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0일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 교섭대표 연설에서 비정규직 처우를 정규직 수준으로 높이자는 ‘상향평준화’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면서, 일자리∙양극화 문제 해법으로 정규직노동자의 양보를 통한 ‘중향평준화가 답’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 4법을 반복해 주장하면서, 이 법을 저지하는 귀족노조와 정치권이 사회적 대타협과 노동인권을 말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새누리당의 주장은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고 대안부재로 ‘NO답’이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적정한 범위 내에서 낮은 곳을 높이는 ‘상향’과, 높은 곳을 낮추는 ‘하향’의 조화로서 ‘중향’이라면 모르겠지만 정규직이 양보해서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한다는 주장은 ‘하향평준화’이며 불평등의 구조와 원인을 노동자 내부로 돌리려는 것이다. 기껏해야 노동자 내부를 마름-소작인의 관계처럼 만들어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고 본질을 회피하려는 술수이다.
우리나라의 전체 노동자 2천만여명 중 정규직은 절반 정도이다. 정부 공식통계는 3분의 2가 정규직이다. 전체 350만개 기업 중 대기업은 1%이고 전체 고용 중 12% 정도 담당한다. 나머지 노동자들은 중소영세기업에 종사한다. 대다수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정규직’이라도 높은 임금을 받거나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도 전부 정규직이 아니다. 최근 조선업종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듯이 정규직 노동자들도 고용불안에 내몰리기는 마찬가지다. 요즈음 ‘무기계약직’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분류하지만 그들의 처우는 정규직에 미치지 못하는 소위 ‘중규직’노동자들이다.
2006년 노무현 정권 때 민주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위 ‘비정규직 2년 고용 후 정규직화 한다’는 ‘비정규직보호법’을 강행 통과시켰다. 그러나 시행 10년이 지나면서 비정규직은 더 늘어났다. 박근혜 정권 초기 19대 국회에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포함해 노동개혁 5법을 제시했다. 그러다가 비정규직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비정규직 법안은 제외시키고 생산 현장에도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개정안을 포함한 노동4법을 밀어붙였다. 20대 국회에서도 똑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금 노동현장의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낮은 처우와 차별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해 줄 것처럼 말하면서 정규직노동자들의 임금을 양보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 60%는 그리스, 멕시코, 폴란드 등을 제외하면 OECD국가 중 하위권이다. 그만큼 노동과 자본 간 분배가 불평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재벌과 부자(부동산, 금융 등)들의 양보 즉 조세제도 개혁을 통해 분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고 소위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것은 노동자들 내부에서 해결하라는 주장일 뿐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두겠다는 뜻이다.
IMF 외환위기 직후는 말할 것도 없고 1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분배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데 이를 정규직 ‘귀족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로 뒤집어씌우고 부자들의 세금감면과 먹튀를 위장하고 있다. 2003년 말 당시 500인 이상 대기업 사업장 노동자수는 127만명, 월, 평균임금 304만 3천원, 연봉 3650만원, 총 임금액 46조 4천억원이었다. 대기업노동자 임금 10% 삭감해 당시 비정규직 노동자 850만 명에게 나누면 1인당 연간 50만원씩 돌아가는 금액이었다. 당시 현대자동차 연간 순이익 1조 8천억원의 일부만 할애하면 비정규직 노동자 1만명을 정규직화 할 수 있었고 주 40시간 상한제를 실시했더라면 1만명이 넘는 신규인력을 채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임금양보가 아니라 노동시간 양보여야 한다.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든다고 했던 노무현 정부나 노골적으로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는 정책을 편 이명박, 박근혜 정권까지 재벌대기업과 부자들의 곳간을 채우는 데 급급했다. 분배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노동자들의 불만을 소수 대기업 노동자들을 ‘철밥통’ 내지 ‘귀족노동자’라는 딱지를 붙여 공격하는 쪽으로 관심을 돌려 왔다. 대기업노동자들의 임금을 양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나누는 방향으로 구조를 바꿔야 한다.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새누리당이 밝힌 경제∙노동정책을 보면 그들이 왜 4.13총선에서 패배했는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전 지구적 경제불황이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공황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정책을 펼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느낀다.
2016. 6. 21.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