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물시계에서 밝혔듯이 욕조 샤워기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방울씩 새기 시작했다.
아래에 세숫대야를 받쳐 놓았다가 가득 차면 변기의 물을 내리는 대신 세숫대야에 모여진
물을 부었다. 누수하는 밸브를 고칠 방법은 없다. 배를 타고 있을 때는 밸브를 교체하거나
수리한다면 밸브를 래핑해서 누수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있었다. 밸브와 밸브 시이트의
아다리(맞물리는 면)가 딱 맞게 되면 물 샐 틈이 없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컴파운드 파운드
1번으로 먼저 래핑한 후에 2번 3번을 거쳐 맨 마지막엔 엘오(L.O.)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욕조 수도꼭지가 새니 별 수 없이 새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관리실에 수리부탁을 하기 전에
부품을 미리 사다 놓아야 하므로 아파트에서 가까운 철물점으로 갔더니 가장 헐값인 수도꼭지는
3만5천원, 조금 상급 제품은 6만5천원이었다. 철물점 아주머니의 권유도 있고 해서 고급품인
6만 오천원짜리를 사왔다 그러고선 관리실에 전화해서 욕조 수도꼭지가 새고 있으니 교체를
부탁한다고 신고를 했더니 오후에 수리기사가 나가겠다고 했다. 사소한 수리는 관리비에 열마씩
적립해 나가므로 관리실에서 수리기사를 두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려니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 보았더니 관리실에서
보낸 수리기사였다. 어디가 나쁘냐고 묻길래 욕조 수도꼭지에서 누수가 있고 세면대 배수구가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고 했더니 세면대 배수구는 한번 분해하면 못쓴다면서 새로 부품을 사
오라고 하여 다시 철물점으로 가서 사 왔다. 세트가 1만 2천원이었다. 공구만 있으면 내가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관리실 수리기사에 맡기려니 안달이 났다. 어찌됐던 수리기사가 투덜대면서
신품으로 교체해 주고 갔다.
우리가 아프(어프랜티스:실습생)때는 파이프 라인 파악과 밸브랩핑하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선박에는 각종 배관이 많다. 파이프 라인을 알면 시스템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치면
순환기계통이다.배관종류에는 F.O, D.O.,L.O.등 오일계통과 F.W.(청수),C.S.W.(냉각해수),Steam,
Drain, Ballast Line 등등 종류도 많다. 이들 종류는 색깔로 구별하도록 일부만 칠해 놓았지만 오래된
고물선에서는 색깔도 지워져 없기 때문에 기관실 바닥 밑을 기면서 파이프가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지는지
어디에 무슨 밸브가 붙어 있는지를 익혀야 한다. 그래야만 유사시 어디에 있는 밸브로 유체의 흐름을
통제할 수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밸브가 누설하면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어느 밸브가 누설하는지를
찾아내어 랩핑을 해야하는데 주로 고온, 고압유체 계통인 배기밸브와 스팀라인에서 누설이 잦았다.
밸브랩핑시에는 밸브시트면과 밸브디스크에 연마제인 파우다를 바르고서 핸들을 잡고 힘을 주어
돌려야 하고 가끔씩은 쾅쾅 내리찍어야 한다.
갱년열화란 말이 있다. 구조물이나 기계장치도 오래 사용하면 성능이 떨어지고 부품도 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계장치에는 PMS(Planned Maintenance System:예방정비제도)라 해서 미해군에서 시행하던
정비제도를 일반기업체에서도 도입해서 쓰고 있다. 내가 해군에 있을 때 유행했으니 벌써 50년도 넘었다.
인체의 장기도 나이가 들면 기계장치와 마찬가지로 성능이 떨어지는 모양이다.50대 남성에게는 절반,
70대 남성에게는 약70%에 해당하는 노인이 전립선 비대증으로 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이 병은 노화와
남성 호르몬 저하로 전립선 조직이 커지면서 요도를 압박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체 장기도
기계부품과 같이 신품으로 갈아끼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흔살이 넘어서 일본에서 시를 쓰던 100세 할머니는 수도꼭지의 누수를 눈물로 보고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나에게
시바다 도요(1911.6.26~2013.1.20)
똑 똑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눈물이 멈추질 않네
아무리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언제까지
끙끙 앓고만 있으면 안 돼
과감하게
수도꼭지를 비틀어
단숨에 눈물을 흘려 버리는 거야
자, 새 컵으로 커피를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