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입춘도 지났고 꽃피는 춘삼월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쌀쌀한 늦겨울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며칠 전 한번 가보고 싶었던 임시정부기념사업회 사무실을 방문 하였습니다. 관계자분께서 독립운동가분들께 드리는 100년편지를 부탁하시기에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하고 선생님께 서신을 드립니다. 재작년 선생님의 순국70주년추모 사업으로 저명한 학자분들과 선생님의 후손 분들이 중심이 되셔서 추모논총을 발간하였습니다. 또한 부산에서 백산상회 건립 100주년 사업으로 학술대회를 개최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학술대회는 참석을 하지 못했지만 후에 백산상회 자리에 건립된 기념관을 방문하여 선생님 관련 자료를 자세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국가보훈처 공모사업으로 진행되는 국외사적지 탐방 준비를 앞두고 있었는데 마침 부산 MBC에서 선생님 관련 다큐영상을 촬영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의령 생가 및 백산상회, 그리고 중국 흑룡강성으로 촬영을 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래도 사람이 있는 풍경이 좋겠다는 생각에 사적지 탐방단에 촬영 팀도 동행을 제안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생님의 손자되시는 분들도 만나 뵈었는데, 그분들도 흑룡강성의 발해농장과 액하감옥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 말씀을 듣고, 안타까운 생각에 손자 분들께 동행을 제안 드렸습니다. 대련에서 하얼빈까지 7박 8일 동안 독립운동사적지를 탐방하였는데, 특히 길림성 화룡시의 대종교 삼종사묘와 선생님께서 경영하셨던 발해농장, 옥고를 겪으셨던 액하감옥 등지를 방문하였습니다. 발해성은 그동안 수없이 탐방단을 인솔하여 다녀왔지만 선생님이 경영하셨던 발해농장은 한 번도 방문을 하지 못했습니다. 접근도로가 비포장 농로라서 대형버스로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학생들은 흥룡사에 남겨두고 몇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손자 분들과 촬영 팀들만 다녀왔습니다. 평소 흑백사진으로만 보았던 발해농장의 모습은 시공을 초월해서 현재도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목단강과 연결된 수로와 수문, 그리고 드넓은 발해들판을 바라보니 저 역시도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특히 선생님의 손자 분들이 수문 앞에서 할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눈시울을 붉히시는 모습을 볼 때 가슴 한편으로는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집무를 보셨던 발해농장사무실은 수년전까지만 해도 초가지붕이었는데, 지금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대종교총본사는 집주인이 허물고 다시 짓는다고 사전 정보를 입수하고, 탐방단이 방문을 할 때까지 일주일만 연기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탐방단이 도착을 해보니 주위의 집들은 이미 허물고 있었고 그 집만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선생님과 대종교 인사분들이 임오교변 사건으로 옥고를 겪으셨던 액하감옥은 붉은 벽돌 담장과 전기울타리, 망루 초소만이 과거 감옥임을 알려주고 있었으며, 건물은 많이 허물어져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감옥 주변은 과거 이불공장들이 많았다고 하더군요. 선생님께서 광복을 몇 년 앞두고 작고를 하였던 영제병원은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현지에 알아보니 주소체계가 한번 바뀌어 찾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영제병원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작년에 홍은동 산자락에 있는 대종교 본사를 방문하였는데 임오교변 순교자 사진 속에 선생님 모습을 뵐 수 있었습니다. 또한 러시아 연해주 지역으로 독립운동사적지 답사를 하면서 고려인역사관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사진으로 뵐 수 있었습니다. 이토록 계속되는 선생님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선생님께서 살아생전 얼마나 조국을 위한 삶을 사셨는지 감히 짐작이 됩니다. 다시한번 조국을 위한 큰 희생에 감사를 드리면서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