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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식 "신리성지,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억하는 장소"
[수도권=내외경제TV] 양상현 기자 = 레지오 야외행사로 신리성지를 순례하며 다블뤼 주교의 21년간의 선교활동을 기리는 행사가 10월 3일 개최되었다. 이 행사에 참석한 포천성당 홍영식 신도는 선조들이 지키려 했던 믿음과 순례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다블뤼 주교와 신리성지 순례 모습 [사진=홍영식]
다음은 포천성당 홍영식 신도의 기고문 전문이다.
다블뤼 주교는 우리나라에 도착한지 21년 동안 신리성지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의 노고와 헌신으로 인해 신리성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교활동은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도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그들의 희생과 힘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다블뤼 주교와 신리성지 순례 모습 [사진=홍영식]
신리성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순례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믿음과 평화를 찾으며 선조들의 흔적을 따라 걷게 된다. 이들은 당진 신리를 다녀오면서 선조들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이번 행사를 통해 선조들의 믿음과 순례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신리성지를 순례하며 다블뤼 주교의 노고와 헌신을 되새겨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번 행사는 선조들의 믿음과 희생을 기리는 자리이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우리는 선조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자신의 믿음과 가치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신리성지는 우리에게 귀중한 유산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선조들의 믿음과 희생을 기리며, 더 나아가서 우리의 삶에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번 행사는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우리는 선조들의 흔적을 따라 걷는 순례자로서 계속해서 선조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것이다.
신리성지는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억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신리성지를 통해 우리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참혹한 역사와 그 속에서 신앙을 지켜낸 선조들의 굳건한 신앙심을 되새길 수 있었다. 성지는 우리에게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힘을 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다블뤼 주교와 신리성지 순례 모습 [사진=홍영식]
신리성지는 조선 후기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거주하던 교우촌이며 현재는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어 있는 마을이다.
신리성지는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에 속한 삽교천 상류에 위치해 있다. 신리는 18세기 후반부터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하여, 19세기 중반에는 마을 사람 400여 명 전체가 신자인 교우촌으로 성장했다. 당시, 신리는 해로를 통해 외부와 접촉하기 쉬운 조건, 그리고 내포의 여러 교우촌들과 쉽게 연결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선 천주교회의 한 축을 담당했다.
1865년부터 신리에는 제5대 조선 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주했으며, 프랑스 선교사들이 배를 타고 입국하는 거점이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신리 신자 40여 명이 순교했고, 그중에는 다블뤼 주교와 손자선 성인도 포함되어 있다.
병인박해의 영향으로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신리에는 신자들이 살지 못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 내포 교회의 중심이었고, 수많은 순교자들의 땅인 신리는 신자들 사이에서 회복해야 할 장소로 기억되고 있다.
1923년 거더리(신리 포함)에 공소가 설립됐고, 1927년에 이르러서는 신자들이 다블뤼 주교가 기거하던 손자선 성인의 집을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했다. 현재 신리 성지 내 '주교관'이 그 자리이며, 주교관 내 천정의 대들보는 그 옛날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들이 시복되자 신리에는 순교 복자 기념비가 건립됐다. 1984년 한국 천주교 설립 200주년을 맞으면서 천주교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신리의 중요성도 점차 부각됐다. 이에 따라 천주교 대전 교구에서는 2006년부터 신리 성지 전담 신부를 파견하여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신리성지는 현재 성당, 다블뤼 주교 기념관, 손자선 생가 등이 있는 곳이다. 성당은 1992년에 신축됐으며, 다블뤼 주교 기념관은 2006년에 건립됐다. 손자선 생가는 1927년에 신자들이 매입하여 공소로 사용했던 곳으로, 현재는 순교자의 삶과 죽음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다블뤼 주교와 신리성지 순례 모습 [사진=홍영식]
신리성지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당시 가장 큰 교우촌이었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이 담긴 장소다. 신리성지를 순례하는 것은 신앙 성숙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를 준다.
첫째, 신리성지는 우리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신리 신자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그들의 순교는 우리에게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준다.
둘째, 신리성지는 우리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신리 신자들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그들의 용기와 희망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셋째, 신리성지는 우리에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신리 신자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사랑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신리성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장소다. 신리성지를 순례하며, 우리도 신리 신자들의 삶과 죽음을 되새기고, 그들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또한, 신리성지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회상하는 장소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곳이다. 신리성지를 방문하여 선조들의 믿음과 희생을 기억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밝고 건강한 곳이 될 것이다.
신리성지는 우리에게 신앙, 인권, 평화와 화합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다. 신리성지를 순례하며, 우리 사회가 더욱 평화롭고 화합하는 곳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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