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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집 제3권=문목(問目)-퇴계 선생께 올림〔上退溪先生〕
문: 〈심경찬(心經贊)〉에 “형기에서 생기고[生於形氣] 성명에 근원한다.[根於性命]”고 하였는데, 생(生)은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긴다는 생이고, 근(根)은 성명의 바름에 근원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호운봉(胡雲峯)이 ‘생(生)은 기(氣)가 이미 용사(用事)했을 때 비로소 생기는 것이고, 원(原)은 대본(大本)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니, 기(氣) 가운데 나아가 기(氣)에 섞이지 않은 것을 가리켜 말한다.’고 하였는데, 어떻습니까?
선생 답 이 말이 정밀하고 합당하네.
문: 칠정(七情) 중에서 어찌 이 네 가지만 말했습니까?
선생 답 《예기》에서는 이것을 말하면서 호요(好樂)로써 첫머리로 삼았고, 《대학》에서는 이것을 말하면서 분치(忿懥)로써 우선으로 삼았으며, 《중용》의 수장과 정자의 〈호학론(好學論)〉은 모두 희로(喜怒)로써 우선으로 삼았으니 이 네 가지가 칠정 중에서 먼저 발용(發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네.
문: 성명(性命)은 하늘이 사물에 부여한 관점으로 보자면 마땅히 ‘명성(命性)’이라 해야 할 것 같은데, ‘성명(性命)’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 답 하늘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부여한 것[命]이 성(性)보다 앞서 있으니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라는 것이 이것이네. 이 성명(性命)은 사람과 사물이 부여받은 뒤에 그 유래를 미루어 말한 것이니, 성정(性情)과 비은(費隱)이라 하는 경우가 이것이네.
문: ‘지가 미치고 인으로 지킨다.[知及仁守]’에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지가 미치는 것은 정(精)에 속하고, 인으로 지키는 것은 일(一)에 속하네.
문: ‘일지(一指)……필변(必辨)’의 설은 무엇을 말합니까?
선생 답: 대체(大體)와 소체(小體)에서 귀천(貴賤)을 구분하고, 단사(簞食)와 만종(萬鐘)에서 예의를 변별하는 것은 모두 인심과 도심의 일에서 정일(精一)함을 다하는 것이네.
문: ‘거두다[歛之]’와 ‘흩는다[散之]’에서 거두는 것은 곧 방심(放心)을 거두는 일이고, 흩는 것은 확충하는 일입니까?
선생 답: 거두는 것은 거두어 되돌아온다는 말로, 마음속에 나아가 말한 것이지 방심을 거두는 공부를 이른 것이 아니네. 흩는 것은 놓아서 흩어버리는[放撒] - 살(撒) 자의 음은 살(殺)이니 흩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 것을 말하니 만사와 만물에서 보는 것을 말한 것이요 확충하는 공부를 이른 것이 아니네.
문: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묘하다.[人心惟危 道心惟微]’에서 인심이 도심의 앞에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기(氣)가 형체를 만들고 이(理)가 또한 부여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까?
선생 답: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인심보다 쉽게 나타나고 가장 먼저 나오기 것이 없기 때문이네. 어찌 순 임금이 이기(理氣)의 선후를 생각해서 이렇게 말했겠는가. 이기의 선후는 다만 후대의 현인이 전대의 현인이 미처 발명하지 않은 뜻을 발명한 것일 뿐이니, 이것을 가지고 해석해서는 안 되네.
문: 인심(人心)을 인욕(人欲)이라 한다면 어찌하여 도심(道心)에서 어긋나지 않고 어찌하여 인욕으로 흐르지 않겠습니까? 정자(程子)는 일생 동안 주자는 초년에 모두 이것을 가지고 교육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 답: 인심(人心)이 이치에 맞고 절도에 맞으면 좋고, 이것에 어긋나면 좋지 않다. 정밀하게 살피고 한결같이 지키면 도심을 어기지 않고 인욕으로 흐르지 않을 걸세. 정자가 “인심이 인욕이다.”라고 하였는데, 주자가 만년에 그 설이 미진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부득이 고치고 지금의 설을 따른 것이네.
문: 사람이 으슥한 방구석[屋漏]에 있으면서 어떻게 푸른 하늘을 대할 수 있습니까?
선생 답: 땅 위가 모두 하늘이니, 그대와 함께 노니는 곳이 어디를 간들 하늘이 아니겠는가. 하늘이 바로 이(理)이니, 진실로 이치가 없는 사물이 없고 그렇지 않은 때가 없다는 것을 안다면 상제(上帝)를 잠시라도 떠날 수 없고 잠시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이네. 상제는 하늘이 주재하는 곳을 가리켜 말한 것이네.
문: ‘학문(學問)’ 두 글자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자기에게서 배우고 남에게 묻는 것이네.
문: ‘평소의 말과 행동에서 사특함을 막고 성실함을 보존하는 것[庸言庸行 閑邪存誠]’이란 무슨 뜻입니까?
선생 답: 평소의 말과 행동은 외면을 위주로 말한 것이고, 사특함을 막고 성실함을 보존하는 것은 내면을 위주로 말한 것이니, 다만 미덥게 하고 삼가는 것으로써 사특함을 막고 성실함을 보존하는 도리로 삼은 것은 아니네.
문: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어찌하여 두 항으로 나누어 설명했습니까?
선생 답: 성의(誠意)는 거의 발(發)하는 곳에서 말한 것이고, 정심(正心)은 마음의 전체를 들어서 말한 것으로 비록 두 항목이더라도 이것으로 두 절의 뜻을 밝혔다고 할 수 없네. 그러나 오씨(吳氏)는 이런 뜻을 알지 못하고 “성의와 정심은 그 등급을 건너뛸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옳지 않네.
문: 호연지기(浩然之氣)에 관한 것으로, 여기에서 도(道)와 이(理)를 말하면서 뒤이어 기(氣)를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선생 답: 도(道)와 이(理)가 비록 기(氣)와 다르나 실제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네. 그렇기 때문에 이(理)가 기(氣)에 충만하면 기가 호연(浩然)하게 될 수 있고, 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理)도 붙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되네. 진실로 의(義)와 도(道)를 짝하여 호연하게 되면 기(氣)라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이(理)가 충만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네. 그렇다면 도와 이를 논하면서 뒤이어 호연지기를 말하는 것이 어찌 불가하겠는가.
문: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호연지기가 바로 나의 기운이다. 잘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천지에 가득찬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하우(下愚)의 자질을 가진 사람도 이 기(氣)가 있습니까? 만약 역시 호연지기가 있다면 어찌하여 탁하고 악한 기질이 있습니까? 임천 오씨가 말하기를 “사람이 품부 받은 기(氣)가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며 아름답기고 하고 악하기도 하다. 기가 탁하고 질이 악하면 이(理)가 그 가운데 있더라도 구애되고 물들어서 그 본연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 기질 위에 따로 일종의 호연지기가 있지만 이 기질 속에서 곡망(牿亡)하여 비록 있더라도 호연지기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까?
선생 답: 하우(下愚)의 사람은 기(氣)가 본래 탁하고 악하네. 기의 본질은 호연지기와 한 가지일 뿐이고 따로 일종의 기가 있는 것이 아니네.
문: ‘안배포치(安排布置)’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안(安)은 안돈(安頓 배치)의 안(安)이고, 배(排)는 배포(排布 분배)이네. 안돈과 배포는 모두 뜻을 기울여 처리하는 것을 말하네.
문: 안연(顔淵)이 인(仁)을 물었는데 공자가 예(禮)로써 고해 준 것은 어째서입니까?
선생 답: 인(仁)이란 마음의 덕(德)이고, 예(禮)란 이(理)의 절도이니, 마음이 보존되지 않으면 이(理)가 어떻게 절도에 맞으며 이가 절도에 맞지 않으면 마음이 어떻게 보존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미 예(禮)로써 답하시고 그 항목을 묻자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에 나아가 말해 주는 데 지나지 않았으니 배우는 이가 먼저 밖을 제어하도록 하고자 한 것이고, 정돈되고 엄숙한 일로 내면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것이네. 이것이 성인의 말씀이 정미하고 치밀한 이유이니 후대의 배우는 이가 진실로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예에 힘써서 본심의 덕이 날마다 마음속에 보존된다면 안자(顔子)의 지위에 나아가지 못할까 근심할 것이 없네.
문: 일마다 인이 만들어 낸다[事事是仁做出來]는 것에 관한 것으로, 일마다 각각 하나의 이치가 있어서 서로 빌리지도 않고 서로 더하지도 않는데, 지금 인(仁)이 만들어 낸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선생 답: 이(理)는 진실로 서로 빌릴 수 없으나 한 가지 일을 하는데 마음이 보존되지 않으면 이 일을 이룰 수 없네. 《대학》에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視不見聽不聞]’는 것과 《중용》에 ‘성하지 않으면 물이 없다.[不誠無物]’는 것이 모두 이것을 말한 것이네. 마음이 보존되면 인하고 보존되지 않으면 인하지 못하니, 만약 인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성(誠)하며 어떻게 물(物)이 있겠는가.
문: 제가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아는 것과 상제와 귀신 등의 설을 인용한 것에 대하여 반드시 아는 것 같았으나 끝내 의심이 없을 수 없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선생 답: 주자가 “잠시 내버려 두라. 확실하고 분명한 곳에 나아가 공부해야지 곧바로 알기 어려운 곳에 나아가 힘을 써서는 안 된다. 만약 여기에 오랫동안 힘을 쓰면 반드시 괴이함이 생길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주자의 이 말씀은 바뀔 수 없네.
문: 정자(程子)가 “남과 나는 진실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하는데, 주자는 혹자에게 답한 말에 “내가 알면 남도 반드시 그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자가 ‘하늘과 땅이 아는 것이 다만 하나의 앎이다.’라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정자와 주자의 이 설이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선생 답: 이러한 곳은 마땅히 융통성 있게 보아야지 한쪽에 얽매어서는 안 되네. 정자는 일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주자는 이(理)를 가지고 말한 것이니 어찌 서로 모순됨이 있겠는가.
문: ‘지는 장수이다.[志帥]’와 ‘심은 임금이다.[心君]’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선생 답: 그 대체를 총괄해서 말하여 ‘심은 임금[心君]’이라 하였고, 그 가는 바를 가리켜 말하여 ‘지는 장수[志帥]’라 하였지만 실제로는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네.
문: 산에 대해서는 성(性)으로 말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정(情)으로 말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선생 답: 성(性)은 곧 정(情)의 근본이고, 정(情)은 바로 성(性)의 묘맥(苗脈)이다. 성(性)을 말함에 정(情)이 그 가운데 있고, 정을 말함에 성이 그 가운데 있어서 서로 발하게 되네. 그러나 산은 정이 없고 사람은 성과 정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산에 대해서는 반드시 성으로 말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정으로 말하는 것이네.
문: 방기방멸(方起方滅)에서 멸(滅)도 역시 마음의 작용이라 하는 것[心之用]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 답: 방(方) 자에 깊은 의미가 있네. 마음이 일어났다가 바야흐로 정(靜)으로 돌아갈 때를 ‘멸(滅)’이라 하니 적멸(寂滅)의 멸(滅) 자와는 다르네.
문: 마음을 ‘신명의 집[神明之舍]’이라고 하는 것은 괜찮지만 ‘신명의 주인[神明之主]’이라고 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생 답: 신명(神明) 두 글자는 단지 마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허령불매(虛靈不昧)한 까닭을 말한 것이네. 그러니 주인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마음은 본래 한 몸의 주재가 되면서 신명의 주인이 되네.
문: 굶주리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이 사람으로서 없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묻습니다.
선생 답: 굶주리면 밥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은 보통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상지(上智)의 사람이라도 없을 수 없는 것이네. 그러나 없을 수 없는 것은 천리(天理)로서 바른 것이고, 막 하고자 하는 바가 있게 되면 이미 인욕의 사사로움으로 흘러버린 것이네.
문: 보존하지 못하는 것을 곡망(牿亡)이라 하는데, 보존하지 못하는 것은 대개 이(理)를 가리킨 것인데 곡망이라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 답: 보존하는 것은 이(理)이지만 보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곡망(牿亡)시키기 때문이네.
문: 진실이 확립됨[誠立]은 실체(實體)가 편안하고 견고함을 이르고, 밝음이 통함[明通]은 실용(實用)이 유행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그렇다면 성자(聖者)에 대해서는 오직 용(用)을 말하고 체(體)는 언급하지 않고, 현자(賢者)에 대해서는 유독 체(體)를 말하고 용(用)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선생 답: 서로 바꾸어 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네. 현자(賢者)는 성립(誠立)하기만 하고 명통(明通)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며, 성자(聖者)는 명통(明通)하기만 하고 본래 성립(誠立)이 없는 것이 아니네. 다만 이 성자와 현자 사이에 성립(誠立)하고 명통(明通)하는 것이 고하와 정추의 차등이 없지 않을 뿐이네.
문: ‘뜻이 정밀하다.[旨意精密]’라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선생 답: 이러한 부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으니, 자신이 깊이 음미하고 실제로 실행해서 스스로 터득해야 하네. 다른 사람에게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묻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자신이 그 음식을 먹어보고 그 맛을 본 뒤라야 알 수 있는 것이네. 자신이 애초에 먹어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맛을 물어서야 되겠는가. 배우는 사람은 이 점을 깊이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되네.
문: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논다.[鳶飛魚躍]’라는 것이 ‘반드시 일삼을 바가 있으면서도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라.[必有事焉而勿正之意]’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선생 답: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노는 것을 보면 이 이치의 전체(全體)가 드러나고 묘용(妙用)이 분명히 행해짐을 볼 수 있네. 이것은 하늘 사이에서 화육(化育)이 행해지고 상하에서 밝게 드러나는 곳을 가지고 말한 것이네. 사람이 반드시 일삼음이 있으면서도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아니하여 마음에 잊지 않고 조장하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나고 묘용이 분명히 행해져서 저것과 둘로 나뉘지 않네. 조금이라도 기대하고 조장하는 병통이 막 생긴다면 전체가 가려지고 묘용이 그칠 것이네. - 이 편의 문목은 시기를 알지 못하여 우선 여기에 종류별로 붙여둔다. -
[주-D001] 호운봉(胡雲峯) :
원(元)나라 호병문(胡炳文, 1250~1333)으로, 운봉은 그의 호이다. 자는 중호(仲虎)이다.
[주-D002] 지가 …… 속하네 :
《심경부주》 〈심경찬〉에 나오는 ‘지가 미치고 인으로 지키는 것[知及仁守]’에 대한 설명으로, 지급(知及)은 정(精)에 속한 것으로 지(知)를 말하고, 인수(仁守)는 일(一)에 속한 것으로 행(行)을 말한다.
[주-D003] 일지(一指)……필변(必辨) :
《심경부주》 〈심경찬〉에 “한 손가락과 어깨와 등 중에 무엇이 귀하고 무엇이 천한가. 한 그릇 밥과 만종에 대해서도 사양하고 받음을 반드시 분별해야 하네.[一指肩背, 孰貴孰賤, 簞食萬鍾, 辭受必辨.]”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04] 거두다와 흩는다 :
《심경부주》 〈심경찬〉에 “마음에 거두면 태극이 내 몸 안에 있고, 만물에 흩으면 그 쓰임이 무궁하다.[ 斂之方寸, 太極在躬, 散之萬事, 其用弗窮.]”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05] 인심은 …… 미묘하다 :
《심경부주》 권1 〈인심도심장(人心道心章)〉에 보인다.
[주-D006] 평소의 …… 것 :
《주역》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평소의 말도 미덥게 하고 평소의 행실도 삼가며 사특함을 막고 성실함을 보존해야 한다.[庸言之信, 庸行之謹, 閑邪存其誠.]”라고 하였다.
[주-D007] 성의(誠意)와 …… 설명했습니까 :
《대학장구》에는 〈성의정심(誠意正心)〉이 하나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심경부주》에는 〈성의장〉과 〈정심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D008] 성의와 …… 없다 :
《심경부주》 〈한사존성장(閑邪存誠章)〉에 오징(吳澄)이 “뜻을 성실히 하고서 마음을 바루는 것이니, 그 등급을 어떻게 건너 뛸 수 있겠는가.[誠意而正心, 其等豈可躐哉.]”라고 하였다.
[주-D009] 호연지기(浩然之氣)에 …… 것 :
《심경부주》 권1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도가 있고 이치가 있으면 하늘과 인간이 하나여서 다시 분별되지 않으니, 호연지기가 바로 나의 기이다.[有道有理, 天人一也. 更不分別浩然之氣, 乃吾氣也.]”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10] 임천 오씨(吳臨川) :
원(元) 대의 사람으로 이름은 징(澄), 자는 유청(幼淸)이다. 세인들은 흔히 초려 선생(草廬先生)이라 불렀다.
[주-D011] 사람이 …… 것이다 :
《성리대전》과 《오문정집(吳文正集)》에 보인다.
[주-D012] 곡망(牿亡) :
곡망(牿亡)의 곡(牿)은 곡(梏)과 같다. 《맹자》 〈고자〉에 “사람은 다 착한 본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욕(利慾) 때문에 그 본심이 교란당하여 흐려 없어진다.[梏亡之矣]”라 말한 것이 있다.
[주-D013] 방기방멸(方起方滅) :
《심경부주》 권3 〈우산지목장(牛山之木章)〉에 주자가 석돈(石墩)에게 답한 편지가 실려 있는데, “호 문정이 말한 ‘일어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것은 마음의 대체이고, 일어나고 없어지는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항상 잡아서 보존한다면 비록 하루 사이에 백 번 일어나고 백 번 사라진다 하더라도 마음은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한 것은 좋은 말이다.[胡文定公所謂不起不滅, 心之體, 方起方滅, 心之用, 能常操而存, 則雖一日之間, 百起百滅, 而心固自若者, 自是好語.]”라고 하였다.
[주-D014] 곡망(牿亡) :
곡(牿)은 곡(梏)과 같다. 《맹자》 〈고자〉에 “사람은 다 착한 본심을 가지고 있지만 이욕(利慾) 때문에 그 본심이 교란당하여 흐려 없어진다.[梏亡之矣]”라고 말한 것이 있다.
[주-D015] 진실이 …… 것 :
《심경부주》 권4 〈양심장(養心章)〉에, 주돈이(周敦頤)가 〈양심설(養心說)〉에서 “마음을 기름은 욕심을 적게 하여 욕심이 남아 있는 데에 그칠 뿐만이 아니라 욕심을 적게 하여 욕심이 없음에 이르러야 하니, 욕심이 없으면 진실이 확립되고 밝음이 통한다. 진실이 확립됨은 현인이요 밝음이 통함은 성인이다.[養心不止於寡而存耳. 蓋寡焉, 以至於無, 無則誠立明通, 誠立賢也, 明通聖也.]”라고 한 것에 대해 주자(朱子)가 설명한 것이다.
[주-D016] 뜻이 정밀하다 :
《심경부주》 권4 〈시청언동사잠(視聽言動四箴)〉에 주희(朱熹)가 “사잠을 옛날에 볼 때는 다만 평상적인 말씀이라고 여겼는데, 근래에야 비로소 그 뜻이 정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四箴舊見, 只是平常說話, 近乃覺其旨意精密.]”라고 한 것을 말한다.
[주-D017] 솔개가 …… 것 :
《심경부주》 권4 〈존덕성명(尊德性銘)〉에 보이는 내용으로, 정이(程頤)가 같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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