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글은 스리랑카의 '교민회보'에 실린글로서 스리랑카의 부처님 오신날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이웃나라의 부처님 오신날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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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의 부처님 오신 날 - 웨삭 포야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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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8일은 스리랑카의 부처님 오신 날인 웨삭 포야데이(vesak poya-day)였다. 아니, 웨삭 포야데이는 더 정확히 말하면 부처님이 오신 날이고, 부처님이 되신 날이며, 부처님이 우리 곁을 떠나신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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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왜 우리나라와 스리랑카의 부처님 오신 날이 서로 다르고, 그 의미 또한 차이가 있는가? 불교를 믿지 않는 분들은 물론이고 불자들마저 이 부분에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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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방불교의 기록에 따르면, 부처님은 기원전 623년에 인도땅에서 나셔서, 35세 되던 해인 기원전 588년에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셨고, 80세 되던 해인 기원전 543년에 열반에 드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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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불교에는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라는 두 개의 큰 흐름이 있고, 이들 양개 불교권은 각각 인도음력과 중국음력을 사용하는 문화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따라서 상좌부와 대승불교권이 부처님 오신날을 서로 다르게 기리는 현실은, 후대에 발달한 대승불교가 부처님 오신 날과 부처님 되신 날과 부처님이 떠나신 날을 각각 인도음력에서 중국음력으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결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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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웨삭 뽀야데이에 생일을 맞으시는 부처님과 사월 초파일에 생일을 맞으시는 부처님은 동일하신 분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양력설과 음력설을 그리고 스리랑카에 살면서는 특별히 스리랑카설까지 설을 세 번이나 맞는 행운(?)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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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웨삭 포야데이에도 흰옷을 입고 무리지어 사원으로 향하는 인파들과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수많은 등불들과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무료식당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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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2천 5백년의 오랜 불교역사를 지닌 스리랑카를 불교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없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월 포야데이라는 여분의 휴일(?)을 즐기는 우리, 특히 포야데이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웨삭 포야데이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서 살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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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웨삭 포야데이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날이다. 부처님은 기원전 623년 웨삭월 보름날 밤, 당시 북인도에 있던 석가족 왕국의 왕성인 까필라와스투 인근의 룸비니 동산에서 숫도다나왕과 마야왕비 사이의 왕자로 태어났다. 어린시절의 이름이 싯달타였던 바로 그 아기가 훗날 왕궁을 떠나 오랜 수행 끝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님이 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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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삭 포야데이는 기독교의 성탄절처럼 그 위대한 부처님의 거룩한 탄생을 축하하고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의미를 새겨보는 날인 것이다. 또한 웨삭 포야데이는 싯달타 대자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부처님이 되신 것을 기리는 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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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야소다라왕비와 라훌라라는 아들까지 둔 싯달타 태자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뭔가 가슴을 무겹게 짓누르는 의문 때문에 항상 깊은 사색에 잠겨 있는 젊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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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이 왕궁 밖을 수례하며 질병과 늙음과 죽음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목격하고난 후에는, 왕이 되어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보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구원하는 것이 더 의미있는 삶이라는 자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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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싯달타 태자는 그의 나이 29세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부귀영화를 뒷전에 두고 왕궁을 떠나, 스스로 머리를 깍고 누더기 옷을 걸친 수행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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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후 수행자 싯달타는 자신을 완전한 깨달음의 길로 이끌어줄 스승을 찾아 유랑을 했지만,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스승을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싯달타는 이번에는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로 하고 6년 동안 고행을 실천해 보았지만 결국 그 방법으로도 깨달음에 이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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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싯달타는 자신의 방법으로 깨달음을 성취하기로 하고, 기원전 588년 웨삭월 보름날 붓다가야 마을의 네란자라 강물에서 고행의 때를 말끔히 씻은 다음 강변에 있는 보리수 아래 자리를 잡았다. 때마침 떠오르는 보름달을 마주하고 앉은 싯달타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점점 깊은 명상에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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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 밤이 새기 전에, 자신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의 삶이 욕심과 집착의 결과로 반복되는 윤회의 사슬에 묶인 괴로움이며, 그같은 집착을 소멸시커면 윤회를 벗어나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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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수행자 싯달타는 6년간의 수행 끝에 '완전히 깨달은 이'라는 의미를 지닌 붓다(buddha)로 새로 태어나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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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웨삭 포야데이는 이 세상에 드리워져 있던 어둠의 그늘을 밝은 지혜의 등불로 밝혀주신 거룩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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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웨삭 포야데이는 부처님이 가신 날이기도 하다.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가 되신 부처님은 그후 45년 동안 오직 모든 존재들의 이익됨을 위하여 길에서 길을 따라 맨발로 인도 전역을 유행하시며, 팔만사천 법문으로 상징되는 가르침을 이 세상에 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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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무릇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진리에 따라 기원전 543년 북인도의 쿠시나가라라는 작은 마을에서 팔십세의 나이로 평화로운 열반에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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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죽음을 열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깨달음을 얻지 못해 윤회의 사슬을 끊지못한 사람들과는 달리, 부처님께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여 다시는 윤회가 없는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셨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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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불교도들에게 부처님의 열반은 완전하고 이상적인 대자유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기쁨이기도 하고, 이제 더 이상 고귀한 스승의 모습을 뵐 수 없다는 의미에서 슬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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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리랑카 '교민회보'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