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6일 월요일
◑ 오늘의 말씀 묵상 ◑
❈ 할렐루야 !!
- 참으로 세월이 유수같이 빨리 달려가고 있는 10월, 마무리를 위한 분주한 한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대그룹 총수도 때가 되매 이 땅의 사명을 다하고 타개하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 가는 인생 후회 없이 주의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잘 실천하여 잘 했다 칭찬 있는 삶을 살아냅시다.
- 코로나 질병 시대가 사회를 어둠 속에 빠져들게 하면서 각자의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는 느낌이 안타깝게 생각되고 서로를 진정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우리 성도들은 항상 깊은 말씀 묵상과 기도로 늘 깨어 근신하는 삶을 살아냅시다.
- 인생의 순간순간이 순풍도 있지만, 때로는 폭풍우 같은 일들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손이 늘 붙들고 계심을 믿고 기도함으로 주의 능력을 힘입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 살아 내는 한주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 문 ◑
{이사야29장 1-8절}
1.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2.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
3.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너를 에워 대를 쌓아 너를 치리니
4.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이리라
5.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 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날려 가는 겨 같으리니 그 일이 순식간에 갑자기 일어날 것이라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레와 지진과 큰 소리와 회오리바람과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그들을 징벌하실 것인즉
7.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 곧 아리엘과 그 요새를 쳐서 그를 곤고하게 하는 모든 자는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되리니
8.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가 그와 같으리라
◑◑◑◑ 제 목 ◑◑◑◑
◗◗ 예루살렘을 경책하심과 회복에 대한 소망을 예언
◑◑◑ 본문 이해와 요약 ◑◑◑
◗ 지난 28장에서는 갈라진 이스라엘 왕국 가운데 먼저 하나님을 떠나 멸망한 북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예언이 언급되었으며, 오늘은 29장에서는 북이스라엘의 형제 나라인 남 유다에 임할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 예루살렘이 범죄하고 타락하므로 크게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것이나 그들을 괴롭혔던 그 대적들은 격파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특히 3종류의 죄인을 경고하는데 ➀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에 개이치 않는 어리석은 자들과 종교적으로 행위에 있어서 형식적이며 위선적인 자들에게 ➁ 불 신앙적이고 불경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➂ 거기에다 경쟁하여 자기의 계획을 앞세우는 자들에 대한 책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하지만 결국 구별 된 남은 자에 대한 은혜와 긍휼의 귀한 약속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 하나님은 범죄한 자들에게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며 그 죄 가운데에서 돌이킨 자들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시므로 하나님 자신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자 합니다.
- 유다는 북이스라엘 보다는 하나님을 더 섬겼고 끝까지 남은 자가 있었으나 그 멸망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 이제 29장에 대한 분석과 이해를 돕는다면, 우선1-8절 : 이리엘 즉 다윗이 세운 첫 성에게 내릴 형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그리고 9-16절에서 남 유다 민족이 도가 넘는 범죄를 경고하였으며, 또한 17-24절에서 그러나 장차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 이제 본문을 적용할 수 있는 구절의 핵심 의미를 돕는다면, 먼저 1,2절에서 하나님을 기만하는 모든 종교적 행위는 도리어 징계와 심판을 초래할 뿐입니다.
- 그리고 3절에서 죄를 범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은 세상에 짓밟히는 수치를 초래합니다.
- 또한 4절에서 우리 자신의 실제적인 삶의 위치는 말씀에 대한 태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 한편 5절에서 성도들의 대적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나님 앞에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 그리고 6절에서 하나님의 방문을 기쁘게 맞이할 만큼 의로운 삶,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또한 7,8절에서 악인들의 형통은 한 밤의 꿈처럼 극히 허무하며 무가치한 것입니다.
◗ 결론적으로 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소망의 메시지가 동시에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배신한 남유다가 열방의 침략을 당하게 될 것임을 선포하고 이어서 비록 징계를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이 다시금 남은 자들을 통하여 회복시켜 주실 때에는 이전의 영광을 되찾게 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 그래서 구원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회개하는 자에게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선택하신 남은 자와 작은 자와 겸손한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 성도에게 닥치는 현재의 고난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으므로 성도는 오늘 하루도 짜증스럽고 힘든 일을 기쁨으로 승화시켜 하나님께 감사 할 수 있는 생활을 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 그 때나 지금도 우리들의 공통점은 하나님께서 부를 때에 속히 돌이켜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의를 행하기를 소망한다는 것이며 장차 다가올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고대 한다는 것입니다.
◗◗◗ 적용한다면 ◖◖◖
♥ 오늘의 핵심 (P.S)
☞ 예배의 성공 자가 인생의 성공자다. (이사야 29장 1,2절)
◈ 본 구절의 핵심(PS) 의미를 돕는다면;
▶하나님을 기만하는 신앙으로 모든 제의적 행위는 도리어 징계와 심판을 초래 할 뿐입니다.
▷1-2절을 살펴보면 “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다윗이 진 친 성읍이여!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내가 아리엘을 괴롭게 하리니 그가 슬퍼하고 애곡하며 내게 아리엘과 같이 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 여기서 ‘아리엘’은 ‘다윗이 진치고 세운 성읍’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예루살렘 성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입니다.
- 이처럼 다윗과 약속한 선민 남 유다의 예루살렘이 아리엘로 불린 것은 에스겔 43장 15절에서 아리엘의 번제 단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는 사실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습니다.
- 제의적 예식에 번제 단은 거룩한 성전의 상징이며, 성전은 예루살렘의 상징이므로 예루살렘이 아리엘로 불린 것입니다.
-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바가 있는데, 그것은 ‘해마다 절기가 돌아오려니와’ 라는 표현입니다.
- 이 말씀은 매년 새해가 돌아올 때마다 예루살렘에서 제사 즉 예배를 3차례 드리는 절기를 지킨 것을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 이것은 남 유다 백성이 절기를 지키는 것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고 열심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 하지만 그들은 그처럼 종교 행위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제사나 절기를 본래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지키는 절기가 너무나 의식적이고 형식적인 것이었으며 변화가 없는 삶속에서 죄악 된 생활이었기 때문입니다.
- 다시 말해 그들은 구별 된 삶이 없는 죄악과 함께 드리는 예배와 사악하게 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회개하지도 않는 제사에, 죄악의 피가 묻어 있는 부정한 손으로 하나님을 기만하는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 그래서 그들은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 ‘슬픈 아리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러한 거짓된 예배, 헛된 제사를 드림으로 도리어 비극에 처한 예루살렘의 모습은 과거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없이 드렸던 가인의 제사 정신과 그의 비참한 운명을 연상하게 됩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순종은 깡그리 망각한 채 자기중심의 생각으로 오로지 형식적인 제사만 드리면 그 모든 불순종은 해결 받으리라 생각함으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사울 왕의 운명을 연상하게 됩니다.
- 그런데 이런 제사와 예배 정신은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범하기 쉬운 예배의 정신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까? 나 자신은 얼마나 많은 예배에 참석하고 있습니까?
-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매주에 적어도 한 번은 예배드리며, 또 어떤 이분은 주일, 주일 오후, 수요 예배, 금요 집회, 새벽 예배 등 거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예배에 참여하는 이분들도 있습니다.
- 그러나 이러한 예배가 크고 놀라운 복 일진데 , 억지로 의무로 마지 못 해 드리면 기뻐 받으실 예배가 아닙니다.
특히 지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다보니 비대면 예배를 드리다가 보면 하나님 앞에 예배가 무성의하게 드리는 일이 비일비재 되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예배가 예배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진실과 사랑,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드립시다.
- 이제 우리부터 변화 되어 가정에서 비대면 예배드릴 때에 우선 집안을 정리정돈 하고 예배 도중에 움직이지 않고 예배 상을 준비하고 헌금도 준비하고 찬송도 힘을 다해 부르고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는 삶과 그리고 성도다운 삶과 하나님의 자녀란 이름에 합당하고 변화 된 삶과 더불어 올려 드리는 산 예배를 드립시다.
- 이것이 아니라면 이는 하나님께도 아무런 기쁨이 되지 못하며, 우리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 마태복음 15장 8-9절에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 하는 도다 하였느니라.”라고 예수님이 책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아침에 성령님께서 묻는 것은 “ 지금 나는 코로나 시대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정성을 다해 왔는지?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가정에서 예배를 위해 얼마나 정성을 다해 왔는지? 혹시 형식에 준하여 적당하게 집중력을 상실한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의 의무만을 다한 것은 아니었는지? 감사와 감격이 사라진 의식과 형식만 있어왔던 가정에서의 비대면 예배가 아니었는지? 말씀과 삶의 일치가 없는 그래서 변화가 없는 나의 신앙 삶은 아니었는지? 묻고 있으니 스스로 자가진단과 자문자답 해 봅시다. 예배의 성공 자가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예배가 예배되게 해야 복입니다.
이제는 거룩한 성전 즉 교회 중심에서 말씀 중심으로 말씀 중심에서 진심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중심을 실천하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 호세아 6장 6절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호세아 선지자가 말하였습니다.
- 그래서 진정한 말씀 순종의 예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를 바란다면, 거기에 우리의 진실한 삶과 우리의 정성과 우리의 진심 어린 사랑을 담아 드리는 삶의 예배가 되게 합시다.
- 과거의 그러한 예배를 지금까지 드리면서 아무런 문제의식이나 각성의 기회를 갖지 않는다면, 과거 허탄한 제사를 드린 자들과 하나님을 기만하는 거짓 예배를 드린 자들과 동일한 운명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 물론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코로나 예방을 위해 거리두기 하며 정성을 다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립시다.
- 거룩한 공동체의 집회, 거룩한 행사들에 대해 결코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 신명기6장 4,5절에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라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사랑의 예배를 드릴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인생의 진정한 성공 자가 되려면, 먼저 예배의 성공 자가 되어야하므로 성령으로 예배가 예배되게 마음과 목숨과 뜻과 지혜와 정성을 다한 예배 자가 되며, 참되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진실한 예배자로 살아 내며 참으로 성령과 진리로 예배드리고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살아내는 저와 주님의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