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답 오일장
당대의 과거를 알려면 박물관을 가고 현재를 알려면 시장을 가고 미래를 알려면 도서관을 가라는 얘기가 있다. 방학 첫날은 도시락을 싸서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서 종일 보냈다. 오전엔 2층 일반자료실 개가식 서가에서 환경과 건축에 관한 책을 뽑아 읽었다. 오후엔 3층 디지털자료실에서 두 시간 동안 책의 감상을 글로 남겼다. 이어 대출실로 건너가 집에서 읽을 책을 빌려왔다.
십이월도 거의 끝자락에 이른 목요일이었다. 당초 계획은 날씨가 추워도 아침 일찍 열차를 타 한림정이나 삼랑진에서 내리고 싶었다. 노무현 생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화포천 습지를 걷거나 삼랑진에서 원동까지 낙동강 강변길을 걷고 싶었다. 화포천은 습지 생태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고 낙동강 강둑과 벼랑으론 자전거길이 시원스레 뚫어져 있다. 걷기에는 더 좋은 길이지 싶다.
그런데 집사람은 내가 집안일을 살갑게 거들어주고 시장을 좀 봐 주었으면 싶은 눈치였다. 아직 방학 첫머리라 도보여행의 날들은 훗날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리라 보고 바깥으로 줄행랑 놓을 마음은 접었다. 아침 식후 그간 거실 문갑 주변 어지럽게 쌓인 책들과 우편물들을 정리했다. 바깥에 수북이 있던 메모지들도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겨 서랍 안에다 차곡차곡 채웠다.
집사람은 점심 식후 백화점과 대형할인 매장으로 가서 볼 일이 있다고 했다. 아침나절엔 내가 집에서 그렇게 도울 일이 없었다. 그럼 나는 재래시장에 가서 생선이나 푸성귀를 먼저 사다 놓겠노라고 혼자 집을 나섰다. 헤어리보니 2일 7일 오일장이 서는 소답장날이었다. 창원도호부가 터 잡은 이래 유서 깊은 동네가 소답동이다. 인근은 북동이고 동정동과 서상동과 이웃한 장터다.
소답동이 창원도호부 자리였다는 흔적은 그곳 주택가 뒤에 있는 창원향교 건물 정도다. 소답시장은 창원향교와 그리 멀지 않는 곳에 북동공설시장과 이웃한 길거리에 형성된다. 북면이나 동읍 지역농산물이 나오고 마산 갯가 해산물도 나온다. 그 밖에 생활필수품을 파는 노점도 펼쳐진다. 요즘은 도심 중심상권에서 밀려난 외곽이지만 오일장 역사론 창원 마산 진해에서 오래 되었다.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기에 이럴 땐 으레 시내버스를 타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방학이라 시간이 느긋했다. 거기다가 산길 들길로 나가 걸어보려던 것을 못하던 참이라 소답시장 가는 길을 걸어서 갈 작정이었다. 어림잡아 집에서부터 장터까지는 6킬로미터 정도 되지 싶었다. 옛날식 거리감으로는 시오리 길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반송시장 방향으로 나아갔다.
럭키아파트단지에서 반송사거리를 지나 큰길로 나갔다. 길가는 나목이 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었다. 일부는 벚나무와 곰솔나무도 있었다. 잎이 진 겨울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춰져 추위를 덜 타게 해주었다. 창원컨벤션센터와 시티세븐 건물을 지나니 창원천을 건너는 다리였다. 명곡교차로와 연결된 다리를 건너 명서동과 도계동을 지나니 소답동으로 들어갔다.
시장 근처 이르자 집을 나선지 한 시간 반 정도 지났다. 소답장터는 버스가 다니는 길가와 북동공설시장 건물 주변으로 형성된다. 내가 여기저기 오일장에서 사는 물건은 단순하다. 푸성귀와 생선 정도다. 신선채소로 시금치와 브로콜리를 샀다. 파프리카와 감자도 샀다. 국민 생선인 고등어 두 마리와 간장 게장도 샀다. 이래 봐야 한 자리 외식 나간 식대에도 미치지 못한 금액이다.
소답장에서 알려진 골목이 약재 건재상이다. 나는 살 것도 없으면서 가게 앞을 기웃거려보다 창원초등학교 아래로 갔다. 학교 담벼락 밑에는 창원 오일장 가운데 유일하게 작은 가축시장이 서는 곳이다. 둥우리엔 팔리러 나온 촌닭과 오리들이 삐악거렸다. 또 다른 곳에는 어미젖은 갓 떼고 나온 귀여운 강아지 형제가 오글거렸다. 곁에는 초등학생 셋이서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12.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