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11일(주일) - 주현 후 마지막 주[변화주일] -
헛갈리는 마음으로는
( 마가복음 9:2~8 )
Ⅰ. 서론
* 교육(敎育) : 가리키다 & 가르치다. education : e + ducare = 밖으로 끌어내다.
‘교육’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가리키다’와 ‘가르치다’입니다. ‘가리키다’는 목표를 정해놓고 그곳을 향하도록 가리키는 것이고, ‘가르치다’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옳고, 이것은 그르다고 구별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양의 교육법입니다. 그런데 ‘헛갈리다’는 가를 줄을 모르는 상태, 즉 구분을 할 줄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마음의 혼미’라 했습니다(고후 4:4). 혼미(昏迷)해지면 분별을 못합니다. 왜 혼미한 마음을 가지게 될까요? 마음에 하나님이 없어서입니다(롬 1:28).
*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롬 1:28)
Ⅱ. 본론
* 본래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상실할 때 – 마음이 혼미에 빠진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혼미와 상실에서 벗어나 창조 본연의 모습을 우리에게 회복시켜주시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갈 6:15)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으심을 받아야 혼미한 마음에서 벗어나서 헛갈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변형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변형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혼미한 마음 때문이다.
첫째,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2-3)
* 예수님은 변형 되셨다기보다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변형되신 산을 ‘변화산’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날을 기념하여 주현 후 마지막 주일을 “변화주일”이라고 합니다. 그 변화된 모습은 세상의 그 누구도 희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빛나는 모습입니다(3).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 주님의 본래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고후 4:6).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입니다. 이 빛을 요한복음에서는 “참 빛”(1:9)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참 빛입니다. 제자들은 그걸 알지 못했고, 예수님이 변형되사 그 모습을 보여주시니 놀랄 뿐입니다.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제자들은 왜 알지 못했을까?
둘째, 몹시 무서워하므로(6)
* 예수님의 변형과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이 제자들은 무서웠다.
예수님의 변형과 함께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은 제자들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6). 제자들은 왜 무서워했을까요? 그들의 마음이 혼미(昏迷)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4). 마음이 헛갈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합니다(5). 이것이 바로 헛갈리는 마음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제자들이 깊이 졸다가 깨어서,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혼미한 마음’입니다.
* 눅 9:32-33,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하는 말을 자기도 몰라
셋째,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7)
* 구름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혼미한 마음을 깨우는 소리다.
구름이 덮였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임재’를 뜻합니다(출 34:5). 모세가 하나님을 만날 때 구름 속에서 만나셨습니다. 7절을 보면, 구름이 와서 그들에게 덮였고, 또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 소리가 제자들의 혼미한 마음을 깨웠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그렇습니다. 헛갈리는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의 계명은 눈을 밝게 한다”(시 19:8)고 했습니다. 눈이 밝아야 구별하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야 분별합니다.
* 육의 눈도 밝아야 하지만, 마음이 눈이 밝아야 한다.
Ⅲ. 결론
* 분별력은 매우 중요하다. 예언도 분별하며 해야 한다(고전 14:29).
헷갈린다는 말과 헛갈린다는 말은 둘 다 표준어입니다. 주로 헷갈린다는 말을 사용하는데, 헛갈린다는 말은 마구 뒤섞여 있어서 분간하기 어려움을 뜻합니다. 이 세상은 헛갈리는 일이 한둘이 아닙니다. 진짜가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습니다. 영적 상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 “영들 분별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와에게 이 분별력이 있었다면, 또 가인에게 이 분별력이 있었다면, 죄의 길로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따라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롬 12:2).
* 우리 마음에서 혼미함을 걷어내고, 주의 뜻 분별함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