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단상 53/주말여행]목포木浦는 항구다!
목포木浦가 항구임을 누군들 모르랴! 그 목포를 아내와 함께 이번 주말 다녀왔다. 금요일 오전 익산역에서 KTX 도킹으로 시작된 2박3일 데이트는 60대 부부의 ‘추억의 탑’에 돌 하나 얹어놓기에 충분했다. 아니 대만족이었다. 서울과 고향 임실의 중간지점에서 만난다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젊은 시절 연애하던 기분이 나 약간 설레기도 했다. 부모 몰래 하던 ‘몰래데이트’ 말이다. 이젠 아들부부 손자 몰래 하는 셈이 됐다. 흐흐.
목포역에 내리자마자 반기는 근대역사문화거리와 고풍스런 여관.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목포는 오래된 도시, 그 자체였다. 우에서 좌로 쓴 간판 <로-망스 까빼>와 <시에론레코드> <행복표셕유TEXACO> <갑자옥모자점>을 보라.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산자락에 있던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은 근대역사박물관 1, 2호로 탈바꿈해 수탈의 역사를 고발하고 있었다. 커다란 돌에 <국도 1, 2호선 기점 기념비>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북 군산의 근대역사문화거리를 가본 적이 있다. 두 도시의 엇비슷한 풍경을 생각하니 마음이 짜안해졌다. 아- 일본, 아니, 일제日帝강점기는 우리 역사에 도대체 어떤 상채기를 남겼는가. 그들은 지금도 눈곱만큼 반성할 기미가 없이 몽니와 뗑깡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고아 3000여명을 보살핀 일본인 윤학자 원장도 있어 목포 시민장 1호였다던가.
그랬거나 어쨌거나, 우리는 GNP 3만달러를 훌쩍 넘은 선진국이 되었다. 보라, 총연장 3.23km의 해상케이블카. 무슨 재주로 바다 속에 높이 155m의 쇠기둥을 세운단 말인가. 우리같은 인문학도들은 짐작조차 못할 최첨단 기술일 터. 북항에서 중간기점 유달산儒達山을 거쳐 고하도高下島를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 왕복한다. 멋지다. 아찔한 장관이다. 고하도의 해안데크길 3km여는 너무 좋았다. 커피맛도 유별나다. 유일한 흠은 그놈의 마스크, 안경에 김이 서리는 바람에 발을 여러 번 헛디딜 뻔했다. 판옥선 전망대에 올라 목포시내를 조망한다. 무엇보다 눈이 씨원해지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충무공동상 앞에서 그분의 나라사랑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판옥선 13척으로 명량대첩 승리 직후, 석 달 열흘 동안 고하도에 머무르면서 전열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충무공이 없었다면 호남湖南이, 아니 조선朝鮮이 과연 존속이나 되었을까. 유달산 정상인 일등바위 벽에 새겨진 ‘부동명왕’과 ‘홍법대사’불상도 어찌할 수 없는 일제의 잔재. 신사참배, 창씨개명에 이어 왜색종교 침투, 징병, 징용, 그들은 한민족의 혼을 말살하려 사력을 다했다. 참으로 꼴불견이다. 야경이 더욱 좋다는 기사의 말이 빈말이 아닐 듯하다. 글쎄, 다음에 언제 또 와 걸을 수 있을까?
‘수목장 1호’라는 삼학도 이난영(1916-1965) 묘지와 이난영공원에서는 아침부터 <목포의 눈물> <목포는 항구다> 노래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설이 된 지 이미 오래인 이난영은 나이 오십을 넘기지 못했지만, 딸 둘과 조카는 ‘김씨스터즈’라는 보컬그룹으로 아시아 최초로 미국에 진출한 한류의 원조가 아닌가.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BTS방탄소년단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가수는 노래비로, 시인은 시비로 이름을 남긴다. 그래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했는가. 삼학도는 이난영의 섬이 되었다. 멋진 남을 짝사랑하다 세 마리의 학이 되었다는 애달픈 여인들의 사랑의 섬, 삼학도를 차례차례 걸어보는 것도 여행의 색다른 맛이었다.
유달산, 삼학도는 어쩐지 유난히 정겨운 이름이다. 이 이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 나라 정치인의 이름이 있다.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그는 목포의 아들, 호남의 아들로서 숱한 시련와 끝도 없는 오해 속에 끝끝내 이 나라 대통령이 된, 결코 죽지 않은 인동초忍冬草였다. 그를 기념한 기념관을 둘러본다. “그 추운 겨울날 여의도를 가득 메운 백만 인파가 그립다”는 그의 사자후가 들려오는 것같다. 모형 인물과 악수를 나눈다. 청와대 집무실 책상 의자에서 앉아본다. 코로나가 오기 직전인 2019년 늦가을, 이 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우리나라의 세계기록유산>이라는 주제로 인문학특강을 90분 동안 한 적이 있다. 수강생은 30명여명이었지만 은근히 기분좋았던 때, 세상에 그곳까지 초보운전 주제로 나홀로 운전을 하며 얼마나 졸았던지.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의 양해를 얻어 ‘DJ 성대모사’를 5분여 해 기립박수를 받았던 일도 떠올랐다. 성대모사는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제스처도 중요하고 내용은 더 중요하다. 양 손을 나란히 들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으로 시작한 그때의 연설 초고를 찾았다. 재미로 전재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평생 네 번의 죽을 고비와 수없는 연금과 투옥 등을 경험하며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이 김대중이가
이번에 4전 5기로 대통령에 당선된다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피어나고,
통일의 꿈이 무지개처럼 솟아나는
그런 나라를 만들라고 허는디,
국민 여러분, 어떻습니까?
존경하고 사랑하여 마지 않는 국민 여러분,
‘이명박정부’는 틈만 있으면 ‘잃어버린 10년’이라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욕하고 있습니다.
대체 그 1O년 동안 무엇을 잃어버렸단 말입니까?
지독히도 추운 어느 겨울날
여의도광장에서 '김대중' '김대중'을 연호하던
백만 인파는 어디로 갔습니까.
흩어진 백만 인파가 눈물나게 그립습니다.
국민 여러분,
현정부는 3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민주주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화해의 위기,
이것이 어찌 하여 김대중과 노무현의 책임이란 말씀입니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저에게 인사를 왔습니다.
그때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선생님의 햇볕정책을 존중하고 지지한다고요.
그런데 시방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분이 그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국민 여러분,
이 정부는 무엇이 두려운지,
노무현 대통령의 추모사를 못읽게 하고 있습니다.
제 몸의 절반이 무너지는 느낌인 노무현 대통령은 말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저는 이승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저승에서
이 나라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또 싸울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혹자는 저 보고 행동하는 욕심이라고도 하고 빨갱이라고도 합니다.
국민 여러분, 대통령을 지내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제가
행동하는 욕심이고 빨갱이입니까.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는 양심은 벨 것 아닙니다.
포장 속의 양심, 투표장에 모두 나가
나쁜 정치인을 몰아내먼 그것이 바로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국민여러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
아내는 우리 둘만 있는 숙소에서도 김대중대통령 연설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나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유감이고 섭섭하다. 맛의 도시라는 목포, 민어와 홍어회도 맛보아야 하지만, 술 한잔을 허락하지 않는 아내와 한 접시 거하게 먹기도 거시기하여 백년가게 불고기집과 북항 어느 횟집에서 대방어 한접시로 맛의 도시를 일별하는 수밖에 없다. 두 번의 아침은 용인집에서 싸온 쑥떡과 사과, 도마토, 우유, 삶은 계란, 치즈 두 조각으로 대신. 대식가이자 탄수화물의 귀신인 나는 재미가 없다. 돌아오는 길, 익산에서 다시 빠이빠이를 해야 하니, 그것도 섭섭한 일. 흑흑. 흐흐에서 흑흑으로 끝난 환상의 주말여행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