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통영의 공간
이국민
1. 수국작가촌
지금은 작가촌, 예술촌 나도 모르는 공간이 많이 생긴 것으로 안다. 그러나, 통영시 인평동 천대마을 수국작가촌이 생길 때만 해도 통영전역에 작가촌이란 이름의 문화공간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민들이 잘 모르는 산모퉁이 작은 섬 2개가 작가촌이란 이름을 붙쳤을 때, 갑자기 유명해 졌다. 수국작가촌은 국비나, 도비, 시비 일전 안 받고 순수한 개인과 그를 잘 아는 예술인들의 협조로 만들어 진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 당시 예상치 못하는 반대 여론이 높아 작가촌 운영진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통영의 일부 시민들이 반대를 해대는 것이었을까? 그런 속에서 그 곳에는 여름마다 여름시인학교, 여름창작학교가 5~6년 지속적으로 열렸다. 통고 재학시절 연세대축제 전국고교생문예백일장에 참석해 박두진시인을 심사위원석에 앉은 모습을 뵙고 수국작가촌에서 두 번째 뵌 후, 유일한 청록파시인 박두진시인은 영영 뵐 수 없는 분이 되셨고, 유명한 소설가 이문열선생도 이 수국작가촌에서 만나 밤새 소주를 놓고 대화를 나눈 기억이 있으며, 유안진시인,신달자교수,이근배교수,김재홍교수,허영자교수,고은시인,조병화시인,김남조시인,김광림교수 등 기라성 같은 현대한국문인들이 이 곳에서 강의하고 세미나하고 휴식하고 다녀갔다.
당시 통영시는 작가촌 설립에 반대하는 분위기여서 거의 홍보를 하지 않은 상태이고 당시 통영문협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내가 사람을 모아 참석을 시키곤 했다. 당시 수국작가촌 입구에는 통영의 반대세력을 상징하듯 철조망이 쳐 있었다. 우리는 그 철조망을 넘어 그 행사에 몇 년 연속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 철조망은 계속 쳐져 있었는데 안가본지 오래라 지금은 그 철조망이 그대로 있는지 잘 모르겠다.
수국작가촌은 그 후, 반대여론에 못 이겨 사기업에 팔렸으며 지금은 이름만 작가촌이지 평소 팬션같은 기능[숙박업소]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사기업의 연수장소로 가끔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수국작가촌은 유일한 통영의 문학적인 작가촌이었으며, 그 후, 화가전용 작가촌은 상당히 많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지만, 문학전용 작가촌은 아직 듣도 보지도 못했다.
2. 동피랑 문화공간
수국작가촌이 한 때의 르네상스를 잠시 누리다 사라진 후, 통영에는 미술관계 작가촌이 많이 생겨났고, 문학, 연극관계 작가촌은 여전히 전무하다가 동피랑 문화공간이라는 작가촌 성향의 공간이 생긴 것으로 안다. 그러나, 이 공간은 통영시에서 직접 만든 공간이라서 작가촌 형태이긴 한데 시청에서 규정하는 작가의 개념과 범위가 애매하여 사용하는데 상당한 제약이 느껴졌고, “통영 출신 작가는 제외”라는 관계자의 말씀에 황당하여 문의를 중단한 적이 있었다. 통영시는 이 점에 대해 언젠가는 확실히 규명해 줄 의무가 있다.
3. 다이어트섬
경남도는 경남의 아름다운 섬을 이용하여 다이어트 섬 조성으로 국민들의 인기를 끌 연구를 하고 있는데, 통영은 이 프로젝트에 적격인 곳이다. 다이어트는 부수적으로 따라 오고 통영의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체력 단련, 수양, 학술 연구 세미나, 각종 예술단체 연수등을 유치하여 여름 한 철 아니, 사시사철 프로젝트를 개발하여 운영하면 여러모로 통영시와 통영시민의 경제에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4. 도남동 1번지
최근 말이 많은 충무관광호텔부지다.
이 곳은 정말 천혜의 휴양지, 산책지로서, 숙박시설 없이 단순한 공연장 하나 우뚝하니 서 있기로는 너무나 아까운 곳이다. 예산과 설계에 숙박시설은 고스란히 빠져있기 때문에 나 혼자 아무리 부르짖어도 소용없는 메아리에 불가하지만, 고향의 미래를 내다 본다면 절대로 재고해야만 할 일이다.
음악당, 나는 참 좋아한다. 친할아버지가 국악으로 통영에서 처음으로 인간문화재가 되신 분인데 어찌 음악당건립을 싫어하겠는가? 또한 윤이상일대기를 맨처음 희곡을 써서 공연을 시도한 사람도 본인이다. 그러나, 공연장 못지 않게 주변 공연환경조성이 특별히 중요하다.
영국의 극작가 세익스피어가 활동하든 런던골든글로버 극장은 왕립예술극장이었으며, 독일의 문호 괴퇴를 탄생시킨 바이마르예술극장, 입센의 작품 공연무대와 체홉등의 작가를 탄생시킨 모스크바예술극장에는 유명한 예술감독 스타니슬랍스키가 버티고 있었다.
작가와 작품, 공연장, 연출가가 거의 한 시대에 함께 숨 쉬고 그 예술공간을 이용해 왔다. 바이마르예술극장시대에는 극작가 괴테, 음악가 모자르트, 하이든, 베토벤, 슈베르트와 빙켈만, 루소, 칸트, 피히테, 헤겔, 실러등의 작가와 철학자가 거의 동시대에 활동하였으며,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독일을 점령하여 바이마르예술극장이 불타고 많은 예술인들이 창작의 중단을 원하지 않아 나폴레옹에게 영웅교향곡을 지어 바친 베토벤의 일화도 유명하다.
훌륭한 극장만 우뚝하니 서 있다. 거기서 국내 사람은 아니고, 뉴욕 필하모니같은 수준의 연주회만 한다. 그렇다면 굳지 그 극장이 도남동 1번지 있을 필요는 없고, 뉴욕1번지나, 서울예술의 전당을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누군가가 베토벤음악당도 못들어 봤다고 했다. 1사람의 음악을 위한 음악당도 중요하지만 다른 음악공연, 혹은 오페라 공연이 모두 가능해야 한다. 사실은 통영시민문화회관기능과 국제음악당기능을 합쳐서 1개의 대극장이 필요하며, 전용극장에 곁들인 소극장은 다목적 복합문화시설로 활용하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극장근처에서 작품을 수정하고 창작하고 연습하며 기거할 수 있는 쾌적한 주거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직 땅을 파지 않았으니, 다시 더 연구하고 보충하여 후세에 누를 끼치지 않는 행정이 중요하다. 제발 식민지 치하에서 공무집행 하듯이 시민의 의사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계속 알려주세요.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로 인하여 오늘 통영분들한테 전화를 몇번 받았습니다.
저도 한려투데이 신문에서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