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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죽은 어미의 자식을 향한 모정..
일본 신호시에서 생긴 일이다.
시내의 어떤 백화점의 지배인이 하루동안 상품을 팔고 매출된 돈을 계산하여 회계하고 돈을 금고에 집어 넣어 두는 것이 일과인데, 어느 날 아침에 손 금고를 열어보니 웬 가랑잎이 하나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가랑잎이 또 들어 있었다.
이와 같이 하기를 3,4일 되풀이하는 까닭으로 지배인이 이상하게 여기고 주의 깊게 살펴 본바 한 30세나 되어 보이는 여자가 엿을 사가는 것이 수상하였다. 왜냐하면 해떨어질 저녁 무렵이면 매일같이 와서 엿을 사가는 것이 이상하였다. 그래서 해가 지는 저녁이면 꼭와서 엿을 사가는 돈을 따로 두어 보았던바 그 다음 날에 본즉 가랑잎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지배인이 이상하게 여기고 그 다음날은 젊은 사람들을 몇사람 데리고 멀리 그여자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그 여자는 어떤 산골짜기에 있는 공동묘지로 들어 가고 있다. 그런데 그 곳에 이르러서는 그 여자의 종적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상하게 여기고 이곳 저곳을 살피다가 무슨 소리가 나는데 어디서 어린애가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곳을 짐작하고 찾아갔더니 분묘속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분묘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 속에서 아기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분묘 앞에는 죽은 사람의 주소와 성명, 매장 연 월 일이 나무기둥에 기재되어 있는데 망인은 스스키 사다코였다.
묘 임자의 남편을 찾아가 그 사유를 알렸더니 죽은 여자의 사나이가 쫓아 나와서 사람을 시켜 무덤을 파 본 즉, 죽은 임신부가 무덤속에서 아기를 낳아 젖을 먹일 수가 없어서 엿을 사다가 먹여 기르는 처지라는 것이다.
아기 입가에는 엿물이 녹아 흘러 있었다. 이것은 거짓말 같은 실화인데 그 망인이 임신하고 만삭이 되었으나 급병에 걸려 죽은 임신부라는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체를 수술하여 아기를 꺼낼수 없으므로 그냥 묻어 버린 것인데 신기하게도 그 시체가 아이를 낳아서 엿을 먹이면서 살려 놓은 것이다. 아기 아버지가 울면서 아기를 데려가고 망인의 장사를 다시 지냈다고 한다. 어린 아기는 여자 아이였으므로 이름을 아메코라고 이름을 지어 불렀는데 그 아기는 그후 아무 이상 없이 잘 자랐다고 한다.
이 사건이 종교신문인<중외일보>에 실리게 되어 그 아기를 보러가는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데 근래에는 부모가 늙기만 하여도 구박을 하고 불효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다시한번 생각하여 볼 문제가 아닐수 없다. 부처님께서 부모은혜가 깊은 것을 강조하고 설법하신 것도 그 뜻이 크신 것이라고 하겠다. -대은스님 글에서-
*거지를 인간답게 대해준 선덕여왕..
<이때에 휴사우바이가 진금의 방석에 앉아서 머리에는 해장진주망관을 쓰고,
모든 하늘나라의 것보다 좋은 진금보훈을 끼고,
감청색 머리카락을 드리우고...화엄경>
보훈은 지금의 팔찌를 가리킨다. 옛날 신라시대에 혜숙, 혜공이라는 두 도인이 있었다. 혜공선사는 아무 곳에서든 장난을 즐기고, 술집에 드나들며 생활하기도 하였으나 워낙 도력이 있는 터이라 주변에서 그를 모두 받들었다.
하루는 새끼줄을 가지고 영묘사라는 절에 가서 새끼줄을 둘러놓았다. 그리고 원주스님에게 이 줄을 며칠동안 걷지말고 그냥 두라고 부탁을 하였다.
사흘 뒤에 선덕여왕이 영묘사로 기도하러 행차하였다. 그런데 그 앞으로 어떤 미친놈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지귀라는 거지였다. 선덕여왕의 보살상 같은 미모에 반한 지귀는 여왕을 짝사랑하였던 것이다.
소란스러워지자 선덕여왕은 자초지종을 물었다. 말을 전해들은 여왕은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해주니 고마운 사람이다'라면서 기도드리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일렀다. 부처님께 기도드릴 때 부정탈까 염려하여 기도드리고 나오면서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기도를하는 동안 모든 것을 잊고 말았다.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 기도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지귀는 기다림에 지쳐서 잠이 들어 있었다. 단잠을 깨우기도 멋쩍어 선덕여왕은 자신의 팔찌를 빼서 지귀의 가슴 위에 얹어 주었다. 여왕이 환궁한 이후에 잠에서 깨어난 지귀는 팔찌를 발견하고는 얼굴에 비비고 품에 안는 등 속에서 불이 나도록 좋아하다가 자기 몸이 타고 그 불이 주위에 옮겨붙어 온통 타고 말았다. 그러나 혜공선사가 둘러친 새끼줄 안의 절만은 타지 않았다고 한다.
지귀의 그림을 그려 붙이면 불이 나지 않는다고 하여 지귀그림을 붙이는 것이 우리의 고유 풍습입니다. 왕권시대에 거지를 인간답게 여긴 선덕여왕의 자비심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하겠다. 가난하거나 힘없는 자를 괄시하는 작금의 풍토를 일소하기 위해 불자들 모두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 -관응스님 글에서-
-감상- 자기의 안위를 위해 신하들을 파리목숨처럼 함부로 죽이던 왕들이나 현재 미투(Me too)운동을 보며 강한자가 약자에게 갑질하는 것을 보면서 선덕여왕의 자비심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경계가 걸림이 없어서 널리 일체의 모든 부처님 세계에
두루 갈 수가 있으며 몸을 나투는 것이 한량없어서..화엄경>
-몸을 나투는 것이 한량없다는 것은 이 몸이 사람도 되고 개도 되고 소도 되고 돼지도 되고 마음대로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꼭 외형적인 몸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의 아픈 것을 고쳐주면 그것은 어머니의 역할인 동시에 의사의 역할을 한 것이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듯이 남의 자식을 사랑하면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이에게 부모, 형제, 이웃과 같은 마음으로 친절히 대하는 것이 몸을 나투는 것이며 이것을 보현행이라고 한다. 몸을 나투는 것을 신통력을 가지고 변화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때에 따라서 상황에 맞게 모든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진정한 보현행임을 알아야 한다.-관응스님 글에서-
*우주가 자기의 것이 될 때를 지혜보리라고 한다..
<이때에 선재동자가 앞으로 나가서 그 발에 예배를 드리고 합장을 하고 서서 이와같이 말하였다.
성자시여, 내가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기는 하였지만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이 어떻게 보살도를 닦는가 하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내가 듣자오니 성자께서는 사람을 잘 가르친다고 하니, 원하옵건대 나를 위하여 설해주옵소서.
이때에 승열바라문이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네가 이제 만약 저 칼산 위에 올라가 몸을 이 불구덩이에 던지면 모든 보살이 행이 다 저절로 이루어지느니라... 화엄경>
우리가 지은 신구의 삼업이 낱낱의 티끌 속에 들어 있어 후일 우리가 죽은 뒤 염라국에 가면 죄가 비치는 거울 앞에 서게 된다고 한다. 저울도 있어서 그간의 죄를 무게로 달기도 한다.
우리 중생의 한마디 소리와 행동까지 진진찰찰의 낱낱분자에 가서 녹음이 되고 사진찍힌다. 음파.광파가 모두 파동을 쳐서 내가 밉다는 생각을 한다거나 벌레가 하는 일 등 모든 낱낱의 것에 관하여 아는 것이 곧 화엄경의 도리이다.
천태 지의선사가 법화삼매에 드니까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옛모습 그대로 설법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우리들도 눈이 뜨이면 옛날것도 다 보이고, 미래의 것도 다 바라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은 경지가 되려면 다라니를 공부해야 한다.
다라니에는 티끌 하나라도 그 속에 시간과 공간의 어떠한 것이든 모두 비쳐보일 수 있다. 이를 사사무애事事無碍즉, 걸림이 없는 경지라고 한다.
이 세상의 사물에는 작은 티끌에조차 삼세제불의 과거. 현재. 미래 만상이 다 들어 있으며, 일체 중생의 하는 바가 다 들어 있고, 일체 기세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반영되어 있다고 하여 사사무애라고 한다.
트인 사람은 티끌 하나를 보아도 일체를 다 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알 수 없는가. 그건 욕심 때문이다. 욕심으로 인해 본디 맑고 밝은 마음자리가 바뀌고 만 것이다.
옛날에 어떤 두 사람이 각기 염소를 한 마리씩 길렀다. 어느날 둘은 각기 염소를 잃고 말았는데 한 사람은 책에 열중하다가 잃어버렸고 또 한 사람은 장기에 열중하다가 잃고 말았다. 공부를 하거나 놀았다는 것이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잃어벼렸다는 사실에서는 두 사람 모두 차이가 없다. 염소를 잃었는데 글을 읽은 것은 좋고 장기를 둔 것은 나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즉 본디의 자기 성품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이다.
두 형제가 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신기한 절구를 얻어왔다. 절구질을 하면서 돈 나오라고 하면 돈이 나오고, 쌀이 나오라고 하면 쌀이 나오는 절구였다. 후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형제는 절구를 놓고 서로 싸움을 벌였다. 마침내 산에서 절구를 굴려서 동쪽으로 내려오면 형이 갖고 서쪽으로 내려오면 동생이 갖기로 정했다.
산꼭대기에서 절구를 굴렸다. 절구가 갑자기 움푹패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산이 절구를 먹어버린 것이다.
바닷가에 사는 어떤 이가 여의주를 얻었다. 원하는 바는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구슬이었다. 이 사람은 죽은 뒤 두 자녀가 서로 양보하다가, 바다에서 주운 것이니 다시 바다에 갖다두자며 함께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또 하나의 여의주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욕심을 버리면 복을 얻는다. 욕심. 내 생명이 하나 따로 있다고 하는 집착을 버리면 우주전체의 생명을 만나게 된다. 우주가 자기의 것이 될 때를 지혜,보리菩提라고 한다.
우주전체의 법성인 생명은 하나인 줄 모르고 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식識이라고 한다. 이 식 때문에는 안으로는 육근이 생기고 밖으로는 육진이 생겨서 아연히 18계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밖으로 육진 경계를 따라서 무명망상이 흘러가는 것이다.
흐르는 우리의 무명망념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깨치지 못한 우리가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이는 흐르는 생각을 막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흐르는 생각은 모르는 물건 앞에서 중단된다. 생각은 아는 경계를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끝없이 흘러가는 무명망념이 흐르지 못하도록 둑을 막는 것이 화두이다.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됩니까?"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알지 못함으로 인해 생각이 흐르지 못하면 쌓이고 쌓이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확 트인다. 화두란 흘러가는 생각을 멈추게 해서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단인 것이다. 진언眞言속에도 부처님께서 깨친 기운이 전부 들어 있어서 꾸준히 외면 좋은데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는 것 같다.
탐심을 없애는 또 다른 방법은 육바라밀의 실천이다.
첫째가 보시이다. 정당하게 땀흘려 돈을 벌고, 올바르게 보시하는 것이 탐심을 지우는 일이다. 노력하지 않고 버는 재산은 오래가지 않으며 끝없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의 문인 두보의 시 가운데 이런 문구가 있다.
탐심을 털어내니 한밤중에 금은의 기운이 보이고,
해로운 생각 멀리하니 아침에 사슴이 뜰에 와 노니네..
마음 속에서 일체의 탐심을 털어내 버리면 산속에 금은이 들어 있는 것을 환하게 볼 수 있고,생명을 해롭게 하려는 생각을 멀리하면 만물이 환히 보이고 서로 동화되는 것이다.금강석의 자체에 타는 성질이 없기 때문에 불에 넣어도 타지 않는 것과같이 내 속에 남을 해하거나 욕심을 내려는 생각이 없다면 일체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다.
화엄경의 도리가 이처럼 법계성을 다루고 있다. 공부를 해나가는 것도 이와 같아서 섣부른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 부지런히 닦아 힘써야 할 것이다. -관응스님 글에서-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_()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감사합니다_()_()_()_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죽어서도 자식을 묘지 안에서 엿을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에 부모님의 가이없는 은혜에 눈물이 납니다 제 불효가 더욱 더 참회되는 오늘입니다
그렇군요..우린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불효를 하고 있지요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합리화하지만 결국은 그냥 스스로의 합리화예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저도 이 글을 옮기면서 이런 불가사의 한 일이 실제 있었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더군요 하지만 실제 있었던 글이 맞고 정말로 미국의 속담에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가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영혼까지 간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증명하는 글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깊이 저도 또한 새깁니다..
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나모아미타불
감사합니다_()_()_()_
잠시 들려 즐감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_()_
감사합니다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_()_()_()_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