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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서예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三道軒정태수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도 탁본, 제주도 추사박물관 소장
水仙花(수선화)
金正喜(김정희)
一點冬心朶朶圓 (일점동심타타원)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어라
品於幽澹冷雋邊 (품어유담냉준변)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빼어났네.
梅高猶未離庭砌 (매고유미이정체)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淸水眞看解脫仙 (청수진간해탈선)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정말 보는구나.
심은 전정우선생, <수선화>
*심은 전정우 선생께서는 필자의 졸고를 보신 뒤 항상 30분 이내에 창작해서 보내주시는 중진작가이시다.
금년 1000점의 창작을 목표로 열성적으로 창작을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서예계에도
이렇게 열정적인 작업으로 본을 보이는 작가도 계신다...^^ 진심으로 존경을 보내드린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문인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화목 가운데 하나가 수선이다. 수선을 일러 금잔옥대(金盞玉臺)ㆍ여사화(女史花)・설중화(雪中花)・능파선(凌波仙)이라고도 한다. 금잔옥대는 금으로 만든 술잔과 옥으로 만든 잔대란 뜻으로 수선의 생김새가 노란 꽃은 금잔 같고 하얀 꽃잎은 옥잔대 같다는 데서 이르는 말이고, 설중화는 눈 속에서 피어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능파선은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아들 조식이 사모한 절세미인 견희(甄姬)가 있었는데 형인 조비가 황제로 등극하면서 이 여인을 황후로 삼는 바람에 마음속에 담아두고만 있었다. 그 여인이 죽자 조비는 견희가 사용하던 옥베개를 아우인 조식을 조롱하기 위해 아우에게 주었다. 조식이 그 베개를 가지고 물결이 일렁이는 낙천(洛川)을 지나면서 견희를 수신(水神)에 빗대어 지은 문장이 유명한 ‘낙신부(洛神賦)’이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수선화를 능파선이라고 불렀다.
수선화의 유래에 대해 서양의 전설을 보면, 수선화의 속명(屬名)인 나르키수스(Narcissus)는 그리스어의 옛 말인 'narkau'(최면성)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아름다운 청년이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여 물속에 빠져 죽은 그 자리에 핀 꽃이 수선화라고 한다. 꽃말은 ‘자존’, ‘자아도취’이다.
한편, 조선시대 때는 수선화가 무척 귀했던 듯하다. 그러기에 선비들이 더욱 갖고자 한 꽃이었다. 선비들은 중국 연경에 가는 이들에게 부탁해 그 뿌리를 어렵게 얻어다 키웠다. 추사도 24세 때 연경에 가서 처음 수선화를 본 뒤 매료되었다. 43세 때 평안감사로 재직하던 부친을 뵈러 갔을 때 마침 연경에 다녀오던 사신이 평안감사에게 수선화를 선물하자 그것을 달라고 졸라 당시 남양주에 있었던 다산 정약용에게 선물로 보냈다. 이 사실은 다산이 추사로부터 수선화를 받고 흡족해하며 지은 시로 확인된다. 추사가 55세 때 제주도로 유배되어 대정에 이르니 곳곳에 수선화가 자라고 있었다. 조선에 없는 것으로 여겼던 수선화가 제주에서는 농부들이 소의 먹이로 사용할 정도로 흔하게 자생한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도 추사였다. 추사는 이를 보고 귀한 사물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이렇게 천대를 받는다는 애련한 의미를 담은 시를 남기기도 했다.
훗날 추사 김정희의 그림과 글씨를 좋아한 사람들이 '완당탁묵(阮堂拓墨)'이라는 여러 탁본을 간행했다. 그 중에 수선화부(水仙花賦)라는 것이 있다. 수선화를 노래한 청나라 호경(胡敬)의 명문을 특유의 추사체로 쓰면서 '몽당붓으로 아무렇게 그렸다'는 수선화 그림이 여기에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추사가 얼마나 수선화를 가까이에 두고 완상했으며 관심이 많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추사는 위에 소개한 시에서 겨울을 이겨내고 자라나는 수선화를 보면서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을 지닌 식물이라고 상찬한다. 매화는 뜨락 안에 머물지만 해탈한 신선처럼 보이는 수선화는 맑은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자란다고 읊조린다.
이렇듯이 동서양의 전설 속에 같이 등장하는 꽃이 수선화다. 아울러 추사가 직접 살펴보고 완상한 수선화의 자태를 떠올려보고, 수선화에 담긴 전설도 생각해 본다.
김정희(金正喜,1786년~1856년)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이다.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보담재(寶覃齋)·담연재(覃硏齋)·천축고선생(天竺古先生) 등이다. 노론북학파의 실학자였다. 한국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추사체를 만들었고, 난초 등 문인화에도 빼어났다.
1819년 병과(丙科)에 급제하고 효명세자의 사부, 충청우도암행어사, 성균관대사성과 병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했다. 1840년(헌종 6)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로 유배되었다가 1848년 석방되었다. 1851년(철종 2) 영의정 권돈인의 예론(禮論)으로 예송 논쟁이 벌어지자 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1853년 풀려났다.
추사는 고증학에 뜻을 두어 중국에서 고증학을 수입하였고, 금석학 연구로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서예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 외에도 도서·시문· 문인화에서 독창적이며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3천명의 제자를 두었으며, 그들은 19세기 후반 개화 사상가로 이름을 남겼다. 금석학의 오경석과 난초를 잘 그린 대원군 등이 추사의 제자이다. 1934년 그의 문집과 저서, 시문 등을 모은 ‘완당선생전집’이 간행되었다.
삼도헌의 한시산책 324, 2014년 6월 13일 발송
서예세상 삼도헌글방( http://cafe.daum.net/callipia)
참고자료
조식의 낙신부
조식(曹植)은 위(魏) 무제(武帝)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0살 때 이미 11만자의 문장들을 외우고 있었고, 위(魏)가 천하를 사실상 통일한 후 건안(建安)문학을 일으켰으며, 오언시(五言詩)를 완성시켜 훗날 사령운(謝靈雲) 및 唐나라 이백(李白) 및 두보(杜甫)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식의 대표작 중 하나가 바로 <낙신부(洛神賦)>이다. 222년 조식(曹植)이 형인 조비(曹丕) 즉 위(魏) 문제(文帝)의 부름을 받아 朝廷에 들어갔다가 다시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낙수(洛水)를 지나가면서 낙신(洛神)의 일을 생각하고 지었다고 한다.
삼국지(三國志)에는 두 명의 미인이 등장한다. 한 명은 동탁(董卓)의 여인이었던 초선(貂嬋)이고, 또 한 명은 원소(袁紹)집안의 여인이었던 견희(甄姬)이다. 견희(甄姬)는 본명이 복(宓)으로, 어려서 집안의 뜻에 따라 원소(袁紹)의 집안으로 출가를 했고 자라서는 단지 아름답기 때문에 마치 전리품처럼 조조(曹操)의 집안으로 끌려간 비운의 여인이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인이 나타나자 낭만적이었던 조식(曹植)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정적(政敵)이자 실권을 쥔 자신의 형인 조비(曹丕)에게 넘어간다.
한눈에 그녀에게 반한 조비(曹丕)는 그녀를 자신의 처로 삼고, 조비(曹丕)가 즉위하자 그녀는 문소황후(文昭皇后)가 되는데, 의처증이 심했던 조비(曹丕)는 아들 조예(曺睿)와 딸 동향공주가 평범하게 생긴 자신과는 달리 너무 아름답자, 자식들의 모습에서 그녀를 흠모하던 빼어난 동생 조식(曹植)을 떠올린다.
급기야 첩인 곽씨의 모함에 혹해 그녀를 죽이고는, 잔인하게도 동생인 조식(曹植)을 서울로 불러, 그녀의 죽음을 알림과 동시에 그녀가 사용하던 베게(枕)를 던져준다.
조식(曹植)은 사랑하는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던 중, 낙수(洛水)를 건널 때, 사랑하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와 이름이 같은 神話상 복비(宓妃)를 빌어, 그녀의 생전의 아름다움과 이루지 못한 애틋한 감정을 노래한다.
낙신부의 원래의 제목은 감견부(感甄賦 : 甄氏를 느끼며 지은 賦)였으나,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의 의심으로 죽임을 당한 어머니를 항상 애통히 여겼던 조비(曹丕)의 아들 명제(明帝) 조예(曺睿)가 어머니의 명예를 그리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이 詩를 낙신부(洛神賦)로 改名하였다고 한다. 이런 내용이 <문선(文選)>의 서문에 전해온다.
洛神賦(낙신부)
黃初三年 余朝京師 還濟洛川
황초 삼년에, 경사(京師)에 입조하였다 돌아가는 길에 낙천을 지나게 되었다.
古人有言 斯水之神 名曰宓妃
옛 사람이 이르기를 이 물에 선녀가 있으니 그 이름이 복비라
感宋玉對楚王說神女之事 遂作斯賦 其詞曰
송옥과 초왕과 무산신녀의 일에 느끼는 바 있어 이 부를 짓는다.
余從京師 言婦東藩
경사를 떠나 동녘으로 돌아가네.
背伊闕 越轘轅 經通谷 陵景山 日旣西傾
이궐산을 등지고 환원산 넘고 통곡을 지나 경산에 이르니 이미 해가 저물고
車殆馬煩 爾迺稅駕乎蘅皐
수레와 말이 지치었으매 물가에 수레를 쉬고
秣駟乎芝田 容與乎楊林 流眄乎洛川於是精移神駭
지초 무성한 밭에서 여물을 먹이며 버들숲에 앉아
흘러가는 낙천을 바라보매 문득 정신이 산란하였네.
忽焉思散 俯則未察 仰以殊觀 覩一麗人于巖之畔
홀연히 생각이 흩어져 굽어보아도 보이지 않고 우러러 보아도 달랐는데,
바윗가에 서 있는 한 미인을 보았네.
爾迺援御者而告之曰 爾有覿於彼者乎 彼何人斯 若此之豔也
이에 어자를 불러 묻기를, 자네도 저 이가 보이는가,
저 이는 누구이기에 저토록 고운가
御者對曰 臣聞河洛之神 名曰宓妃 則君王之所見也 無迺是乎
어자가 답하니 제가 듣기로 낙수의 신을 복비라 이르는바
군왕께서 보신 이가 그 이가 아닐까 하나이다.
其狀若何 臣願聞之 余告之曰
그 모습이 어떠한지 소인도 궁금하다 이르매 내 답하기를
其形也 翩若驚鴻 婉若游龍
그 자태는 놀란 기러기처럼 날렵하고 노니는 용과도 같아
榮曜秋菊 華茂春松
가을의 국화처럼 빛나고 봄날의 소나무처럼 무성하구나.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飄兮若流風之廻雪
엷은 구름에 쌓인 달처럼 아련하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벼우니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멀리서 바라보니 아침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고,
迫而察之 灼若芙蕖出淥波
가까이서 바라보니 녹빛 물결 위로 피어난 연꽃과 같네.
穠纖得中 脩短合度
섬려한 모습과 아담한 키마저 모두가 알맞고 적합하니
肩若削成 腰如約素
그 어깨는 일부러 조각한 듯 하고 그 허리는 흰 비단으로 묶은 것 같구나.
延頸秀項 皓質呈露 芳澤無加 鉛華不御
길고 가녀린 목덜미에 절로 드러난 흰 살결은
향기로운 연지도 호사한 분도 바르지 아니하였구나.
雲髻峩峩 脩眉聯娟 丹脣外朗 皓齒內鮮
구름 같은 머리를 높이 틀어 올리고 그 아미는 가늘고 길게 흐르며
붉은 입술은 밖으로 빛나고 백옥 같은 이는 입술 사이에서 곱구나.
明眸善睞 靨輔承權 瓌姿豔逸 儀靜澤閑
눈웃음치는 눈동자는 아름답고 그 보조개가 능히 마음을 끄나니
그 맵시가 고와 이를 데 없고 거동이 고요하여 윤기가 흐르니
柔情綽態 媚於語言
그 부드러운 마음에 가냘픈 자태에 말투 또한 더욱 아름답구나.
奇服曠世 骨像應圖
기이한 복색은 지상에는 없으며 그 자태 그림과 같으니,
披羅衣之璀粲兮 珥瑤碧之華琚
찬연한 비단옷에 귀에는 아름다운 귀걸이 달고
戴金翠之首飾 綴明珠以耀軀
금비취 머리장식에 밝은 구슬을 꿰어 몸치장하고
踐遠游之文履 曳霧綃之輕裾
무늬 신 신고 얇은 명주치마를 끌며
微幽蘭之芳藹兮 步踟躕於山隅
그윽한 난초 향기에 묻혀 산모퉁이를 거니네
於是忽焉縱體 以遨以嬉 左倚采旄 右蔭桂旗
이에 몸을 놓아 즐겁게 노니니,
왼쪽은 채색 깃발에 기대었고 오른편은 계수 깃발에 가리웠네.
攘皓腕於神滸兮 采湍瀨之玄芝.
물가에서 흰 팔 걷고 여울가에서 현초를 캐는데,
余情悅其淑美兮 心振蕩而不怡
내 뜻이 그 맑은 아름다움에 흠모되어 마음이 흔들려 편안치 않네.
無良媒以接歡兮 託微波而通辭
좋은 매파가 없어 말 전하지 못하여 잔물결에 부쳐 전하노니
願誠素之先達 解玉佩以要之
사모하는 내 뜻을 알리고자 구슬 노리개를 풀어 바라네.
嗟佳人之信脩 羌習禮而明詩
가인은 닦음에 정성되어 예를 익혔고 시에도 밝으니,
抗瓊珶以和予兮 指潛淵而爲期
구슬을 집어 답하기에 깊은 연못을 가리켜 화답하였네.
執眷眷之款實兮 懼斯靈之我欺
간절한 정을 지녔으나 그 속음을 두려워하니
感交甫之棄言兮 悵猶豫而狐疑
정교보의 버림받은 말 생각하고 슬퍼져 머뭇거리며 의심하네.
收和顔而靜志兮 申禮防以自持
온화한 얼굴 거두고 뜻을 조용히 가지며 예의를 차려 자신을 지키니
於是洛靈感焉 徙倚彷徨
이에 낙신이 느낀 바 있어 이리 저리 헤매는데
神光離合 乍陰乍陽
광채가 흩어졌다 모이며 그늘이 되었다 밝아졌다 하니
竦輕軀以鶴立 若將飛而未翔
날렵한 자태 발돋움하여 나는 듯 날지 않고
踐椒塗之郁烈 步蘅薄而流芳
향기 자욱한 길을 밟고 방향을 퍼트리니
超長吟以永慕兮 聲哀厲而彌長
길게 읊어 영원히 사모하니 그 소리 서러워 더욱 길어지네.
迺衆靈雜遝 命儔嘯侶
그리하여 갖은 신령들이 모여들어 서로 짝들을 부르게 하니
或戲淸流 或翔神渚 或采明珠 或拾翠羽
혹자는 맑은 물속을 노닐고 혹자는 신령스런 물가를 날며,
혹자는 밝은 구슬을 찾고 혹자는 비취빛 깃털을 줍네
從南湘之二妃 攜漢濱之游女
남쪽 상강의 두 비를 따르게 하고 한수가의 여신을 대동하니
歎匏瓜之無匹 詠牽牛之獨處
포과성이 짝없음을 탄식하고 견우성이 홀로 삶을 읊조리네.
揚輕袿之綺靡 翳脩袖以延佇 體迅飛鳧 飄忽若神
아름다운 옷자락을 나부끼며 긴 소매 가려 물끄러미 서니
날렵하기가 나는 새 같고 표연하기가 신령과 같네.
陵波微步 羅襪生塵 動無常則 若危若安
물결을 밟아 사뿐히 걸으니 버선 끝에 먼지가 일고
그 몸짓 대중없으니 위태한 듯 평안한 듯
進止難期 若往若還
나아가고 멈추어 섬을 예측하기 어려워 가는 듯 돌아서는 듯하네.
轉眄流精 光潤玉顔 含辭未吐 氣若幽蘭
돌아서 바라보니 옥안이 눈이 부시고
말을 머금어 내지 않으니 그윽한 난초와 같아
華容婀娜 令我忘餐
화용이 눈부셔 식사를 잊게 하네.
於是屛翳收風 川后靜波
이에 병예가 바람을 거두고 천후가 물결을 재우며
馮夷鳴鼓 女媧淸歌
풍이가 북을 울리고 여와가 고운 노래를 부르니
騰文魚以警乘 鳴玉鸞以偕逝
문어를 띄워 수레를 지키고 옥방울을 울리며 더불어 가는구나.
六龍儼其齊首 載雲車之容裔 鯨鯢踊而夾轂
육룡이 머리를 맞대 공손히 수레를 끌고 고래가 뛰어올라 바퀴를 돌보며
水禽翔而爲衛 於是越北沚 過南岡
물새가 날아올라 호위하며 북쪽 물가를 넘어 남쪽 산을 지나네.
紆素領 廻淸陽 動朱脣以徐言 陳交接之大綱
흰 고개를 돌려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열어 천천히 만남의 일을 말하니
恨人神之道殊 怨盛年之莫當
사람과 신의 길이 다르매 아름다운 나날에 함께 하지 못함을 원망하네.
抗羅袂以掩涕兮 淚流襟之浪浪
비단 소매 들어 눈물을 가리나 눈물이 떨어져 옷깃을 적시니
悼良會之永絶兮 哀一逝而異鄕
좋은 만남이 영원히 끊어질 것을 슬퍼하며 한번 가니 다른 곳에 있음을 서글퍼 하네.
無微情以效愛兮 獻江南之明璫
미미한 정으로 다하지 못한 바 있어 강남의 빛나는 구슬을 바치고
雖潛處於太陰. 長寄心於君王
비록 깊은 곳에 거할지라도 이 마음 긴히 군왕께 거하겠다 하네.
忽不悟其所舍 悵神宵而蔽光
문득 그 있는 곳 뵈지 않더니 섭섭히 사라져 빛을 가리네.
於是背下陵高 足往神留
이제 돌아서 높은 곳 오르려 하니 발걸음은 가고자 하나 뜻이 머물려 하니
遺情想象 顧望懷愁
남은 정을 되새기며 돌아보며 탄식하네.
冀靈體之復形 御輕舟而上泝
그 모습 되찾기를 바라며 작은 배를 몰아 강에 오르니
浮長川而忘反 思緜緜而增慕
아득한 강물에 배 띄우고 돌아갈 길 잊으나 생각은 연이어 그리움만 더하고
夜耿耿而不寐 霑繁霜而至曙
밤은 깊었는데 잠들지 못하고 엉킨 서리에 젖어 새벽에 이르노라.
命僕夫而就駕 吾將歸乎東路
마부에게 명하여 수레를 내게 하고, 이제 나는 동로로 돌아가려 하네.
攬騑轡以抗策 悵盤桓而不能去
말고삐 잡아 채찍은 들었으나 그 마음 서운하여 돌아서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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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자료 잘 보았습니다.