배와 아울러 가정예배를 실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봉사와 섬김을 가르치시기 바랍니다.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정복하려다가 실패했지만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하셨습니다. 지금도 러우전쟁이 계속되지만 이웃 나라와 사이 좋게 지내며 침략하지 않고 예수님 정신으로 나라를 다스리면 한없이 강대국으로 발전할 텐데 역사를 바꾸고 간첩을 보내고 무력을 쓰는 등 온갖 방법으로 정복하니까 함께 멸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순간에도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주님도 태어나서 헤롯에게 그럴 뻔 했습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요셉과 마리아와 같은 사명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신 것처럼 이 땅의 어린이들을 그렇게 양육하십시다.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어린이인 우리들도 영육 간에 더욱 장성하고 지혜롭고 은혜롭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