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제롬으로도 불리우는 히에로니무스
Hieronymus(347년 - 420년)는 5세기경 히브리어 성서를 대중적인 새 라틴어본으로 번역했는데,
그 번역본이 널리 읽혀짐으로써 '불가타'란 이름을 얻었다. 불가타는 '일반적인' '대중적인'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다.
로마 카톨릭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받아들어진 것은 한참 후로 불가타 1592년판이 채택되었다.
국제번역가연맹에서는 히에로니무스 축일을 ‘국제 번역의 날’로 제정해 1991년부터 기념해왔고,
2017년 유엔에 의해 세계번역의 날로 선포되었다.
새로운 번역본들
지구상의 언어는 4,000가지가 넘는다. 중국 대륙의 소수민족이 쓰는 언어만도 800가지 이상이 통용된다.
그만큼 성경번역판도 언어에 따라 그리고 같은 언어라도 어느 시대에 번역되었으냐에 따라 다양해지지 않을 수 없다.
18세기 영국의 교직자 존 루이스가 이런 말을 남겼다.
“언어는 계속 변하며 과거에 사용하던 표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오래된 번역판들을 검토하여 현재 사용되는 말, 지금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옮기는 것이 필수적이다.”
신견식
대개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번역가들도 잘 모르겠지만 9월 30일 오늘은 국제 번역가 협회에서 정한 세계 번역의 날이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번역 문화 역시 아직은 서구 문명이 주도하기 있기 때문에 서양과 뗄 수 없는 기독교가 확고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라틴어 불가타역 성경을 번역하여 문화사적 의미가 큰 히에로니무스가 태어난 날을 세계 번역의 날로 정한 것이다.
대부분 번역가한테는 무슨 큰일도 아니겠지만 떡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번역의 의의를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번역과 통역은 자기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과 만나면서부터 시작됐으니 인류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는 주로 학자, 성직자, 작가 등 전통적인 지식인이 번역을 담당했으며
통역은 주로 상인이나 외교관이 맡았지 이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재판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회의통역 및 동시통역의 토대가 마련되고
각종 국제 기구 창설 및 무역, 교통, 통신 등의 폭발적인 발전으로 통역과 번역을 직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이 탄생했다.
인류사에서 번역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슬람 문명은 10세기 무렵부터 그리스어로 된 많은 철학과 과학 서적을 아랍어로 번역하였고
서구에서는 아랍어로부터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여 그리스 문명을 재발견하면서
르네상스가 촉발되어 서구 근대 문명의 밑바탕이 되었다.
대표적인 난학자는 에도에서 독학으로
네덜란드 의술을 공부하고 번역서를 낸 스기타 겐파쿠(杉田玄白, 1733-1817)였다.
일본의 난학은 의학에서 시작해 지리학, 천문학으로 범위를 확대하며,
서양학술을 일본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출처 : 아틀라스뉴스(http://www.atlasnews.co.kr)
일본은 서구 접촉 이후 네덜란드어 서적 번역을 시작으로 난학을 발전시켜 근대화의 주춧돌을 세웠고
이후에도 영어와 독어 등 서구어의 번역을 통해
일본에서 한자어로 번역한 수많은 어휘가 한국과 중국에서도 쓰이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훈민정음 창제 이후 경전이나 시가의 번역이 있었고
조선 중기부터 점점 한글이 널리 쓰이게 됐지만 지식층은 여전히 한문을 고수하였으며
19세기부터 일본어 등을 통한 중역을 비롯하여 서구 언어를 번역한 경우도 있었으나
일본에 강점당하고 해방 뒤에는 625 등 혼란을 겪어 사실상 따지고 보면
제대로 문자 생활 자체가 뿌리내린 지는 이제 겨우 60년를 넘긴 터라서
본격적인 번역의 역사도 그만큼 짧은 셈이다.우리말에 가장 알맞은 훌륭한 글자를 만들어 놓고도
번역을 통해서 서양이나 일본처럼 민중어의 확산과 지식의 보급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했기에
한국이 근대화에 뒤질 수밖에 없었음은 참으로 아쉽다.
가령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의 라틴어 번역과 종교개혁을 전후한 민중어 번역,
이슬람권에서 이루어진그리스어의 아랍어 번역,
르네상스 시대의 이슬람을 통한그리스문화의 재발견, 그리고 동아시아 근대화를 이끈 일본의 번역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세상은 엄청나게 다른 모습이었을 테고 좋든 나쁘든 적어도 지금 같은 문명은 아직 오지 않았으리라.
이만큼 역사 속에서 번역은 중요한 일이고 번역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크게 움직인 사람들이다.
물론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 속에서
방대한 지식의 바다 한가운데에 던져져 있는 번역가 개인이 다 이런 거창한 역사적 사명감을 띠고
살기는 어렵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세계 주요 언어와 견주어 상대적으로
걸음마 단계인 우리의 언어 문화와 지식을 가꾸고 여러 문화를 이어 주는 막대한 임무를
오늘 번역의 날을 디딤돌로 삼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도 있을지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오.
『해부학(解剖學)』은 제중원의학교(濟衆院醫學校)에서 간행한 해부학 교과서다.
일본인 이마다 츠카네(今田 束)의 해부학 책을 에비슨(Avison, 1860~1956)과 김필순(金弼淳, 1878~1919)이
원본의 형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말로 번역했다.
책표지는 전통적인 방식대로 누런색으로 염색하고 무늬를 넣었다.
염색된 실을 꼬아서 만든 책을 꿰맨 것도 전통적인 방식이다.
책을 꿰맬 때 낸 네 개의 구멍은 중국이나 일본의 방식을 따른 것이다.
해부학 용어는 한자어를 사용했지만 해부학적 설명은 우리말로 풀어 한글로 적었다.
뼈의 단면을 나타내는 그림을 실어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