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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宋代)의 고려(高麗)는 중원대륙(中原大陸)의 주인(主人) [1편]
2023년 10월 31일
○ 『태조(太祖) 왕건(王建)의 고려왕조(高麗王朝)』는, 『삼한통일(三韓統一) 즉(卽), ‘통일환영(統一寰瀛)[천하통일(天下統一)]’을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궁화(無窮花) 삼천리(三千里) 화려강산(華麗江山)”이라고 노래하는 “한반도(韓半島)” 땅에서 “통일환영(統一寰瀛)이니 천하통일(天下統一)이니, 태평만세(太平萬歲)니 하는 말을 사용(使用)할 수 있을까?” 그것도 조그마한 제후국(諸侯國) 주제에 말이다.』
이건 가당(可當)치도 않은 말이다. 즉(卽) ‘천승국(千乘國)은 제후(諸侯)’일 뿐이고, ‘만승국(萬乘國)’이 되어야 “천자(天子) 및 천자국(天子國)”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승국(千乘國)의 일개(一介) 제후(諸侯)가 감히 ‘통일환영(統一寰瀛)’이니, ‘천하통일(天下統一)’이니 ‘태평만세(太平萬歲)’를 부르는 일은, 곧 천자(天子)를 능멸(凌蔑)하는 것이고, 죽음(滅亡)을 의미(意味)한다. 따라서 이런 말들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곧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말’이라는 뜻이다.
➨ 그러함에도 “고려(高麗)는 태평만세(太平萬歲)”를 부르고, “통일환영(統一寰瀛) 즉(卽) 천하통일(天下統一)을 이루었다”라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결국(結局) 그것을 인정(認定)하든, 인정(認定)하지 않든, 고려(高麗)는 천자(天子)의 나라(國)이었다〉는 뜻이다.
○ 오늘은 “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南宋 : 确庵、耐庵】”은, “宣和 七年 : AD 1,125년”에 송(宋)나라 사신(使臣) “허항종(許亢宗)”이 “여진(女眞) 금(金)”에 사신(使臣)으로 다녀온 여정(旅程)을 기록(記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강비사(靖康稗史) 야사(野史) 중의 첫 번째의 것이다.
『선화을사봉사금국행정록(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에서 말하고 있는, 기록(記錄)하고 있는 그 지형지세(地形地勢)를 찾아 그대로 재현(再現)해 보자는 것이다.
즉(卽), 『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南宋 : 确庵、耐庵】에서 말하고 있는 그 지형지세(地形地勢)를 그대로 따라가 보자』라는 것이다. 〈보태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그대로 따라가 보자는 것이다〉 【원문(原文) 전문(全文) 중(中)에서 관심부분(關心部分)만을 골라 발췌(拔萃)하여 해설(解說)하는 것임】
● 곧 당시(當時)의 “여진(女眞) 금(金)나라”는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으로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의 말대로 여진족(女眞族) “금(金)”나라는 동북방(東北方)에서 시원(始原)하고 그곳에 있었을까?』라는 것에 대해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사실(史實)】을 알아보자는 것이다.
◆ 위의 지도(地圖)를 보면서 : 구라파(歐羅巴),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아세아(亞細亞) 땅을 구분(口分)해 보자. 〈본시(本是) “구라파(歐羅巴)+중아(中亞)+아세아(亞細亞)”는 하나의 대륙(大陸)이다. 그대로 하나의 땅(地)이었다〉는 얘기다.
그것이 어느 날엔가 “구라파(歐羅巴)+중아(中亞)+아세아(亞細亞)”로 나누어지게 되었는데, 이 연유(緣由)는 몇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사견(私見)이지만 : 그중의 하나는 인종(人種)이 확연(確然)하게 달라진다는 것인데, 바로 색목인[色目人 : 백인(白人)] 계열(系列)과 황인종(黃人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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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宣和乙巳奉使金國行程錄[南宋 : 确庵、耐庵]【原文 出處 : 維基文庫】
(1) 第十三程:
《第十三程:自望都縣六十里至營州。營州,古柳城,舜築也。乃殷之孤竹國,漢唐遼西地。中略. : 제13정(第十三程) : 망도현(望都縣) 60리에 이르러 영주(營州)에 다다랐다. 영주(營州)는 옛 유성(柳城)인데, 순(舜)임금이 쌓은 것이다. 은(殷)의 고죽국(孤竹國)으로, 한(漢)과 당(唐)의 요서(遼西) 땅이다.》라고 하였다.
즉(卽), 『영주(營州) 땅은, 옛 유성(柳城) 땅이요, 은(殷)나라 때의 고죽국(孤竹國) 땅이요, 한당(漢唐) 때의 요서(遼西) 땅이다』라는 말이다.
➊ 〈“유성(柳城)”은 곧 “영주(營州)”를 말하는데, “영주(營州)”는 고구려(高駒驪) 땅이었다〉라는 사실(事實)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卽) 『고구려(高駒驪) 태왕(太王)이 영주자사(營州刺史)를 역임(歷任)했다』라는 사실(史實)이다. 곧『장수왕(長壽王) 원년(元年) : 고구려왕(高駒驪王) 고련(高璉)이 영주제군사(營州諸軍事)였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➋ “요동(遼東) 땅”은, “옛 조선(朝鮮)의 땅이었다”라고 옛 고전(古典)에서는 빼놓지 않고 기록(記錄)해 놓았고, 학자(學者)들의 주석(註釋) 또한 똑같다.
➨ “요서(遼西) 땅”은, “고죽국(孤竹國)의 땅”으로 그 뒤에는 “고구려(高駒驪)의 땅이었다”라는 것이다. 결국(結局) “요동요서(遼東遼西)의 땅”은 모두 옛 “조선(朝鮮)의 땅이었다”라는 뜻이 된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에 의한 오늘의 역사(歷史)로 보아도 “하북성(河北省) 북경(北京)은 요서(遼西)의 땅에 있으며, 이는 곧 고구려(高駒驪)의 것이자, 고구려(高駒驪) 땅이었다”】
이런 예(例)로 보면 : ‘북경(北京)’은 ‘고구려(高駒驪)의 것이었다.’ 그런데 왜 “요동(遼東)”만이 “조선(朝鮮)의 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요동(遼東)이 조선(朝鮮)의 땅이었다』라는 것은, 기자조선(箕子朝鮮) 때의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고죽국(孤竹國)이란 고구려(高駒驪)의 선대국가로 이미 요서(遼西) 땅에 있었다는 것이니, 고구려(高駒驪) 태왕(太王)이 영주자사(營州刺史)를 역임(歷任)했다는 것은, 당연(當然)한 결과(結果)였을 것으로 사료(思料 : 思量)된다.
➌ “영주(營州) 곧 유성(柳城)은 본시 고구려(高駒驪) 땅이었다”라는 것이고, 유성(柳城)은, 결단코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에 존재(存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성(柳城)” 땅은 ➠『유성호(柳城胡)』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유성(柳城)”이란 지명(地名)은, 이차적(二次的)으로 “백용퇴(白龍堆)”가 함께 있어야 가능(可能)한 지명(地名)이자, 일차적(一次的)으로는 “범양국(范陽國)”이 있어야 하는 곳이다. 【우리 카페(Cafe)에 이미 여러 번에 걸쳐 설명(說明), 게재(揭載)되어 있다】
“호(胡)”는 “되놈(胡) 곧 오랑캐”를 말하는 것이다. 『“유성(柳城)”이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에 있고, 이곳이 중국(中國) 땅이었다고 한다면 : ‘중국(中國)인들은 되놈과 오랑캐(胡)였다’라는 말이 된다. 맞나? 오류(誤謬)인가?』라는 물음에 먼저 답(答)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성(柳城)은 ‘유성(柳城) 호(胡)’가 살았던 곳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즉(卽) “유성(柳城)”이란 곳은 ‘서방(西方)=서토(西土)’ 땅에 있어야 역사적(歷史的) 기록(記錄)을 충족(充足)시킬 수 있고,
실제(實際)로 기록(記錄)에 따르면 : ‘백용퇴(白龍堆)’가 등장(登場)하며, 신강(新彊) 땅에 “유성(柳城)”이 있다. 더불어 조조(曹操)의 오환(烏丸) 토벌(討伐) 과정(過程)을 보아도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일 수 없는 지형지세(地形地勢)를 기록(記錄)하였다.
그러나, “유성(柳城)”은 본래(本來)『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사마르칸트(Samarkand)를 중심(中心)으로 한 ‘제라프샨 강(江)’ 유역(流域)의 ‘소그디아나(Soghdiana)’에 있던 지명(地名)으로, ‘범양국(范陽國) 땅이다.』 이때가 ‘한당(漢唐)’ 때이며, 이곳은 당시(當時)의 ‘요서(遼西)’ 땅이다.
제라프샨 강(Zarafshan, 江)=소그드강(Soghd) 즉(卽) ‘제라프샨(Zarafshan)’은, 페르시아(Persia)어로 “황금을 뿌리는[the Sprayer of gold)]”이라는 뜻의 “zar afshan”에서 기원(起源)한다고 하는데, 희랍(希臘)어로는 폴리티메우스(Polytimetus)라고 불렸다고 하며, ‘소그드강(River of Sughd)’이라고도 불렸다. 당(唐) 때의 ‘나밀수(那密水)=시랍부선하(柴拉夫善河)’이다.
〈소그드(Soghd)인들은 : 바로 속특(粟特) : 갈족(羯族)〉이다. 이들을 지칭(指稱)하여 “高加索人種(코카서스 인종)”이라고 하였다.
【갈족(羯族)이란 갈호(羯胡)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인종(人種)은 색목인(色目人)으로 “코가 크며 눈 색깔이 푸르거나 수염이 붉고 많다”라고 하여 전형적(典型的)인 색목인(色目人) 즉 코카서스[ Caucasian] 종족(種族)이다. 석륵(石勒)과 석호(石虎)로 대표(代表)하는 후조(後趙)는, 망(亡) 시에 석민(石民)에 의해 갈족(羯族) 수십만(數十萬)을 집(家)까지 찾아다니며 모조리 살해(殺害)했다고 하는데 이는 역사조작(歷史造作)이다.
만약(萬若) ‘갈족(羯族)들이 중원(中原) 땅에 있었다’라고 한다면 “색목인(色目人) 수십만(數十萬)의 갈족(羯族)과의 혼혈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모조리 살해(殺害)했다고 조작(造作)한 것이다. 실제(實題) 이 사건(事件)이 벌어진 곳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이다.】
➨ 북사(北史)에서 말하는 ‘범양국(范陽國)’이 있었던 곳이다. 이 주변(周邊) 일대(一帶)의 동(東)쪽에 옛 ‘범양국(范陽國)=범양군(范陽郡)’이 있었다. 【北史 : 西域 : 吐呼羅國,去代一萬二千里。東至范陽國,西至悉萬斤國,中間相去二千里;南至連山,不知名,北至波斯國,中間相去一萬里。薄提城周匝六十里,城南有西流大水,名漢樓河。土宜五穀,有好馬、駞、騾。其王曾遣使朝貢。】
중국당국(中國當局)이나 일본(日本), 서구세력(西歐勢力)들이 아무리 조선사(朝鮮史)를 해체(解體)하려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지명(地名)+지세(地勢)”를 해체(解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사실(歷史的事實)은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유성(柳城)은,
1 次 :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사마르칸트(Samarkand)를 중심(中心)으로 한 ‘제라프샨 강(江)’ 유역(流域)의 ‘소그디아나(Soghdiana)’에 있던 지명(地名)으로, 범양국(范陽國) 땅이다.
2 次 : 신강성(新疆省) 포창해(蒲昌海) 동안(東岸)의 백용퇴(白龍堆) 주변일대(周邊一帶)
3 次 : 하북성(河北省) 동(東)쪽 땅으로 이동(移動), 정착(定着)되어 역사조작(歷史造作)에 가담(加擔)한 것이다.
➍ 또 이곳의 땅이 “은(殷)” 나라 때의 “고죽국(孤竹國)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당시(當時) 고죽국(孤竹國)의 서울(都邑)은 “황락성(黃洛城)”이라고 하였으며, 중요(重要)한 것은, “고죽국(孤竹國)”은 “고구려(高駒驪)의 선대국가(先代國家)였다”라는 사실이다.
요지(遼志) 남경도(南京道)를 보자. 《灤州,永安軍,中,刺史。本古黃洛城。灤河環繞,在盧龍山南。齊桓公伐山戎,見山神俞鬼,即此。: 난주(灤州)는, 본래(本來) 옛 황락성(黃洛城)이다. 난하(灤河)가 띠를 두른 듯한 곳으로, 노룡산(盧龍山) 남(南)쪽에 있다. 秦為右北平。漢為石城縣,後名海陽縣,漢水為公孫度所有。: 진(秦)의 우북평(右北平)으로, 한(漢)의 석성현(石城縣)인데 뒤에 해양현(海陽縣)으로, 한수(漢水)는 공손도(公孫度)가 소유(所有)하였다. 晉以後屈遼西。石晉割地,在平川之境。太祖以俘戶置。: 진(晉) 이후(以後)에 요서(遼西)에서 일어나, 석진(石晉) 땅을 나눴는데, 평천(平川) 지경(地境)으로, 태조(太祖)가 사로잡은 호(戶)들을 이곳에 두었다. 灤州負山帶河,為朔漢形勝之地。: 난주(灤州)는 산이 뒤에 있고, 하천이 띠를 두른 듯한 곳으로 한(漢)나라 북쪽의 형승지지(形勝之地)이다. 有扶蘇泉,甚甘美,秦太子扶蘇北築長城嘗駐此;臨榆山,峰巒崛起,高千餘仞,下臨渝河。統縣三, 中略. : 부소천(扶蘇泉)이 있는데, 물맛이 아주 좋다. 진(秦)나라의 태자(太子) 부소(扶蘇)가 북(北)쪽의 장성(長城)을 쌓는데 머물렀던 곳이 이곳이다. : 림유산(臨楡山)이 삐죽삐죽 봉우리가 솟아있고, 높이는 천여(千餘) 인(仞)으로, 그 아래는 림유하(臨渝河)가 있다. 3개 현이 있다. 중략(中略). [原文 出處 : 한국 고대사 자료의 보고 / 한몸 살점]》
➨➨➨ “한수(漢水)를 공손도(公孫度)가 소유(所有)했다”라는 말은, 이곳 땅은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이나 요녕성(遼寧省) 땅일 수 없다는 명백(明白)한 증거(證據)다.
‘한수(漢水)’는 오늘날의 ‘한수(漢水)’를 말하는 것이 아님이 확실(確實)하다. 위의 기록(記錄)대로라면 당시(當時)의 한수(漢水)는 중원(中原) 북방지대(北方地帶)를 영하성(寧夏省)을 남북(南北)으로 관통(貫通)하고 또 꺾여 동서(東西)로 흐르는 “하(河)”를 칭한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상군(上郡)과 함께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대로 보면 당시(當時)의 ‘요(遼)의 동(東)쪽 경계(境界)’는 섬서성(陝西省) 북방지대(北方地帶)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모두가 “역사(歷史)를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게 문제(問題)다.
➤➤➤ 또한『灤州負山帶河,為朔漢形勝之地。有扶蘇泉,甚甘美,秦太子扶蘇北築長城嘗駐此;臨榆山,峰巒崛起,高千餘仞,下臨渝河。: 란주(灤州)는 산(山)을 등지고 하(河)가 띠를 두른 듯하여, 북(北)쪽 한(漢)나라의 형승지지(形勝之地)다. 부소천(扶蘇泉)이 있는데, 그 물맛이 아주 감미롭다. 진(秦)의 태자(太子) 부소(扶蘇)가 북(北)쪽의 장성(長城)을 쌓는데 상주한 곳이 이곳이다, : 림유산(臨楡山)이 삐쭉삐쭉 굴기(崛起)하고 있어, 높이가 일천여 인(仞)이나 되고, 아래에는 림유하(臨渝河)가 있다』라고 하였는데,
“시황본기(始皇本紀), 몽념전(蒙恬傳), 조고전(趙高傳)” 등의 당시(當時)에 핵심인물(核心人物)들의 기록(記錄)에서조차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이 땅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위의 『灤州負山帶河, 為朔漢形勝之地. 有扶蘇泉, 甚甘美,秦太子扶蘇北築長城嘗駐此 : 臨榆山, 峰巒崛起, 高千餘仞, 下臨渝河.』 라고 지적(指摘)한 곳은, 섬서성(陝西省) 북방지대(北方地帶)로 태자(太子) 부소(扶蘇)가 감독관(監督官)으로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였으니, 이곳에 ‘부소천(扶蘇泉)’이 있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當然)하다. 바로 이곳이 “상군(上郡)”이라고 하였는데, 무슨 하북성(河北省) 난주(灤州)란 말일까?
역사(歷史)를 조작(造作)한다는 것은, 지형지세(地形地勢)를 조작(造作)할 수 없는 한 불가능(不可能)한 것이다. ‘원문기록(原文記錄)+지형지세(地形地勢)’를 함께 조작(造作)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卽) ‘2,400m’의 림유산(臨楡山)을, ➠700∼800m 높이의 산(山)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 ‘하북성(河北省) 난주(灤州)와 섬서성(陝西省) 상군(上郡)’은 직선거리(直線距離)로 최소한(最小限) 1,500리(里) 이상 떨어져 있으며, 높이가 2,400m 이상(以上) 되는 아주 험준한 산(山)이 있다【일천(一千) 여인(餘仞) : 1인(仞)은 8자(약 2.4m)】는 것인데, 또 그 산(山) 아래에는 림유하(臨渝河)가 흐르는 지세(地勢)를 찾아보면 : 하북성(河北省) 땅 어느 곳에도 이러한 지형지세(地形地勢)는 찾아볼 수 없다.
이와 유사(類似)한 지세(地勢)를 보이는 곳은, 영하성(寧夏省)을 남북(南北)으로 관통(貫通)하는 “하(河)” 서안(西岸)과 북안(北岸) 땅에 있다.
이러한 ‘지형지세(地形地勢)’로 보면 : 아보기(阿保機)의 글란(契丹) 곧 『“요(遼)”나라의 남경도(南京道)는 하서(河西)와 하북(河北)【영하(寧夏) 은천(銀川)】땅에 있었다』라고 말할 수 있다.
➨➨➨ 여기서 문제(問題)는, 이것 역시(亦是) 『본시(本是)의 진(秦) 장성지대(長城地帶)가 아니다』라는 것에 있다. 곧, ‘시황(始皇)과 부소(扶蘇)와 몽념(蒙恬)’의 장성(長城)은?
1 次 : 오늘날의 하서(河西) 땅【돈황(燉煌)과 신강성(新疆省)】에 유허(遺墟)【痕迹】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2 次 : 오늘날의 섬서성(陝西省) 북방(北方) 상군(上郡) 땅으로 이동(移動)되었고,
3 次 :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으로 이동(移動), 정착(定着)되어 역사조작(歷史造作)에 한 몫을 거들었다.
➎ 『순(舜)’ 임금이 성을 쌓았다』라는 말이 사실(史實)이라고 하더라도 이곳은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이 될 수 없음은 너무도 명백(明白)한 사실(事實)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되놈인 유성(柳城) 호(胡)”들이 살던 곳이기 때문이다.
➨ 유성(柳城)은, 결단(決斷)코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에 존재(存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유성(柳城)” 땅은 “유성호(柳城胡)”들이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유성(柳城)”이란 지명(地名)은 “백용퇴(白龍堆)”가 함께 있어야 가능(可能)한 지명(地名)이다.
“호(胡)”는 “되놈(胡)들 곧 오랑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 『중국(中國)이 되놈, 오랑캐(胡)냐?』라는 물음에 먼저 답(答)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성(柳城)은 ‘유성(柳城) 호(胡)’가 살았던 곳이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즉(卽) “유성(柳城)”이란 곳은 ‘서방(西方)=서토(西土)’ 땅에 있어야 역사적(歷史的) 기록(記錄)을 충족(充足)시킬 수 있고, 실제(實際)로 기록(記錄)에는 백용퇴(白龍堆)가 등장(登場)하며, 신강(新彊) 땅에 “유성(柳城)”이 있다. 더불어 조조(曹操)의 오환(烏丸) 토벌(討伐) 과정(過程)을 보아도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일 수 없는 지형지세(地形地勢)를 기록(記錄)하였다.
➨➨➨ 아래 당(唐)나라의 인물(人物) “고적(高適)”의 영주가(營州歌)를 감상(鑑賞)해보자.
《營州少年愛原野, 皮裘蒙茸獵城下 : 영주의 소년들은 벌판을 좋아하여, 더부룩한 가죽옷 덮어쓰고 성 아래 우거진 곳에서 사냥을 하네. 虜酒千鍾不醉人, 胡兒十歲能騎馬 : 오랑캐는 술 천 잔에도 취하지 않고, 오랑캐 아이 열 살이면 말 타는 것은 능하다네.》라고 하였다.
이런 풍습(風習)이 있던 땅이 바로 『영주(營州) 즉(卽) 유성(柳城)이었다』라는 뜻이다. 더불어 “고구려(高駒驪)”의 땅 “영주(營州)”가 바로 이런 땅이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풍속(風俗)과 환경(環境)은 서토(西土) 땅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경작(耕作)으로 살아가던 동방(東方) 땅에서의 풍속(風俗)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결론적(結論的)으로 보면 : 〈송(宋)나라의 사신(使臣)들은 서북방(西北方) 땅으로 가고 있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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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第十四程:
《第十四程:自營州一百里至潤州。 離州東行六十里至榆關,並無堡障,但存遺址,有居民十數家。: 제 14정 : 영주(營州)》에서 100리를 가면 윤주(潤州)에 다다른다. 이주(離州)에서 동(東)쪽으로 60를 가면 유관(楡關)에 닿는데, 보루(堡壘)는 없고, 단 그 유지(遺址)는 있다. 수십(數十) 가의 백성(百姓)들이 산다.登高回望,東自碣石,西徹五臺,幽州之地沃野千里。: 높이 올라 돌아보니, 동쪽으로 갈석(碣石), 서(西)쪽으로는 철오대(徹五臺)가 보이는데, 유주(幽州)의 땅은 옥야천리(沃野千里)다.》라고 하였다.
➊ 《第十四程:自營州一百里至潤州。 離州東行六十里至榆關,並無堡障,但存遺址,有居民十數家。: 제 14정 : 영주(營州)》에서 100리를 가면 윤주(潤州)에 다다른다. 이주(離州)에서 동(東)쪽으로 60를 가면 유관(楡關)에 닿는데, 보루(堡壘)는 없고, 단 그 유지(遺址)는 있다. 수십(數十) 가의 백성(百姓)들이 산다.》고 하였다.
➨➨➨ 遼志 第 七 地理志 一 : 《遼國其先曰契丹, 本鮮卑之地, 居遼澤中 : 去榆關一千一百三十里, 去幽州又七百一十四里 : 요(遼)나라의 선대(先代)를 글란(契丹)이라고 하는데, 본시(本是) 선비(鮮卑)의 땅으로, 요택(遼澤) 가운데에 있다. : 유관(楡關)이 1,130리(里) 떨어져 있고, 유주(幽州)는 또 714리(里)를 가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중요(重要)한 원문(原文) 구절(句節)이다.
그렇다면 『요택(遼澤)으로부터 유주(幽州)까지는 1,844리(里) 떨어져 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래의 그 주석(註釋)을 보면 황당(荒唐)한 내용(內容)이 되어버리는데 :
주석(註釋) : 《[2] 榆林之關 : 索隱謂, 今山海關, 隋書曰渝關, 亦曰臨渝關. 此榆林蓋臨渝之聲同而倒誤者. : 유림관(楡林關) : 색은(索隱)이 이르기를, 지금 산해관(山海關)으로, 수서(隋書)에서는 유관(渝關)【투관(渝關)】이라고 하였는데, 또 림유관(臨渝關)이라고 한다. 이것은 유림(楡林)이 모두 림유(臨渝)와 음(音)이 같아 바뀐 것으로 그릇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그대로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유림관(楡林關) 즉(卽) 산해관(山海關)에 대입(代入)해보면 :
① 요택(遼澤) 가운데에서 1,130리 떨어진 곳에 ‘유관(楡關)=유림관(楡林關)=산해관(山海關)’이 있다고 하였다.
② 또 ‘유주(幽州)는 714리(里)를 더 가야 한다’라고 하였다. ➠➠ 그러나 이곳에는 산봉우리가 삐쭉삐쭉 굴기(崛起)한 2,400m 가 넘는 산이 없다.
③ ➠➠ 또 그 아래를 흐르는 림유하(臨楡河)도 없다. 이게 도대체 뭔 일일까? 또 이곳이 바로 ‘유주(幽州)’인데, 유주(幽州)는 옥야천리(沃野千里)라고 하였다.
➠ 비록 유관(楡關)이 있다고 하였지만, ‘유관(楡關)이 산해관(山海關)’이라면 여기에는 여러 조건(條件)이 수반(隨伴)된다. 즉(卽) ‘갈석(碣石)’도 있어야 하며, ‘하(河)’가 있어야 하고, ‘갈석산(碣石山)’도 있어야 하고, 산봉우리가 삐쭉삐쭉 굴기(崛起)한 2,400m가 넘는 험준(險峻)한 산(山)도 있어야 한다.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산해관(山海關) 곧 유관(楡關)’에 이러한 조건(條件)에 부합(附合)되는 지형지세(地形地勢)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안타깝고 미안(未安)한 말씀이지만 : 지형지세(地形地勢)가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땅”이다.
➋ 《登高回望,東自碣石,西徹五臺,幽州之地沃野千里。: 높이 올라 돌아보니, 동쪽으로 갈석(碣石), 서(西)쪽으로는 철오대(徹五臺)가 보이는데, 유주의 땅은 옥야천리(沃野千里)다.》라고 하였는데 옥야는 기름진 땅을 발하는 것이니 유주(幽州)는 기름진 땅이 천리(千里)에 뻗쳐있다는 뜻이다.
즉(卽), 당(唐) 시대의 시선(詩仙)이었다고 추앙(推仰), 칭송(稱頌)받던 “이백(李白)”의 유주호마객가(幽州胡馬客歌)를 한 번 감상(鑑賞)해보자.
유주호마객가(幽州胡馬客歌) [李白 唐] :
幽州胡馬客,綠眼虎皮冠,笑拂兩隻箭,萬人不可干 : 호마(胡馬) 탄 유주(幽州) 객(客), 녹안(綠眼)【색목인(色目人)】에 호랑이 가죽 갓, 웃음 띠며 화살 두 대 뽑아 들자, 여러 사람 누구도 얼씬 못하네.
彎弓若轉月,白雁落雲端,雙雙掉鞭行,游獵向樓蘭: 만월처럼 시위를 한껏 당기자, 백안(白雁)이 구름 가에 떨어진다네. 나란히 말채찍을 휘두르면서, 누란(樓蘭)으로 사냥하러 길을 떠나네.
出門不顧後,報國死何難,天驕五單于,狼戾好凶殘于: 문을 나서면 뒤돌아볼 생각지도 않고, 보국(報國)에 죽음 어이 두려우리. 오만한 오랑캐 다섯 선우(單于), 흉포하고 잔인하기 그지없거늘,
牛馬散北海,割鮮若虎餐,雖居燕支山,不道朔雪寒: 북해(北海)에 소와 말을 흩어놓고는, 산채로 찢어서 범처럼 먹으며, 연지산(燕支山)에 모여 살아도, 북풍한설을 춥다하지 않네.
婦女馬上笑,顔如赬玉盤, 飜飛射鳥獸, 花月醉彫鞍: 말 위에서 미소짖는 부녀자들, 마치 붉디붉은 옥쟁반 같은데, 몸을 날려서 조수(鳥獸)를 쏘아 잡고, 꽃 피고 달 뜰 적에 안장에서 취한다네.
旄頭四光芒,爭戰若蜂攢,白刃灑赤血, 流沙爲之丹 : 모두성(旄頭星) 빛이 사방에 가득하고, 싸우러 모인 것이 벌떼와 같네. 서슬이 번쩍이는 칼로 붉은 피를 흩뿌리니, 흐르는 모래사막 온통 붉어 끔찍하네.
名將古誰是, 疲兵良可嘆,何時天狼滅,父子得安閑 : 예로부터 명장(名將)이 누구더냐, 지친 병사들 너무나 안타깝구나. 어느 때나 천랑(天狼) 별이 사라지고, 부자(父子)와 함께 편히 살거나》라고 하였다.
➨➨➨ 위의 시(詩) 구절(句節)에서 보듯이 : 『당시(當時)의 “유주(幽州)”를 찾아온 객(客) 즉(卽) 사나이들은 “호마(胡馬)를 탄 녹안(綠眼)을 가진 색목인(色目人)들이었다”라는 것인데,
이들은 “누란(樓蘭)=선선(鄯善)”【포창해(蒲昌海)) 동북(東北)안에 있었던 옛 왕국(王國)이다.】에 가 사냥하고,
『“북해(北海)에서 놀고, 연지산(燕支山)에서 모여 사는 자(者)”들이며, 되놈(胡)과의 싸움 중에 뿌린 피가 유사(流沙)에 가득해 끔찍하다』라고 하였으니 : ‘유주(幽州)’는 옥야천리(沃野千里)라는 말은 전혀 다른 땅을 칭(稱)하고 있다.
➨ 연지산(燕支山)은, “서토(西土) 곧 서방(西方) 땅”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게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이라면 : “한반도(韓半島)가 중원대륙(中原大陸) 땅”이라는 말고 같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다.
➤ 연지산(燕支山) : 〈연지산(燕支山)은 고금주(古今注)에 의하면 “서방(西方)” 땅에 있다〉라고 하였다. 「“연지산(燕支山)”은 정말 찾기 힘든 산(山)의 이름이다.」 “연지산(燕支山)과 언지산(焉支山)”은 분명 다른 산(山)임에도, 오늘날의 중국(中國)에서는 : “연지산(燕支山)”을 검색(檢索)하면 “언지산(焉支山)”으로 변환(變換)되어 검색(檢索)되는 실정(實情)이다.
➊ ➠➠➠『연지산(燕支山)』 : “연지(燕支)는, 잎(葉)이 계(薊)와 유사하고, 꽃은 포공(蒲公)과 유사하다. 서방(西方)에서 나온다”라고 하였다. 이름이 연지(燕支)로, 중국인(中國人)들은 홍람(紅藍)이라고 부르는데, 염료의 가루가 얼굴색으로, 연지분(燕支粉)이라고 한다【古今注 [崔豹, 西晋]: 燕支,葉似薊,花似蒲公。出西方。土人以染,名為燕支,中國人謂之紅藍,以染粉為面色,謂為燕支粉.】
『“연지분(燕支粉)=연지분(臙脂粉)”은, 여인(女人)들의 얼굴에 바르는 분(粉)을 말하는 것으로, “서방(西方)의 호(胡)”로부터 중원(中原) 땅으로 전래(傳來)된 것인데, “연지(燕支)”는 곧 연지분(燕支粉)을 만드는 원료(原料)로, “연지산(燕支山)”에서 “연지(燕支)”가 많이 산출(産出) 이 되니, 그 이름을 취(取)해 “연지산(燕支山)”이 된 것이다. 따라서 “언지산(焉支山)”은 전혀 다른 산(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古今注 [崔豹, 西晋] : 《燕支,葉似薊,花似蒲公。出西方。土人以染,名為燕支,中國人謂之紅藍,以染粉為面色,謂為燕支粉。今人以重絳為燕支,非燕支花所染也。燕支花所染,自為紅藍爾。舊謂赤白之間為紅,即今所謂紅藍也.》
➠《爾雅翼》引習鑿齒《與謝侍中書》:《「此[山]有紅藍,北人採取其花作煙支,婦人妝時作頰色用。如豆許,按令遍頰,殊覺鮮明。匈奴名妻『閼氏』,言可愛如煙支也。故匈奴有煙支山」》
➋ “언지산(焉支山)”은, 오늘날의 감숙성(甘肅省) 산단현(山丹縣)에 있는 ‘산단산(刪丹山)’을 말하는 것이다. 즉(卽) “언지산(焉支山)” 편에 “연지산(燕支山) 또는 산단산(刪丹山)”이라고 은근슬쩍 끼워 놓았으나, 이건 말도 되지 않는 조잡(粗雜)한 짓이다.【焉支山,又稱胭脂山、燕支山、刪丹山,位於河西走廊的南部,今日中國甘肅山丹縣城東南50公里處】
➤ 대륙(大陸)의 사학자(史學者)들은, “연지산(燕支山)”을 찾을 수 없도록 “언지산(焉支山)”이 곧 “연지산(燕支山)”인 것처럼 왜곡(歪曲), 조작(造作)하여 놓았으나 그게 가능(可能)한 일인가? ➠➠➠ 금방(今方) 탄로(綻露) 나지 않는가!
➨ 대륙(大陸)의 고전(古典)에서 말하는 “서역(西域)”이라는 표현(表現)은 오늘날의 신강성(新疆省) 및 중아(中亞)의 ‘옛 36국’을 말하는 것이다.
➨ “서방(西方)”이란 표현(表現)은, 오늘날의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및 구라파(歐羅巴) 땅을 지칭(指稱)한다.
➨ 따라서 “연지산(燕支山)”이 “서방(西方)에 있었다”라는 말은, 곧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에 있었다”라는 것이다.
유주호마객가(幽州胡馬客歌) [李白 唐]에 나오는 “연지산(燕支山)”은 “고금주(古今注)”에 의하면 : ‘서방(西方)에 있다’라고 하였다. 서방(西方)이 감숙성(甘肅省) 땅은 결코 아니다.
… 하북성(河北省)이나 요녕성(遼寧省) 땅에 ‘유사(流沙)’가 흐르는가? 흐르는 모래 즉(卽) ‘유사(流沙)’는 서토(西土) 땅에 있는 특이지형(特異地形)이다.
… 하북성(河北省)이나 요녕성(遼寧省) 땅에서 ‘누란(樓蘭)’까지 사냥 가나? ‘누란(樓欄)’은 선선(鄯善)으로 백용퇴(白龍堆) 서(西)쪽에 있었던 옛 왕국(王國)이다.
… 하북성(河北省)과 북해(北海)는, ‘1 만리(萬里)’쯤 떨어져 있다.
… ‘연지산(燕支山)’은 서방(西方) 땅에 있다. ‘언지산(焉支山)’은 전혀 다른 산(山)으로 감숙(甘肅) 산단현(山丹縣)에 있다.
➤ 오늘날의 하북성(河北省) 땅이 “유주(幽州)가 될 수 없다”라는 것이며, “유주(幽州) 땅”은, 색목인(色目人)들과의 접경지대(接境地帶)에 있었다는 것을 증거(證據) 해주는 시(詩) 구절(句節)이란 것을, 이 글을 읽는 독자(讀者)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서토(西土) 곧 서방(西方)” 땅에 있었던 “쇄엽성(碎葉城)”은, 바로 위의 시(詩)의 저자(著者)인 “이백(李白)의 고향(故鄕)”으로 알려져 있다.
➨ 『유주(幽州)』는 “장안(長安) 즉 중원(中原)” 중심(中心)으로 볼 때, 동북방(東北方)이 아닌 “서북방지대(西北方地帶)”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當然)한 이치(理致)다.
이럴 때 “진서(晉書) 재기(載記)” 편에 기록(記錄)된 “진(秦)의 장성(長城)”이 “임조(臨洮)의 험(險)한 지형(地形)을 이용(利用)하고, 천산(天山)에 올라 지맥을 단절(斷絶)하여 현토(玄菟)를 감싸고, 하(河)에 이르도록 하였다”라는 것을 이해(理解)할 수 있게 된다.
【晉書卷101 : 然則燕築造陽之郊,秦塹臨洮之險,登天山,絕地脈,苞玄菟,款黃河,所以防夷狄之亂中華,其備豫如此 : 연(燕)에서 조양(造陽)의 밖으로 성(城)을 쌓은 것은, 진(秦)이 임조(臨洮)의 험한 지형(地形)을 이용(利用)하고, 천산(天山)에 올라, 지맥(支脈)을 단절(斷絶)하여, 현토(玄菟)를 싸고돌아 황하(黃河)에 이르게 한 것은, 이적(夷狄)의 난동(亂動)으로부터 중화(中華)를 막아주는 것이며, 이는 미리 방비(防備)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현토(玄菟)는, 유주(幽州)와 접경지역(接境地域)에 있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고구려(高駒驪)의 최(最) 서변(西邊) 땅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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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第十五程:
《第十五程 : 自潤州八十里至遷州。: 彼中行程並無裏堠,但以行徹一曰即記為裏數。是曰行無慮百餘里。金人居常行馬率皆奔軼,此曰自早飯罷,行至螟方到。➠ 道路絕人煙,不排中頓,行人饑渴甚。自茲以東,類皆如此.》
《道路絕人煙,不排中頓,行人饑渴甚.自茲以東,類皆如此. : 길에는 행인이 끊어지고, 행인은 심히 갈증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이곳의 동쪽으로도 같은 유형으로 모두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 하북성(河北省)으로부터 그 동(東)쪽 어느 지대(地帶)이건 위에서 말하는 「道路絕人煙, 不排中頓, 行人饑渴甚. 自茲以東,類皆如此. : 길에는 행인이 끊어지고, 행인은 심히 갈증과 굶주림에 시달린다. 이곳의 동쪽으로도 같은 유형으로 모두 이와 같다.」라고 하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은 존재(存在)치 않았고, 현재(現在)도 마찬가지다.
위의 설명(說明)은, 「그 땅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이 인간(人間)이 살아가기에 적합(適合)하지 않은 곳이었다」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송(宋)” 사신단이 동(東)쪽으로 갈수록 “금(金)”나라가 가까워질수록 그곳에 사는 백성(百姓)들이 많았다는 것이 정상적(正常的)인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 “금(金)”나라가 가까워지니까 당연(當然)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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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第十六程:
《第十六程 : 自遷州九十里至習州.遷州東門外十數步即古長城,所築遺址宛然。: 제16정(程) : 천주(遷州)로부터 90리를 가면 습주(習州)에 닿는다. 천주(遷州)의 동문(東門) 밖으로 십여(十餘) 보를 가면 곧 옛 장성(長城)이 있는데, 장성(長城)을 쌓은 터(址)가 완연(宛然)하게 전해지고 있다.》라고 하였다.
“천주(遷州)”는 “요(遼)”때 설치한 고을로 오늘날의 진황도(秦皇島) 산해관(山海關) 주변일대(周邊一帶)를 말한다. 【遷州(遼朝) : 遼朝置,治遷民縣[今河北秦皇島市東北山海關] 遼聖宗平大延琳,遷歸州民置,故名。轄境相當今山海關等附近一帶】고 하였으니,
『고장성(古長城)』이란 결국 산해관(山海關) 주변일대(周邊一帶)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가욕관(嘉峪關)으로부터 하북성(河北省) 동(東)쪽의 장성(長城)과 산해관(山海關)을 연결(連結)하는 장성(長城)은 명(明)나라 때의 쌓은 것이다」라고 전(傳)해지고 있다. 지금도 ‘중국(中國) 당국(當局)’은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
따라서 위의 “고장성(古長城)”이라고 한 것은, 송(宋)나라 때인 “AD 1,125年 경(頃)”의 일이므로 『“명(明)”나라는 태어나지도 않은, “수백(數百) 년(年) 전(前)”의 일이므로 아무런(何等) 관계(關係)도 없다.』
➠➠➠ 이로 보면 : 『“AD 1,125年 경(頃)” 당시(當時)의 송(宋)나라 사신(使臣) “허항종(許亢宗)”과 사신(使臣)들은 고장성(古長城)의 흔적(痕迹)이 상존(尙存)하는 오늘날의 하서회랑(河西回廊), 돈황일대(燉煌一帶), 신강(新疆) 땅으로 가고 있다』라는 증거(證據)다.
결국(結局) AD 1,125年의 송(宋)나라 사신(使臣) 허항종(許亢宗)은, 서(西)쪽, 서북(西北)쪽으로 전진(前進)했으며, 이때는 하서회랑(河西回廊)과 돈황(燉煌)을 지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고장성(古長城)’은 누구의 것일까? 조(趙)나라? 연(燕)나라? 제(齊)나라? 연(燕)은 서토(西土)에 있던 나라였고, 조(趙)는 중원(中原) 북방(北方)에, 제(齊) 또한 이곳까지 영토(領土)였다는 적이 없다.
결국(結局) 고장성(古長城)이란 “진(秦)”나라의 것일 수밖에 없다. “송(宋)”나라 때에는 이곳에는 장성(長城)이 없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땅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송(宋)”나라 사신(使臣)들은 여진족(女眞族) “금(金)”나라를 향해 가는데, ‘동북방(東北方)’이 아닌 ‘서북방(西北方)’ 쪽으로 가고 있는 여정(旅程)을 기록(記錄)한 것이다.
○ 〈여진족(女眞族) “금”나라는 “동북방(東北方)”에서 시원(始原)할 수 없다〉라는 것은 이미 4,100 餘年 전(前)에 기록(記錄)된 “산해경(山海經)”이나 2,100년 전(前)에 기록(記錄)된 “회남자전(淮南子傳)” 등에서 상세(詳細)하게 말해주고 있다. :
〈세계사(世界史)를 왜곡(歪曲), 조작(造作)한 서구제국주의(西歐帝國主義)와 이를 학문적(學問的)으로 뒷받침해 준 실증사학자(實證史學者)들이 이를 신화(神話)로 취급(取扱)하면서 “역사왜곡(歷史歪曲)과 역사조작(歷史造作)”에서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일 뿐이다.〉
(1) 산해경(山海經) : 숙신(肅愼)【숙신(肅愼)➠읍루(挹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女眞) : 이 모두는 숙신족(肅愼族)이다】: 산해경(山海經)은, 하(夏)【夏 BC 2,207 – BC 1,766? 計 442年】의 ‘우(禹)’ 임금 또는 ‘백익(伯益)’이 저자(著者)라고 알려져 있다.
➊ 『해외남경(海外南經)』에서 이르기를 : 《海外南經 : 結匈國在其西南,其為人結匈 : 결흉국(結匈國)이 그 서남(西南)쪽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주석(註釋)에서 필원(畢沅)이 이르기를 : ‘회남자(淮南子) 지형훈(墬形訓)’ 편을 인용(引用)하였다.
즉(卽), 【註釋 : 畢沅云:淮南子墬形訓有結胸民作『胸』, 非. 珂案:淮南子墬形篇云:凡海外三十六國:自西北至西南方,有修股民,天民,➠肅慎民,白民,沃民,女子民,丈夫民,奇股民,一臂民,三身民,中略. : 무릇 해외에는 36 나라가 있다. “서북(西北)에서 서남방(西南方)에 이르는 곳에는 ➠숙신민(肅愼民)이 있다”라고 하였다.】
➋ 『해외서경(海外西經)의 주석(註釋)도 ➊과 똑같게 ‘필원(畢沅)’은 말하기를 : 《山海經第七. 海外西經 : 海外自西南陬至西北陬者1 : “해외(海外)”의 “서남(西南)에서 서북(西北)”에 : “숙신민(肅愼民)이 있다”』라고 하였다. 【1畢沅云 : 淮南子墬形訓云:➠自西北至西南方.起修股民➠肅慎民.此文正倒.知此經是說圖之詞,或右行則自西南至西北起三身國,或左行則自西北至西南起修股民.是漢時猶有山海經圖,各依所見為說,故不同也】
➌ 『해외서경(海外西經)』 편에서는 : 《海外西經 : 肅慎之國1在白民北,有樹名曰雄常,先入伐帝, 于此取之 : 해외서경(海外西經) : 숙신국(肅愼國)은 백민(白民)의 북(北)쪽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그 주석(註釋)에서, 가(珂)는 이르기를 : ‘대황북경(大荒北經)’을 인용(引用)하여 말하기를 : 대황(大荒)의 한 가운데 불함산(不咸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山)이 있는데, ➠숙신씨(肅愼氏) 나라가 있다. 【1 珂案:大荒北經云: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慎氏之國.淮南子墬形篇有肅慎民,周書王會篇云:稷慎大麈.孔晁注云:稷慎,肅慎也】
➍ 『대황북경(大荒北經)』에 의하면 : 《大荒北經:大荒之中,有山,名曰不咸.➠有肅慎氏之國1 : 대황(大荒)의 한 가운데 불함산(不咸山)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는데, ➠숙신씨(肅愼氏) 나라가 있다》라고 하였다. 【1郭璞云:今肅慎國去遼東三千餘里,穴居,無衣,衣豬皮,冬以膏塗體,厚數分,用卻風寒.其人皆工射,弓長四尺,勁彊. 箭以楛(宋本楛下有木字— —珂)為之,長尺五( 藏經本五作八— —珂)寸,青石為鏑,此春秋時隼集陳侯之庭所得矢也.晉太興三年平州刺史崔毖遣別駕高會,使來獻肅慎氏之弓矢,箭鏃有似銅骨作者.問(藏經本問下有之字,是也— —珂)云,轉與海內國,通得用此.今名之為挹婁國,出好貂,赤玉.豈從海外轉而至此乎?後漢書所謂挹婁者(宋本,吳寬抄本者作國— —珂)是也」郝懿行云:肅慎國見海外西經. 中略. 今之後漢書,非郭所見,而此注引後漢書者,吳志嬪妃傳云:謝承撰後漢書百餘卷.其書說挹婁,即古肅慎氏之國也.隼集陳侯之庭,魯語有其事】
➨ 중요(重要)한 것은 『숙신족(肅愼族)의 숙신국(肅愼國)』은 “동북방(東北方)”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방(北方)에서 서방(西方) 사이에 있었다』라는 것이다.
곽박【郭璞 : 276年—324年 : 西晉建平太守郭瑗之子。東晉著名學者,既是文學家和訓詁學家,又是方術大師和‘遊仙詩’的祖師。著作‘爾雅注’(313-317年),‘方言注’(318-320年)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➎ 곽박(郭璞)의 주석(註釋)에 따르면 : 『숙신국(肅愼國)은 요동(遼東) 3천여(千餘) 리에 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숙신국(肅愼國)은, 북방(北方)에서 서방(西方) 간(間)에 있었다』라고 하였으니 『“요동(遼東)” 또한 북방(北方)에서 서방(西方) 간(間)에 있어야 한다』라는 것은 당위성(當爲性)이 있는 것이다.
위의 산해경(山海經) 속에서 기록(記錄)된 “숙신씨(肅愼氏) = 숙신민(肅愼民) = 숙신국(肅愼國)”의 방위(方位)를 보면 : 『북방(北方) ∼ 서북방(西北方) ∼서남방(西南方)』사이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모조리 『서방(西方) 땅이다』
➠➠➠ 〈“서방(西方)∼서북방(西北方)∼서남방(西南方)”은, “동북방(東北方)”과는 정반대(正反對) 방위(方位)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理由), 명분(名分)을 내세워도 이해(理解)될 수 없는 사안(事案)이자, “명백(明白)한 역사왜곡(歷史歪曲)과 역사조작(歷史造作)”이다.〉
➏ 또 하나는 “불함산(不咸山)”이다. “불함산(不咸山)”은 곧 “백두산(白頭山)이며,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백두산(白頭山)과 장백산(長白山)”이 북방(北方) 땅에, 또는 서북(西北) 땅에 있어야 함은 지극(至極), 당연(當然)한 것이다』
그러함에도 “백두산(白頭山)=장백산(長白山)”은 “동방(東方) 땅에 있다”라고 하면서 “한반도(韓半島) 북방(北方)의 백두산(白頭山)”이라고 말한다.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의 해설(解說)대로라면 : 『북방(北方)이 동방(東方)이 되고, 동방(東方)이 북방(北方)이 되어야만 한다.』 이는 어처구니없는 짓으로 “천지간(天地間)의 이치(理致)”를 “지”들 맘대로 조작(造作)하는 것이다.
➨➨➨ ‘지극(至極) 당연(當然)’한 것처럼 “불함산(不咸山)=장백산(長白山)백두산(白頭山)”은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우뚝 솟아있고, 그 뒤에 “숙신씨(肅愼氏)”들이 있었다는 것이 정론(正論)인 것이다.
옛 사상(思想)에서 이를 보면 : 『“불함산(不咸山)=장백산(長白山)백두산(白頭山)”은, ‘땅(地)의 중심(中心)’에서 북(北)쪽이요, ‘중국(中國)=화하(華夏)’에서는 ‘서북방(西北方)’에 있는 것이다.』
(2) 회남자전(淮南子傳) : 숙신(肅愼)【숙신(肅愼)➠읍루(挹婁)➠물길(勿吉)➠말갈(靺鞨)➠여진(女眞) : 이 모두는 숙신족(肅愼族)이다. 시대(時代)에 따라 다르게 부른 것이다.】
회남자전(淮南子傳) :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 BC 179 – BC122)이 빈객(賓客)과 방술가(方術家) 수천(數千)을 초빙(招聘)하여 편찬(編纂)한 것이다”라고 전(傳)해지는 ‘고전(古典) 기록(記錄)’으로 참고(參考)할만한 것들이 많다.
➊ [제4편 지형형(墜形訓)] 조(條)에서 이르기를 : 《팔극(八極)이 있다. 왈(曰) : 서북방(西北方)에는 불주산(不周山)이 있다. 이르길 유도(幽都)【유주(幽州) 또는 유릉(幽陵)】의 문(門)이라고 한다. : 【乃有八極 : 自東北方 曰方土之山 曰蒼門, 東方曰東極之山 曰開明之門, 東南方曰 波母之山 曰陽門, 南方曰南極之山 曰暑門, 西南方曰編駒之山 曰白門, 西方曰西極之山 曰閶闔之門, ➠西北方曰不周之山 曰幽都之門, 北方曰北極之山 曰寒門.】》
➋ [제4편 지형형(墜形訓)] 조(條)에서 이르기를 : 《무릇 해외에는 36 나라가 있다. “서북(西北)에서 서남방(西南方)에 이르는 곳에는 ➨ 숙신민(肅愼民)이 있다”라고 하였다.【凡海外三十六國 : ➠自西北至西南方 : 有修股民 天民 ➠肅愼民 白民 沃民 女子民 丈夫民 奇股民 一臂民 三身民 自西南至東南方 : 有結胸民 羽民 讙頭國民 裸國民 三苗民 交股民 不死民 穿胸民 反舌民 豕喙民 鑿齒民 三頭民 修臂民 自東南至東北方 : 有大人國 君子國 墨齒民 玄股民 毛民 勞民 自東北至西北方 : 有蚑踵民 句嬰民 深目民 無腸民 柔利民 一目民 無繼民】》
위의 글 “➊+➋”에서 말하는 것은 : 서북방(西北方)에 불주산(不周山)【곤륜산(崑崙山)=총령(葱嶺)=불주산(不周山)】이 있는데 이곳이 “유도(幽都) 곧 유주(幽州)의 문(門)”이라고 하였다. 곧 『‘총령(葱嶺)=곤륜산(崑崙山)=불주산(不周山)’이 있는 그곳 땅이 본래(本來)의 유주(幽州) 땅이다』라는 뜻이고,
또 『이곳 땅에 “숙신(肅愼)의 백성(百姓)들이 살고 있었다”』라는 뜻이다. 『북(北)쪽 또는 서북방(西北方)에서 서남방(西南方) 사이에 숙신(肅愼)이 있었다』는 것은,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 : BC 179 – BC122)이 살던 때의 역사상식(歷史常識)이었다는 뜻이다.
➠➠➠ 21세기(世紀) 오늘날의 항가리【Hungary : 마자르족(Magyar】와 그 인접(隣接) 나라들이 바로 옛 ‘숙신족(肅愼族)’이다. 이건 팩트[Fact]다.
➌ [제9편 主術訓] 조(條)에서 이르기를 : 《其地南至交阯, ➠北至幽都, 東至暘谷, 西至三危 : 그 땅의 남쪽에 이르면 교지(交阯)요, ➠북쪽에 이르면 유도(幽都: 幽州)요, 동쪽에 이르면 양곡(暘谷)이요, 서(西)쪽에 이르면 삼위(三危)다》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아주 중요(重要)한 내용(內容)을 볼 수 있는데, 『동(東)쪽으로는 양곡(暘谷)에 닿는다』라고 하였으니 “그 땅은 곧 동방(東方) 땅”을 말하는 것이다. 〈“동방(東方)”이란 즉(卽) “중원(中原) 대륙지지(大陸之地)”〉를 말하고 있다.
➍ [제18편 人間訓] 조(條)에서 이르기를 : 《秦皇挾錄圖, 見其傳曰 : 亡秦者胡也, 因發卒五十萬使蒙公楊翁子, 將築脩城, 西屬流沙, 北擊遼水, 東結朝鮮, 中國內郡, 輓車而餉之. : 진시황(秦始皇)의 협록도(挾錄圖)를 보면 그곳에서 전하기를 : “진(秦)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오랑캐(胡)다”라고 하였다. 인하여 50만의 군사(卒)를 발하고 몽공(蒙公) 양옹자(楊翁子)를 사(使)로 하여 장성(長城)을 쌓게 하였는데, “서(西)쪽으로는 유사(流沙)에 붙이고, 북(北)쪽으로는 요수(遼水)에 닿게 하고, 동(東)족으로 조선(朝鮮)까지 끝내게 하였다” 중국(中國) 안에서는, 수레에 군량을 실어 보냈다.》라고 하였다.
이곳에서도 『진(秦)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유사(流沙)까지였고, 북(北)쪽으로 요수(遼水)까지였다』라는 것이다.
➎ [제19편 脩務訓] 조(條)에서 이르기를 : 《서(西)쪽으로는 옥민(沃民)을 교화(敎化)시키고, 동(東)쪽에 이르면 흑치(黑齒)요, ➠북(北)쪽으로는 유도(幽都)를 무마(撫摩)하고, 남(南)쪽 길에는 교지(交阯)다 : 西敎沃民 東至黑齒 ➠北撫幽都 南道交趾》라고 하였으며,
➏ [제20편 泰族訓]조(條)에서 이르기를 : 《而得天下之心 紂之地 左東海 右流沙 前交趾 ➠後幽都 : 천하(天下)의 가운데를 득하였으니, 주(紂) 임금의 땅이다. 좌(左 : 東)는 동해(東海)요, 우(右 : 西)는 유사(流沙)요, 전(前 : 南)은 교지(交阯)요, ➠ 후(後 : 北)는 ‘유도(幽都)=유주(幽州)’다》라고 하였다.
➨ 사기(史記) 오제본기(五帝本紀) : 帝顓頊高陽 本紀 《北至于幽陵[六] : [六] 正義幽州也.北至于幽陵》이라고 하였다.
帝 堯 本紀 : 居 北 方, 曰 幽 都 【集解孔安國曰 : 北稱幽都, 謂所聚也. 索隱山海經曰 : 北海之內有山名幽都, 蓋是也. 正義案:北方幽州,陰聚之地,命和叔居理之.北方之官,若周禮冬官卿】
특히 ‘유도산(幽都山)’에서 ‘흑수(黑水)’가 나온다고 하였다. 지세(地勢)는 결코 조작(造作)할 수 없다. 다만 대중(大衆)을 잠시 속이는 것이다.
➨ ‘新唐書 地理 기미주(羈縻州)’편을 보면 : 《발야고부(拔野古部)에 유릉도독부(幽陵都督府)를 설치하였다.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에 속했다 : 新唐書. 地理 7 下 : 羈縻州 : 幽陵都督府以拔野古部置, 右隸安北都護府.》라고 하였다.
‘한해도독부(瀚海都督府)’를 개칭(改稱)하여 ‘안북도호부(安北都護府)’로 하였는데, 이곳은 오늘날의 신강성 천산산맥(天山山脈) 북방지대를 말하는 것으로, “유릉(幽陵)은 유도(幽都)요, 유주(幽州)”라고 하였으니, “유주(幽州)”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발야고(拔野古)』는 철륵(鐵勒)의 별종(別種)으로 오늘날의 “서(西) 시베리아(Siberia) 분지(盆地)의 추운 땅에 살던 부족(部族)이다.
➠ 장안(長安)에 가기는커녕 쳐다보지도 못한 자(者) 왈(曰) : 『남대문(南大門) 현판(懸板)의 “남녘 남(南)”자(者)가 기막힌 명필(名筆)이더라』하는 말과 같은 것이다. “남대문(南大門)은 남문(南門)으로 숭례문(崇禮門)”을 말하는 것이다.
○ 위에서 인용(引用)한 바와 같이 생생(生生)한 기록(記錄)을 어떻게 외면(外面)하고, 동북방(東北方)으로 몰아넣을 수가 있을까? 이건 개인(個人)의 일탈(逸脫)이 아니다.
➠ 실증사학(實證史學)을 빙자(憑藉)한 양(羊)의 탈을 뒤집어쓴 “서구(西歐) 제국주의자(帝國主義者)”들과 “하이에나[hyena]를 자처한 서남방(西南方) 해상종족(海上種族) 일본제국주의자(日本帝國主義者)”들과 “이들이 길러낸 소수민족(少數民族) 출신(出身) 손문(孫文)”과의 야합(野合)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역사조작(歷史造作)”의 결과(結果)다.
누굴 탓할까? “윤석열”처럼 “전(前) 정권(政權) 타령(打令)”으로 하세월(何歲月)을 보낼까? 『다시는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라는 다짐이 필요(必要)한 것이지, 남의 탓할 일은 없는 것이다. 탓해봤자 해결될 일이 없고, 무능(無能)함을 스스로 자백(自白)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래서 『배신자(背信者), 부역매국노(附逆賣國奴), 부역자(附逆者)』들을 처단(處斷)하고 민족(民族)의 정기(精氣)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역설(力說)하는 것이다.
어떤 “00 O”처럼 “이승만(李承晩, 1875~1965)”을 추모(追慕)하자고 하다가 갑자기 “김일성(金日成)”이 70만 대군(大軍)을 육성(育成)하는데 많은, 엄청난 도움을 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연설(演說)을 한 자(者)가 “서울대학교(大學校) 명예교수(名譽敎授)”라는 자(者)란다.
➨ 그래서 “이승만(李承晩)과 김일성(金日成) 동상(銅像)을 나란히 세우고 추모(追慕)하자는 건가? 영웅(英雄)으로 칭송하자는 건가? 제2의 국부(國父)로 받들어 모시자는 건가?”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즉(卽) “서울대학교가 없어져야 한다”라고 말이다. 그래야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말이다. ‘윤석열도 이곳 출신(出身)’이다.
어떻게 하나같이 국가(國家)와 민족(民族)은 없고, 스스로 살아가려는 자주(自主)와 자립(自立)은 없고, 오직 사대주의(事大主義)에 집착(執着)하는 것일까? 이런 놈들이 득세(得勢)한다는 것은 이 나라에 망조(亡兆)가 드리우고 있다는 증거(證據)다.
이런 놈들은 주장(主張)은, 「부자(富者)가 되기 위해서 남의 집에 들어가서 물건(物件)을 훔치고 장물(贓物)을 팔아서라도 부자(富者)만 되면 된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국가(國家)와 국가(國家) 사이의 외교(外交)란 서로를 이용(利用)하는 것이다. 즉 국가이익(國家利益)을 위해서 상호협력(相互協力)하는 것이지 “사대(事大)”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대(事大)란 : 주체성(主體性) 없이 강(强)한 나라 또는 강(强)한 자를 쫓아 자신(自身)의 존립자체(存立自體)를 유지(維持)하려 섬기는 것을 말한다.
사대주의(事大主義)란 : 주체성(主體性) 없이 강(强)한 나라 또는 강(强)한 자를 쫓아 자신(自身)의 존립자체(存立自體)를 유지(維持)하려는 주의(主意)를 말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우파(保守右派)’들은, 한민족(韓民族)과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주체성(主體性)을 버리고, 국가(國家) 간의 외교(外交)가 아닌 사대주의(事大主義)를 표방(標榜)하는 것이며, 그것은 “무작정(無酌定), 무대포[莫無可奈] 사대(事大)”를 부르짖는 것이고, “성조기(星條旗)+일장기(日章旗)+태극기(太極旗)”가 함께 휘날리는 모습은 “막장”으로 가는 모습이다.
➨➨➨ 이 “00 O”들의 말대로 막무가내(莫無可奈)로, 무작정(無酌定)으로 사대(事大)하려면 차라리 떳떳하게 : 〈5,200만 국민(國民)들의 서명(署名)을 받아 ‘유엔(UN)’에 제출(提出), 청원(請願)하여, 『미국(美國)의 51번째 주(州) “South Korea States”란 이름으로 편입(編入)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열도(列島) 일본(日本)의 “1都 1道 2府 43縣”중에서 44번째 “남한현(南韓縣)으로 편입(編入)』하여 본국(本國)이 보낸 사자(使者)인 왕사(王師) 즉(卽) 총독(總督)을 모시면 되는 일이다.〉
대한민국(大韓民國) 보수우파(保守右派)님들! 이 제의(提議)가 어떤가? 솔깃하지 않는가!
➨➨➨ 이제는 국민(國民)들 스스로 일어설 차례다. 이런 놈들을 가차(假借) 없이 처단(處斷)해야 한다. 그래야 “이 나라(國家)가, 이 민족(民族)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두는 미래(未來)의 우리들의 후손(後孫)들을 위하는 것이다.
○ 국민(國民)들의 의식수준(意識水準)을 높일 필요(必要)가 있다. 이 나라의 관리(官吏)들은, 국민(國民)들을 정말 너무 우습게 여기는 풍조(風潮)가 만연(蔓延)하다.
“윤석열”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다 알만한 일이다. 관리(官吏)들은 자리에서 내려오면 끝이지만 : “대한민국(大韓民國)과 한민족(韓民族)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강자(强者)”란 “강(强)한 힘을 가지고 있는 놈이나 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자(者) 또는 무리를 말하는 것이고, 이게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重要)한 것이다.”
[제1편 / 끝. 2편으로 계속(繼續)] 2023년 10월 31일 [글쓴이 : 문무]
첫댓글 선생님 감사합니다
문무선생님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올해는 이상하게 바빠서 몇일전 부터 선생님의 논문을 정독하였습니다
연구하신 논문중에 열하의 위치 고증하신 부분에서 연경의 위치까지...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단편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서도
선생님의 논문에서 배움의 크기는 차원이 다릅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좋은 일만 가득하셔요
*** 안녕하세요. "대진"님!
관심과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더 좋은 글을 가지고, 우리 회원님들의 갈증을 조금이라도 풀어줄수 있다면...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조선사=한국사"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이 멀어져가는 세대입니다.
그만큼 경제적인 문제가 먼저이기 때문이겠죠. 이건 나든, 너든 누구라도 닥치는 현실이기 때문에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셨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댁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