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가족여행] 영양
남이포서 서석지 지나 일월산에 이르는 드라이브 코스 강추
심산유곡에 있는 것도 아니고 교통이 나쁜 곳에 있지도 않지만 영양 땅은 우리에게 외진 곳으로 기억되고 있다. 심지어는 '육지 속의 섬'이라 불릴 만큼 고립된 고장인 듯한 인상을 받고 있는 곳이 영양이다.
물론 유명 관광지가 많지 않아 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덕분에 영양에 가면 다른 고장에서는 이미 사라지거나 퇴색해 버린 우리 문화의 원형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오히려 호감이 가는 여행지이다.
영양군의 한복판으로는 낙동강 지류인 반변천이 흐른다. 그리고 청송에서 영양으로 가는 31번 국도는 이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물길이 굽이치면 길도 따라 구불거린다. 영양읍내가 가까워지면 남이 장군이 토적 아룡 일당을 토벌했다는 남이포가 눈에 들어온다.
남이포에서 반변천 본류와 동천이 합쳐지는데 합수머리의 절벽 아래에는 근래 지어진 정자도 하나 있고, 그 일대의 강변에는 음악분수, 분재전시관,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어 먼 길을 달려온 차와 사람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영양 땅은 고추로 유명하다. 매년 '고추아가씨 선발대회'가 열릴 정도로 고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곳이고, 강가의 너른 들녘은 물론이고 비탈진 산자락 구석구석까지 고추밭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영양 나들이에 나선 객들을 먼저 맞는 곳은 영양 고추 전시관이다. 관광 테마 단지로 개발이 마무리된 선바위 지구에 있는 전시관에서는 고추를 테마로 한 다양한 전시물과 고추의 효능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고추 전시관과 마주 보고 있는 것은 분재 수석 야생화 전시관. 영양 땅에서 수집된 독특한 형태의 수석과 다양한 분재, 야생화 등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실내 전시관이다.
가을 드라이브의 서정을 진하게 느끼려면 남이포에서 동천을 따라가는 입압면 연당마을로 가 보자. 연당마을에는 완도 보길도의 부용정, 담양의 소쇄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민간정원으로 꼽히는 서석지(瑞石池)가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서석지 앞마당에는 수 백 년 묵은 은행나무가 서 있다. 매년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 사이에는 나뭇가지마다 빈틈없이 매달린 황금빛 은행잎이 화사하기 그지없다. 절정의 가을날에 영양 땅을 찾는 것도, 이 은행나무의 샛노란 단풍에 현혹된 탓이다.
서석지에서 길을 되돌아온 뒤 입암면 소재지에서 다시 만나는 31번 국도는 줄곧 반변천을 끼고 달린다. 영양군청 소재지인 영양읍을 들르지 않고 부지런히 달리다 보면 감천마을을 만나게 된다. 오일도 시인(1901~1946 본명은 희병)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감천마을은 낙안 오씨들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마을 입구 31번 국도 변에는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생가 앞 하천 절벽에는 천연기념물 114호인 측백수림이 군락을 이루면서 자생하고 있다.
오일도는 조선문단 4호에 시 <한가람 백사장에서>로 문단에 등단해 1935년 사재를 털어 시 전문지<시원>을 창간했다. 5호까지 발간된 <시원>은 시문학을 풍요롭게 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영양읍에서 일월산 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간 주실마을은 수많은 박사와 교수를 배출한 곳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예부터 영양에서 봉화로 가기 위해서는 주실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주실 숲은 길목에 위치하여 마을을 살짝 가려주고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 숲 속에 청록파 시인이자 승무(僧舞)의 시인 조지훈과 요절한 그의 맏형 조동진 시인의 시비가 있다. 조지훈 선생 시비 앞에는 무대가 있어 이곳에서 문학해설이나 백일장 등이 열린다. 이 숲은 2008년 '전국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바 있다.
주실 마을은 350여 년 전 호은(壺隱) 조전(趙佺)이 터를 잡은 이후 한양 조씨가 살기 시작한 집성촌이다. 한국전쟁 때 일부가 소실됐으나 1960년대에 복원됐다. 야트막한 산 아래 조용히 자리 잡은 고택(古宅)들이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조지훈 선생의 문학과 삶이 고스란히 간직된 지훈문학관에 들르면 선생의 육성으로 낭송하는 시 '코스모스'를 들을 수 있다. 호은종택(壺隱宗宅)은 조지훈 선생의 생가. 결코 화려하지 않은 시골집이지만 경북도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양 드라이브 여행의 종착지는 일월산. 반변천의 지류인 이곳에서부터는 물길이 작은 계곡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일월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낙동정맥의 마지막 봉우리로 백두대간의 정기가 모여 있는 영산(靈山)이다.
경북 내륙에서 해와 달이 뜨는 광경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단풍과 낙엽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용화사 뒤편의 선녀탕 부근. 그렇지만 일월산 정상 부근에서 산자락을 타고 이어지는 임도가 가을 서정을 느끼며 달릴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