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아버지 제사를 지냈다. 큰 놈이 어린 손주녀석 둘을 데리고 왔다.
큰 손주는 두 돐을 지나 낮에는 어린어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며 작은 손주는
아직 돐을 지나지 않아 며느리 등에 업혀 있을 때가 많다. 제사를 지내는 중에
큰 손주는 옆에서 따라 절을 한답시고 배를 바닥에 대고 두 다리를 죽 뻗는다.
또 할애비가 축문을 읽으면 따라 읽는 흉내를 내어 여러 식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제삿상에는 과일중에 알밤과 대추가 서열이 높아 제일 왼쪽에 위치한다. 말하자면
'조율이시'가 서열순이다.대추 조, 밤 율,배 이, 감 시자로 한자어인데 제사 풍습 자체가
유교에서 나온 것으로 고대 중국으로부터 건너와 조선시대에 와서 꽃을 피운 것이다.
제사는 조상의 은혜를 기억하고 음덕을 발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대추나무나 밤나무에는
열매가 아주 많이 달린다. 후손의 번식을 많게 해 달라는 기원에서 밤,대추 서열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내 어릴 때 자란 까막골 집에는 터밭 가장자리에 큰 밤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감나무에 열리는 감은 감꽃이 떨어질 때부터 감꽃을 주워먹다가 초복만 지나면 바가으로
떨어지는 감을 주워다가 조그만 단지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그 속에 한 사흘 담궈두면
턻은 감이 익어 달게 된다. 그렇게 시작해서 벌레가 먹어 발간 홍시가 되면 긴 장대로
홍시를 따서 먹곤했다. 그러나 밤은 밤송이가 벌어져 안에 있는 알밤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는
따서 먹을 수가 없었다.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열리고 그 속에 알밤이 여물어 간다. 밤송이는 속에 있는 알밤을 보호하기
위해 바깥쪽에 가시로 덮혀 있다. 그런데도 벌레들이 밤송이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 들어 있는
알밤을 파 먹는다. 알밤에도 두꺼운 껍질로 둘러처져 있는데도 용케도 구멍을 내어 파 먹어 들어간다.
간밤에 바람이 불어 가지가 흔들리면 새벽에 밤나무 아래로 밤을 주우러 가면 바알간 알밤들이
땅바닥이나 수풀 속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어 알밤 줍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주워온 알밤을 부엌
아궁이 숯불이나 화롯불 속에 파묻어 구워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