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21대 왕인 영조 대왕은 신임사화 등의 숱한
정치적 위기를 넘기고 즉위한 왕이다.
당시 노론과 소론의 당파 싸움이 극렬한 시대라 즉위한 그날부터
하루도 근심 없는 날이 없었다. 재위 기간 노론과 소론의 극렬한 당론을
중재하고자 탕평책 등을 추진하였지만 성과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들 사도세자와 갈등까지 빚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니
아버지로서도 그렇고 나랏일도 그렇고 왕의 근심은 하늘에 닿았을 것이다.
이 민담은 그가 재위 시절에 일어난 이야기다.
당파 싸움으로 하루도 우환이 없는 날을 보냈던 영조 대왕은
세상에 어디 근심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자위 겸 푸념을 하다가 호기심으로 혹시 그런 사람이 있는가?
알아보라고 진담 반 농으로 알아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어느 날 해안가 어느 마을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영조 대왕은 어떤 사람이길래 그렇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여 궁궐로 불러 불러올렸다.
그 노인은 나이가 70이 되었는데도 지금도 병 하나 없이 건강하고,
자식은 셋을 두었는데 모두 장가가서 손주까지 놓고
효심까지 소문나 있으며, 주변의 친지나 이웃 마을의 사람들조차
누구도 험담하는 사람이 없다고 소문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식솔들 모두 심지어 하인들까지도 주인을
칭송하는지라 마을 사람들은 그를 무수옹(無愁翁)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무수옹이란 근심 없는 늙은이라는 뜻이다.
영조 대왕은 무수옹을 만나보고는 부러워했는지
귀한 선물을 하사(下賜)하면서 한가지 명을 내렸다.
“내게 귀한 구슬이 하나 있는데
이를 궁궐에 두기가 조금 걱정이 돼서 그런데
자네에게 잠시 맡길 테니 보관하고 있다가
내가 다시 부르면 그때 가지고 오겠나.”
그리하겠다고 약속하고 무수옹은 임금의 귀한 선물까지 받고
기쁜 마음으로 궁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집으로 가는 길은 큰 강이 있어 나룻배를 타야 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반쯤 왔을 때 배를 탄 일행 중 한 길손이
무수옹을 알아보고
“듣자 하니 임금님께서 귀한 선물을 하사했다고 들었는데
가장 귀한 선물 중 특별한 것이 없었는지요?
그것 한번 보여줄 수 없습니까? ”하는 것이 아닌가.
무수옹은 “이 구슬은 색깔도 영롱하고, 얼핏 보기에도
보통 귀한 것이 아닌데 임금님 제게 하사한 것은 아니고
잠시 보관하라고 맡긴 것입니다. “라고 말하며
봇짐을 풀어 영조 대왕이 맡긴 구슬을 자랑하며 내보였다.
구슬을 받았든 나그네는 신기한 듯 이리저리 구슬을 돌려보다가
그만 나룻배가 흔들려 구슬을 강에 빠트려 버리고 말았다.
나그네는 깜짝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얼굴색까지 하야케 변했다.
임금이 맡기 구슬을 잃어버렸으니
당연히 혹독한 벌을 당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인데도
무수옹은 태연하게 ”이미 저지른 일을 걱정한들 무얼 하겠소.
그저 없던 일이라 생각하고 가시든 길이나 가시오“ 하고
도리어 나그네를 위로하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은 놈이라고
질책할 텐데 무수옹은 앞으로 당할 일은 생각지도 않은 듯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나그네를 위로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임금님이 하사한 물건들을 식솔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구슬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태연하였다.
그러나 큰일은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소문을 전해 들은 가족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수옹이 목숨까지 잃을 뻔한 일이라 걱정이 태산 같은데
당사자인 무수옹은 예나 똑같이 태평스럽고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이 큰 물고기 한 마리를 들고 들어와
강에서 잡은 놈인데 보통 큰 잉어가 아니라서
아버님 생각이 나서 바로 가져온 것이라며
아버님께 올려드리고 하였다. 무수옹의 아내가 이를 받아 들고 요리를 하고자
물고기 배를 가르자, 그 안에서 구슬이 나왔다.
이것이 아버님이 강에서 잃어버린 임금님이 맡긴 구슬이 아닌가? 싶어
남편에게 물어보니 무수옹은 기뻐하는 기색도 없이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이튿날 궁궐에서 기별이 왔다.
무수옹이 구슬을 봇짐에 싸고 궁궐에 들어가 정조대왕을 알현하니
정조대왕은 “지난번 맡긴 구슬을 가지고 왔느냐?”라고 하자
무수옹은 봇짐 속에서 가져온 구슬을 받쳤다.
정조대왕은 이상하다는 듯 의아스러운 표정을 짓고 무수옹을 응시하자
무수옹은 구슬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은 그것까지 전후 사정을 아뢰었다.
그 말을 들은 정조대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참으로 인연도 복도 따로 있는가 보다. 사람 살면서 어찌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마는 행복이란 다만 근심과 걱정에
매달려 집착하지 않는 것이 다를 뿐이구나“라고 하면서
고생했다고 다시 많은 선물을 하사하고 돌려보냈다.
훗날 밝혀진 이야기로는 나룻배에 그런 일을 벌이게 시킨 것은 다름 아닌
정조대왕이었다고 한다. 일부러 근정 걱정을 만들어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떠본 것이라는 것이다.
정조대왕이 행복의 근원은 무집착(無執着)에서 있다는 것을
깨우쳤는지는 몰라도 묘하게도 조선의 역대 국왕 중
가장 장수(81세 5개월)하였으며,
가장 오(51년 7개월)랫동안 재위하였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탐진치(貪瞋痴)는
소견(所見)과 애착(愛着)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고 했다.
모든 근심, 걱정은 바로 소견과 애착으로 일어난다는 의미다.
덕이 엷고 지혜가 적은 사람은 다만 눈앞의 욕락(欲樂)만을 보고
다시 돌이켜 생각하지 않아서 모든 괴로운 과(果)를 성취게 된다.
자기의 즐거움은 자기의 선(善)함이 이루며
자신의 미혹됨이 자신의 괴로움을 낳으니
괴로움과 즐거움은 마음을 여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낚싯바늘을 삼키는 것은
맛을 탐내다 스스로 얽매이는 것이니,
유정(有情)도 또한 그러하여, 5역(欲)을 사랑하고
즐겨서 항상 버리지 않으며, 널리 모든 업을 일으켜서
생사에 윤회하여 멈추거나 쉼이 없으며,
물들임의 인(因)에 미혹되고
어두워서 모든 갈래의 차별이 다 함이 없다.
라고 했다. 이는 《묘법성염처경(妙法聖念處經)》에서 이른 말이다.
불어오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인연의 바람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버들이 불어와도 흔들릴지언정 꺽이지 않듯
인연의 바람에 꺽이지 말아야 한다.
인연의 바람에 끽인다는 것은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애착을 느끼고
집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법에도, 인연에도 순연(順緣)하라고 한 것이다.
순연은 곧 무집착을 의미한다.
평온한 마음은 그러한 순연(順緣)의 마음에서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